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희 감독의 AI스토리텔링] 인문·예술·공학을 유영하는 ‘경계인’ 권호창 교수

[인터뷰365] 권호창 대구가톨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 질문이 이끈 ‘경계인’의 여정 - 공학도 출신으로, 영상이론 및 내러티브 생성 시스템 전공 - 권호창 교수가 말하는 AI 시대의 서사 - "AI는 ‘생성’하고 인간은 ‘창작’한다" - 인간과 AI글의 차이는 ‘정보의 비대칭 설계’

2026-04-29     이은희 인터뷰어

AI스토리텔링은 인공지능(AI)이 사람과 협력하거나 스스로 이야기를 창작하는 기술 및 개념을 의미합니다. 스토리텔링 작법서 '4줄이면 된다'의 저자 이은희 감독이 AI스토리텔링에 관심 있는 다양한 분야의 인물을 만나 4가지 주제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응답을 듣는 새로운 형식의 인터뷰 시리즈를 선보입니다. <편집자주> 

인터뷰365 이은희 인터뷰어(/감독 겸 작가) = 인터뷰 자리에서 자기소개를 요청하면 대개 회사이름이나 직함을 먼저 말한다. 하지만 권호창 교수(대구가톨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는 스스로를 ‘경계인’이라고 소개했다.

화학공학에서 시작해 영상이론으로 옮겼다가, 다시 공학 분야 대학원으로 이어진 그의 여정에서 엿볼 수 있듯이 지금도 인문, 예술, 공학을 넘나들며 강의하고 연구하는 그다운 대답이다. 그렇다고 경계에 있다기에는 너무나 예술가다운 말이었다.

권 교수는 인문과 공학의 경계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며 '이야기'라는 플랫폼 위에서 인간, AI, 서사의 관계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호모 나랜스와 AI’(2025)와 ‘인간과 AI, 내러티브 이해와 창작’(2025)이 있으며 이솝 우화 600편의 결말 발화를 전산적으로 분석하기도 했고, 아가사 크리스티 66편의 장편소설에서 모티프의 자기조직화 과정을 추적하기도 했다. AI라는 단어가 나오기도 전부터 디지털과 이야기를 연구해 온 권호창 조교수를 만났다.

1. 여정과 관점

“질문이 나를 공학으로 이끌었다”

- 영상이론(예술)과 내러티브 생성 시스템(공학)이라는 이질적인 두 길을 동시에 밟으셨는데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 석사과정에서 U-AT(유비쿼터스 아트&테크놀로지) 사업에 참여하면서 경험한 '디지털 스토리텔링' 연구가 제게는 너무 추상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이야기의 구조를 분석하고 생성하는 보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연구를 하고 싶었죠. 그래서 스토리 분석 시스템, 스토리 생성 시스템을 연구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았고, KAIST의 정재승 교수님의 소개로 알게된 윤완철 교수님을 통해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예술에서 공학으로 갔다기보다는 질문이 저를 이끌었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이야기는 어떻게 작동하는가?"라는 질문을 끝까지 파고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산적 방법론이 필요해진 것이죠. 인문과 과학, 예술과 기술, 창작과 이론 사이에 특별한 경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두 다 넘나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라는 것이 원래 그런 거니까요. 이야기는 인간의 인지와 감정, 사회와 문화, 기술과 매체가 모두 만나는 플랫폼입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한 분야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 2009년 당시 예술대학교(한예종) 영상이론과에서 ‘스토리 생성 시스템’을 연구한다는 게 꽤 생소한 일이었을 것 같습니다.

“석사 논문 제목이 ‘디지털 스토리텔링에 있어 스토리 생성 시스템 연구: 스토리 엔진 모델링을 중심으로’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컴퓨터가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논문이에요. 당시 국내에서 '디지털 스토리텔링'이라는 말은 많이 쓰이고 있었지만, 정작 컴퓨터를 이용해서 스토리를 생성하는 시스템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거의 없었습니다.

재밌는 에피소드도 있어요. 내러티브의 전개 과정을 모델링하는데, 플롯의 단계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느냐는 이슈가 있었거든요. 저는 주인공에 대한 긴장값이나 서사 전반의 복잡도 변화량을 미분했을 때 0이 나오는 지점을 기준으로 단계를 구분한다고 설명했는데... 논문 디펜스에 참여하셨던 교수님들이 다 웃으셨어요. 예술대학에서 ‘미분’ 이야기가 나올 줄은 아무도 예상 못 하셨겠죠. 지도교수이셨던 심광현 교수님의 일관되고 강력한 지지가 있었기에 이 논문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교수님이 아니었다면, 그 시절, 예술대학에서 이런 논문을 쓴다는 건 불가능했을 거예요.”

- ChatGPT가 등장했을 때 연구자로서 솔직히 어떠셨나요?

“박사과정에서 ‘정보처리 관점에서의 내러티브 창작 지원 지식 모델 연구’를 했습니다. 서사의 구조와 에이전트의 지식이라는 이론적 모델로 접근한 것이죠. 하지만 좋은 이야기에 필요한 요소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만 분석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어요. 그러니 일반인들은 사용할 수가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를 계속했던건 당시로서는 인간 수준으로 자연어를 처리하는 컴퓨터가 단시간에 만들어질 거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죽은 이후에나 나올까 말까, 그 정도로 생각했어요. 하하. 근데 몇 년만에 ChatGPT가 등장한거예요. 처음에는 낙담도 했어요. 좋은 이야기에 필요한 요소를 알고 있는 AI를 너무 쉽게 쓸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제가 박사과정에서 연구했던 것들이 다 의미가 없고 새로 모든 걸 공부해야 하나 싶은 좌절감과 두려움도 느꼈습니다.”

- 정말 의미가 없던가요?

“이후 공부와 연구를 계속하면서,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LLM(대형언어모델)이 생성한 서사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데 제 연구가 필요해진 측면도 있어요. LLM이 유창한 텍스트를 생성하는 것과, 서사적으로 정교한 구조를 만드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니까요. 결국 기술적 패러다임은 바뀌었지만, 서사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이론적 토대의 필요성은 오히려 더 커진 셈입니다.”

2부. AI 서사의 본질

- 어디까지가 창작인가...‘생성’되는 텍스트와 ‘창작’되는 세계

대구가톨릭대학교

- AI를 뭐라고 정의하고 출발하면 좋을까요?

“'AI'라는 말이 오늘날에는 거의 상용어처럼 되어서 '디지털'이나 '컴퓨터'의 대용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정말 얼마 안 된 일입니다. AI와 LLM을 구분해야 합니다. AI는 인간의 지능을 모방하거나 시뮬레이션하려는 넓은 분야를 가리킵니다. 1950년대부터 이어져 온 긴 역사가 있고, 그 안에는 규칙 기반 시스템, 지능형 에이전트, 기계학습 등 다양한 접근법이 있습니다. LLM은 그중 최근의 한 갈래로, 대규모 텍스트 데이터에서 통계적 패턴을 학습한 트랜스포머 기반의 언어 모델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AI'라고 말할 때 대부분 LLM을 뜻하지만, 이 둘을 혼동하면 AI 분야에서 서사를 연구해 온 반세기의 역사와 맥락을 놓치게 됩니다. 그러니 AI는 '인간의 지능을 모방하거나 시뮬레이션하려는 연구 분야 전체'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요즘 우리가 ChatGPT 등을 통해 체험하는 대형 언어 모델(LLM)은 그 안의 한 갈래인거죠.”

- AI가 쓴 글이 점점 인간의 글과 구별하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를 '창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저는 '창작'과 '생성'을 구분해서 사용합니다. 이 구분은 단순한 용어 선호가 아니라 존재론적 차이에 근거한 것입니다. 인간의 창작은 실존적 동기에서 출발합니다. 하이데거의 표현을 빌리면, 창작은 기존에 없던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은폐되어 있던 인간 경험의 본질적 구조를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창작자는 체화된 경험을 바탕으로 의도를 갖고, 그 의도가 창작 과정에서 진화하며, 자기 작업을 메타인지적으로 성찰합니다. 글을 쓰면서 "이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인가?"라고 스스로 묻고, 방향을 수정하고, 예상치 못한 통찰에 도달하기도 합니다. LLM의 생성 과정은 이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주어진 프롬프트에 대해 가장 그럴듯한 다음 토큰을 예측하는 확률적 계산을 반복하는 것으로,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하는" 의도나 창작 과정을 성찰하는 메타인지는 개입하지 않습니다.”

- 이야기를 데이터 구조로 모델링하는 연구를 하셨습니다. 그 관점에서 보면 AI가 생성한 글과 인간이 쓴 글의 결정적 차이는 무엇인가요?

“겉으로만 보면 인간이 쓴 글과 구별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차이가 나타납니다. 가장 선명한 지표 하나를 꼽자면 ‘누가 무엇을 알고 있는가’, 즉 등장인물과 독자 사이의 정보 차이를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인간 작가는 인물마다 아는 사실의 양을 다르게 설정합니다. 어떤 인물은 중요한 비밀을 알고 있고, 어떤 인물은 모르며, 독자는 인물보다 더 많이 알 수도 있고 덜 알 수도 있습니다. 바로 이 정보의 차이가 긴장감, 반전, 오해, 몰입을 만들어냅니다. AI도 이런 구조를 흉내 낼 수는 있지만, 끝까지 정교하게 유지하는 데는 아직 한계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인과관계입니다. 인간이 잘 쓴 서사는 앞의 일이 뒤의 일을 자연스럽게 낳으면서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긴장을 키웁니다. AI가 만든 이야기는 겉보기에는 그럴듯해도, 깊이 들어가 보면 사건들이 평균적으로 무난하게 연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간을 다루는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 작가는 과거의 사건, 현재의 선택, 앞으로 드러날 결과를 계산해 배치하면서 이야기의 리듬을 만듭니다. 반면 AI는 다음에 올 법한 문장을 예측하며 이어가는 방식이라, 이런 시간적 설계를 정교하게 통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다만 이런 지표가 이야기의 모든 가치를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이야기에는 구조뿐 아니라 시대적 맥락, 문화적 의미, 독자가 받는 감정 같은 요소도 함께 작용하니까요.”

- 최근 몇 년 사이 AI 스토리텔링을 연구하며 ‘내 생각이 틀렸다’고 느낀 지점이 있었나요?

“기술적 전망에 관해서 꽤 보수적인 편이어서,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KAIST 박사과정에서 공부할 때조차 오늘날과 같이 자연어 처리에 능숙한 컴퓨터가 나오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텍스트의 장거리 의존성을 포착하고, 암묵적 상식 지식을 활용하며, 유창한 대화를 나누는 대형 언어 모델(LLM)의 능력은 놀랍습니다. 이 점에서 저는 확실히 틀렸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기술적 전망에서 일뿐, 서사 차원에서의 판단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LLM이 자연어를 유창하게 생성하는 것과 서사를 이해하고 창작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또한 서사를 이해하는 것과 서사를 창작하는 것도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인간의 서사 능력은 체화된 경험, 실존적 의도성, 해석학적 순환, 메타인지 능력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통계적 패턴 매칭에 기반한 LLM과는 작동 방식에 본질적 차이가 있습니다. LLM은 '그럴듯한 다음 토큰'을 예측하는 것이지, 이야기를 '이해'하거나 '의도'를 갖고 창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본질적 차이에 대한 저의 판단은, LLM의 등장 이후 오히려 더 명확해졌습니다.”

3부. 인간의 역할과 책임

- ‘AI를 잘 쓰는 법’...메타인지가 곧 경쟁력이다

- 그렇다면 저자성과 공로는 어떻게 정리하는 게 건강하다고 보나요?

“투명성이 핵심입니다. AI를 활용한 정도와 방식을 명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자란 서사에 실존적 동기와 의도를 부여하고, 전체적인 의미와 방향을 결정하고, 최종 결과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주체입니다. "누가 텍스트를 물리적으로 생성했는가"가 아니라, "누가 이 서사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으며, 그 결과에 대해 누가 응답할 것인가"로 저자성을 재정의하는 것이 이 시대에 맞는 접근이라고 봅니다.”

- AI 결과물을 검수할 때, 창작자가 반드시 확인해야 할 ‘위험 신호’는 무엇인가요?

“LLM의 핵심 작동 원리가 확률적으로 가장 그럴듯한 다음 토큰을 예측하는 것이니, 사실이 아닌 정보가 자연스러운 문체에 실려 들어오면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이 “그럴듯함”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는 것이 가장 큰 위험입니다. 다만 편향을 식별하려는 의도가 '삭제'라면 그것은 잘못된 접근일 수 있습니다. 편향이 전혀 없는 서사는 매혹적이지 않습니다.

프레드릭 제임슨의 표현을 빌리면, 모든 서사에는 정치적 무의식이 내재해 있으며, 이것은 결함이 아니라 서사의 본질적 조건입니다. 핵심은 ‘이것이 어떤 종류의 편향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창작자가 의도적으로 선택한 관점과, AI가 학습 데이터에서 무자각적으로 가져온 고정관념은 전혀 다른 것이고, 대응법도 달라야 합니다. 이 둘을 구별하는 것이야말로 AI 시대 창작자에게 요구되는 진짜 비평 능력입니다.

기술적 보완으로는 멀티 에이전트 구조가 유망합니다. 서사를 생성하는 AI와는 별개로, 생성된 결과물에 비평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에이전트를 따로 두는 것입니다. ‘이 캐릭터의 행동 동기가 특정 문화권의 관습에만 기대고 있다’, ‘이 갈등 구조가 개인의 선택 문제로 환원되고 있다’와 같은 태클을 통해 창작자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지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이런 사람은 AI를 잘 쓴다’는 공통점이 있을텐데요, 그것이 교육 현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것이 있을까요?

“맞습니다. 저는 그것이 메타인지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AI를 잘 활용하는 사람은 도구를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작업을 메타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지금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이 작업의 전체 그림은 어떤지, AI에게 무엇을 맡기고 무엇을 직접 해야 하는지를 인식하고 관리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러니 교육 현장에서도 이 비평 능력을 가장 먼저 가르쳐야 합니다. 비평 능력이란 AI가 생성한 것과 인간이 만든 것을 구별하는 눈이 아니라 어떤 서사가 무엇을 말하고 있고, 무엇을 빠뜨리고 있으며, 어떤 관점에서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지를 읽어내는 능력입니다.

제가 수업에서 강조하는 것은, AI를 쓰기 전에 먼저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을 명확히 하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왜 만들고 싶은지를 자기 안에서 정리한 후에 AI를 활용해야 합니다. 이 순서가 뒤바뀌면 결국 AI의 평균적 패턴에 종속됩니다. 프롬프트를 정교하게 작성하는 기술은 분명 중요하지만, 그것은 메타인지 위에서만 의미가 있습니다.”

- 10년 뒤 창작자들이 준비해야 할 핵심 역량은 무엇일까요? AI가 계속 발전해도 인간 창작자가 잃지 말아야 할 것, 그리고 지금부터 키워야 할 것이 있다면요.

“잃지 말아야 할 것은 체화된 경험에 대한 신뢰입니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특정한 시공간에서 특정한 신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구체적 경험은 인간만의 것입니다. 메를로-퐁티가 말한 것처럼 모든 지각과 인식은 신체적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진정한 서사는 이 체화된 경험에서 출발합니다. 자기 삶의 경험을 서사의 재료로 삼는 감각, 개인적 경험을 보편적 의미로 변환하는 능력-이것은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4부. AI스토리텔링 연구자가 보는 미래

- 미래의 시나리오 “키는 여전히 인간이 잡고 있다”

- 최근 가장 몰두하고 계신 연구 주제가 무엇인가요?

“요즘 '메타성(metaness)'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메타성이라는 개념을 렌즈로 삼아서, 인간-AI-내러티브 삼항의 역동적 관계를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 지금 제가 가장 몰두하는 연구 주제입니다. 메타성이라는 것을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인간의 인지에는 본질적으로 메타적 차원이 있어요. 우리는 생각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을 관찰하며, 현재에 있으면서 현재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내러티브 역시 본질적으로 메타적입니다. 이야기와 이야기하기(담화)라는 이중 층위가 있고, 부재하는 것(과거의 사건, 가능 세계, 타자의 마음)을 현재화하는 능력이 있죠. 그리고 메타픽션이라는 양식은 이런 암묵적 메타성을 명시적으로 드러내고 전경화한 형식이에요. 등장인물이 자신의 허구성을 깨닫거나, 서술자가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걸거나, 텍스트가 자기 자신의 텍스트성을 언급하는 것이죠.”

ChatGPT

- 메타픽션을 연구의 중심에 놓으신 이유가 있을까요? AI와의 관계에서 특별히 메타픽션이 중요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일반적인 서사에서는 AI의 출력이 인간의 글과 구별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메타픽션에서는 형식만 흉내 내고 본질을 놓친다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메타픽션은 AI의 한계를 가장 선명하게 가시화하는 테스트베드인 셈이죠. AI도 형식적으로는 메타적 구조를 처리할 수 있어요. ‘등장인물이 자신이 소설 속 인물임을 깨닫는다’는 문장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하지만 AI는 왜 이것이 특별한지, 독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작가는 왜 이런 장치를 사용했는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AI의 자기 참조적 진술, “나는 AI입니다”는 훈련된 패턴이지 자기 인식이 아니에요. 트랜스포머의 self-attention 메커니즘은 모든 토큰을 동등한 벡터로 처리하기 때문에 '햄릿'(허구)과 '셰익스피어'(현실) 사이의 존재론적 층위 차이가 사라집니다.”

- 그 연구를 실제로 AI와 함께 실험하고 계신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을 하고 계신가요?

“실제로 지금 클로드 코드를 이용해서 이야기의 층위가 중첩되는 구조를 AI가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실험하고 있어요. 이야기 안의 등장인물이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 안의 인물이 또 다른 이야기를 하고, 그 층위들이 서로 간섭하고 맞물리는 구조를 AI가 어느 정도 깊이까지 일관되게 유지할 수 있는지, 어느 지점에서 층위를 혼동하기 시작하는지, 층위 간의 의미론적 긴장을 의도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지를 테스트하고 있습니다. 또 AI가 메타픽션의 형식을 얼마나 재현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형식 이면의 존재론적 함의를 어느 수준까지 다룰 수 있는지를 단계적으로 평가하는 모델도 설계 중이에요. 표층 이해에서 출발해서, 메타적 장치 인식, 층위 간 경계 넘기 파악, 그리고 허구와 현실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통찰까지, 네 단계로 나누어 AI의 메타픽션 이해 능력을 측정하려는 것이죠.”

- 향후 꿈꾸는 AI와 인간 작가 간의 이상적인 협업 프로젝트는 무엇입니까?

“이 질문을 받고 AI에게 아이디어를 내보라고 시켰습니다. 제 연구 이력과 관심사를 다 입력하고 기발한 프로젝트를 제안해 달라고 했는데, 결과가 신통치 않더군요. 그럴듯해 보이는 기획안을 만들어 내긴 했지만, 저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습니다. 이 에피소드 자체가 AI 협업의 현재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꽤 오래전부터 생각해왔습니다. 석사 논문의 마지막에 이렇게 썼습니다.

"컴퓨터가 인과성과 합리성에 근거해서 인간에게 질문을 던지고 제약을 가하면, 인간은 이 질문의 의미를 곱씹으면서 문제를 해결하고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

17년 전의 문장이지만, 오늘날에도 인간과 AI의 이상적인 협업에 대해 여전히 같은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AI가 인간의 창작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던지고 생산적인 제약을 가함으로써 인간의 사고를 자극하는 것입니다. 거창한 미래형 프로젝트보다, 이렇게 인간이 키를 잡고 AI와 대화하면서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협업의 모습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는 요즘 메타픽션을 연구하는 연장선에서 조선시대의 '정감록'을 소재로 메타픽션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고 했다. 권호창 교수는 정감록을 이야기가 현실 변혁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를 보여주는 서사적 장치로 보고 있었다.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가 현실과 만나고, 다시 그 현실이 이야기를 바꾸는 순환 구조를 지향한다는 그는 이런 방식이 찰리 카우프만의 영화들에서 볼 수 있는 메타적인 구조와도 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이 작업 과정에서 AI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있지만, 창작의 방향과 판단은 자신이 쥐고 있다고 말했다. “키는 제가 잡고 있습니다”라는 그의 말은 이 작업의 핵심을 잘 보여준다. AI와 협업하되, 메타성을 유지하고 전체 구조를 통제하는 주체는 여전히 인간이라는 뜻이다. 이 작품 이야기를 하는 권호창교수의 얼굴에는 설레임과 조심스러움이 공존했다. 이 작업이 작품으로 완성될지는 모르겠다고 말하면서도 그럴기를 기대하고 있는 그는 영낙없이 경계인인 아닌 예술가였다. 오늘날 ‘Research Art’나 ‘Artistic Research’의 흐름이 보여주듯, 연구와 창작은 반드시 분리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권 교수의 시나리오가 정감록을 소재로 AI 시대의 창작 방식 자체를 탐구하는 하나의 연구결과물이면서 동시에 관객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으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