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의 한도’에 대한 성찰과 화해...뮤지컬 '비틀쥬스'

[앨리스 박사의 문화로 보는 세상 풍경] - 새턴 어워즈 최우수 호러·스릴러상 수상작인 팀 버튼 감독 1988년 영화 원작 - 2019년 토니어워즈 8개 부문 노미네이트 - 드라마 데스크 어워즈 최우수 무대 디자인상 수상 - 2021년 세계 최초 라이선스 공연 한국 초연 후 재공연

2026-03-30     주하영 칼럼니스트
뮤지컬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죽음을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인 ‘애도’는 누구에게나 같은 크기가 아니다. 누군가는 더 오래, 더 많이 슬픔으로 고통받고, 누군가는 좀 더 빨리, 쉽게 슬픔을 극복한다.

상실에 대한 애도의 기간은 각자의 속도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고, 슬픔의 크기 또한 간직한 기억과 시간, 관계에 따라 다르게 표출된다.

애도의 슬픔은 관계의 끊어짐으로 인한 상처와 공허에 기인하며,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상태를 인식함으로써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불안, 외로움, 혼란, 방황을 불러온다.

어머니를 잃은 후 2년간 상실의 슬픔에 관해 '애도 일기'를 쓴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라루스 백과사전에서 “부모의 죽음에 대한 애도는 18개월이 넘으면 안 된다”라고 ‘애도의 한도’를 규정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패악은 슬픔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각자 자신만의 “아픔의 리듬”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고, “슬픔이 어떻게 밖으로 드러나야 하는지를 미리 정해서 코드화”해 놓은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바르트는 “애도는 고통스러운 마음의 대기 상태”이며, “‘살아가는 의미’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는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뮤지컬

죽음과 상실을 B급 감성 블랙코미디와 환상적인 무대, 스펙터클이 가득한 “기발하고 발칙한 저세상 쇼타임”으로 선보인 뮤지컬 '비틀쥬스(Beetlejuice)'의 3개월간의 공연이 최근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팀 버튼 감독 특유의 기괴하고 동화적인 상상력으로 음산한 유머를 갖춘 “고딕 호러와 다크 판타지 미학”을 선보인 1988년 영화 '비틀쥬스'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은, 호주의 뮤지션이자 코미디언인 에디 퍼펙트가 작사/작곡을, 스캇 브라운과 앤서니 킹이 대본을 맡은 작품이다.

뮤지컬 '물랑루즈!'의 연출가인 알렉스 팀버스가 참여한 뮤지컬 '비틀쥬스'는 2018년 워싱턴 D.C.에서 트라이아웃 공연을 거친 후, 2019년에 브로드웨이 초연을 선보였고, 제73회 토니어워즈에서 최우수 뮤지컬상을 포함해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다.

2021년 전 세계 최초 라이선스 공연으로 한국 초연을 선보인 뮤지컬 '비틀쥬스'는 이번 재공연에서, 브로드웨이 유머와 한국 정서 사이의 괴리를 채우기 위해 코미디언 이창호와 함께 대본을 다듬는 변화를 보였다. 또,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더 자연스럽게 허물어질 수 있도록 무대 연출을 보다 정교하게 진화시켰다.

뮤지컬

뮤지컬 '비틀쥬스'의 무대는 2019 드라마 데스크 어워즈와 외부 비평가 협회상에서 ‘최우수 무대 디자인상’을 수상했다.

팀 버튼 감독의 원작이 지닌 연극적 요소와 “손으로 직접 만든 듯한 미학”, 특유의 시각적 색채와 패턴을 고수하면서, 무대 전체가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려낸 애니메이션의 질감과 “수공예적인 분위기”를 갖도록 한 특징이 있다.

목탄으로 테두리를 굵게 그린 검은 선과 핸드 페인팅으로 완성된 아날로그적 세트는 CG(컴퓨터 그래픽)를 배제하고 화려하고 선명한 컬러의 조명 투사, 특수 효과, 특별 제작 의상, 특수 분장, 자이언트 퍼펫의 도움으로 초현실주의적이고 만화적인 세상을 마주하도록 만든다.

팀버스 연출에 따르면, 기술은 영상 투사와 조명 효과, 단순하고 실용적인 특수 효과만 사용되지만 주로 세세한 디테일이 강조되고, “40가지 정도의 마술 트릭이 사용”되면서도 “일부만 강조”되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마술이 전체 스토리텔링에 완전히 녹아든 채로 “환상보다는 웃음을 주기 위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뮤지컬

무대 디자이너 데이빗 코린스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원작 영화는 사후 세계 장면에 등장하는 피조물들의 움직임을 구현하는 데 인형과 가면(특수 분장), 스톱모션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뮤지컬 또한 “오마주가 가득 담긴 캔버스”와 같은 무대를 의도했다고 설명한다.

특히 팀 버튼 감독 작품 전체에 드러난 특징을 반영해 경의를 표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가령 하나의 캐릭터와 다름없는 ‘집’에는 '비틀쥬스' 외에 '가위손', '크리스마스의 악몽', '유령 신부', '배트맨'에 등장하는 요소들이 샹들리에, 벽지, 소품에 다양하게 적용되어 있다. 코린스는 팀 버튼의 영화를 사랑하는 팬들이 발견할 수 있는 작은 ‘이스터 에그’들이 집안 곳곳에 가득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뮤지컬

앞쪽으로 가까이 나오면서 커지거나 뒤쪽으로 멀어지면서 작아지는 ‘집’은 조립되고 해체되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의 구조물”로서 슬라이딩으로 미끄러지듯 움직이거나 회전하면서 변화한다.

‘저승(Netherworld)’에 서식하는 기괴하고 거대한 괴물 ‘모래 벌레(Sandworm)’는 벽 속에 숨겨진 채 집을 위협하며 튀어나올 때를 기다리고 있다. 집은 총 4번에 걸쳐 콘셉트의 전환이 이루어지는데, 천장과 벽지, 가구와 벽난로, 샹들리에, 작은 소품까지 집의 내부 장식이 완전히 바뀐다.

뮤지컬

집은 아담과 바바라 부부가 거주하는 따뜻한 빅토리아 시골풍 저택에서 새로 이사 온 리디아 가족의 현대적 도시풍의 인테리어로, 비틀쥬스를 대표하는 기하학적 “줄무늬 패턴과 기괴한 벌레들이 들끓는 늪지대 같은 공간”으로 변모한다.

비틀쥬스가 집을 완전히 장악해 “게임쇼 무대”로 바꿀 때는 “기존의 질감 위에 다른 에너지가 더해지면서 새로운 판타지 장면”이 구현된다.

또 '크리스마스 악몽'에 등장하는 할로윈 마을의 제왕 ‘잭 스켈링턴’과 공동묘지 언덕의 분위기가 반영된 장면들이 있고, 끝없이 회전하는 검은색과 흰색 줄무늬 패턴을 녹색 조명과 함께 반복적으로 스크린 막에 투사해 다른 세상으로 진입하는 듯 몽환적인 착시를 유도하기도 한다.

뮤지컬

초록빛을 뿜어내는 ‘저세상 테마파크’를 방문한 듯 역동적이고, 놀이 기구에 올라탄 듯 정신없이 장면이 전환되며, 기묘하게 기울어진 유령의 집에 들어선 듯 환상적인 특수 효과와 특수 분장을 마주하게 되는 뮤지컬 '비틀쥬스'는, 시각적으로 팀 버튼 감독의 스타일을 많이 추구한 작품이다.

하지만 플롯은 상당히 다르게 전개되는데, 작품의 중심이 ‘사고로 죽음에 이른 아담과 바바라 부부’에서 유령이 출몰하는 집으로 이사 온 ‘10대 소녀 리디아’로 옮겨진 특징이 있다.

연출을 맡은 팀버스는 영화에서 조연에 가까웠던 두 인물 리디아와 비틀쥬스의 관계를 “죽고 싶어 하는 소녀와 살고 싶어 하는 악마”의 대조로 구성한다.

뮤지컬

팀버스는 영화에서는 암시로만 제시되는 어머니를 잃은 리디아의 상실감과 애도를 중심으로, 비틀쥬스가 끊임없이 쏟아내는 지나치고 섬뜩하며 기괴한 B급 유머 속에서도 “삶과 죽음에 관한 진지한 질문”을 다루는 주제적 맥락을 강조하고자 한다.

영화에서는 17분가량만 등장하는 ‘바이오 엑소시스트(bio-exorcist)’ 비틀쥬스는 뮤지컬에서 기만과 혼돈을 초래하고 규범을 깨뜨리는 ‘트릭스터(trickster)’와 유사하게 표현되는데,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자유롭게 허물며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걸기도 하는 ‘저세상 가이드’로 전면에 위치해 라이브 공연의 묘미를 강조한다.

뮤지컬

뮤지컬은 리디아가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과 슬픔, 죽음에 대한 인식을 노래하는 짧은 프롤로그 넘버 ‘슬플 때는 투명해져(Invisible)’로 시작한다.

장례식을 주관하는 목사는 슬플 때일수록 서로에게 의지해야 하며 삶은 결코 혼자 헤쳐 나가는 길이 아님을 강조하지만, 리디아는 자신의 상처를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에서 느끼는 소외와 고독, 유령처럼 “투명해지는” 느낌에 관해 노래한다.

하지만 곧 산발한 녹색 머리에 100억 년 경력을 갖춘 악령 비틀쥬스가 나타나 공연 시작부터 ‘발라드’를 부르는 것에 대해 불만을 제기한다. 그는 객석을 향해 말을 걸며 ‘삶과 죽음’에 대한 냉소적인 의견을 쏟아내고, “죽음에 관한 쇼”를 즐길 것을 제안한다.

뮤지컬

작사/작곡을 맡은 에디 퍼펙트에 따르면, 리디아의 여러 넘버(노래)에 담긴 “슬픔에 대한 통찰”은 여덟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은 아내의 경험에서 영감을 얻었다. 삶에는 슬퍼할 시간이 없다는 듯 오직 미래로 향할 것을 재촉하는 어른들의 무심함과 애도의 마음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모르는 서투름을 겨냥한 넘버는, 리디아의 우울한 상태를 규정하게 된다.

리디아는 장례식과 함께 죽은 아내를 완전히 잊은 듯 보이는 아버지 찰스에 대한 분노와 공허, 외로움을 느낀다. 비틀쥬스 역시 살아있는 인간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라는 점에서, 극도로 외로움과 지루함을 느끼는데, 리디아가 자신을 볼 수 있다는 점이 기회이자 희망이 된다.

그는 살아 있는 사람이 그의 이름을 세 번 불러야만 모두에게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는 법칙을 이용해 리디아가 ‘비틀쥬스’를 반복해 외치도록 유도하지만, 리디아는 쉽게 속지 않는다.

뮤지컬

보이지 않는 외로움에서 벗어나 ‘보이는 존재’가 되려는 분투의 맥락에서 리디아와 비틀쥬스는 평행하게 움직이며 각자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

영화에 비해 비틀쥬스는 훨씬 코믹하고, 활동적이며, 섬뜩함보다는 관객이 친밀하게 느낄 수 있는 캐릭터로 변경된 측면이 있다.

팀버스 연출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와의 인터뷰에서, 비틀쥬스의 캐릭터는 마이클 키튼이 연기한 영화 속 캐릭터 버전부터 정반대의 캐릭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도와 가발, 분장. 의상 테스트를 거친 후, “줄무늬 정장을 차려입은 교활한 악마”에서 “보다 젊고 펑크적인 스타일로 재해석한 버전”으로 최종 결정되었다고 설명한다.

리디아 역시 원작보다 적극적인 인물로 변경되었는데, 죽은 어머니를 찾아 저승세계로 뛰어들지만, 딸을 구하기 위해 따라온 아버지와 우여곡절 끝에 화해하고 삶으로 되돌아오는 선택을 한다.

에디 퍼펙트는 호주 'A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리디아가 어머니와 재회하는 진부한 전개는 워크숍 단계에서부터 이미 제외되어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제작진 모두가 “리디아와 아버지 사이의 진정한 화해”가 필요하다고 느꼈고, “삶이란 서로 함께 붙들고 나아가야 하는 것”이며, “집이란 서로 사랑하고 수용하는 곳”이라는 메시지가 전달되기를 바랐다고 피력한다.

뮤지컬

리디아와 비틀쥬스가 플롯의 중심으로 오게 되면서, 원작 영화에서 주인공이었던 아담과 바바라에게도 변형이 필요해졌다. 평범한 사람들의 전형인 아담과 바바라 부부는 가장 원하는 ‘아이’ 대신 취미와 프로젝트에 몰두하면서 삶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를 거부한다.

집의 바닥이 내려앉는 사고로 죽음에 이르고 유령이 된 두 사람은 영화와 마찬가지로 새로 이사 온 리디아의 가족을 집에서 내쫓으려 하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유령을 보는 리디아는 아담과 바바라에게 죽은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마음대로 할 수 있음에 편안함을 느끼고, 아담과 바바라는 비틀쥬스, 리디아와 함께 겪는 사건들 속에서, 생전에는 ‘두려움’에 가로막혀 미처 하지 못했던 일들이 많았음을 깨닫고, ‘진화’된 모습으로 용기를 내는 선택을 한다.

뮤지컬

8년에 걸친 제작 기간을 통해 완성된 뮤지컬 '비틀쥬스'는 워싱턴 D.C. 트라이아웃 공연 당시 관객들의 호응을 얻기는 했지만, 비평가들로부터 “지나치게 과도하고 음울하며 역겹다”는 혹평을 받았다.

에디 퍼펙트는 “거의 망할 뻔했다”라고 표현하는데, 브로드웨이 초연을 준비하면서 관객이 작품의 관점을 보다 이해하기 쉽도록 “전체적인 틀을 조정”했다고 말한다.

비틀쥬스는 더 취약하게, 리디아는 더 주체적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있었으며, 비틀쥬스가 “이승 영주권”을 얻기 위해 10대 소녀인 리디아에게 결혼을 요구하는 불편한 맥락은 리디아가 주도권을 잡고 비틀쥬스를 ‘신입 유령’이 되도록 하려는 계획을 실행하는 것으로 설정되었다.

뮤지컬

죽은 유령을 퇴치하는 사람인 ‘엑소시스트(퇴마사)’를 역발상으로 뒤집어 ‘산 사람을 쫓아내는 유령’으로 창조한 영화 속 캐릭터 비틀쥬스는 상당히 교활하고, 저속하며, 비열한 성격을 갖고 있다.

원작 시나리오 초안에서는 비틀쥬스가 리디아와의 결혼보다 섹스를 원하고, 사람들을 쫓아내려는 것이 아니라 죽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영화 역시 초안에 각색이 더해지면서 노골적이고 폭력적인 부분들이 많이 완화된 특징이 있다.

뮤지컬은 영화에 대한 오마주를 품고 있지만, 상당히 다른 전개와 달라진 등장인물들을 품고 있다. 영화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 새롭게 추가된 인물이 있으며, 관계 설정이 달라진 인물도 있고, 성격 자체가 다르게 표현되는 인물도 있다.

팀버스 연출은 뮤지컬 '비틀쥬스'를 “팬 픽션(fan-fiction)”과 유사하다고 설명한다. 원작 영화에 푹 빠진 팬들이 비틀쥬스라는 캐릭터를 놓고 창조할 법한 이야기를 무대에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디 퍼펙트는 “슬픔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그 슬픔을 온전히 겪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삶 속에 자리한 상실과 슬픔, 소외와 고독, 아픔과 두려움 모두를 끌어안고 “최대한 충만하게 살아내는 것”만이 애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는 비틀쥬스라는 캐릭터가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들, 가령 죽음과 사후 세계에 대한 불안을 ‘웃음’으로 넘기면서 삶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고 말한다.

뮤지컬

롤랑 바르트는 '애도 일기'에서, 슬픔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느슨해지며 조금씩 사라지고 “마침내 ‘화해’에 이른다면서 슬픔은 원래 그런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마치 온전히 겪는 “내 슬픔을 훔쳐 가버리는 것 같아서 참을 수가 없다”라고 표현한다.

슬퍼하는 것을 인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게 변형된다는 철학을 강요하는 주변의 무심함과 무감각함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멀리 있어야 한다는 결심”을 강하게 만든다는 바르트의 말은, 리디아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리디아 역시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원칙”이 지배하는 세상이 자신을 마비시키고 보이지 않게 만든다고 느낀다.

결국 광활한 저승세계에서 죽은 어머니를 되찾지 못한 리디아는 상실의 슬픔이라는 “무거운 마음 안에서 살아가는 일”을 아버지(찰스)가 인정해 주기를, 애도하고 기억하며 끝없이 이야기하려는 자신을 수용하고 함께해 주기를 바란다.

상실과 슬픔, 삶과 죽음, 고독과 위안, 가족에 대한 성찰을 제공하면서도, 마술적 트릭이 넘치는 현란하고 화려한 무대와 재치 있는 음악, 웃음과 긴장이 공존하는 매력, 그것이 뮤지컬 '비틀쥬스'의 성공 요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