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호가 만난 人] 60년 외길, '천의 얼굴' 한태일 배우의 멈추지 않는 시계

- 족보에 이름 파여도 놓지 못한 '광대의 꿈' - "나의 은퇴는 오직 무대 위에서만 존재한다”

2026-04-21     김두호 기자

인터뷰365 김두호 기자(인터뷰어) = 가로수 벚꽃 잎이 눈발처럼 흩날리는 4월의 서울 충무로. 한국 영화의 고향이자 영화인들에게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던 이 거리에 한 시절 출근 도장을 찍었던 한태일 원로 영화배우를 만났다. 여전히 현역이다.

1941년 서귀포에서 태어나 올해 여든다섯, ‘제주도 출신 1호 영화배우’라는 지칭과 함께 ‘은퇴 없는 배우’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연기인이다. 영화와 TV드라마를 포함해 1,000여 편의 작품 속에서 조연 연기인으로, 때로는 정감 넘치고 강렬한 주연 배우로 살아온 그의 연기 인생도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한태일 배우의 연기 활동은 연간 200여 편이 제작되던 한국 영화 중흥기인 1965년 영화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로 출발했다. 제주에서 성장기를 보내고 서울로 유학, 현 중앙대 예대의 전신인 서라벌예대 입학 후 곧장 충무로에 입성, 대사 없는 단역까지 배역을 가리지 않고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영화

그 무렵 유교 전통 가문의 종손이었던 그에게 집안 어른들이 서울 가서 공부는 하지 않고 광대 노릇 한다고 호통치며 족보에서 광대가 된 자손 이름을 지우겠다고 했을 때도 "성을 버리고 이름만 가지고서라도 배우를 하겠다고 버티며 물러서지 않았다”고 돌이켰다.

그렇게 배수진을 치고 입성한 충무로. 그는 작품을 가리지 않았고 배역도 고르지 않았다. 165cm의 나지막한 체구, 따뜻하고 부드러운 눈빛을 가진 그는 어떤 옷을 입어도 모나지 않게 스며드는 '천의 얼굴'로 아마도 현역 배우 중 최다 출연 기록을 세우며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한태일 배우를 두고 고(故) 이두용 영화감독은 생전에 ‘뽕’ ‘돌아이’ ‘피막’ 등 자신의 화제작 10여 편에 불러낼 만큼 아끼고 좋아했다. 최근 천만 관객을 모은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엄흥도 배역도 한태일 배우는 30여 년 전인 1998년 TV드라마 ‘왕과 비’에서 보여준 역할이다. 지금도 재래시장을 무대로 원수지간 두 집안의 갈등을 다룬 KBS2 드라마 ‘사랑을 처방해드립니다’에 출연 중이다. 

성공한 자녀들이 이제 쉬셔도 된다고 권하지만 그는 여전히 물러날 생각이 없다. 틈틈이 요양원과 무료급식소를 찾아 봉사도 하고, 뮤지컬 무대에도 오르며 오히려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지금 그는 오는 6월 크랭크 인할 영화 ‘개똥벌레’에 캐스팅, 출연 준비를 하면서 코믹 액션 터치의 영화 ‘할배군대’의 기획에도 참여하고 있다 .

아직도 나에게 꿈이 있다

- 최근 활동 근황부터 소개해 달라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젊은 세대들에게 할 일 없는 노인들이 많다는 인식으로 눈총을 받는 시대가 되고 있다. 그런 반면에 노인들의 눈에는 세상 돌아가는 일들이 여러 분야에서 못마땅해 스트레스를 받는 일들이 쌓여가고 있다. 물론 시대를 이끌어 가는 몸통, 주역은 당연히 젊은 세대들이긴 하지만 나이가 많다고 뒷전에 물러나 눈치만 볼 수 없다는 데 작품 의도를 두고 멋진 노인영화 한 편을 기획하고 있다.”

- 영화기획이라니, 그럼 연기 활동보다 영화 제작이나 기획 쪽에 관심을 두고 있는가?

“나의 연기인 생활은 변함이 없다. 여전히 현역 배우다. 출연 스케줄이 없는 틈틈이 생각이 맞는 영화인들끼리 만나 좀 엉뚱한 영화 한 편을 준비 중이다. 기상천외한 소재의 코믹 터치 영화인데 타이틀이 ‘할배군대’다.”

- 구체적으로 어떤 소재의 영화이고 작품에 참여 중인 영화인들은 누구인가?

“작품의 슬로건으로 ‘나라를 지키는 건 우리 할배들이 할 것이다. 조국은 부른다. 할배들아, 군대 입대하라. 이건 국가의 명령이다’를 내걸었다. 정신력이 나약한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국가 안보에 불안을 느낀 노인들이 다시 입대해 나라를 지키는 조국애와 우국충정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코믹, 액션, 사랑, 휴먼 드라마다. 작가 겸 연출 활동을 해온 봉회장 감독을 중심으로 나와 전무송 김성환 독고영재 조상구 등의 배우들을 출연 배우로 섭외해 두고 있다.

그리고 오는 6월 크랭크인 일정이 잡혀있는 김우석 감독의 신작 영화 ‘개똥벌레’에서 오랜만에 주인공 역으로 캐스팅되어 출연을 준비 중이다. 이 영화에서 느지막에 아이를 얻게 된 시골 노인 역을 맡아,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에서 좌충우돌 해프닝 연기를 보여줄 예정이다.”

- 배우로 입문한 젊은 시절로 돌아가 보자. 무엇부터 떠오르는가?

“나의 고향 집은 서귀포시 보목동에 있었다. 나는 융통성이 없는 유교 전통의 엄한 가문에서 종손으로 자랐는데 서울 가서 광대 노릇한다고 집안 어른들이 한 씨 족보에서 내 이름을 지우겠다고 호통을 쳤다. 나는 성을 버리고 이름 ‘태일’로 이름을 바꾸어서라도 하겠다고 버티면서 물러서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 배우를 꿈꾸며 서울로 유학 왔다면 당연히 포기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영화 ‘마야고’를 만든 강대하 감독이 제주에서 고교를 함께 다닌 친구였다. 그가 먼저 상경해 그와 함께 서라벌예대 입학을 하면서 영화사들이 몰려 있는 충무로를 출입하게 되고 그러다가 학비를 벌 수도 있는 단역, 잡역 연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취미 삼아 연기도 하고 고향에서 보내주는 학비로 여유가 생기면 그 돈으로 출연 접대로비도 해가며 직업 배우의 길로 접어들었다. 취미 삼아 시작한 것이 평생 직업이 된 것이다.”

- 출연 작품은 영화와 TV드라마까지 몇 편 쯤 되는가?

“출연 역할의 비중에 관계없이 합산을 해보면 영화는 대충 4, 5백 편이 된다. TV드라마도 그 정가 될 것으로 추산한다. 주요 작품은 기록을 해두고 기억도 나지만 한창때는 겹치기 출연 일정이 많아 일일이 기억도 안 되고 기록을 남기지도 않았다.”

- 출연 영화 중 기억에 남는 작품을 꼽아 달라.

“나의 캐릭터가 모가 난 데가 없어서 멜로, 액션, 러브스토리, 사극물, 희극영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어떤 배역이든 편하게 소화하고 적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감독들이 좋아했다. 그중 지금은 고인이 된 이두용 감독과 많은 작품을 함께 했다.”

- 많은 영화 관객들이 이두용 감독의 히트 영화 ‘뽕’시리즈에서 한태일 배우를 기억한다.

“이두용 감독이 생전에 나를 ‘아끼고 좋아하는 배우’로 꼽았다. ‘뽕’ 첫 편에서 칠성역으로 출연하고 이어서 시리즈 3편까지 출연할 때 3편에서는 내가 주연을 맡았다. 역시 이두용 감독의 흥행영화 ‘돌아이’시리즈와 ‘내시’, 칸영화제에서 한국 영화가 처음 주목을 받은 ‘피막’, 그리고 ‘최후의 증인’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등 10편이 넘는 작품에 내가 빠지지 않고 출연했다.”

- TV드라마는 주로 사극에서 자주 만났다.

“1984년 MBC-TV 창사특집극 '추사 김정희'에서 타이틀 롤의 김무생의 상대역인 초이스님 역을 맡아 미련 없이 긴 머리를 삭발하고 한동안 승려로 한 작품에 매달렸다. 그로부터 ‘조선왕조 오백년 – 임진왜란’ ‘여명의 눈동자’ ‘제3공화국’ ‘야인시대’ ‘응답하라 1988’ 등 TV드라마 출연으로 바쁘게 연기 활동을 이어왔다.”

- 지금은 뮤지컬 무대에도 등장하고 또 틈틈이 요양원이나 무료급식소 등을 찾아가 봉사활동도 열심히 활동하는 것으로 소문이 나 있다.

“고인이 된 성일(신성일)이 형도 젊은 시절은 누구보다 화려하게 살았지만 나이 들어 자주 외롭다고 말했다. 그런 생각이 안 들게 하려면 움직일 힘이 있는 한 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좀 착한 일도 해야 한다. 가끔 요양원이나 무료급식소를 찾아가 동료 배우들과 봉사활동을 해왔다. 그리고 지난해 영월에서 관광센터의 후원으로 그 지역 출신 영웅들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방절리 영웅들’이란 뮤지컬을 진봉진 등 동료 배우들과 공연해 갈채를 받았다. 올 9월에 도 주관 측의 요청으로 앙코르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 근래 이순재, 윤일봉, 김지미, 안성기 등 원로 배우들이 잇달아 세상을 떠났다. 원로 배우들의 근황을 전해달라.

“원로영화인회 이해룡 이사장을 비롯해 김관선, 노진아, 오경아, 정혜선, 엄유신, 나오미, 서영석, 유광석, 정지희, 정미혜, 김국현 등 회원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식사 모임을 통해 안부를 나누며 살고 있다. 은퇴한 원로 영화제작자인 동아수출공사 이우석 회장이 매월 식사 자리를 주관해 주는 것도 미담거리다.”

- 평생 연기자로 살아온 배우의 가족 이야기가 궁금하다.

“지금 내가 타고 다니는 차를 딸이 장만해 주었다. 배우 아버지의 그늘이 그렇게 여유롭지 않았지만 노후로 접어든 나에게 잘 성장해준 1남 2녀 자식들이 나의 기운이 되어주고 행복감을 안겨주고 있다. 큰 딸(한희창, 52)은 안산 한양대 에리카 중국학과 교수, 아들(한유진, 55)은 롯데백화점에서 중견 책임 간부직을 지냈고, 막내딸(한희정, 44)은 파주 운정고교 영어교사로 근무한다.”

- 아직도 꿈이 있다면?

“마음 한구석에 앙금으로 남아있는 것이 연기 인생의 영예로 간직하고 싶은 대종상이다. 주연상이든 조연상이든. 지난 일이지만 몇 차례 남우조연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가 밀려난 일이 있는데 상에 대한 욕심보다 나의 역할로 작품이 평가받는 희열을 느끼고 싶다. 국내 여러 장단편 영화제에서 가끔 주,조연상을 받긴 했지만 그래도 영화배우가 본업이라 오랜 전통의 대종상을 받을 만한 작품의 배역을 만나는 것이 아직도 나의 꿈이다.”

- 평생을 관객과 시청자들에게 드라마를 통해 희로애락을 느끼고 즐기게 하는 연기를 하며 사셨다. 돌아보면 아쉬움이나 후회는 없는가?

“내가 좋아서 선택한 길이다. 60년 넘도록 한 길 인생을 살았지만 크게 후회해 본 적은 없다. 돌이켜 보면 배우가 천직이었다. 그러나 다시 태어나도 또 배우로 살고 싶은가 묻는다면 그건 좀 생각해 봐야겠다. 가끔씩 배우로 살기가 쉽지 않았을 때 다른 직업인들이 부러울 때도 있었다는 걸 숨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