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 시인의 좋은 시 365] 김용택 시인의 ‘뒤로 묶은 머리’
시는 인간 마음속 심상(心像)에서 피어나는 혼불과도 같습니다. 깊은 사유의 내면에서 길어 올린, 짧지만 응축된 언어문학의 보석과도 같은 시의 세계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좋은 시와 함께 조용하지만 반짝이는 하루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뒤로 묶은 머리 / 김용택
그 여자는 빨래를 갠다고 했다
머리는 뒤로 묶었냐고 물었더니
빨래 속에 묻힌 흰 무릎 파란 빗줄이 보인다고 했다
정갈한 목덜미에
귀밑머리 몇 가닥이
고요히 달라붙어 있다고 내가 말했더니
거기서도 보이냐고 했다
사랑하면, 당신도 평생 보지 못할 귀 뒤쪽
창밖을 내다 보니
한여름인데 햇살이
마당에 가득 차 있어서
모든 것이
꼼짝 못한다고 했다
- '그날의 초록빛' (창비, 2026)
김용택 시인은 한국 서정시의 따뜻한 흐름을 이어온 대표적인 시인입니다. 1948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 섬진강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으며, 오랜 시간 초등학교 교사로 지내며 농촌의 일상과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바라보았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그의 시를 꾸밈없는 언어 속에서도 깊은 울림과 온기를 지닌 작품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1982년 ‘꺼지지 않는 햇불로’에 ‘섬진강 1’ 등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자연과 인간의 삶을 맑고 담백하게 그려왔습니다. 이후 ‘섬진강’, ‘맑은 날’, ‘그 여자네 집’, ‘울고 들어온 너에게’, ‘나비가 숨은 어린나무’ 등 여러 시집을 통해 일상의 풍경과 감정을 꾸준히 시로 담아냈습니다.
최근 출간한 열일곱 번째 시집 ‘그날의 초록빛’에서는 익숙한 느낌을 반복하기보다, 시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천천히 바라보는 시선이 배어 있습니다. 풀과 바람, 빛처럼 작은 자연의 순간들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며, 익숙한 풍경도 새롭게 느껴지게 합니다.
김용택 시인은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 등을 수상하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함께 인정받았습니다. 그의 시는 크게 말하지 않지만 오래 머무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시는 지금도 누군가의 하루 끝에서 조용히 펼쳐지고, 그 따뜻한 문장을 기다리는 사람들 곁으로 다시 흘러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