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 시인의 좋은 시 365] 권민경 시인의 ‘손톱과 오해, 그리고 색깔들’
시는 인간 마음속 심상(心像)에서 피어나는 혼불과도 같습니다. 깊은 사유의 내면에서 길어 올린, 짧지만 응축된 언어문학의 보석과도 같은 시의 세계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좋은 시와 함께 조용하지만 반짝이는 하루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손톱과 오해, 그리고 색깔들 / 권민경
고전 게임 ‘대항해시대’에는 나무늘보가 괴수로 등록되어 있다. 과거에 탐험가들에겐 낯선 생물체가 무시무시한 괴수처럼 보였다. 실은 순하고 취약한 동물이지만 나무에 매달리기 위해 발달한 손톱 하나 때문에 두려움의 상징으로 왜곡될 수도 있다. 그러나 때론 오해로 생긴 이상한 이미지를 고치지 않고 놔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덧붙여, 카멜레온은 감정 상태에 따라 몸의 색이 변한다. 두려움을 느끼면 어두운 색, 검정에 가까운 고동색이 된다. 내 수술 자국이 지금 그런 색이다. 시간이 지나면 옅은 색, 분홍에 가까운 빛깔이 될 거라는 걸, 경험을 통해 안다.
아니라도 어쩔 수 없다. 나는 하릴없이, 최선을 다해 상처 치유 연고를 바르고, 결국 어떤 색이 되더라도 받아들일 수 밖에.
- '봄엔 조증이 많다는데' (난다, 2026)
권민경 시인은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베개는 얼마나 많은 꿈을 견뎌냈나요'가 당선되며 등단한 시인입니다. 이후 그는 상처와 불안의 정서를 담담하면서도 깊이 있게 드러내며, 자신만의 언어로 시의 세계를 펼쳐온 작가입니다.
첫 시집 '베개는 얼마나 많은 꿈을 견뎌냈나요'를 시작으로 '꿈을 꾸지 않기로 했고 그렇게 되었다', '온갖 열망이 온갖 실수가'에 이르기까지, 권민경 시인은 일상의 균열과 몸의 감각, 그리고 쉽게 말해지지 않는 감정을 절제된 문장으로 붙잡아왔습니다. 그의 시는 고통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외면하지 않는 태도를 통해 읽는 이의 마음에 조용히 닿아, 오래 곁에 머뭅니다.
특히 그의 작품 세계는 ‘상처를 다루는 방식’에서 분명한 개성을 드러냅니다. 고통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일상 속에 배어 있는 감각으로 풀어내며, 독자가 스스로 감정을 마주하도록 이끕니다. 이러한 시적 태도는 과도한 감정의 소모 없이도 깊은 공명을 만들어내는 힘이 됩니다.
최근에는 산문집 '봄엔 조증이 많다는데'(난다, 3월 출간)를 통해 보다 가까운 언어로 삶의 결을 나누며, 시를 넘어 일상과 감정을 공유하는 작가로서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이는 시인과 독자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는 또 하나의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문학 라디오 프로그램, 낭독회, 북토크, 문학관 행사 등 다양한 자리에서 독자와 직접 호흡하며 시의 감각을 확장해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은 그의 언어가 종이 위에 머무르지 않고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내일의 한국작가상, 고산문학대상 신인상, 김춘수시문학상 수상을 통해 문학적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권민경 시인의 시는 상처를 지나 삶을 이어가는 이들에게 건네는 조용한 위안이자, 쉽게 무너지지 않으려는 마음의 기록입니다. 그리고 그 기록은 오늘을 견디는 우리에게 시로 건네는 응원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