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향식 365칼럼] “청주 초정서 눈병 치유한 세종, 그곳서 글자가 완성됐죠”
- 7일 ‘훈민정음특별시 청주 만들기 추진위’ 발기선언 - 1444년, 두 차례 걸쳐 총 122일간 청주 머물렀던 시기와 훈민정음 마무리 단계 시기 문헌상 일치 - 청주시 내수읍 초정리에, 한글학당 설립 추진 - 외국어·외래어 사용실태 성찰하는 사회운동도
인터뷰365 신향식 칼럼니스트 = “고향 청주에서 한겨울 된바람처럼 불기 시작한 훈민정음특별시 시민운동을 응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 페이스북에서, ‘맑은고을시민행동’ 김동진 대표가 남긴 댓글 하나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고향을 향한 부탁과 기대, 그리고 조심스러운 희망이 함께 담겨 있었다.
‘맑은고을시민행동’은 ‘맑은 고을 청주’를 도시의 얼굴로 다시 세우고자 2024년 결성된 시민단체다.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을 출발점으로, 언어·역사·문화의 가치를 오늘의 삶과 연결하려는 움직임이다. 고향에서 시작된 지역운동을 외면하기란 쉽지 않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기억의 서랍을 열었다. 검색창을 두드리기도 전에, 이미 몇 장면이 먼저 떠올랐다.
초정약수, 청주 아이들의 기억 속 물
학창 시절, 초정약수는 청주 아이들에게 매우 익숙한 이름이었다. 초정이라 하면 약수터였고, 그 물로 만든 천연사이다는 소풍날 가방 속에 빠지지 않는 간식이었다. 톡 쏘는 맛에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몸에는 좋다”는 어른들의 말에 몇 모금은 꼭 넘기곤 했다.
또 하나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었다. 세종대왕이 눈병을 치료하기 위해 초정에 머물렀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였다. 그때는 그저 ‘왕이 다녀간 곳’ 정도로만 받아들였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들여다보니 그 기억은 단순한 설화로 치부하기 어려운 역사적 사실 위에 놓여 있었다.
검색을 하여 확인한 사실은 오히려 기억보다 또렷했다. ‘훈민정음특별시 청주 만들기 추진위원회’가 7일 충북자연과학연구원에서 발기선언대회를 열고, 본격적인 시민운동을 시작한다는 소식이었다. 초정약수, 세종대왕, 훈민정음을 하나의 서사로 엮어 도시의 정체성을 새로 세우겠다는 선언이었다(추진위원회 발기선언 자료).
시민운동으로 시작된 ‘훈민정음특별시’ 구상
이 구상은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었다. 역사적 문헌과 제도적 근거를 토대로 한, 비교적 단단한 제안이었다. 상상력의 과장이 아니라, 사실에 기반한 상징의 재구성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문득 떠오른 사례가 있다. 경북 김천은 ‘김밥천국’의 약자를 활용해 김천이라는 도시를 유쾌하게 각인시키는 축제를 열었다. 가볍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시도는 도시를 기억하게 만드는 데 분명 성공했다. 그렇다면 국가 기록과 역사 문헌이 명확한 청주가 초정약수, 세종대왕, 훈민정음을 엮어 하나의 서사를 만드는 일은 오히려 더 생산적인 시도다. 이는 상상이 아니라, 사실을 다시 읽는 작업이다.
추진위원회가 제시한 구상은 비교적 구체적이다. 세종대왕이 1444년, 눈병 치료를 위해 두 차례에 걸쳐 총 122일간 머물렀던 청주시 내수읍 초정리 일대에, 한글의 역사와 정신을 가르치는 학당을 설립·운영하겠다는 계획이다(추진위원회 사업계획서).
세종의 초정 체류는 '세종실록'에도 명확히 기록돼 있다. 이 시기는 훈민정음 창제와 완성 시기와 겹친다('세종실록'). 글자가 만들어지던 결정적 시기의 공간적 배경으로 초정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다.
눈이 아픈 임금…청주 초정에 임시행궁
이 학당은 과거를 전시하는 박물관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교육하는 공간이 될 예정이다. 다문화 가정을 대상으로 한글 교육을 진행하고, 무분별한 외국어·외래어 사용 실태를 돌아보는 사회운동도 함께 전개하겠다는 계획이다(추진위원회 발표 자료). 훈민정음을 유리 진열장에 가두지 않고, 오늘의 생활 언어로 되살리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초정약수는 처음부터 관광지가 아니었다. 이 물은 일부러 즐기러 가는 물이 아니라, 몸과 기력이 상한 이들이 요양을 위해 찾던 물이었다. 세종은 재위 후반 심한 안질을 앓았고, 시력이 저하된 상태에서도 국정을 멈추지 않았다는 기록이 실록 곳곳에 등장한다('세종실록' 세종 26~28년).
글을 읽지 못하는 임금은 곧 나라의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하는 임금이 될 수 있었다. 세종에게 눈병은 개인의 고통이 아니라 국정의 위기였다. 그는 결국 궁궐을 떠나 충북 청주 초정으로 내려왔다.
세종에게 눈병은 개인의 고통 아니라 국정위기
초정은 단순한 휴식처가 아니었다. 왕의 병환을 다스리기 위해 마련된 임시 행궁이었고, 이는 여러 사료를 통해 확인된다(충청북도 '초정행궁 조성 및 역사성 자료'). 임금은 쉬기 위해 내려온 것이 아니라, 다시 생각하기 위해 이곳에 머물렀다.
초정약수는 달지 않은 물이다. 약간의 쓴맛과 함께 혀끝을 찌르는 탄산감이 특징인데, 이는 천연 탄산을 함유한 광천수의 성질 때문이다(환경부 '국내 광천수 성분 분석 자료'). 지역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이 물을 두고 “몸이 먼저 반응하는 물”이라고 표현해 왔다(청원군 구술사 자료).
미세한 기포가 계속 올라오는 이 물의 성질은, 이산화탄소가 자연적으로 용존된 광천수의 전형적 특징이다(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역에서는 이 기포를 두고 “물이 살아 있다”고 말했다. 세종이 이 물을 마시며 말을 천천히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이유도, 이런 감각적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물론 이는 설화의 영역이지만, 초정약수가 ‘약효 있는 물’로 인식돼 왔다는 지역 기억을 보여준다.
훈민정음은 집현전 학자들의 치밀한 연구와 실험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그 연구를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었던 조건은 임금의 정신적·신체적 회복이었다. 세종은 눈병이 깊어질수록 음운 체계와 발음 기관에 대한 관심을 더욱 깊게 가졌고, 이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제자해’와 ‘해례’ 부분에 구체적으로 반영돼 있다.
임금의 정신적·신체적 회복과 집현전 학자들 연구 결실
초정 체류 시기가 훈민정음 완성 단계와 겹친다는 점은 여러 연구에서도 지적돼 왔다(이기문, 1998). 지역 설화에 따르면 세종은 초정행궁에서 밤이 되면 등불을 낮추고, 새 글자를 소리 내지 않고 입안에서 굴리며 시험했다고 전해진다. 이는 발음을 크게 내기보다 혀와 입안의 움직임으로 소리를 점검했다는 상징적 서사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훈민정음은 발음 기관의 위치와 움직임을 체계적으로 반영한 문자로 평가된다(김민수, 2003).
세종의 안질 치료와 훈민정음 창제는 분리된 사건이 아니다. 세종은 눈이 아플수록 글자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꼈고, 이는 “백성이 말하고자 하나 글자가 없어 뜻을 펴지 못한다”는 '훈민정음' 서문의 문제의식으로 이어진다.
초정약수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유독 ‘혀’, ‘눈’, ‘숨’ 같은 신체 감각을 중심으로 전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훈민정음은 단순한 기호 체계가 아니라, 말하고 듣고 느끼는 인간의 신체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문자이기 때문이다(정광, 2010). 초정약수, 세종대왕, 훈민정음은 서로 다른 주제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방향을 향한다. 회복이다. 상한 몸의 회복, 흐트러진 정신의 회복, 막힌 말의 회복이다.
‘청주, 초정약수, 세종, 훈민정음’은 서로 연결돼
훈민정음특별시 운동이 인상적인 이유는 정치 구호가 아니라 시민의 언어로 시작됐다는 점이다. 추진위원회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장 후보들에게 사업계획서를 전달해 공약 채택을 건의할 방침이다. 시민이 먼저 방향을 제시하고, 정치가 이를 제도로 옮기기를 요청하는 방식이다.
추진위원회에는 신방웅 전 충북대 총장을 비롯해 김진식 충북대 국어교육과 명예교수, 안남영 전 HCN충북방송 대표 등 학계·언론계·지역사회 인사 28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정치인이 아니라, 언어와 지역, 교육과 공공성을 오래 고민해 온 사람들이다. 이미 청주시의회는 ‘청주시 훈민정음의 가치 보존 및 진흥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제도적 기반도 마련했다. 선언이 아니라 실행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다.
청주시는 오랫동안 세종대왕과 초정약수 축제를 열어 왔고, 소실됐던 초정행궁도 복원했다. 물과 기억, 공간과 서사는 이미 도시 안에 축적돼 있다. 이제 남은 것은 그것들을 하나의 이름으로 묶는 일이다.
훈민정음특별시는 행정 명칭이 아니다. 도시가 자신에게 부여하는 정체성의 선언이다. 초정약수는 몸을 회복시키는 물이었고, 훈민정음은 말의 존엄을 회복시키는 문자였다.
초정약수는 지금도 조용히 말한다. 글자는 종이보다 먼저, 사람의 숨에서 시작된다고. 한겨울 들판에 부는 된바람처럼, 이 시민운동 역시 처음엔 차갑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그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잡초가 눕고, 씨앗이 드러난다.
나는 이 바람이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청주가 언젠가 당당히 ‘훈민정음특별시’라는 이름을 갖게 되기를 기대한다. 그 이름은 과거의 영광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움직이는 글자의 정신을 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