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희 감독의 AI스토리텔링] ①생성형 AI 시대, 누가 스토리텔러인가

[2025년을 돌아보며 묻다]

2026-01-14     이은희 인터뷰어

AI스토리텔링은 인공지능(AI)이 인간과 협력하거나 스스로 이야기를 생성하는 기술과 개념을 의미한다. 스토리텔링 작법서 '4줄이면 된다'의 저자 이은희 감독은 AI스토리텔링 전문가들의 인터뷰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생성형 AI 시대에 스토리텔러의 의미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짚는다. 나아가 2026년을 맞아 AI를 창작의 도구로 사용하는 시대에 창작자가 가져야 할 역할과 책임을 살펴본다. 본 칼럼은 두 편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주] 

다양한

인터뷰365 이은희 인터뷰어 = 생성형 AI를 사용해 창작에 도움을 받는 사람을 모두 'AI 스토리텔러'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 질문을 둘러싼 오해는 두 극단에 걸쳐 있다. 한쪽은 "AI가 알아서 써준다"고 과대평가하며, 다른 쪽은 "AI로는 진짜 창작이 안 된다"고 과소평가한다.

하지만 AI 스토리텔링의 핵심은 도구 사용법이 아니라 '서사의 뼈대를 누가 세우는가'에 있다. AI는 작가가 세운 질문과 구조를 증폭시키는 엔진이지, 그 자체로 이야기를 발명하는 주체가 아니다. 지금 교육 현장과 산업 현장, 그리고 창작자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세 가지 풍경은 이 구분이 왜 중요한지를 정확히 보여준다.

기획자는 AI를 '서사 증폭기'로 본다

AI 창작 수업에 몰려드는 사람들의 면면이 흥미롭다.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한 초심자보다는, 이미 콘텐츠 창작 경험이 상당하거나 사업체를 운영하는 대표들, 교수들, 기획자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이들은 콘텐츠가 IP로서 가지는 힘을 알고 있고, AI가 그 화력을 배가시킬 수 있다는 사실도 직감하고 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AI 사용법'이 아니라 '이야기의 핵심을 붙잡는 구조'다. 좋은 글은 언제나 이야기의 중심에서 출발하며, 도구가 고도화될수록 오히려 그 중심을 붙들 수 있는 사람이 강해진다. 질문에서 출발해 서사의 뼈대를 세우고, 그 위에 살을 붙이고 옷을 입히는 과정, 곧 작가만이 세울 수 있는 이 구조를 이해한 뒤에야 AI는 진짜 힘을 발휘한다. 자료 정리, 표현 변주, 장면 확장, 독자 반응 시뮬레이션 같은 작업에서 AI는 빠르게 작동하지만, 무엇을 말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중심축만큼은 여전히 작가의 몫이다.

만약 이미 스토리에 대한 감각을 갖춘 기획자들이 작가 중심의 개인적 스토리를 꺼내어 AI를 통해 공공의 이야기로 확장하는 원리까지 체득한다면 어떨까. 그들이 만들어낼 파워는 단순한 생산성을 넘어 영향력의 문제로 전환된다. 기술이 강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핵심을 붙잡은 사람이 기술을 손에 넣을 때 AI는 서사를 증폭시키는 엔진이 된다.

대중은 AI를 '자기 이야기의 도구'로 받아들인다

온소

스토리텔링 관련한 여러 강연과 워크숍은 신청이 빠르게 마감되고, 예상을 뛰어넘는 참여가 이어진다. 사람들이 찾은 것은 특정 강연자가 아니라 '스토리 자체'였다. 이 현상은 스토리에 대한 대중의 갈증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한 가지 중요한 변화를 드러낸다. 사람들은 이제 이야기를 소비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스스로 스토리텔러가 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소설가나 시나리오 작가라는 전통적 경로만을 뜻하지 않는다. SNS, 블로그, 면접, 자기소개서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더 설득력 있게 말하고, 더 기억에 남게 구성하며, 더 공감받는 형태로 전달하고 싶어한다. 이 지점에서 AI는 매력적인 도구가 된다. 생각을 확장해 주고, 문장을 빠르게 변주해 주며, 형식을 손쉽게 바꿔 준다.

하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다. AI가 만들어내는 서사는 인간의 서사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AI는 확률적으로 흔한 전개를 선호하고, 맥락의 충돌을 매끄러운 문장으로 덮으며, 새로움보다 평균적 설득력을 최적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 원리를 모른 채 AI를 사용하면 결과물은 '그럴듯하지만 납작한' 이야기가 된다.

진짜 질문은 ‘AI를 어떻게 쓰느냐’가 아니라 ‘AI가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왜곡하거나 증폭하는지 아는가’다. AI를 활용한 스토리텔링은 기술이 아니라 서사의 이해에서 출발한다.

예술가는 AI 앞에서 '윤리와 정체성'을 묻는다

서울문화재단

최근 진행한 서울문화재단 수업에서 다분야 예술가들을 만났다. 영상, 연극, 판소리, 춤, 사진,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 중인 창작자들은 AI를 가장 필요로 할 것 같았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두려워했다. 일반 참가자들보다 AI 활용 빈도는 낮았고, 심리적 거부감은 더 컸다.

한 예술가는 이렇게 말했다. "AI를 쓰면 내가 창작자인지 아닌지 경계가 흐릿해지는 것 같아요. 도덕적으로 괜찮은 건가요?"

이 불안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과 윤리의 문제다. ‘AI와 협업하는 것이 올바른가’, ‘창작자라는 사실은 어디에서 성립하는가’라는 질문에 명쾌한 답을 내리지 못할 때, AI는 편리한 도구가 아니라 불편한 거울이 된다.

미국의 사례를 보면, 예술가들이 느끼는 정체성의 흔들림은 막연한 불안만은 아니다. 미 저작권청(USCO)은 AI가 만든 결과물 전체를 인간 저작물로 보지 않지만, 같은 작품 안에서도 사람이 직접 창작한 텍스트, 편집, 배열 같은 기여분은 별도로 소명해 저작권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운용해 왔다.

대표적으로 그래픽 노블 'Zarya of the Dawn(여명의 자리야)'사건에서, Midjourney(미드저니)가 생성한 이미지는 보호 대상이 아니라고 보면서도, 작가가 직접 쓴 텍스트와 페이지 구성에서의 선택·조합·배열(컴필레이션)은 인간의 창작적 판단이 개입된 영역으로 인정해 등록을 유지했다.

이 판례가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AI와 협업하는 순간 ‘창작자’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창작자의 역할이 ‘생성’에서 ‘결정과 책임’으로 재정의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창작자에게 필요한 것은 사용법보다, 어떤 부분이 AI 출력이며 어떤 부분이 인간의 표현인지 작업 과정으로 분명히 남겨 인간 저작의 경계를 스스로 설계하는 능력이다.

‘AI 스토리텔러’는, AI를 많이 쓰는 사람을 가리키는 호칭이 아니라 서사의 주체를 끝까지 붙드는 사람을 가리키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AI는 글을 대신 써주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세운 질문과 구조를 증폭시키는 장치다.

그래서 AI와 함께 창작한다는 것은 ‘프롬프트를 잘 쓰는 기술’을 익히는 일이기보다, 무엇을 말할지 결정하고(질문), 어떻게 전개할지 설계하며(구조), 어디까지가 내 표현인지 검증하는(책임) 과정을 더 엄격하게 수행하는 일에 가깝다.

이 세 단계가 분명한 창작자에게 AI는 위협이 아니라 확장이다. 반대로 질문과 구조가 비어 있으면, AI는 생산성을 높이기는커녕 그 빈자리를 그럴듯함으로 덮어 서사를 납작하게 만들 수도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용법의 숙련이 아니라, 증폭할 가치가 있는 신호를 세우는 힘이다.나만의 질문과 답, 그리고 그것을 공공의 이야기로 번역하는 서사의 뼈대 말이다. 그 힘을 가진 사람만이, 생성형 AI 시대의 진짜 스토리텔러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