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 시인의 좋은 시 365] 휘민 시인의 ‘장독대에 내리는 저녁’

2025-12-30     김지수 칼럼니스트

시는 인간 마음속 심상(心像)에서 피어나는 혼불과도 같습니다. 깊은 사유의 내면에서 길어 올린, 짧지만 응축된 언어문학의 보석과도 같은 시의 세계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좋은 시와 함께 조용하지만 반짝이는 하루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장독대에 내리는 저녁 / 휘민

한 아이가 있었네 
숨바꼭질을 하면 언제나 
술래가 가장 늦게 찾는 아이

몰래 숨어든 집
장독대에서
간장 항아리에 들어온 
꼭지 푸른 오이처럼 
해묵은 기억을 엿듣던 아이

세월은 이제

하나 둘 잊혀진 이름들을 부르며 
내 앞의 어둠을 앞질러 가고 
어머니처럼 둥근 항아리는 내게 말하네 
얘야, 이제 그만 일어나렴 
너는 너무 오랫동안 숨어 있었단다

- ‘생일 꽃바구니’ (서정시학, 2006)

휘민시인은 200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11년에는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당선되며 시와 아동문학을 아우르는 창작의 폭을 넓혔습니다. 시집 ‘생일 꽃바구니’, ‘온전히 나일 수도 당신일 수도’, ‘중력을 달래는 사람’을 펴냈으며, 동시집 ‘기린을 만났어’, 동화집 ‘할머니는 축구 선수’, 그림책 ‘라 벨라 치따’ 등
여러 장르에 걸쳐 따뜻한 감성을 담은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해 왔습니다.

세 번째 시집 ‘중력을 달래는 사람’이 제17회 미네르바문학상 선정작으로 뽑히며, 슬픔을 시의 중요한 소재로 삼아 삶을 조용히 위로하는 시 세계를 다시 한 번 보여주었습니다. 

현재 미당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숭실사이버대학교에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시적 서정과 동심의 정서를 함께 품은 작가로서, ‘시힘’ 동인 활동을 통해 동료 시인들과의 교류도 이어가면서 시가 일상의 언어로 사람 곁에 머물 수 있도록 꾸준히 시의 자리를 넓혀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