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연재②] 폴란드 의사 부자(父子)가 30년간 접지 연구한 도시, 비드고슈치
[신향식의 건강365칼럼 : 폴란드 의사 소칼의 접지 리포트②] - 브르다강 흐르고 병원이 숨 쉬는 ‘의학 도시’ - 병원과 일상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공간 - 의사들도 자전거로 출근…관광보다 삶이 중심
폴란드의 심장내과 의사 카롤 소칼(Karol Sokal) 박사와 신경외과 교수 파베우 소칼(Paweł Sokal) 부자는 구리판과 전도성 와이어로 몸을 땅에 연결한 ‘인공맨발’ 실험으로 접지 효과를 30년 넘게 연구해 왔다. 부친인 카롤 소칼 박사는 3년 전 별세했으며, 아들인 파베우 소칼 교수는 10일 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 창립 10주년 학술세미나 참석차 방한한다. 이들의 연구는 현대인의 질병과 스트레스가 자연과의 단절과 무관하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다음은 세계적 어싱 연구자인 소칼 부자의 30년 연구 기록을 10회에 걸쳐 게재한다.
▶① 심장과 뇌 연구하다 어싱에 빠진 폴란드 의사 이어서
인터뷰365 신향식 칼럼니스트 = 폴란드라는 나라 이름을 들으면 한국인들은 몇 가지 장면을 먼저 떠올린다. 2002년 한일월드컵 조별예선 첫 경기, 한국이 황선홍과 유상철의 득점으로 폴란드를 2대0으로 꺾으며 붉은 함성이 터져 나왔던 일이다. 또 하나는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이다. 독일군의 침공으로 나라 전체가 짓눌렸던 역사, 바르샤바 봉기와 아우슈비츠의 기억이 겹쳐 떠오른다. 라듐을 발견한 과학자 마리 퀴리, 정확히는 폴란드 출신의 마리아 스크워도프스카 퀴리가 먼저 생각나기도 한다.
그런데 폴란드에는 뉴스의 헤드라인보다 더 조용하고 오래 남는 도시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북부의 도시 비드고슈치(Bydgoszcz)다. 이름은 낯설지만, 이곳은 유럽 의학계에서는 꽤 익숙한 도시다. 폴란드의 심장내과 의사 카롤 소칼 박사와 신경외과 교수 파베우 소칼 부자가 30년 넘게 어싱 연구를 이어온 곳도 바로 여기다.
비드고슈치에 처음 도착하면 대개 “생각보다 훨씬 조용하다”고 느낀다. 수도 바르샤바처럼 빠르게 돌아가지도 않고, 크라쿠프처럼 관광객으로 넘치지도 않는다. 대신 도시 한가운데를 브르다강이 유유히 흐르고, 멀지 않은 곳에서 비스와강이 큰 숨을 쉰다. 강가를 따라 걷다 보면 오래된 붉은 벽돌 건물과 고풍스러운 다리, 그리고 나무 그림자가 길게 드리운 산책로가 이어진다.
흰 가운 의대생들 커피잔 옆 해부학 전공책
이곳은 화려한 관광도시라기보다 오래 머물고 싶은 도시다. 아침이면 자전거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는 의사들이 지나간다. 대학 캠퍼스 주변 카페에는 흰 가운을 걸친 의대생들이 커피잔 옆에 해부학 책을 펼쳐 놓는다. 저녁이 되면 강변 산책로에 사람들이 천천히 걸음을 늦춘다.
비드고슈치는 폴란드에서도 손꼽히는 의료 도시다. Nicolaus Copernicus University 의과대학을 비롯해 여러 대학병원과 군 병원이 자리 잡고 있다. 의사와 연구자, 간호사와 학생들이 도시의 리듬을 만든다. 그래서 현지 사람들은 농담처럼 이곳을 “병원이 숨 쉬는 도시”라고 부른다.
실제로 이곳의 공기는 조금 다르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도시 전체가 어딘가 차분하고 단정하다. 빠른 도시에서는 시간이 사람을 쫓아오지만, 비드고슈치에서는 사람이 시간을 따라 천천히 걷는다.
유리와 곡선으로 지은 공연장 ‘오페라 노바’
이 도시의 중심에는 ‘밀 섬(Mill Island)’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공원이 있다. 오래전 제분소가 있던 자리다. 지금은 시민들의 쉼터가 됐다. 강물이 잔잔하게 흐르고, 초록 잔디와 오래된 건물이 작은 엽서처럼 풍경을 만든다.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에는 야외 공연이 열린다. 병원에서 하루 종일 긴장하던 사람들도 이곳에 오면 조금은 숨을 고른다.
오페라 노바(Opera Nova)도 빼놓을 수 없다. 유리와 곡선으로 지어진 현대적인 공연장은 오래된 도시 풍경 속에서 묘하게 잘 어울린다. 밤이면 클래식 음악과 오페라가 도시의 공기를 채운다. 수술실의 긴장과 공연장의 침묵은 어딘가 닮아 있다. 둘 다 집중이 필요하고, 둘 다 생명을 다루는 일처럼 조심스럽다.
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 창립 10주년을 맞아 방한하는 파베우 소칼 교수도 이 도시에서 수술하고 연구한다. 그의 병원은 Jan Biziel University Hospital, 그리고 군 병원인 10th Military Research Hospital이다. 그는 신경외과 의사로서 뇌를 연구하지만, 동시에 땅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일부에서는 왜 첨단 의학을 하는 교수가 맨발걷기를 연구하느냐고 궁금해 하기도 한다.
어쩌면 답은 도시 안에 있다. 강이 흐르고, 사람들이 천천히 걷고, 병원이 삶의 한가운데 있는 곳. 자연과 의학이 서로 등을 돌리지 않는 도시. 비드고슈치에서는 흙길을 걷는 일이 특별한 운동이 아니라 일상의 한 장면이다.
삶의 속도 너무 무너지지 않은 게 ‘진정한 건강’
그래서 이곳에서는 ‘건강’이라는 단어가 조금 다르게 들린다. 병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삶의 속도가 너무 무너지지 않은 상태에 가깝다. 잘 자고, 잘 걷고, 숨이 편한 것. 의학은 그 단순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 도시는 조용히 보여준다.
관광객은 유명한 명소를 찾지만, 오래 사는 사람은 좋은 일상을 찾는다. 비드고슈치는 후자에 가까운 도시다. 매일 아침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강변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삶. 어쩌면 여행자가 진짜 부러워하는 것도 그런 풍경인지 모른다.
화려하지 않아서 더 오래 기억되는 곳. 비드고슈치는 빠르지 않아 더 좋고, 조용해서 더 깊이 남는 곳. 그리고 그 조용한 도시에서, 한 의사 부자는 오랫동안 같은 질문을 붙잡고 있었다.
왜 사람은 흙길을 걷고 나면 조금 편안해지는가. 그 질문의 답은 어쩌면 거창한 연구실이 아니라, 바로 이 도시의 느린 강물 곁에 이미 흐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