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 시인의 좋은 시 365] 권갑하 시인의 ‘김밥’
시는 인간 마음속 심상(心像)에서 피어나는 혼불과도 같습니다. 깊은 사유의 내면에서 길어 올린, 짧지만 응축된 언어문학의 보석과도 같은 시의 세계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좋은 시와 함께 조용하지만 반짝이는 하루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김밥 한 줄의 명상 / 권갑하
한 줄이면 족하지
뭘 더 적을 것인가
할 말 많다고 해도
한 마디면 족하지
아홉 쪽
김밥 한 줄을
꼭꼭 씹어 먹는 날
- '오곡밥' (알토란북스, 2020)
권갑하 시인은 1958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1992년 ‘조선일보’와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조 부문 당선을 통해 문단에 나온 시인입니다. 이후 한국 현대 시조의 흐름 속에서 꾸준히 자신의 자리를 넓혀왔습니다.
언론인으로서의 이력은 그의 시 세계를 단단하게 만든 배경입니다. 농민신문사 논설위원과 출판국장, 전문지 편집장을 지내며 쌓은 현장 감각은 시에 현실의 결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작품이 공허한 관념에 머무르지 않는 이유입니다.
시집 ‘세한의 저녁’, ‘외등의 시간’, ‘아름다운 공존’, ‘겨울 발해’, ‘마음꽃 달항아리’, ‘오곡밥’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은 전통 시조의 형식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현대적 정서를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초기 시집 ‘단 하루의 사랑을 위해 천년을 기다릴 수 있다면’은 이러한 정서를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그의 시를 한마디로 말하면 ‘조용한 사유의 미학’입니다. 격렬한 언어 대신 절제된 문장으로 깊이를 만들어냅니다. 크게 말하지 않지만 오래 남는 울림, 바로 그 지점에서 독자와 만납니다.
1998년 중앙시조대상 신인상을 시작으로, 2007년 한국시조작품상, 2011년 중앙시조대상 대상에 이르기까지 성취를 이어왔습니다. 이는 단순한 수상의 기록이 아니라 시조 문학 안에서 쌓아온 시간의 밀도를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현재 강남문인협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월간 문예마루’ 발행인, 문경새재 여름시인학교 교장으로서 후학 양성과 문학 생태계 확장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창작에 머무르지 않고 문학의 장을 넓혀가는 실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권갑하 시인의 시는 조용합니다. 그러나 그 고요 속에는 오래 머무는 힘이 있습니다. 빠르게 소비되는 언어의 시대에 더욱 또렷하게 읽히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