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평 - 새로운 서평] 글쓰기를 철학하다 ·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外

- [비평연대] 서민서·최상현·김재훈·김성신의 500자 서평

2026-01-02     김리선 기자

젊은 문화비평가와 출판전문가들의 커뮤니티인 '비평연대'에서는 숏폼콘텐츠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500자 내외의 '매우 짧은 연대 서평'의 형식을 고안했습니다. 2030세대 지식인 특유의 빛나는 감각으로 제시되는 다양한 책들을 통해 지식의 최전선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편집자주]

■ 글쓰기를 철학하다 (이남훈, 지음미디어, 2026)

출판업을 하게 된,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은 이유를 자꾸만 생각해 본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니까, 카페 창가 좌석에 앉아 멍하니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수첩에 두서없는 낙서를 끄적이는 게 취미니까. 그런데 자꾸 의문이 든다. 취미를 꼭 업으로 삼아야 할까? 좋아하는 노래를 알람으로 설정하면 맹렬히 싫어하게 되듯이, 취미는 취미로 남겼을 때 즐거운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계속 이 일을 하고 싶은 이유는 ‘통합’에 대한 욕구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꼬질한 수첩에 휘갈기는 글들은 단편적이다. 때로는 한 문장에도 가닿지 못하고 단어로 나부끼기도 한다. 이 책의 작가는 자신의 글을 통합하는 실을 철학에서 찾았다. 글쓰기의 철학. 글은 철학이라는 실이 있을 때 구슬에서 목걸이로 꿰어진다. 전업 작가가 자신만의 글쓰기론을 쓴 책들은 많다. 이 책의 독특한 점은 자신의 글쓰기론을 여러 앞선 철학자들의 사유와 엮은 것이다. ‘글은 이래야지, 저래야지’ 하는 여러 개인적 주장들을 읽는 것도 나름 즐거운 일이지만, 나처럼 철학에 대한 얕은 관심과 동경이 있는 사람은 다양한 철학자들의 글쓰기론이 항상 궁금하다. 기존의 철학과 자신만의 글쓰기 철학을 엮어낸 작가의 지식과 재치가 돋보이는 책이다.

책의 차례는 글을 쓰면서 만나게 되는 단어로부터 시작한다. 혹은 삶을 사는 모든 사람이 한 번쯤은 자신만의 정의를 내려봐야 하는 단어라고도 할 수 있다. 책의 서문에서 작가가 말했듯이 작가의 철학이 정답은 아닐 테니, 새해를 맞이하며 나만의 철학적 정의를 내려보는 것도 좋겠다. 철학이라는 것이 사실은 거창하지 않으며, 그저 무언가에 대해 깊이 사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기에. 그러다 보면 나만의 철학이 생기고, 그 철학을 따라 글을 엮고 쓰게 되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일 거다.(서민서 / 출판편집자·비평연대)

서민서

■ 낯선 이를 알아보기 (이사벨라 함마드, 강동혁 옮김, 민음사, 2025)

이스라엘의 침략으로부터 팔레스타인은 언제나 예측할 수 없는 순간의 연속이다. 불과 몇 분 전, 머물던 건물이 미사일 폭격에 무너지고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이 목숨을 잃는다. 이스라엘이 휴전 선언을 했음에도 조약을 어기고 살상을 저지른다.

이 책의 저자는 비극적인 역사의 중심에서 소설을 비롯한 문학의 효용성은 무엇인가 질문을 던진다. 세상에 알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들을 서사로 담아 독자들에게 전하는 소설을 ‘아나그노리시스(재인지)’ 라는 개념을 가지고 설명한다.

그에게 소설은 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것들에 대한 깨달음을 전달하는 방식(30p)이자, 지식이 닿을 수 없는 한계를 노출(52p)하고 낯선 대상에 대한 오류를 깨닫게 함으로써 자신에게 다가오는 세상의 타자성을 경험하게 한다.

'책 후기: 가자에 대하여'는 불의에 꺾이지 않고 전 세계 어디에서든 독립을 외치는 팔레스타인 사람을 비추고 비극은 진행형임을 고발한다. 하지만 ‘전쟁도 결국엔 멈출 것이고 우리의 집을 다시 짓겠다’라는 기자의 호소를 통해 문학의 역할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도구임을 증언한다.(최상현 / 출판평론가·비평연대)

최상현<br>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마쓰이에 마사시, 비채, 2016)

나는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체질적으로 몸에 열이 많은 탓인지 여름이 오면 숨이 막히고, 밖으로 나가는 일조차 버거워진다. 그래서 무더운 여름보다는 차디찬 겨울을 선호해왔다. 그런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여름이라는 계절을 다시 생각하게 될 줄은 몰랐다.

책은 4학년 사카니시가 건축가 무라이 슌스케의 사무소에 인턴으로 들어가 국립현대도서관 설계 경합 대회를 준비하던 시절의 여름을 회상하는 이야기다. 특이하게도 설계는 사무실이 아닌, 건축가의 별장에서 이루어진다. 도시는 멀어지고, 숲과 여름의 시간 속에서 설계는 조금 다른 속도로 진행된다. 이야기는 경합 대회를 향해 나아가지만, 그 과정에서 중심에 놓이는 것은 결과보다 여름이라는 시간 그 자체다.

책 속에서 건축은 끊임없이 다른 이야기들과 엮인다. 건축과 역사, 음식과 식물, 사람과 사랑이 여름날 숲길처럼 유연하게 이어진다. 서두르지 않고 결론을 재촉하지도 않는다. 사카니시의 여름은 어떤 선택도 아직 확정되지 않은 시간, 미완의 상태로 남아 있는 계절이다. 그래서 이 여름은 끝났음에도 오래 그곳에 머문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회상한다.

지난 여름들, 나는 많은 삶의 즐거움을 미뤄두고 살아왔다. 밤을 새우고, 생각해야 할 것들에 매달리며 다른 사람들처럼 여름을 보내기란 쉽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며 사카니시의 여름 위에 나의 지난 시간들을 겹쳐봤다. 여름이 덥기만 해서 피하고 싶던 계절이 아니라, 사실은 제대로 바라보지 않았던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덮고 나서 나는 여름을 좋아하게 된 것은 아니다. 이번 여름이 유독 힘들었기에 더더욱. 다만 여름이 지닌 주변의 모습, 그 계절에만 드러나는 삶의 결에 조금 더 눈을 두기로 했다. 어쩌면 여름은 선택하지 않았기에, 완성되지 않았기에 나에게도 오래 남는 시간인지도 모른다.(김재훈/ 건축·문화·비평연대)

김재훈<br>

■ 그들 곁으로 (임회숙, 산지니, 2025)

임회숙의 소설에서 '연대 solidarity'는 특별한 이름을 가지지 않는다. 앞에 나서지 않고, 조직되지도 않는다. 대신 일상 속에서 타인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태도로 드러난다. 아이를 대신 돌보겠다는 말, 방안으로 빛이 들어야 한다는 고집, 오래 묻어두었던 기억을 다시 호출하는 선택 같은 것들이다. 이 행위들은 삶을 구원하지 못한다. 물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인물들을 완전히 고립된 상태로 남겨두지 않는다.

200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소설가 임회숙은 그동안 결핍과 고립의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을 꾸준히 호출하며, 일상의 균열이 만들어내는 관계의 윤리를 섬세하게 탐색해 왔다.

새로 출간한 이 소설집 속 인물들 역시 서로를 끝내 이해하지 못한다. 오해는 남고, 관계의 공백도 지워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곁에 머무르겠다는 선택은 삶의 속도를 초고속카메라처럼 늦춘다. 무너짐을 막지는 못해도, 생의 방향을 최소한으로 틀어 놓는다. 임회숙의 서사는 지극히 예민하고 섬세하게 이 미세하게 틀어진 틈의 안으로 들어간다.

'그들 곁으로'는 이런 미시적인 전환과 변화를 조금도 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것이야말로 불안정한 삶이 스스로를 지탱하는 현실임을 담담하게 확인한다. 임회숙 리얼리즘이다.(김성신 / 출판평론가·비평연대 가디언즈)

김성신<b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