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수 화가의 페인팅 북 리뷰] (12) ‘휴식으로 탄생하는 영웅’
- 유수현·정미연 공저 '생로병사 삼국지'
책 한 권에 담긴 활자들이 천지수의 몸과 기억과 희망을 만나 씨앗으로 응결되면, 화가는 그 작은 것을 캔버스에 심고 붓과 물감으로 키워내 한 폭의 그림으로 완성한다. 독서를 통해 창조적 영감을 얻는 실험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책 읽는 천지수 화가의 ‘페인팅 북리뷰'는 그 대답 중 하나다. 열 두번째 책은 '생로병사 삼국지'(유수현·정미연 지음/에이도스)이다.
인터뷰365 천지수 칼럼니스트(/화가·서평가) = ’몸을 굽혀 온 힘을 다할지니, 죽은 후에나 그치겠다‘
제갈량의 '후출사표(後出師表)'에 나오는“국궁진췌 사이후이(鞠躬盡瘁 死而後已)”라는 구절의 뜻이다. 몸이 망가질 정도로, 죽을 때까지 달리고 또 달린 제갈량의 삶을 제대로 표현한 것으로 제갈량의 사망원인을 ’과로사‘로 추정한다.
의사이자 작가인 유수연과 자타 공인 삼국지 애호가이자, 웹 소설 작가로 활동하는 정미현 작가가 공동 집필한 '생로병사 삼국지'는 오래된 영웅들의 질병과 죽음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역사의 기록을 바탕으로 의학이라는 렌즈를 통해서다. 영웅이나 현자들도 결국 우리와 같은 한 인간이다. 삼국지를 전쟁과 계략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과 질병, 그리고 삶과 죽음의 이야기로 접근한 관점이 매우 신선하고 흥미롭다.
’삼국지를 세 번 읽은 사람과는 상대하지 마라‘라는 말이 있다. 삼국지에는 시대를 관통하는 인간의 지혜와 처세, 전략, 심리 등을 들여다볼 수 있고, 다양한 삶의 의미를 배울 수 있는 고전이다. 그만큼 유명하고, 인기가 높은 명불허전의 역사서다. 삼국지를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유비, 관우, 장비, 제갈량 등의 인물들은 애니메이션이나 동화책으로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나는 그중에서도 ’제갈량‘은 천재적인 전략가이며, 신선의 이미지를 가진 영웅으로 죽음과는 상관없는 존재처럼 느끼기도했다.
제갈량은 사망 전 전장에서 백일 가까이 과로했다. 일찍 일어나 늦게 잠자리에 들고, 숙면을 취하지도 못했다. 운동을 한다거나 햇볕을 충분히 쬐는 등의 일도 드물었고, 업무량은 회사로 치면 CEO 이면서도 인사, 기획, 재무, 감사, 개발 기타 등등에 모두 직접 관여하고 검토하는 방식이었다. 그의 일상은 바쁘게 사는 현대인의 모습과 놀랄 만큼 닮아있다. 제갈량이 촉한의 발전을 위해‘과로사’까지 갈 정도의 심신상태로 버텼다면, 현대인들은 승진이나, 더 좋은 직장, 높은 연봉 등등의 이유가 생체리듬의 균형을 깨뜨리는 것일 것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더 낫다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그림을 그리다 보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릴 때가 많다. 몰입하는 동안 고통을 호소하는 육체의 신호를 신경 쓰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육체의 피로가 쌓이며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후로는 알람을 설정해놓고 작업을 한다. 알람이 울리면 그리기를 멈추고, 멀리 앉아서 그림을 한참 동안 바라본다. 휴식하며 멈추어 쉬는 시간 동안 에너지가 채워지면서 그림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피곤한 몸은 피곤한 생각을 낳기도 한다. 제갈량에게 휴식의 시간만 충분했어도,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그림을 그리다가 멈추어 멀리서 보듯이, 우리의 삶의 그림에도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그림에 바위에 걸터앉아 쉬는 소년이 있다. 숲속을 오랫동안 걷다가 넓은 바위를 보면 참 반갑다. 바위는 수백만에서 수천만 년의 세월 동안 침식과 풍화작용 등 인간의 생로병사 같은 자연현상을 반복하며 겪어왔다. 인간의 수명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긴 시간을 축적한 바위는 그렇게 급하게, 쉬지도 않고 갈 필요가 없다는 듯 우리에게 묵직한 등을 내어 휴식하라고 말하는 것 같다.
'생로병사 삼국지'를 통해 알게 된 고대 영웅들의 병과 죽음을 보면서, ‘영웅’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지키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인간의‘생로병사’의 마지막 단계이자 영원한 휴식인‘죽음’을 잘 맞이하려면, 살아있을 때 ‘휴식’이라는 훈련을 능숙하게 해야 한다. 누군가를 잘 지켜주고, 보살피는 영웅이 되고 싶다면, 내 삶에 휴식이라는 쉼표를 자주 찍어주자. 현대판 영웅의 시작은 그렇게 탄생되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