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수 화가의 페인팅 북 리뷰] (15) 짐작만 가능한 타인의 마음
- 왕후민 저 '내 입으로 나오는 말까지만 진짜'
인터뷰365 천지수 칼럼니스트(/화가·서평가) = “내가 확인할 수 있는 마음의 원본은 내 것뿐임. 이데아에 머무는 타인의 마음을 보지 못한 채로 우리는 영원히 각주만을 달 수 있음”
왕후민 작가의 소설 '내 입으로 나오는 말까지만 진짜'에는 여섯 개의 단편소설이 엮여있다. 그리고 각 단편에 나오는 인물이나 사건들이 하나의 장편처럼 얽혀있는 구성이 매우 흥미를 끈다. 작가는 생기발랄한 솔직함으로 내밀한 마음의 모습을 거침없이 그려낸다. 심리를 속속들이 파고들어 해체하는 기발한 상상력의 표현들은 발칙한 블랙코미디를 연상케 한다.
오로지 섹스를 하기 위해서 만난 두 남녀. 서로에게 숨겨진 성적 취향이 있을 수 있으니 그것을 찾아 즐기는 목표를 갖고 2박 3일의 일정을 계획한다. 남자 `연’은 여자에게 로프를 준비해오라고 하며, “난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야. 너니까 할 수 있는 거야.”라고 덧붙인다.
계획과는 달리 일정은 ‘연’의 비논리적이고 어설픈 핑계와 함께 1박으로 끝나게 된다. 남자의 알 수 없는 변심을 불쾌하게 생각한 여자는 남자가 있는 곳까지 멀리 찾아간 자신을 경멸하고 분노한다. 여자는 분노를 넘어 창피와 치욕에 몸을 떨며 거리를 방황하며 생각한다.
창피함의 근원을 찾아 나가는 심리의 세세한 풍경들이 낯설면서도 공감하게 된다. 그러나, 나의 공감도 작가의 표현대로 ‘이데아에 머무는 타인의 마음을 보지 못한 채로 영원한 각주’밖에 될 수 없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거센 바람에 가지가 마구 흔들리는 거리의 나무를 본 그녀는 나무가 마치 머리를 풀어헤친 미친 여자 같다고 생각하고, 자아가 해체된 듯한 시각으로 나무에 자신을 투영시켜 나무의 마음을 이해하려 한다.
“나는 억울해. 미친년은 내가 아니야. 바람이 미친년이야!”
나무가 되어보지 않는 한, 그 심정을 알지 못할 것이며, ‘타인의 마음에 관한 한, 모든 앎은 짐작’이라고 하는 생각은 나도 오래전부터 비슷하게 가졌던 생각이다. ‘그 사람이 되지 않고서는 절대로 그 사람이 될 수 없어’라고 외쳤던 20살의 내가 생각난다.
여자는 ‘나는 수많은 너들로 태어나지 않았으니까’라며 100퍼센트 이해와 공감이라는 일은 없다고 선을 긋는다. 그녀는 빗물에 주저앉아 어지럽게 자아가 혼재된 모습을 보인다. 넋이 나간 것처럼 보이지만, 감정을 바라보는 이성의 시각적 그림들은 초현실주의 같은 진풍경을 만들어 낸다.
그럼, 남자는 왜 자신이 먼저 2박 3일을 지내자고 호언하고, 마음이 바뀌었을까? 궁금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그다음 단편에 바로 나오는 '로프와 하품'에서는 작가는‘연’이라는 남자의 이야기를 내놓는다. 여자와 남자 쌍방의 마음을 공평하게 살펴본다는 느낌이랄까? 같은 사건 안에서 펼쳐지는 두 사람의 다른 시각과 욕망이 더 가깝게 감지된다.
캔버스에 어떤 그림을 그리고 물감으로 다시 덮어버린다면, 최초의 그림이 어떤 그림인지 아는 사람은 그림을 그린 사람일 뿐이다. ‘타인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타인의 마음을 그린다고 할 때, 마음에 온전히 공감한다면 ‘구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지만, ‘추상’으로 타인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더 온전한 것일 수 있다. 추상화를 보면 도무지 무슨 이야기인지 몰라도, 마음의 변화나 타인의 마음을 표현하기엔 ‘구상’은 각주이자 원본이 아닌 사본인 셈이다. 내가 캔버스에 그린 추상화는 위아래가 없다. 돌려서 보면 또 다른 그림이다. 우리가 타인의 마음을 그렇게 해석하듯이 보는 사람의 마음이다.
“저기요, 내가 어디까지 진짜 있었던 일을 말할지 잘 모르겠는데….일단 듣고 그냥 진짜라고 믿어줄래요?”
아직 단어화되지 않은 감정과 사고를 위한 글을 쓴다는 작가의 이야기들을 담은 소설 '내 입으로 나오는 말까지만 진짜'는 아이러니한 세상 사이에 존재하는 틈새의 모습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솔직하게 펼쳐놓은 작가의 문장들 안에서 내 모습의 일부를 발견하는 느낌은 찔리면서도 짜릿함으로 소설의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진짜와 가짜의 차이는 어떤 모습인지 작가의 다음 작품으로 성찰해 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