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평 - 새로운 서평]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 · 에세이즘 外

- [비평연대]윤인혁·강민지·설명문·최여정의 500자 서평

2025-12-26     김리선 기자

젊은 문화비평가와 출판전문가들의 커뮤니티인 '비평연대'에서는 숏폼콘텐츠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500자 내외의 '매우 짧은 연대 서평'의 형식을 고안했습니다. 2030세대 지식인 특유의 빛나는 감각으로 제시되는 다양한 책들을 통해 지식의 최전선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편집자주]

■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젊은역사학자모임 지음, 역사비평사, 2017)

편식은 왜 나쁠까? 유치한 질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자답하자면 성장과 건강 유지를 위한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기 위함이다.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 비타민, 마그네슘 등등 극소량이라도 몸에 필요한 영양분을 충분히 흡수하기 위해 편식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독서로 그러하다. 아니 세상의 모든 일이 그러하다. 무엇이든 다양하게 보고 듣고 먹지 않으면 몸과 마음, 정신과 생각이 편벽(偏僻)해지기 마련이다.

편벽도 충분히 장점이 될 수 있다. 수학에 빠져들어 세계적인 수학자가 되거나, 피아노에 빠져들어 쇼팽 콩쿠르에서 상을 거머쥘 수 있다. 그러나 사이비(似而非), 즉 ‘비슷하나 다른 것’을 탐닉하는 편벽은 병이다. ‘정(正)’이 아닌 ‘사(邪)’를 취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그리고 사회를 병들게 한다.

‘사’를 취하고자 하는 마음과 태도는 온전히 욕망에서 나온다. 연구와 학술에 있어서 가장 하지 말아야 할 위서를 탐독하고 절실히 믿으며, 정사(正史)와 실증(實證)을 사특한 것으로 모는 이들의 욕망도 다르지 않다.

식민 지배의 주체가 아니라 자국의 역사를 비하하고, 제국주의의 정신을 고대사에 투영하는 사특함. 그것은 식민사학을 뛰어넘는 것이 아닌, 그 정신을 고대사에 투영해 존재하지 않는 위대한 과거로 회귀하고자 하는 부질없는 욕망이다. 실재를 마주할 용기 없이 거짓의 달콤함을 믿고자 하는 그 욕망 말이다.

사이비가 판을 치는 요즘, 그 욕망에 굴복하는 것이 아닌 진실을 마주하고 인정하는 용기, 사특한 것을 인식할 수 있는 정견(正見)을 절실히 바랄 뿐이다.(윤인혁 / 문화예술평론가·공연기획자·비평연대)

윤인혁<br>

■ 모임의 기술(서준원, 김소연 지음, 리드앤두, 2025)

사람을 모으는 법이 아니라, 모임을 지속하는 법에 대하여

'모임의 기술'은 모임을 “어떻게 재미있게 만들 것인가”를 넘어, 왜 모임을 만들고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두 작가의 끊임없는 고민이 담긴 책이다. 단발성 이벤트가 아닌, 하나의 커뮤니티로서 모임을 운영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기준과 구조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모임을 '힙'하게 운영하고자 한다면 꼭 읽어봐라고 추천하고싶은 책이다.

이 책은 클럽장과 기획자의 시선에서 모임의 전 과정을 촘촘히 짚는다. 왜 이 모임을 만드는지, 누구를 위한 모임인지, 어떤 콘텐츠를 제공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운영하고 지속할 것인지까지—모임을 둘러싼 결정의 지점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사람을 많이 모으는 방법’보다 모임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 필요한 장치들에 초점을 맞춘 점이 이 책이 가진 매력이다.

읽으며 가장 크게 와닿았던 메시지는 결국 꾸준함이었다. 모임을 시작할 때는 누구나 흥미로운 기획과 신선한 콘텐츠로 사람들을 모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열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감각적인 아이디어만으로는 부족하다. 책은 지속 가능한 모임을 위해 정형화된 운영 틀과, 우리만의 명확한 포인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는 모임을 ‘취미’가 아니라 ‘운영’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만든다.(강민지 / 문화평론가·프롬레코드대표·비평연대)

강민지<br>

삶은 도서관(인자 지음, 싱긋, 2025)

건축 설계 일을 하다 보면 참 많은 도서관을 접하게 된다. 바다 건너 이국 땅의 유명 도서관부터 읍내 작은 도서관까지. 종이 위, 모니터 속에서 각기 다른 평면, 단면, 스케치로 도서관을 만나곤 한다. 도면을 찬찬히 읽고 있을 때, 혹은 A3 트레싱지 위에 선들을 하나씩 그어가며, 전지적인 시점으로 그 모든 공간의 행위들을 그려본다. 벽과 기둥, 책장의 모양과 배열, 한 뼘의 공간일지라도 그 모든 곳(것)에 의도가 담긴다.

도서관 노동자인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건축가의 의도가 담지 못하는 더 내밀하고, 더 인간적인 향취였다. 어떤 건축가가 도서관에서 방귀를 뀌는 사람 때문에 벌어지는 웃픈 에피소드를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 많은 도면을 읽고, 답사하고, 공간을 설계하면서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수많은 ‘C컷’들이 있었다. 재미있고 유쾌하지만, 건축가로서 마냥 웃어넘길 수 없는 것들이다.

지금까지 그려왔던 수많은 선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의도를 떠올렸다. 도서관 다운 도서관, 감동을 주는 공간. 그곳에 작은 C컷들을 떠올리는 순간 의도와 배열은 이내 아름답게 헝클어졌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뜨거운 들숨과 날숨으로 가득 찬 그곳은, 늘 도면 바깥보다 온도가 높을 것 같다.(설명문 / 건축 및 공간디자이너·문화평론가·비평연대)

설명문

■ 에세이즘(브라이언 딜런 지음, 김정아 옮김, 카라칼, 2023)

글이 도무지 쓰여지지 않는다. 그 글이라 함은 정확하게 ‘에세이’다. 오랫동안 연재 해오던 기명 에세이 기고도 그만두었다. 노력하고 시도하고 시험하는 글, 에세이, 지난 2년여간 논문을 붙잡고 있자니 어쩐지 세상 모든 일에, 사물에, 사람에게 활짝 열려 있던 나의 모든 감각이 시험하는 것을 멈춘 것 같았다. 학술적 글쓰기와 에세이 사이, 그 어딘가에서 방황하는 나날들을 보냈다. 그 간극이 어찌나 크던지 마치 전기 스위치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전환 앞에 그 어느쪽도 누르기를 멈추었다. 그러다가 이 책, 브라이언 딜런의 '에세이즘'을 집어 들었다. 그것은 마치 계시와도 같은 이끌림이었다.

다시 근원적인 질문, 딜런이 말하는 에세이란 무엇인가. “미숙한 글이나 못 쓴 글은 특히나 끔찍할 정도로 일관적이다. 그러나 에세이에서의 실력은 다중화하는 것, 무한히 파열시키는 것, 상충하는 힘들을 교차시켜 상충하는 구심점들을 끝없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조이스 캐럴 오츠, 올리비아 랭, 존 밴빌 등 내가 칭송하고 숭앙하는 작가들이 손에 꼽는 작가. 책의 마지막 장을 향해 가며 이 책 안에 내 방황의 끝이 담겨 있으리라는 기대는 서서히 지워졌다. 글을 쓰는 사람은 결국 나이니까. 그럼에도 이 책안에는 에세이를 써야하는, 혹은 쓰고 싶어하는 작가들을 위로하고 다독이며 이끄는 말들로 가득하다, 가령 이런 글들. “나는 내 파탄이 머지 않았음을 확실히 알면서 이 편린들을 집필 해왔고 이것이 내가 지금껏 마련한 전부다”

그렇다. 세상 모든 글쓰는 이들은 자신의 파탄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좋은 에세이 한편을 다시 쓰고 싶은 용기를 내 본다. 무한히 파열시켜라.(최여정 / 작가·문화평론가·비평연대)

최여정<b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