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 시인의 좋은 시 365] 이희국 시인의 ‘당신이 다녀가고’

2026-02-19     김지수 칼럼니스트

시는 인간 마음속 심상(心像)에서 피어나는 혼불과도 같습니다. 깊은 사유의 내면에서 길어 올린, 짧지만 응축된 언어문학의 보석과도 같은 시의 세계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좋은 시와 함께 조용하지만 반짝이는 하루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당신이 다녀가고 / 이희국

벌겋게 녹슨 못을 빼려다 
못대가리가 부서져 뺄 수가 없자 
반쯤 튀어나온 못을 두드려 
아예 보이지 않게 박는다 
그 위에 감쪽같이 스티커를 붙인다
나만 안다.

- ‘간이역에서’ (글나무, 2024)

미국의 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영혼에는 붕대를 감은 순간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가려 두었을 뿐,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이희국 시인의 ‘당신이 다녀가고’는 명절 뒤 가족이 다녀간 마음과 닮아 있습니다. 보고 싶은 얼굴이라 반갑지만, 가족이라는 이유로 더 쉽게 말을 꺼내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참을 수 있는 말도 그냥 하고, 이해해 주길 바라면서도 정작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다투거나 어색하게 헤어집니다. 떠난 뒤에야 미안함이 남습니다. 겉으로는 정리된 듯 보여도 마음 한켠에는 아직 못 하나가 박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붕대를 감은 채, 다시 돌아올 명절을 기다립니다.

이희국 시인은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나 ‘시문학’으로 등단한 시인입니다. 약사이자 가톨릭대학교 약학대학 외래교수로 재직하며, 국제 PEN 한국본부 이사, 한국문인협회 재정협력위원, 시문학문인회 부회장, ‘이어도문학회’ 회장, 월간 ‘문예사조’ 편집위원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의 시 세계에는 병과 치유, 몸과 시간, 삶과 죽음의 경계를 향한 깊은 사유가 흐르고 있습니다. 약국이라는 일상의 공간에서 길어 올린 구체적인 이미지들을 통해 생명 윤리와 인간 내면의 고독을 섬세하게 비추며, 화려한 수사 대신 담백한 언어와 절제된 서정으로 삶의 연약함을 따뜻하게 감싸 안습니다. 체험에서 우러난 성찰은 아픔을 넘어 회복과 희망의 가능성을 보여 주며, 독자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넵니다.

시집으로는 ‘자작나무 풍경’, ‘다리’, ‘세월 속의 무지개’, ‘파랑새는 떠났다’, ‘간이역에서’ 등이 있으며, 2024년 출간한 영한 시집 '간이역에서'는 베스트셀러로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한국비평문학협회작가상과 푸른시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카자흐스탄 ‘문학아시아 2025’ 경연대회에서 1등상을 받았습니다. 그의 시 50여 편은 15개국 이상 언어로 번역·소개되어 국내외에서 꾸준히 읽히고 있습니다. 또한 대만 노벨문학상 후보였던 故 리쿠이셴 시인이 번역한 시집 출간도 예정되어 있어, 그의 시 세계는 더 넓은 언어를 건너 더 많은 이들의 마음속으로 조용히 스며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