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같은 연극, 얄미운 연기…연극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 지공연의 세 번째 무대...일본 원작 넘어 한국적 공감대 이끌어 - 배우들의 팽팽한 앙상블…구혜령·송경아·김윤태·고인배·박선옥 등 몰입감 넘치는 호연

2026-05-10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지공연(지속 가능한 공연을 위한 공연예술인협동조합)이 세 번째 올린 일본 작가 하타사와 세이고의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첫 번째과 두 번째는 정범철 연출, 이번은 김정선 제작)를 5월 9일 대학로 물빛극장에서 관람했다.

필자는 2008년 일본에서 초연된 이 작품을 2012년 극단 신시컴퍼니 제작으로 김광보 연출, 손숙 김재건 등이 출연한 한국 초연 때 보았다. 권남희 배우 등이 출연한 지공연 공연을 보았으니 이번이 세 번째인 셈이다.

줄거리와 내용은 아는 만큼 누가 어떻게 만들고 연기하느냐가 관건인데 연출 이름이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대신 중견 연기자그룹 배우들은 새 얼굴들이 많아 개인기와 앙상블이 기대되었다.

이날 출연자는 담임 선생 위지현, 학생주임 권남희, 교장 지성근, 자살한 학생 미치코 엄마 구혜령, 편의점 주인 방준원이었다.

가해 학생 학부모로는 학생 중심으로 시노 부모 최담 송경아, 미도리 부모 김윤태 류시현, 노도카 조부모 고인배 박선옥, 아이리 모 조하연, 레이라 모 이자영 배우가 출연했다.

필자는 이 공연을 다시 보면서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하고자 했다.

첫째는 사건에 대한 책임의 문제, 둘째는 연극이지만 배우들이 얼마나 현실처럼 연기할까 였다.

첫째 관점은 깊이 들어가면 매우 복잡한데, 책임의 문제에서 한국과 일본이 어떻게 다르냐는 것이다. 희대의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범인이 잡히면 한국 TV에서는 부모가 나와 죄인처럼 고개 숙여 사죄를 표한다. 필자의 상식으로 일본인들은 부모가 나서지 않는다고 들었다.

‘니 부모 얼굴...’은 왕따를 당한 한 여중생이 자살하자 유서에 언급된 다섯 학생의 부모들이 학교에 불려와 벌어지는 상황을 그린 연극이다.

하타사와 세이고의 이 희곡은 학교 폭력을 학생의 시선이 아니라 그 이면에 도사린 어른들의 책임과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다루고 있어 필자의 선입관과는 달랐다.

심리나 태도가 좀 다른 것 같은 일본 학부모들도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객들이 동질감을 갖는 건 아닐까.

“설마 우리 아이는 아니겠지, 그런 짓을 할 아이가 아니야.”

책임을 회피하려 발뺌을 하고 핑계를 대는가 했는데 한 가해 학생의 조부모가 사실을 폭로하면서 반전을 이룬다.

연극

우리도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사설을 늘어놓는 이유는 일본 원작을 어떻게 무대에 구현하느냐, 다시 말해 일본 스타일로 할 것인지 한국인 심리에 맞춰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범철 연출을 따른 것 같은 이번 무대 역시 일본 내용이지만 한국이라도 비슷할 거라는 생각이 들 만큼 문화적 차이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사건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가 별로 없었고, 극 중 편의점 주인이 한 “애들 부모는 대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하는 대사도 낯설지 않았다. 일본 작가와 연출자는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우리 연출가는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도록 상황을 연출하고 배우들의 연기를 끌어냈다.

연극

연극은 세상의 거울이라고 하지만 현실 그대로는 아니다. 그런데 간혹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리얼해 연극이 현실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니부모 얼굴...’은 현실에서 소재를 얻은 연극인데도 배우들의 연기에 따라 어느 장면에서는 실제 같은 기시감이 들기도 했다.

가해 학생들의 부모들이 모인 지도실에 나타난 피해 학생 미치코의 엄마 역 구혜령 배우의 연기가 그랬다. 눈물이 고인 상태에서 원망과 분노에 차 절규하는 대사와 담임에게 폭력을 가하는 장면에서 잠시 연극임을 잊게 한 것이다. 편의점주 역의 방준현 배우는 배우가 아닌 일반인처럼 보이는 연기로 가식의 현장에 일침을 가했다.

담임 역 위지현, 학생주임 역 권남희, 교장 역 지성근 배우는 일본인의 습성과 태도가 밴 연기를 보였다. 권남희 배우는 교사로서의 책임감이 몸에 밴 반듯한 인상을 안겨주었다. 담임 역 위지현 배우는 전형적인 일본 교사상을 내성적 연기로 보여주었다.

연극

교장 역 지성근 배우는 전형적 교육자로, 흔들림 없는 확고한 태도의 반듯한 연기로 흐트러질 수 있는 무대의 중심을 잘 잡아주었다.

세 쌍의 부부와 2명의 어머니가 한 공간에 모인 무대에서 배우들은 각자 다른 캐릭터로 적시적소에 끼어들어야 하고 팽팽한 긴장을 유지해야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연기까지 세심한 신경을 써야 해 에너지 소모가 클 것 같았다. 자신의 연기도 중요하지만 타인과 밸런스를 맞추어야 하고, 현실감 있게 연기해야 하는 부담도 따랐을 것이다.

그런데 세 번째 공연이어서인지 배우들은 긴장을 유지하면서 자신들의 연기 스타일과 성격이 드러나는 연기로 현실감을 끌어올렸다.

시노 엄마이자 동창회장 역을 맡은 송경아 배우는 초반 악역을 얄밉게 해냈다. 유서를 불태우고 씹어먹는 진상짓에 난체하는 연기를 끼가 있게 해냈다. 반면 남편 역 최담 배우는 말수는 적지만 존재 자체로 위협을 가하는 묵직한 연기를 보였다.

두 번째 튀는 인물은 미도리 아빠 역을 맡은 장신의 김윤태 배우였다. 현직 교사라는데도 그는 모든 상황에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이기적인 캐릭터를 진짜 뻔뻔하리만치 사실감 넘치게 해냈다. 반면 아내 역 류시현 배우는 예의를 아는 이성적 캐릭터를 교사답게 해냈다.

연극

필자 개인적으로 이날 가장 주목한 배우는 노도카 조부모 역을 맡은 고인배 박선옥 배우였다.

우선 두 배우 모두 극 중 인물의 연령대와 비슷해 역할에 신뢰감을 주었다.

이번에 새로 합류한 고인배 배우는 현실을 직시하는 바른 할아버지 캐릭터를, 박선옥 배우는 감추어온 진실을 밝히는 용단 있는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해냈다. 두 배우의 공통점은 연극적인 연기를 보였는데, 현실 같은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돋보인 것이다.

아이리 엄마 역 조하연 배우는 남편의 실직과 자신의 형편을 숨기는 위선적인 캐릭터를 밉상이 아닌 연민이 갈 만큼 밝게 연기했다. 레이라 엄마 역 이자영 배우는 미국에서 거주하다 편입해 왕따 경험이 있는 딸을 보호하는 모성 본능의 연기를 차가운 듯하다가 공감할 수 있게끔 보여주었다.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일본 작가의 작품인데도 작금의 한국 교육 현장과 맞물린 데다 한국 배우들의 연기로 자주 공연하다 보니 한국 작품처럼 착각이 들 만큼 한국 관객 친화적인 작품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은 5월 17일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