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 시인의 좋은 시 365] 황인찬 시인의 ‘구관조 씻기기’

2026-02-26     김지수 칼럼니스트

시는 인간 마음속 심상(心像)에서 피어나는 혼불과도 같습니다. 깊은 사유의 내면에서 길어 올린, 짧지만 응축된 언어문학의 보석과도 같은 시의 세계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좋은 시와 함께 조용하지만 반짝이는 하루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구관조 씻기기 / 황인찬

이 책은 새를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새를 다뤄야 하는가에 대해 다루고 있다

비현실적으로 쾌청한 창밖의 풍경에서 뻗어
나온 빛이 삽화로 들어간 문조 한 쌍을 비춘다

도서관은 너무 조용해서 책장을 넘기는 것마저
실례가 되는 것 같다
나는 어린 새처럼 책을 다룬다


"새는 냄새가 거의 나지 않습니다. 새는 스스로 목욕하므로 일부러 씻길 필요가 없습니다."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읽었다 새를
키우지도 않는 내가 이 책을 집어 든 것은
어째서였을까

"그러나 물이 사방으로 튄다면, 랩이나 비닐 같은 것으로 새장을 감싸 주는 것이 좋습니다."

나는 긴 복도를 벗어나 거리가 젖은 것을 보았다. 

- '구관조 씻기기' (민음사, 2012)

황인찬 시인은 1988년 경기도 안양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습니다. 2010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을 통해 등단한 그는 평범한 하루의 감각을 섬세하게 길어 올린 시로 독자들의 공감을 빠르게 얻으며 주목받아 온 시인입니다.

그의 시는 거창한 서사보다 일상 속 감정의 흔들림과 존재의 외로움을 응시하는 데 집중합니다. 유머와 쓸쓸함이 함께 스며 있는 정서, 말하지 못한 감정을 여백으로 남겨 두는 절제된 표현 방식이 특징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자연스럽게 겹쳐 읽게 만들며,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첫 시집 ‘구관조 씻기기’(2012)는 젊은 세대의 감수성을 신선하게 드러내며 큰 주목을 받았고, 이 작품으로 제31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의 기대를 모았습니다. 이후 ‘희지의 세계’, ‘사랑을 위한 되풀이’, ‘여기까지가 미래입니다’,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등을 발표하며 사랑과 상실, 기억과 시간의 문제를 한층 깊이 있게 탐구해 왔습니다.

각 시집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춘의 감각과 불안을 섬세하게 기록하며 그의 시 세계를 더욱 단단하게 확장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시를 더 널리 알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산문집 ‘읽는 슬픔 말하는 사랑’, ‘시는 참 이상한 마음’을 출간해 시인과 독자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있습니다. 시를 읽는 일의 기쁨과 어려움을 솔직하게 나누며, 문학이 삶과 만나는 지점을 친근하게 안내하고 있습니다.

그는 현대문학상, 천상병시문학상, 구상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또한 강의와 문학 행사, 낭독회, 그리고 좌담과 비평 활동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으며, 2021년부터 국악방송 ‘글과 음악의 온도’의 라디오 DJ로 활동하며 문학과 음악이 만나는 시간을 청취자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과장되지 않은 언어와 절제된 정서를 바탕으로 한 그의 시 세계는 바쁘게 살아가느라 놓치기 쉬운 계절감을 다시 불러내며, 오늘을 살아가는 독자들의 불안과 고독을 다정하게 어루만집니다. 현재 새로운 시집을 집필 중이며 내년 연말 출간을 앞두고 있어, 또 어떤 시로 독자들과 만나게 될지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