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평 - 새로운 서평] 벌거벗은 한국사: 조선편 外

- [비평연대] 배희주·이솔림·김도경의 500자 서평

2026-03-13     김리선 기자

젊은 문화비평가와 출판전문가들의 커뮤니티인 '비평연대'에서는 숏폼콘텐츠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500자 내외의 '매우 짧은 연대 서평'의 형식을 고안했습니다. 2030세대 지식인 특유의 빛나는 감각으로 제시되는 다양한 책들을 통해 지식의 최전선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터뷰365 편집자주]

■ 벌거벗은 한국사: 조선편 (tvN STORY 〈벌거벗은 한국사〉 제작팀 지음, 프런트페이지, 2024)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한국 영화 25번째로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사극 최초 천만 영화인 '광해, 왕이 된 남자'보다 더 빠른 속도다. 동시에 반가운 소식이 있다. 조선을 다룬 책들이 전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에서 분노를 자아내는 인물, 한명회. 그동안 왜소하고 가벼운 인물로 주로 그려졌지만 이번에는 기골이 장대하고 위압감 있게 등장하며 전형성을 깨부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실제 역사 속 모습을 알게 된다면 영화를 더욱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조선의 킹메이커였던 한명회는 명문가 출신이었지만 놀랍게도 38세까지 과거시험에서 번번이 낙방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을 설득하는 능력과 말솜씨는 누구보다 뛰어났다. 또한 계유정난의 핵심 인물이었던 만큼 세조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았다. '세조실록'에 따르면 “한명회가 보는 것이 내가 보는 것이며, 한명회의 마음은 나의 마음과 같다”라는 기록도 남아 있다.

영화를 본 뒤 실제 역사 속 인물을 알아보면 이야기는 더욱 풍성해진다. 우리가 보는 영화 속 강렬한 캐릭터 뒤에는 미처 몰랐던 드라마틱한 역사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한명회의 더 내밀한 이야기와 조선을 뒤흔든 결정적 순간들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배희주/출판마케터·비평연대)

배희주<br>

■ 제자리에 있다는 것 (클레르 마랭 지음, 황은주 옮김, 에디투스, 2025)

"자리를 잡는다"는 말은 얼마나 모호하고도 집요한 목표인지. 큰 변수 없이 모든 것이 갖춰진 안정, 더 이상 애써 ‘다음’을 노리지 않아도 되는 상태. 그러나 그 자리는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늘 어딘가 아직 아닌 곳에 있는 기분으로, 다음 자리를 향해 조금씩 쫓기듯 살아간다.

“우리 역시 제자리를 찾을 수 있는 존재일까? 사물들에게도 정말 제자리가 있을까? 제자리가 존재한다는 생각은 어쩌면 삶이 불확실성 속에서 부유할 때 우리를 안심시키기 위해 고안된 것일지도 모른다.”

프랑스 철학자 클레르 마랭은 우리가 그렇게 갈망하는 ‘제자리’를 다시 묻는다. 이 책의 사유는 단정 대신 질문으로 이어진다. “왜 어떤 사람들은 한자리에 머물 수 없을까?” “우리 안의 무엇이 우리를 저지할까?” “감히 떠날 줄 아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거의 모든 페이지에서 튀어오르는 물음표 앞에서 ‘자리’에 대한 익숙한 감각이 흔들린다.

우리는 제자리를 갖지 못해 고통받기도 하지만, 이미 정해진 자리를 채우는 삶에 절망을 느끼기도 한다. 새로운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기존의 뿌리가 흔들리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말이 그래서 더욱 흔쾌하게 다가온다. 어쩌면 우리가 붙잡고 있는 것은 자리 자체가 아니라, 자리가 있으리라는 믿음인지도 모르겠다.(이솔림/출판편집자·비평연대)

이솔림<br>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정서경·박찬욱 지음, 그책, 2016)

영군은 어느 날 엄마에게 자신이 ‘사이보그’인 것 같다는 황당한 고백을 한다. 어쩌면 나는 인간이 아니라, 사이보그인지도 모르겠다고. 하지만 엄마는 그런 영군의 팔을 붙들고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데리고 가 이렇게 말한다.

“알았으니까…. 가서 자. 다른 사람들한텐 말하지 말고….”

아직 할 말이 남은 듯 울상이 된 영군을 뒤로 한 채 엄마는 다시 원래의 작업 공간으로 돌아간다.

각본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에서 가장 쓸쓸하게 느껴지는 건 바로 이 장면이다. 영군이 생각하는 진정한 ‘나’는 사이보그다. 하지만 그 정체성은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부정당하고 “남들 모르게” 숨겨야 하는 터부가 된다. 그렇다고 더는 ‘인간’인 척을 하며 살아갈 수도 없게 된 영군은 사이보그로서 결국 밥을 먹지 못해 말라간다. 그런데 그런 영군에게 일순이 건넨 ‘사이보그’용 식사 보조 장치 하나는, 온갖 과학적 치료로도 움직이지 않던 그녀를 가까스로 일으켜 세운다. 영군이 다른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사이보그인 채로도 밥을 먹고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장치. 사이보그라는 영군의 정체성을 숨기거나 바꾸려 하지 않고, 그 자체로 살아가도 된다는 일순의 응원을 상징하는 장치를 달고 난 뒤에야 영군은 기운을 차린다.

누구에게나 특이하고 남다른 구석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그중에는 우리 사회가 너무 쉽게 ‘결함’으로 인식하고 마는 특징들도 있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그런 비밀을 가진 이들을 이렇게 위로한다. 네가 너인 그대로여도 괜찮다고. 남들과 조금 다른 부품 한두 개쯤 몸에 지니고 있어도, 그저 씩씩하게 밥 먹으면서 살면 되는 거라고. 사이보그지만 괜찮다고.(김도경, 출판편집자, 비평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