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신간] 민윤기 시인의 ‘개인적인, 너무나 개인적인’
- 에세이 형식의 시를 통한 자전적 인생 체험담
인터뷰365 김두호 기자 = 민윤기 시인의 아홉 번째 시집 ‘개인적인, 너무나 개인적인’(인문학사 발행)을 펼쳐 들면 “이런 시집도 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시문학의 흥미 있고 색다른 경지를 발견한 느낌이 들게 한다.
시인들은 대개 언어의 절제와 고뇌에서 선별한 정제(精製)된 문장 구성을 기본으로 여기지만 민 시인은 시작(詩作)의 일반적인 표현 형식에서 일탈, 고단한 인생 여정의 자전적 체험담을 주제로 삼아 술술 에세이 장르로 풀어내고 틈틈이 잊지 못하는 인연들의 얘기를 노랫말 읊조리듯 독백의 시로 토해냈다.
시인의 고백이 진솔하게 와 닿을 때마다 시인의 구성지고 애잔한 내면의 시혼(詩魂)이 읽는 독자의 마음까지 슬프게 끌어당기기도 한다. 시집의 문장에는 쉼표도 마침표도 없다. 요즘 그게 대세라고도 하는데 실제 읽다 보니 없어도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집의 표지 밑장과 첫머리에 시인이 ‘독자에게’ 제목으로 쓴 인사말부터 옮겨보았다.
이 시집은 내가 살아온 인생보고서입니다. 시라기보다 시로 쓴 체험수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립운동하는 것도 아닌데 시 쓰기가 점점 어렵습니다. 이 시집 이후에 나는 개인적인 제재를 피하고 세상의 근육과, 세상의 살과, 세상의 뼈를 잘 어루만지고 공유하는 시를 쓰겠습니다. 내 시는 어깨가 좁습니다.
‘어깨가 좁은 시’를 쓴다는 민윤기 시인이란 도대체 누구인가, 바로 ‘주부생활’, ‘엘레강스’, ‘레이디경향’, ‘우먼센스’, ‘신부’, ‘마리안느’ 등을 창간하거나 편집장으로 매거진 출판시대의 대부(代父) 격 명성을 누린 인물이다. 무가지(無價紙) 매체 시대를 이끈 일간 ‘메트로’ 편집국장 이력도 따른다.
1966년 월간 ‘시문학’으로 등단해 ‘우기의 시’, ‘삶에서 꿈으로’, ‘서서, 울고 싶은 날이 많다’ 등 평생을 두고 쉬지 않고 시집을 내고 문학비평서 ‘그래도 20세기는 좋았다’를 포함해 ‘소파 방정환 평전’, 산문집 ‘ 나도 잘 쓴 한 페이지가 있다’, 수필집 ‘노천명, 이기는 사람들의 얼굴’, 소설 ‘사랑먼저 할래요’ 등 다양한 장르에서 30여 권의 저서를 내놓은 정력적인 문학인의 생애를 살고 있다.
지금 민 시인은 여전히 사양화 된 종이 인쇄물 시대에도 물러서지 않고 사생결단의 심기로 시 전문 문학지 ‘월간 시인’을 발행하고 있다. 이번 그의 신간 ‘개인적인, 너무나 개인적인’ 시집은 바로 많은 매거진을 만들면서 인연이 된 수많은 사람들, 그들과 삶의 애환을 나누면서 보고 겪고 발견한 숱한 일화들을 시라는 언어 표현 형식을 통해 발표한 회고록과 같다.
시 속에 녹여 놓은 삶의 흔적 중에는 자유당 이승만 초대 대통령 시절부터 질풍노도의 시대변화를 지켜보며 보고 겪은 세상의 풍경, 서울 만리동 고갯길에서 썰매를 타던 성장기에서 대학 시절 시위 현장, 또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 시절의 추억담도 시제(詩題)로 등장한다.
화가 천경자 여사를 인터뷰하러 만났다 / 대뜸 첫마디가 / 난 꽃이 피는 봄이 정말 싫어요 / 왜요? 물었더니 / 난 이상하게 꽃가루가 날리기 시작하면 아파와요. 시름시름. 그러다가 여름이 되면 씻은 듯이 나아요
‘천경자 여사의 봄’ 시의 일부를 옮겼다. 여자의 머리에 꽃을 단 그림 등 봄과 꽃을 연상하는 화려한 색채감의 판타지 화풍 화가의 전혀 다른 비화를 비롯해 “인생이 즐겁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전유성 개그맨, “패션 화보 촬영하는데 응원하러 와주세요” 형 같은 아우 하용수 영화배우 출신 디자이너, 조선일보에 ‘별들의 고향’ 연재를 끝내고 해외여행을 떠나면서 공항에서 우황청심환을 먹던 최인호 소설가, 유학에서 돌아와 나라가 가난해서 너무 슬프다고 한탄하던 젊은 평론가 이어령 등 고인이 된 명사들도 시집 속에 사연을 드러낸 인물들이다.
이제 그는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를 대표곡으로 부르다가 떠난 술 취한 아버지의 노랫가락을 그리워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따라 하는 세월 앞에 당도한 것을 서럽게 자각하며 시를 쓰고 있다.
고백의 회고록 시 중에 ‘자살에 실패하였다’란 제목이 있다.
나는 소주 두 병과 수면제를 사 들고 한강 변을 달렸다 도저히 길이 없다 죽어버리자는 생각이었다 지금은 88도로라고 하는 그 길을 달려 미사리 강가에 도착했다 나는 강가 뚝방에 앉아 하얀 백지를 꺼냈다 유서를 쓰기 위해서였다...
직원 30여 명의 잡지사를 운영하다가 수십억의 빚더미에 몰려 가장 먼저 사업 뒷바라지에 고생한 아내에게 유서를 쓰다가 눈물이 백지를 적셔 결국 쓰지 못하고 ‘죽을 생각이라면 무슨 짓인들 못하겠느냐’는 재기의 각오가 생겨 살아난 절박했던 고난기의 일화도 있다. 두 딸을 둔 아버지의 애틋한 사랑의 심경을 고백한 시도 찐한 감동을 안겨준다.
그는 모두 77편의 자서전과 같은 시를 수록하고 맨 뒤쪽에 스스로 ‘시인으로 살아온 나의 삶과 나의 꿈과 나의 시’라는 제하의 글에서 지난 삶의 기록을 함축 정리하고 현재의 활동과 생각 등 근황을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