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 시인의 시로 보는 세상풍경] (54) “한자는 마차, 일어는 자전거, 영어는 자동차, 한글은 비행기!”

2026-04-28     홍찬선 칼럼니스트
훈민정음

인터뷰365 홍찬선 칼럼니스트 = “한문이 마차라면 일어는 자전거이고 영어는 자동차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한글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비행기요!”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은 지난 18일 한글회관에서 열린 ‘훈민정음 해례본 낱말 날적이’ 출판기념회에서 한글의 우수성을 이같이 비유했다. ‘훈민정음 해례본 낱말 날적이’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1443년에 창제하고 3년 뒤인 1446년에 반포할 때 출간한 ‘훈민정음’에 나오는 한글 낱말 124개를 당시 글자 그대로와 요즘 글자로 따라 쓰는 책이다.

호랑이가 한글이라고요, 범이 우리말이지요

훈민정음

‘훈민정음 해례본 낱말 날적이’는 124개 낱말을 동물나라 사람나라 자연나라 식물나라 행위나라 농사나라 생활나라로 나누어 실었다. 동물나라에서는 앞부분에 ‘범’을 놓았다. 요즘 호랑이가 순 한글이고 범이 한자로 여기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하지만 세종대왕과 당시 최고의 인재가 모인 ‘집현전(集賢殿)’ 학자가 만든 ‘훈민정음’의 ‘용자례(用字例)’에서 ‘호(虎)를 범이라고 한다(범爲虎)’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범이 순 우리말이라는 뜻이다. ‘용자례’는 새로 만든 훈민정음으로 우리가 말로만 쓰던 낱말을 글자로 어떻게 쓰는지를 알기 쉽게 설명한 것이다.

호랑이가 아니라 범이라는 사실은 ‘범띠 가시나’ ‘범 내려온다’ ‘범고래’ ‘범나비’ 등에서도 확실히 알 수 있다. 또 남강(南岡) 이승훈(李昇薰, 1864~1930) 선생이 세워 김소월 백석 시인과 황순원 소설가 및 이중섭 화가, 함석헌 선생과 김홍일 장군과 백인제 백병원 설립자 등을 키워낸 오산고등학교의 ‘오산 경가’에서도 ‘범’이 등장한다. “백두산서 자란 범은 백두호라고/ 범 중의 범으로 불리나니라/ 우리들은 오산에서 자라났으니/ 어디를 가든지 오산이로다”는 구절에서다.

조선 후기 실학자로 유명한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이 지은 한문소설 ‘호질(虎叱)’도 마찬가지다. 한자로 쓸 때는 虎고 한글로 쓸 때는 범이지, 호랑이라는 말은 없다.

범 나가신다 호랑이 가라
용맹하고 늠름한 겨레 얼이로다
팔천만 하나되어 자주 문화강국
가거라 비켜라 호랑아 우리 범 나가신다

범 나가신다 호랑이 가라
백두에서 한라까지 배달 말글로
반만년 금수강산 찬란히 비추리라
가거라 비켜라 호랑아 우리 범 나가신다

- 홍찬선 강순예, ‘범 나가신다’ 전문

훈민정음

‘훈민정음 해례본 낱말 날적이’에는 지금은 쓰지 않는 아름다운 우리말이 많다. 납(원숭이) ᄑᆞᆯ(파리) 약(거북, 龜鼊) 쟈감(메밀껍질) 깃(둥지) 싣(단풍, 丹楓) 무뤼(우박, 雨雹) 녑(옆구리) 괴여(사랑하여) 슈룹(우산, 雨繖) 쥬련(수건, 手巾) 깁(비단, 緋緞) 긷(기둥) 등이 그것이다. 지금이라도 되살려 쓰면 좋은 낱말들이다.

김슬옹 원장은 ‘책머리에’서 “세종은 훈민정음 해례본에 어렵고 낯선 말이 아니라 소 벌 콩 밥 옷 실처럼 누구나 아는 생활 낱말을 골라 실었다”며 “범의 어흥 소리, 부엉이의 울음 소리, 노루가 뛰어다니는 산천의 풍경을 생생하게 표현했다”고 밝혔다.

‘훈민정음 해례본 낱말 날적이’에서 ‘날적이’는 ‘날마다 적는 것’이라는 뜻이다. 날마다 낱말들을 또박또박 적으며 그 말의 옛 모습과 오늘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580년이 흐른 세월의 결을 느끼며, 한글이 살아온 긴 이야기를 손끝으로 따라가 보는 것이다. 김 원장은 “손으로 적는 행위에는 특별한 힘이 있다. 눈으로 읽기만 할 때는 스쳐 지나가던 글자가 한 획, 한 획 손으로 적는 순간 비로소 내 것이 된다. ‘쇼’라고 적으며 소의 커다란 눈망울을 떠올리고, ‘슈룹’이라고 적으며 빗속에서 누군가에게 우산을 건네던 기억을 더듬는 일, 그것이 바로 세종이 꿈꾸었던 문자의 쓰임이었을 것”이라고 밝힌다.

“‘사랑하여’를 뜻하던 ‘괴여’라는 옛말 속에는 지금은 사라진, 그러나 여전히 가슴 뭉클한 사랑의 빛깔이 있고, ‘둥지’를 뜻하는 ‘깃’이라는 한 글자 속에는 하루의 끝에서 돌아갈 따뜻한 보금자리를 그리는 마음이 있다”는 설명이다.

최만리 등의 반대 상소가 한글 발전의 디딤돌 됐다

훈민정음

세종대왕은 1443년 12월, “새로운 글자 28자를 만들었고 이름은 훈민정음”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최만리(崔萬理, ?~1445)를 비롯한 신석조 김문 정창손 하위지 송처검 조근 등은 1444년 2월20일 훈민정음 반포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 이를 ‘갑자상소(甲子上疏)’라고 한다.

세종은 이들의 반대를 힘으로 억누르지 않고 정인지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강희안 이개 이선로 등 집현전 학자들에게 ‘훈민정음 해설서’인 ‘훈민정음’을 쓰도록 했다.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직접 훈민정음을 창제하게 된 동기를 쓴 ‘어제 서문’과 훈민정음의 기본원칙을 밝힌 ‘예의’로 구성된 ‘정음(正音)’편과 집현전 학자들이 쓴 제자해 초성해 중성해 종성해 합자해의 ‘5해’와 용자례의 ‘1례’로 구성된 ‘해례(解例)’ 및 ‘정인지 서문’으로 구성된 ‘정음해례편’으로 구성돼 있다.

‘정음해례편’을 씀으로써 새로 만든 28자가 과학적 원리에 의해 만들어졌음이 명확해져 반포를 반대하는 소리가 사라졌다. 마침 반대론에 앞장섰던 최만리가 1445년에 사망함으로써 1446년에 자연스럽게 반포됐다.

훈민정음이 반포됐을 때 ‘훈민정음’이 몇 부 발간됐는지에 대한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1447년에 출간된 ‘용비어천가’가 10권짜리 목판본으로 550질이 발간된 것에 미루어, 500부 정도 발간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훈민정음’은 반포된 지 이상하리만치 빠르게 자취를 감추어 실제로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오랫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훈민정음’은 1940년 경북 안동에서 이용준에 의해 발견됐다.

훈민정음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 1906~1962)은 이용준으로부터 거액들 주고 극비리에 사들였다. 당시 인사동에서 한남서림(翰南書林)을 경영하던 간송은 유명한 책 거간꾼이 안동에서 ‘훈민정음’ 원본이 출현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것을 사기 위해 돈을 구하러 가는 것을 보고 값이 얼마냐고 물었다. 기와집 한 채 값인 1000원이라는 얘기를 들은 간송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1만1000원을 내주었다. 책값으로 10배인 1만 원에다 심부름 값으로 1000원을 낸 것이다. 문화재의 가치를 알아본 간송의 통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 일화다.

간송은 ‘훈민정음’을 국어학자인 외솔 최현배(崔鉉培, 1894~1970)에게 진품여부를 의뢰했다. 1942년에 출간된 ‘한글갈’의 원고를 마무리하던 외솔은 ‘훈민정음’이 진본임을 확인하고 ‘한글갈’에 다음과 같이 썼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지어내어 이를 반포하신 뒤로, 근 오백 년 동안의 ‘실록’에 도무지 ‘훈민정음’을 찍어 폈다는 기록이 없고, 또 최세진 신경준 유희 같은 한글학자들도 그 원본을 보았다는 적발도 도무지 없다. … 진정한 원본이 나타나기를 고대함이 간절하더니 천만뜻밖에 영남 안동에서 이런 진본이 발견되었음은 참으로 하늘이 이 글의 운을 돌보시고 복주신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아! 반갑도다. ‘훈민정음’ 원본의 나타남이여. … 여태껏 도모지 형태도 없고 말도 없던 ‘훈민정음’의 원본이 그 정연한 체제로 나타났음은, 한국 최대의 진서(珍書) 임은 물론이요, 또 그 ‘해례’로 말미암아 종래 한글갈(正音學)의 여러 가지 의혹의 구름 안개를 헤치어 줌은 우리 심정의 둘도 없는 시원스러운 일이요, 과학정신의 최대의 만족이다.”

‘훈민정음’은 발견된 뒤에도 일제의 마수(魔手)를 피하기 위해 세상에 빛을 보이지 못했다. 광복된 이듬해인 1946년에야 비로소 조선어학회에서 영인본으로 출간해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1962년에 국보70호로 지정됐다. 반포된 지 516년 만의 일이다. 또 1997년에는 유네스코가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했다. 일제(日帝)의 한글 말살의 광기를 이겨낸 커다란 승리였다. 이제 우리는 한글을 ‘비행기’가 아니라 ‘우주선’으로 더욱 발전시켜야 할 때다.

하늘은 세종의 머리를 빌어
백성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으로
훈민정음을 만들었고

하늘은 전형필의 가슴을 빌어
일제의 마수를 이겨내는 돈으로 
훈민정음을 이 땅에 남겼다

하늘만으로 할 수 없고
땅만으로도 할 수 없고
사람만으로 할 수 없는

그렇게 큰 뜻을
그다지 깊은 사랑을
이렇게 사무치는 보름달처럼 

하늘은 땅과 사람을 모아
머언 앞날을 내다보는 혜안으로
훈민정음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세웠다

- 홍찬선, ‘세종의 훈민정음과 간송의 훈민정음’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