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 시인의 시로 보는 세상 풍경] (52) 엄나무에서 엄마의 관절염을 생각하다

2026-01-16     홍찬선 칼럼니스트
엄나무

인터뷰365 홍찬선 칼럼니스트 = 보이는 것마다 그리움이다. 그리움마다 엄마가 떠오른다. 눈이 내리고 영하 10도로 떨어졌던 날씨가 영상 5도로 따뜻해진 새해 첫달 가운데 날, 문득 만난 엄나무에 엄마 얼굴이 어렸다.

엄마는 젊었을 때 고된 농사일 때문에, 말년에 무릎 관절염으로 고생했다. 관절염에 엄나무가 좋다는 얘기를 들은 둘째 형은 이곳 저곳 다니며 엄나무를 구해왔다. 가지에 가득 달린 가시에 찔리면서도…

엄나무의 5가지 약효

엄나무의 정식명칭은 음나무다. 엄나무의 한자말인 엄목(嚴木)은 나무껍질에 날카롭고 커다란 가시가 빽빽하게 돋아 있어서 그 모습이 아주 엄격하고 위엄있어 보인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이 가시가 나쁜 기운이나 병마(病魔)라는 귀신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고 믿었고, 그래서 귀신나무라고도 한다. 대문 옆이나 마당에 엄나무를 심거나, 가시가 가득한 엄나무 가지를 대문 위에 걸어두기도 했다.

엄나무 가시에
엄마가 어렸다

농사일은 맨 먼저 하고
먹는 것은 맨 나중으로 미뤄

불청객으로 찾아온
무릎 관절염을 달래려고

거친 가시도 마다 않고
고양이 비린내에 질끈 눈 감던 모습

엄나무 새순에
엄마가 이슬로 맺혔다

- 홍찬선, '엄나무 가시에 어리는 엄마' 전문.

엄나무는 ‘산속의 보약’ 또는 ‘산삼나무’라고 불린다. 옛날부터 해동피(海桐皮)라는 약재로 쓰였다. 실제로 엄나무는 천연진통제다. 관절이 아프거나 신경통 근육통으로 고생할 때 엄나무 달인 물을 꾸준히 마시면 효과가 있다.

간 치료의 명약으로 불릴 정도로 간의 해독 기능을 돕고 간 기능을 회복시켜 만성피로에 시달릴 때도 효과가 있다. 엄나무에 함유된 헤데라게닌이란 성분은 인슐린과 비슷해 혈당을 조절하고, 당뇨도 개선해준다. 사포닌 성분도 풍부해 면역력을 높여주고 기관지 건강에도 좋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우울감을 해소하는 등 정신안정에도 효과가 있다. 봄에 돋아나는 새순은 개두릅이며, 쌉싸름한 맛과 향으로 입맛을 돋우는 데 좋다.

다만 성질이 차서, 아랫배가 차거나 소화력이 약해 설사를 자주하는 사람은 과하게 먹지 않는 게 좋다. 빈혈이 있는 사람도 주의해야 한다. 가지에 가득한 가시에도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 임산부도 전문가와 상담한 뒤 복용하는 게 바람직다.

엄나무닭백숙과 오곡영양밥, 엄나무술로 익는다

산과 논이 맞닿은 곳에 쉰 살은 돼 보이는 엄나무가 서 있다. 두 손을 마주하고 공손하게 예를 올린 뒤 나무를 자른다. 밑동은 너무 굵어 껍질을 벗기고 3m 넘는 곳부터는 토막을 낸다. 낫으로 몸에 난 가시를 조심스럽게 없앤다.

엄나무

겨울이라 잔뜩 껴입은 탓인지,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 한 꺼풀 두 꺼풀 벗고, 잔가지까지 모두 정성스럽게 모은다.

엄나무 토막을 손도끼로 조그맣게 쪼개고, 잔가지도 전동가위로 손가락 마디 크기로 자른다. 그렇게 토막 내고 쪼개고 자른 엄나무 조각을 20ℓ들이 플라스틱 통에 가득 채운다.

 줄기를

그렇게 엄나무담금주 담는 준비를 마친다. 아직 남은 엄나무 토막을 더 쪼갠다. 담금주 외에 말려서 닭백숙이나 차로 쓰기 위해서다.

모든 일을 마치고 방에 들어오니 엄나무 백숙 향기에 코가 벌렁거린다.

노랗게 익은 쌀막걸리는 눈을 크게 만들고, 밭솥에서 익어가는 영양오곡밥 소리에 일하느라 잊었던 시장기를 일깨운다.

엄나무

엄나무를 닭백숙이나 삼계탕에 넣으면 닭의 단백질 소화를 돕고 기름기도 잡아준다. 엄나무 성분이 국물에 우러나와 더욱 맛있게 한다. 관절염 치료와 간기능 증가는 보너스다.

은행알과 서리태와 수수와 쌀이 아름답게 어울린 오곡영양밥을 곁들인 진수성찬에 말을 잊고 젓가락만 바삐 움직였다.

엄나무

느긋하게 기다려야 맛있다
하얀 눈에 땀방울을 얹어야 더욱 향기롭다

게으름에 무젖어 허약해진 근육이 아우성쳐도
낫질에 톱질로 손가락 마디마디가 욱신거려도

엄나무닭백숙과 영양오곡밥과 노란쌀막걸 리가 있어
겨울이 녹는다 삶이 익는다 봄이 다가온다

겨울이 아무리 꽃을 시새워도
봄이 여름 가을이 가고 다시 겨울이 오면

엄나무와 소주는 엄나무술이 되어  
팍팍해진 삶을 보듬어 줄 것이라고 손가락 건다

 - 홍찬선, '엄나무담금주' 전문.

엄나무

어느덧 짧은 겨울해가 졌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엄나무를 가득 안고 차에 올랐다. 자유로가 붐빌 시간인데 뻥 뚫렸다. 어서 가서 소주를 사다 엄나무에 부으라고 재촉하는 듯했다.

소주를 가득 부어 밀봉하고 엄나무 차를 끓이니 집안이 온통 엄나무 향기로 촉촉이 깨어났다. 참으로 엄마를 생각나게 한 엄나무의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