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수 화가의 페인팅 북 리뷰] (14) 삶에 빛을 주는 곁의 소중함
- 임회숙 저 '그들 곁으로'
책 한 권에 담긴 활자들이 천지수의 몸과 기억과 희망을 만나 씨앗으로 응결되면, 화가는 그 작은 것을 캔버스에 심고 붓과 물감으로 키워내 한 폭의 그림으로 완성한다. 독서를 통해 창조적 영감을 얻는 실험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책 읽는 천지수 화가의 ‘페인팅 북리뷰'는 그 대답 중 하나다. 열 네번째 책은 '그들 곁으로'(임회숙 지음/산지니)이다.
인터뷰365 천지수 칼럼니스트(/화가·서평가) = “분순은 구십육 년을 산 몸에서 한 주먹이 넘는 뼈가 수습된 걸 보며 자신의 삶이 그리 모질지는 않았구나 싶었다”
임회숙 작가의 '그들 곁으로'는 햇살 한 줌, 그들 곁으로, Lucky, 저 너머, 밤 산책, 캔 이야기 등 여섯 개의 단편소설이 엮인 소설집이다. 소설 속 인물들이 살아가는 곳은 평범하다. 작가는 삶에 스며든 아픈 상처들을 섬세한 관찰로 리얼하게 표현한다. 그리고 긍정의 빛을 밝혀서 스러질 것 같은 삶에도 밝은 희망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한다.
'저 너머'에는 생과 사,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작가의 시각이 자유롭다. 분순은 예지력이 있어서 앞을 내다볼 수 있는 여인이다.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미래로 인해, 두려움과 외로운 시간을 보내며 모진 삶을 이어갔다. 사흘 전 분순은 96세의 삶을 마감했다. 아들의 품에 안긴 자신의 유골함을 바라보는 그녀의 영혼은 고단했던 지난 삶을 긍정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기억은 열 살, 스물세 살, 마흔두 살, 임종의 시간 등으로 떠돌아다닌다. 분순은 꿈에서 본 것들이 현실이 되는 여러 사건들 앞에서 혼란스러웠던 마음에서 벗어나 예지력은 누군가가 자신에게 준 선물이라고 깨닫는다.
“우리 엄마 새처럼 가고 싶은 곳 가실 수 있게…”
분순의 아들 종길은 말을 멈추고 울음을 터트린다. 육체의 굴레를 벗어난 분순의 영혼은 아들의 기원처럼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을까?
누구에게나 쉬운 삶은 없다. 미래를 볼 수 있는 예지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삶의 테두리 안에서는 무거움으로 존재한다.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생生‘이라는 것을 기본값으로 여긴다. 그리고 각자가 느끼는 어려움과 두려움들이 자유로운 삶을 방해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생生‘은 영원하지 않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 삶의 원리도 아닐 것이다. 생명을 갖게 된 시간과 자신의 존재 자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살아가면서도 영혼 같은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혼이 된 분순이 자신의 지난 시간을 긍정하자, 시간의 부스러기들이 먼지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진다. 흐르는 물처럼 자유로운 바람처럼 온전한 해방을 얻게 되는 것이다. 나는 분순이 원하는 곳에 새처럼 날아가 보게 되는 장면을 그리고 싶어졌다.
‘저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산 너머, 바다 너머, 생을 너머 보이지 않는 세계를 우리는 두려워하거나, 궁금해한다. ‘너머’라는 것은 멀 수도 , 가까울 수도 있다. 어쩌면, 그것을 생각하는 지금 나는 그 너머를 건너와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새처럼 날아서 와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넘어온 이 세상에서 내 곁에 있는 것들을 생각한다. 임회숙의 소설들은 곁에 있는 존재들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설령 몸을 잃은 존재하고 하더라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곁에서 따뜻한 위안을 얻을 수 있다고 응원한다. 나의 곁에 있는 그 무엇에라도 나도 그들의 곁에서 위안의 빛이 되고싶다. 서로에게 선물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