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 시인의 좋은 시 365] 박준 시인의 ‘어떤 셈 법’
시는 인간 마음속 심상(心像)에서 피어나는 혼불과도 같습니다. 깊은 사유의 내면에서 길어 올린, 짧지만 응축된 언어문학의 보석과도 같은 시의 세계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좋은 시와 함께 조용하지만 반짝이는 하루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어떤 셈법 / 박준
네 형편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내가 칠만 원을 줄게.
너는 오만 원만 내. 그러면 십이만 원이 되잖아. 우리 이 돈으로
기름 가득 넣고 삼척에 다녀오는 거야. 네가 바다 좋아하잖아.
나는 너 좋아하고.
- '계절 산문' (달, 2021)
박준 시인은 이제 단순히 시집을 펴내는 시인이라는 말만으로는 다 설명하기 어려운 문화적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는 시를 쓰는 사람인 동시에, 시가 독자에게 닿는 방식까지 함께 고민하는 창작자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다수의 시인이 종이 위의 문장으로 독자를 만났다면, 박준 시인은 그 만남의 자리를 여러 매체로 옮기며 새로운 독자층과 호흡해 왔습니다.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문학동네, 2012)라는 출간 이후 오랫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작품입니다. 절제된 감정의 힘과 낮은 목소리로 건네는 문장, 오래 남는 여운은 박준 시인의 언어를 대표하는 특징이었습니다. 이후 그의 작업은 '마중도 배웅도 없이'(창비, 2025)로 이어지며, 시인의 감성을 어디까지 확장하고 전달할 수 있는가를 묻는 과정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단순히 활동 범위가 넓어졌다는 의미에 머물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의 본질을 다른 형식으로 다시 전하는 시도에 가깝습니다. 라디오 진행은 시가 지닌 호흡과 리듬을 살려주고, 방송 출연은 시를 어렵게 느끼던 이들에게 더욱 자연스럽게 다가가도록 합니다. 또한 카카오톡 이모티콘과 같은 문장 기반 굿즈는 한 줄의 시를 일상 속으로 끌어와 문학과 생활 사이의 거리를 좁힙니다.
결국 박준 시인의 행보는 문학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텍스트의 깊이를 지키면서도 그것을 다양한 감각과 매체로 확장해 나가는 흐름입니다. 시는 여전히 책장 위에 놓여 있지만, 동시에 공기 중의 목소리가 되고 책상 위의 굿즈로 일상 속으로 스며듭니다.
그 과정에서 시인은 AI 시대를 포함한 동시대 문학이 머물러야 할 자리를 함께 탐색하는 예술가로서, 문학이 도달할 수 있는 새로운 감각의 지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