[숏평 - 새로운 서평] 여자가 사랑한 여자들 外

[비평연대] 황수현·강민지·윤인혁의 500자 서평

2026-06-12     김리선 기자

젊은 문화비평가와 출판전문가들의 커뮤니티인 '비평연대'에서는 숏폼 콘텐츠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500자 내외의 '매우 짧은 연대 서평'의 형식을 고안했습니다. 2030세대 지식인 특유의 빛나는 감각으로 제시되는 다양한 책들을 통해 지식의 최전선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편집자주] 

■ 여자가 사랑한 여자들(이예지 지음, 위즈덤하우스, 2025)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제일 어렵다고 느낀 건 인터뷰 질문을 만드는 것이었다. 좋은 대답을 듣기 위해선 좋은 질문을 준비해 가야 한다. 목적이 있는 인터뷰라면 그 목적에 맞게 방향성을 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인터뷰이에 대한 사전 조사와 속한 사회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인터뷰 질문을 짜기 위해선 늘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공들인 시간이 모여 총 열다섯 개의 인터뷰를 담은 책이 세상에 나왔다.

작가는 인터뷰이들의 이유에 집중한다. 왜 그 직업을 택했는지, 왜 그런 작품을 만들었는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마지막에는 공통적으로 무엇을 믿는가에 대한 질문을 한다. 당연하게도 인터뷰이들은 다 다른 답을 한다. 사람은 모두 다 다른 삶을 살고, 다 다른 이유를 가지고 살아간다. 작가는 왜 이런 질문을 했을까? 이 책은 더 많은 여성의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작가에 의해 출간되었다. 그러니까 왜 그렇게 했냐는 질문을 통해 다양한 여성의 생각을 알아냄으로써 이 책을 볼 여자들에게 용기를 주려 한 것이다.

여성의 다양한 삶이 가시화될수록 여자들의 시선은 더 넓어진다. 남들과 같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은 편견에 가려져 있던 길을 들춘다. 다채로운 이야기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다양한 이야기는 비슷한 길을 가는 이에게 동력을 제공한다. 가로막는 장애물이 커다랄지언정 나아가는 길이 없는 건 아니다. 여성으로서 넘어졌다면, 여성이기에 넘어졌다면 읽자. 다시 일어난, 어떻게든 나아가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보자.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더 나아가자. 본인을 위해서, 미래의 여자들을 위해서.(황수현 / 칼럼니스트·비평연대)

황수현<br>

읽기의 위기 (크리스포트 엥게만 지음, 김인건 옮김, 헤이북스, 2026)

‘텍스트힙’이라는 말이 유행할 만큼 책 읽는 문화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출판사와 서점, 신문과 잡지는 점점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읽는 사람은 많아진 것 같은데, 정작 읽기의 환경은 더 불안정해지고 있는 셈이다. 읽기의 위기는 바로 이런 모순적인 시대 속에서, 지금 우리가 말하는 ‘읽기’가 과연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에서는 단순히 사람들이 책을 덜 읽게 되었다는 사실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AI는 인간보다 빠르게 텍스트를 읽고 요약하고, 사람들은 긴 글보다 영상이나 짧은 콘텐츠를 통해 정보를 받아들인다. 여전히 우리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읽고 있지만, 읽는 방식과 태도 자체는 이전과 크게 달라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읽으며 가장 크게 와닿았던 건, 나 역시 ‘직접 읽는 시간’을 많이 잃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플랫폼 안에서는 계속해서 글과 정보를 소비하고 있지만, 문장을 오래 붙들고 의미를 고민하거나 그것을 내 생각으로 정리하는 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편리함 속에서 읽기는 훨씬 빨라졌지만, 동시에 깊이는 점점 얕아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저자가 종이책만을 이상적으로 바라보거나 디지털 환경을 단순히 부정적으로 해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의 기술 환경 속에서 텍스트가 어떻게 소비되고 데이터화되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우리의 읽기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차분하게 풀어낸다.(강민지 / 문화평론가·프롬레코드대표·비평연대)

강민지<br>

조선시대 궁중기록화, 옛 그림에 담긴 조선 왕실의 특별한 순간들(김혜은 지음, 향, 2023)

우리는 누구와, 어디서, 무엇을 하든 사진으로 삶의 단편을 남기는 행위가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가끔은 사진을 보며 추억에 잠기고, 기억을 되살려 이야기의 불쏘시개가 되기도 한다. 사진은 그 순간을 통해 과거를 살펴보는 창이다.

그렇다면 사진기가 없었던 옛날에는 사건의 순간을 기록하고 과거를 되돌아보는 창은 무엇이었을까? 당연 ‘그림[畵]’이다. 지금은 시간과 정성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제 나름의 낭만을 가진 매체이지만, 카메라 이전의 그림은 행사를 기록하고 기념하는 보편적 매체였다.

그 가운데서도 궁중기록화는 그 시대 최고의 기술과 인력이 투입되어 성대한 궁중의 행사를 묘사한 작품이다. 이 책에서는 주로 행사를 기록한 그림과 병풍을 주로 다루지만, 의식의 전말을 기록한 의궤 속의 행사 공간의 전경이나 배치도, 행사에 사용된 춤과 악기, 행사를 위해 거둥한 행렬도(班次圖)까지 궁중기록화에 포함된다.

대부분 우리는 그 순간을 기념하거나 공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진을 남긴다. 하지만 많은 시간과 인력, 돈과 기술을 들여 그려낸 궁중기록화는 단순히 행사를 기념하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다.

의례를 행하고 그로써 국가를 통치하는 조선에서, 궁중기록화는 하나의 발자취이다. 궁중기록화 하나하나는 그 행사의 목적과 과정, 결과를 그림으로 남겨 후대인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남긴 규범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기록화’라고 부른다.

그래서 이 행간을 놓치면, 현대인들에게 궁중기록화는 마치 뚜렷한 용도가 없이 비싸기만 한 사치품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림 속에 담겨 있는 맥락을 알아차리는 순간, 궁중기록화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넘어 미래를 위한 애정 어린 참견처럼 느껴진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밟고 서있는지 자주 망각하는 오늘날, 궁중기록화는 단순한 사치재가 아니라 과거 사람들의 생활과 의례, 사상과 세계관을 통해 무언의 메시지를 담아 놓은 타임캡슐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 여러분도 다양한 그림과 함께 그 타임캡슐을 함께 열어보길 추천한다.(윤인혁 / 문화예술평론가·문화기획자·비평연대)

<strong>윤인혁</strong><b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