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 시인의 시로 보는 세상 풍경] (55) “문학은 위대한 순간과의 만남이다”

2026-05-04     홍찬선 칼럼니스트
영인문학관

인터뷰365 홍찬선 칼럼니스트 =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인연이다. 우연히 이루어진 만남으로 삶이 크게 바뀐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인생이 더욱 풍부해지고, 나쁜 사람을 만나면 삶이 망가질 수 있다. 초중고대학교에서 어떤 선생을 만나고, 사회에서 어떤 멘토를 만나는가는 우연이다. 하지만 반드시 우연만은 아니다. 내가 본받고 싶은 사람 만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하면 필연은 우연의 가면을 쓰고 살며시 다가온다.

김진영 교수를 통해 조지프 브로드스키를 만나다

영인문학관

김진영 전 연세대 노어노문학과 교수(현 운심석면문화재단 대표)를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지인이 5월 2일 오후에 평창동 ‘영인문학관’에서 강의가 있는데 가자고 해서, 쾌히 응낙했다.

‘서울특별詩’ 연재 등을 위해 영인문학관에 두세 차례 갔는데, 문을 여는 날이 아니라서, 밖에서만 봤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조금 일찍 도착해 영인문학관 안을 둘러봤다. 이어령(李御寜, 1934~2022) 교수가 생전에 집필에 몰두하던 ‘이어령의 방’과 이 교수의 육필 원고, 문인들의 손도장 등을 인상 깊게 살펴보았다.

사람이 가니
이어령길이 생겼다

집 하나도 없던
산 중턱에 외딴집을 짓고
48년 동안 살았던 것을 기념하는 일이었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등
100여권의 저서를 쓰고
게오르규 루이제린저 같은
세계적 석학들이 찾아온 바로 그집을

영인문학관으로 꾸며
원고 초상화 편지 서화 사진 등을
전시하는 것은 새로운 역사로 만들었다

길이 생기니 사람이 다니고
사람이 다니니 길이 더욱 넓어졌다

- 홍찬선, '이어령길 영인문학관' 전문

영인문학관에서

​이어령길은 평창동의 가나아트센터(평창30길 28)에서 평창30길 끝까지 700m 구간이다. 이어령길 중간쯤에 영인문학관(평창동 499-3)이 있다. 이어령(李御寜, 1933~2022) 평론가가 48년 동안 살았던 집을, 이어령의 영(寧)과 부인 강인숙 관장의 인(仁)을 합해서 지은 이름이다.

김진영 전 연세대 노어노문학과 교수는 '문학은 위대한 순간과의 만남'이란 강의를 지난 4월에 출간된 『강단에서 만나는 이어령』에 나오는 제자의 회고로 시작했다. “강의 노트가 문제가 아니죠. 선생님이 시간 중에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는데요.”는 구절이다.

김 교수는 “스승은 강의 시간은 물론 시간 밖에서 가르치는 것이 훨씬 많다”며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말은 스승에 대한 존경을 강조하는 것 외에 그림자 안에서는 스승을 볼 수 없으니 그림자 밖에서 적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스승을 크고 똑바르게 볼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라는 설명했다.

김 교수는 1984년 예일대 석사과정에 입학했을 때 대학원장의 ‘신입생 환영사’ 가운데 “(학문은) 본질적으로 고독한 작업(a quintessentially lonely job)”이라고 한 말을 평생 잊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령 교수도 달변가이고 열정적으로 원고를 썼는데, 매우 외로웠을 것이라는 것을 상기하기 위해서였다.

영인문학관

김 교수는 에를리히 교수가 ‘러시아 형식주의’의 대가인데, 집을 비우고 출장이나 여행갈 때 자신이 가서 집을 정리해준 추억도 얘기했다. 동료와 말싸움 끝에 동료가 “나가는 즉시 목 매달고 죽겠다”고 했다. 에를리히가 “과장법은 안된다”고 받아치자 그 동료는 “이건 과장이 아니라 은유”라고 했다고 했다.

그는 로버트 잭슨(1923~2022) 교수와의 일화도 소개했다. 잭슨 교수는 학생들을 집으로 초청해 ‘숲 걷기(Forest Walking)’를 가끔 했다. 집 주변의 숲을 걸으면서 자유롭게 문학과 철학 등에 대해 얘기하는 자리였다. 처음 초대받았을 때 김 교수는 그런 자리인 줄 모르고 분홍색 원피스에 구두를 신고 갔다. 어쩔 줄 모르고 얼굴이 발개졌는데, 잭슨 교수가 아티스트인 부인의 신발을 빌려주어서 무난히 ‘숲 걷기’를 마쳤다.

김 교수는 지도교수인 토마스 벤슬로바(1937~) 교수에게 ‘문헌학’의 중요성을 배웠다. “영혼이 잠깐 들어왔다 나가는 것처럼, 시와 시 언어는 누군가가 이미 쓴 것이 윤회하듯 내 입을 통해 왔다가 가는 것”이라서 “많은 시를 읽고 알아서 무한히 반복하는 기쁨을 누려야 하는데 표절 시비로 왈가왈부하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또 벤슬로바 교수 덕분에 1987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조세프 브로드스키(1940~1996) 교수의 특강도 들을 수 있었다. 김 교수는 “좋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이점은 좋은 선생을 만나 배우고, 배운 대로 가르칠 수 있다는 것과 유명한 사람의 특강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브로드스키는 소련에서 추방당해 부인과 아들을 남겨두고 혼자 가방 한 개 들고 미국에 살면서 시를 썼다. 김 교수는 브로드스키의 시 '노래(A Song)'는 “문학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큰 가르침을 주는 시”라고 밝혔다. 또 '거의 애가(哀歌, Almost an Elegy)'를 러시아어로 소개한 뒤 직접 러시아어로 낭독했다. 러시아 교수들은 강의할 때 시를 암송함으로써 시의 참맛을 느끼게 해준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거의 애가'의 마지막은 “소리가 지나가기 전에 아직 음악은 아니다/ 더 이상 소음도 아니다”라는 구절이 인상적이었다.

김 교수는 마지막으로 ‘해체주의자의 거장’인 해롤드 블룸(1930~2019)을 소개했다. 해체주의는 “우리는 태양을 본 적이 없다. 태양을 똑바로 쳐다 보면 눈이 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태양을 논의하는 것은 실재가 아닌 것만 논의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니까 모든 것을 해체해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블룸은 ‘1시간에 1000p를 읽는다’는 전설을 갖고 있을 정도로 책을 많이 읽었다. 그는 1973년에 명저 『영향의 초조함(The Anxiety of Influence)』을 쓴 뒤 유작으로 『문제의 바다에 저항해 무기를 들어라: 죽음의 우주에 대한 독자 정신의 위력(Take Arms Against A Sea of Troubles: The Power of the Readers’ Mind Over A Universe of Death』(2020)이란 책을 남겼다.

김 교수는 ‘블룸 교수에게 장학금을 받으려면 그와 자야 한다’는 루머가 있었고 ‘아들이 정신병을 앓고 있어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많은 책을 써야 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노년에 힘들게 보냈다.

김 교수는 “문학은 위대한 순간과의 고독한 만남”이라며 “위대한 작가의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위대한 스승을 만나는 것”이라며 강의를 마쳤다.

평창동 운심석면에서 멋진 삶을 보다

운심석면

김 교수의 강의가 끝난 뒤 ‘운심석면(雲心石面)’으로 이동했다. ‘운심석면’은 조선일보 편집국장과 대우전자 사장 등을 지낸 김용원 전 대우경제연구소 회장이 60여 년 동안 수집한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다. 김진영 교수는 김용원 회장의 장녀다. 김 회장은 평생 수집한 작품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2023년에 ‘운심석면문화재단’을 만들었고, 김 교수가 재단의 대표를 맡았다.

운심석면에 전시된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45~?)의 ‘주상관매도(舟上觀梅圖)’와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 1843~1897)의 ‘노안도(蘆雁圖)’ 등을 보는 호사를 누린다.

김 회장의 책 '구름의 마음 돌의 얼굴; 김용원 아트 컬렉션 60년'은 김 회장이 담담하게 수장하고 있는 작품을 수집하게 된 과정을 설명한 책이다. 책을 읽으며 그림을 보는 것은 계절의 여왕, 5월의 특별한 경험이었다.

운심석면

삶은 그렇게 
그림 그리듯 사는 것이다

빠듯한 월급에도
고등학교 은사의 
안개꽃으로 눈이 뜨고

마음이 가는 곳에
돈도 따라 흐르는 것이다

이사 할 때마다
우연인 듯 인연인 듯
벽에 어울리는 그림을 맞았고

사람은 사람과 만나
더욱 아름다워지게 마련이다

검여 천경자 노은여 변시지를 만나
완당과 석파와 소치와 화담(畫談)하는 사이
구름의 마음과 돌의 얼굴이 다가오고

진심은 늘
하늘도 함께 하는 것이다

단원의 주상관매(舟上觀梅)와 
겸재의 노송영지(老松靈芝)와 
오원의 노안(蘆雁)이 품안에 스몄다

- 홍찬선, '구름의 마음과 돌의 얼굴'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