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평 - 새로운 서평] 아프다고 말해주면 좋겠어 外
- [비평연대] 배희주·황예린·김상화의 500자 서평
젊은 문화비평가와 출판전문가들의 커뮤니티인 '비평연대'에서는 숏폼콘텐츠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500자 내외의 '매우 짧은 연대 서평'의 형식을 고안했습니다. 2030세대 지식인 특유의 빛나는 감각으로 제시되는 다양한 책들을 통해 지식의 최전선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편집자주]
■ 아프다고 말해주면 좋겠어(김정호 지음, 어크로스, 2026)
부리가 삐뚤어진 독수리, 백내장에 걸린 수달. 기린과 코끼리는 없지만 상처 입고 갈 곳 없는 동물들이 가득한 동물원. 그곳이 바로 청주동물원이다. 동물원에는 어리고 건강한 동물만 있을 수 없다는 것, 장애가 있는 동물이 동물원 한 바퀴를 돌았을 때 보이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게 아니냐는 25년 차 수의사 김정호.
'아프다고 말해주면 좋겠어'는 귀여운 동물들의 전시장이 늙고 아픈 동물들을 위한 치료소로 바뀌기까지 그가 지나온 시간을 기록한 책이다. 앵무새 장에 갇혀 있던 독수리, 죽어야만 나올 수 있었던 케이지에서 살아서 나온 웅담 채취용 사육곰. 그리고 국내에서 곰 사육과 웅담 채취가 전면 금지된 것이 고작 2026년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알게 됐다. 읽다 보면 인간이 참 미워지고 마음이 불편해진다. 하지만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을 때 비로소 고민이 시작된다. 우리가 그들의 삶을 알아야 함께 공존하고 있는 이 세상도 조금은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동물들이 그저 평범한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돕는 것, 귀엽지 않고 늙고 장애가 있는 동물도 편안히 살 수 있는 세상이 결국 사람도 살기 좋은 세상이라는 말.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다정한 시선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배희주/출판마케터·비평연대)
■ 미술관에 가면 머리가 하얘지는 사람들을 위한 동시대 미술 안내서(그레이슨 페리 지음, 정지인 옮김, 원더박스, 2019)
현대 미술관에 가서 도대체 무엇을 느껴야 할지 몰라 고개를 갸웃대다가 나온 경험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제아무리 작품 해설을 읽고 들어도 ‘도대체 이것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이런 게 왜 예술일까?’란 고민을 해본 어른들을 위해 도자기와 태피스트리 작업하는 예술가 그레이슨 페리는 권위는 잊고 가볍게 말을 건넨다. “현대 미술 그렇게 어려운 친구 아닙니다, 아마도요.”
'미술관에 가면 머리가 하얘지는 사람들을 우한 동시대 미술 안내서'에 현대 미술 해설을 기대했다면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책은 우리 손에 정답을 쥐어주지 않는다. 다만, 현대 미술이란 미로를 즐겁게 헤매는 법을 알려줄 뿐이다. “이런 게 미술이라고?”라는 질문에 “그러게 말입니다”하고 맞장구치면서 작품 논평과 미술계 문제의식까지 자유자재로 오가며 마치 수다 떨 듯 들려준다. 팟캐스트를 듣는 마음가짐으로 읽고 있자면 시험문제 풀 듯 의미를 이해해야만 한다는 강박에서 풀려나 작품 자체로 느낄 자유를 맞이하게 된다.
더 이상 시험 보는 사람처럼 ‘미술관에만 가면 머리가 하얘’져 몸도 마음도 딱딱하게 굳어버리지 않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한다. 난해한 동시대 미술 작품 앞에서도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나만의 삐딱한 의견을 자연스럽게 덧붙일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황예린/출판마케터·문화비평가·비평연대)
■ 떡볶이는 언제나 옳다(정은정 지음, 윤정미 그림, 노란상상, 2025)
고된 하루 끝, 역전에서 떡볶이 노점을 그냥 지나치기란 어렵다. 결국 1인분을 시킨다. 꼬챙이로 떡을 하나 푹 찍어 먹고 종이컵에 뜬 어묵 국물을 호호 불어 마신다. 그날의 피로가 싹 녹는다. 과연 한국인의 소울푸드다. 그런데 이 떡볶이, 언제부터 우리나라 대표 간식이 된 걸까? 이 책은 그 비밀을 80년대에 떡볶이 노점을 운영하던 여성 '순복'의 서사로 풀어낸다.
순복은 농촌에서 상경한 여성. 그런 순복에게 떡볶이집은 도심에서 살아갈 자립 기반이 되었다. 70~80년대, 우리나라는 쌀은 귀하고 밀은 흔했다. 공장제 고추장의 주 원료는 밀이었고 떡공장에서도 쌀 대신 값싼 밀가루로 떡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에 도시로 이주한 농촌 여성들이 고추장과 밀떡이라는 '적은 밑천'으로 장사를 시작했던 건, 지극히 최선의 선택이었다.
책은 이들이 서로서로 떡볶이 재료를 품앗이하고 단속반이 떴음을 알리는 등 연대함으로써 함께 성장해 갔다는 사실도 밝힌다. 여고 앞에 유난히 떡볶이집이 많았던 배경엔 남아선호사상이, 여성 노동자가 많은 공단 앞에 떡볶이 노점이 많았던 배경엔 남녀임금차별이 존재했음도 알린다. 용돈과 임금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았던 여성들에게 떡볶이는 당시 스트레스를 값싸게 날릴 수 있는 음식이었던 것이다.
떡볶이에 얽힌 시대의 아픔과 여성들 간의 '빨간 연대'를 읽고 나니, 앞으로의 떡볶이가 더욱 눈물겹게 맛있을 것 같다. 순복의 노점에 이어 순복의 딸 '은숙'으로 이어지는 떡볶이 가게는 여전히 누군가의 자립 기반일 오늘날의 떡볶이집 역시 응원하게 만든다. "떡볶이는 많은 이가 처음으로 만들어보는 음식 중 하나"인 만큼 집에서 아이들과 떡볶이를 만들어 보기 전, 이 책으로 우리 역사의 매운맛(?)을 먼저 맛보여 주면 어떨까. 떡볶이 국물의 감칠맛 속에 우리나라 여성들의 삶이 배어 있음을 안다면 떡볶이를 처음 만드는 어린이의 자세도 제법 달라질 것 같다.(김상화/출판편집자·비평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