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하영 365칼럼] 선택할 수 없는 결핍과 능력, 운명의 잔혹함...연극 '아마데우스'

[앨리스 박사의 문화로 보는 세상풍경] - 1979년 영국 극작가 피터 쉐퍼 창작 살리에리와 모차르트 이야기 - 아카데미상 8개 부문 휩쓴 1984년 영화 '아마데우스' 원작 - 2018년 한국 초연 이후 4번째 재연 성료

2025-11-29     주하영 칼럼니스트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천재성과 재능은 다른 것일까? 비트 세대(Beat Generation)의 선구자로 불리는 미국 작가 잭 케루악은 천재성과 재능을 혼동하는 것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천재는 창조하고, 재능은 전달한다”라고 말했다.

천재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genius(지니어스)’는 “낳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gignere(기그네레)’에서 유래했음을 강조하는 케루악은, 천재란 기이함이나 재능의 과도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무언가를 창조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1962년 ‘작가 다이제스트’에 실린 케루악의 에세이가 제기한 논란은 독일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가 1819년, 자신의 저서에서 깊이 다룬 질문이기도 했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쇼펜하우어는 ‘재능’이 타인이 이루지 못하는 것을 성취하도록 만든다면, ‘천재’는 타인이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것을 이룬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설명했다.

어린시절부터

평범한 인간과 천재의 차이는 ‘차원이 다른 비전’과 ‘순수한 관조’에서 시작됨을 강조한 쇼펜하우어는, “천재성이 순수한 지각 상태에 머무르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결핍에서 비롯된 충동이나 존재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된 ‘의지’가 자신의 이익, 소망, 목적에서 벗어나, 일시적으로 인격을 완전히 포기한 채 “순수한 인식 주체의 맑은 시야로 세계를 담아내는 힘”, 그것이 천재성이라고 말한 쇼펜하우어는, 그러한 “비범함의 저주”는 결코 평범한 세상에 속할 수 없는 평생의 ‘고독함’에 자리한다고 덧붙였다.

1979년, 영국 극작가 피터 쉐퍼(Peter Shaffer)는 18세기 궁정음악가 안토니오 살리에리가 천재 음악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를 질투해 독살했다는 소문에서 영감을 받아 창작한 연극 '아마데우스(Amadeus)'를 초연했다.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마술피리', '코지 판 투테' 등 모차르트의 굵직한 오페라들을 다수 연출한 피터 홀이 영국 국립극장에서 선보인 연극 '아마데우스'는 이브닝 스탠더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고, 이듬해 브로드웨이에 진출해 토니상 5개 부문 수상과 총 1,181회 공연이라는 기록을 거두었다.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로 1975년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감독 밀로스 포먼은 영국 초연 당시, 1막이 끝난 뒤 인터미션 동안 작가인 쉐퍼에게 다가가 영화로 제작하고 싶다는 제안을 했다.

5년 후인 1984년, 쉐퍼가 직접 스크린 대본을 쓴 영화 '아마데우스'가 개봉되었고, 각색상을 포함해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아카데미상 8개 부문을 휩쓸었다.

2018년에

영화 40주년을 맞은 2025년, 최신 기술의 음질과 4K 초고화질로 복원된 ‘북미 오리지널 리마스터링 영화 버전’이 재개봉되었고, 2018년에 공식 한국 초연을 선보였던 연극 '아마데우스'는 4번째 재공연을 펼쳐 보였다.

한국 초연 당시 평균 객석 점유율 96%를 기록하며 관객의 사랑을 받았던 연극 '아마데우스'는 4연째임에도 가을 시즌 NOL 티켓 연극 부문 1위에 오르며,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했다.

연극 '아마데우스'는 자신의 재능이 ‘평범(mediocrity)’한 것임을 깨달은 한 인간이 느끼는 좌절과 신을 향한 분노, 천재성을 향한 시기, 타인뿐 아니라 자신을 몰락시키는 질투심의 파괴적 속성에 대한 탐구를 목표로 하면서도, 관객에게 볼거리를 선물하는 ‘엔터테인먼트’를 간과하지 않은 작품으로 평가되어 왔다.

극적인 전개와 주인공의 감정적 고조를 특징으로 하는 ‘통속적인 드라마(멜로드라마)’를 따르는 연극 '아마데우스'는, 18세기 계몽주의 시대를 느끼게 하는 고전적인 의상과 모차르트의 아름다운 음악 및 오페라가 다채롭게 청각을 매료시키는 뮤지컬적인 특징을 십분 활용한다.

작가인 레이 모튼(Ray Morton)에 따르면, 쉐퍼는 영상의 화려함으로 인해 영화관을 더 많이 찾는 관객들을 연극으로 이끌기 위해, 작품의 주제가 아무리 무겁다 할지라도 오락적 속성을 잊지 않고 반영할 필요를 강조했다고 한다.

소나타와 협주곡, 교향곡, 오페라, 진혼미사곡을 아우르는 모차르트의 음악이 수십 곡 넘게 적용되는 '아마데우스'의 스펙터클은 관객을 끄는 큰 요인이 되었다.

모차르트의

2016년 쉐퍼의 타계를 기리며 영국 국립극장에서 재연된 프로덕션의 연출을 맡았던 마이클 롱허스트(Michael Longhurst)는, 무대 위에 6명의 오페라 가수와 20명으로 구성된 라이브 오케스트라를 배치하고 유연하게 배우들과 어우러지는 화려한 무대를 선보여, ‘전 회차 전석 매진’이라는 흥행을 이루기도 했다.

마크 로슨(Mark Lawson)은 “연극 '아마데우스'야말로 연극이 도달할 수 있는 말로 하는 오페라에 가장 가까운 작품”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는데, 쉐퍼가 서사 구조에 음악적 요소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우스코스트 레퍼토리 극장의 문학 자문인 앤디 나이트(Andy Knight)는, “살리에리”를 외치는 작은 속삭임들이 “사납게 극장을 가득 채우면서” 시작되는 연극의 방식이 일종의 ‘서곡(Overture)’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앙상블 배우들이 특정 단어를 속삭이거나 크게 외치면서 합창처럼 일종의 화음을 이루고, 극의 음산하고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긴장감을 부여하는 “작은 바람들(Venticelli)”은, 전체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소재를 암시하는 음악의 서곡처럼 기능한다.

연극

흩날리는 낙엽들처럼 떠도는 소문이나 정보를 알려주고 퍼뜨리는 역할을 하는 두 명의 ‘작은 바람들’은 프로덕션마다 다양하게 무대에 구현되는데, 국내 공연의 경우, 6명의 앙상블 배우들과 2명의 스윙 배우들을 통해 풍성하고 다채로운 무대를 만든 특징이 있다.

움직임 안무를 통해 시각적 환상의 느낌과 기괴함, 유머, 역동성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회상 구조의 시간적 변화를 관객이 인지하기 쉽게 할 뿐 아니라, 고대 그리스극의 ‘코러스’처럼 인물을 둘러싼 사회의 시선을 반영하고 극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느낌을 부여한다.

주로 ‘작은 바람들’은 살리에리가 원하는 모차르트에 관한 정보를 들려주거나 살리에리가 조작해 퍼뜨리고자 하는 소문들의 주체가 되기 때문에, 모차르트를 파멸로 이끄는 살리에리의 ‘음모’가 어떻게 적용되는지, 살리에리의 주장에 대한 주변의 인식이 어떠한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게 된다.

신의 규율에 따라 금욕과 절제, 헌신과 봉사, 미덕에 이르는 길을 실천하며 음악으로서 최고의 찬사를 받기를, 영원히 칭송받기를 꿈꿔왔으나, 어린 시절부터 유럽을 순회하며 ‘신동’으로 명성을 떨쳐 온 프리랜서 음악가 모차르트의 ‘천재성’과 ‘천박함’, ‘방탕함’을 마주하면서 부당함을 느끼고, 신에게 ‘전쟁’을 선포하는 살리에리의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모차르트의 음악을 사랑했던 쉐퍼는 모차르트의 죽음을 둘러싼 여러 추측을 살펴보던 가운데, 맹렬하게 쏟아진 뇌우로 인해 그의 장례식에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하지만 직접 1791년 장례식 당일에 빈의 기상 기록을 살펴본 결과, 날씨가 상당히 온화했음을 발견하게 되면서, 모차르트가 독살당했다는 의혹이 퍼져나가는 것을 잠재우기 위한 어떤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모차르트를

35세의 젊은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난 모차르트의 사망 원인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과, 당시 빈의 매장 방식이 유해 위치를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점, 유작이 된 미완성 ‘레퀴엠(진혼곡)’이 미스터리한 누군가의 의뢰로 이루어졌고, 모차르트가 자신의 ‘레퀴엠’을 작곡하듯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다는 일화 등은 모차르트가 독살당했다는 소문과 함께, 그의 죽음을 둘러싼 많은 전설들을 만들어냈다.

쉐퍼는 살리에리가 사망한 1825년으로부터 5년 뒤인 1830년에 러시아 작가 알렉산드르 푸시킨이 모차르트의 ‘독살설’에 근거해 쓴 희곡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를 읽거나, 이를 바탕으로 한 1898년 림스키코르사코프의 동명 오페라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살리에리가 말년에 요양원에 있을 당시 모차르트를 죽였다는 고해성사를 했다는 글을 접한 상태에 있었다.

가난

모차르트의 죽음을 둘러싼 ‘음모’와 관련된 작품을 쓸 결심을 한 쉐퍼는 처음에 애거사 크리스티의 탐정 스릴러극의 형식으로 초고를 구상했지만, 곧 주인공을 중심으로 보다 효과적인 ‘멜로드라마’로의 변경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했다.

쉐퍼는, 재능을 가졌으나 신이 부여한 천재성을 넘어설 수 없는 인간으로서 ‘살리에리’와, 천재성을 부여받았지만 규범에 순응할 필요가 있는 사회에 온전히 적응할 수 없었던 인간인 ‘모차르트’를 대비시키며, ‘질투심’을 중심으로 실존적 위기와 자살 충동, 광기를 드러내고, 신의 정당함과 운명의 잔혹함, 천재성에 관한 질문을 던지기로 선택했다.

또, 음악가가 왕과 귀족, 교회에 예속된 ‘기술자’ 혹은 고용주에게 봉사해야 할 의무를 가진 ‘하인’처럼 여겨지던 시대에 ‘예술가’가 되고자 했던 모차르트가 시대를 앞선 사람이었음을, 그로 인해 살리에리와 같은 시대의 순응자들에게 상당한 위협과 불안으로 여겨졌음을 피력하고자 했다.

연극 '아마데우스'의 초연을 연출했던 홀은 1983년에 출간된 자신의 일기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모차르트가 혁명적인 예술가가 아니라 봉건적 세상의 사회적 혁명가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라고 설명하는데, 피라미드식 위계질서가 절대적인 세상에서 모차르트가 계급이 아닌 ‘고유한 천재성’을 갖춘 예술가로 존경받기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쉐퍼는 모차르트가 분명 신성을 갖춘 작곡가였음을 긍정하지만, 그가 남긴 사적인 편지들이나 일화에서 엿볼 수 있는 경솔함과 지나치게 경박한 단어들, 무신경한 행동들이 천상의 것처럼 느껴지는 아름다운 음악과 평행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극에서 모차르트의 아내인 콘스탄체가 말하듯, 모든 것을 순수한 어린아이의 눈으로 보는 모차르트이기에 창작할 수 있는 천상의 음악일지 모르지만, 무분별하게 여인들과 사랑을 나누고 방귀나 똥과 같은 단어로 언어유희를 즐기며, 자신의 천재성에 대한 확신으로 인해 다른 이의 재능을 한순간 초라하게 만드는 무신경한 태도는 살리에리가 신을 향해 ‘정당성’에 대한 의문을 쏟아내도록 만든다.

모차르트를

쉐퍼는 “덕을 갖춘 평범함과 경솔한 천재 사이의 갈등”이 상상력을 자극했음을 토로한다. 살리에리는 신의 축복을 받은 모차르트를 일종의 ‘전쟁터’처럼 여기며, 인간을 얕보고 조롱한 대가가 무엇인지 신에게 가르침을 주겠다고 외치며 분노한다.

살리에리가 신에게 가장 분노하는 부분은 사람들 대부분이 인식하지 못하는 ‘천재성’을 자신만이 판별하고 감상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영원히 평범한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음을 자신이 끝없이 인지하도록 했다는 점이다.

신을 ‘적’으로 선포하는 살리에리는 신의 음악을 창조하는 피조물인 모차르트를 ‘파괴’함으로써, 신의 선물이 영원히 대중에게 다가갈 수 없도록 만들겠다고 선포한다. 하지만, 모차르트가 사망한 지 32년이 지난 1823년 겨울, 음악가로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 명예와 권력을 손에 쥘 수 있었던 자신의 음악은 더 이상 연주되지 않지만, 모차르트의 음악은 모든 곳에 울려 퍼지고 있음과 마주하게 된다.

죽음을

연극 '아마데우스'는 73세가 된 살리에리가 휠체어에 앉은 채로 관객 앞에 나와 새벽 3시임을 알리며, “낡은 시계가 여섯 번 종을 울릴 때까지 자신의 고해를 들어줄 것”을 요청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관객을 “미래의 유령들”이라고 지칭하면서, 모차르트를 죽인 자신의 끔찍한 죄를 고백하겠다는 살리에리는 고해성사 후 자신 또한 죽음에 이를 것임을 예언한다.

실제로 ‘미래 세대’인 관객에게 들려주는 ‘살리에리와 모차르트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연극 '아마데우스'는, 73세의 살리에리가 과거로 돌아가 31세였던 1781년의 젊은 살리에리를 오가며 연기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과거를

관객은 모차르트의 이름을 딴 ‘아마데우스’라는 극에서 화자가 ‘살리에리’인 일종의 자기합리화 혹은 변명 같기도 한 이야기를 듣고 보면서 천재성과 평범함, 질투와 시기, 미덕과 관용, 권력과 예술, 그리고 욕망과 열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데우스(Amadeus)’가 “신에게 사랑받는 자”라는 뜻을 가졌음을 인지할 경우, 제목은 ‘신에게 사랑받지 못한 살리에리’를 강조함과 동시에 후세에,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존재가 되고자 했던 살리에리의 간절한 열망이 좌절되면서 표출된 분노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렀음을 암시하게 된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기록된 인류 최초의 살인이라 불리는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드는 ‘신의 사랑’은 신에 대한 불만과 편애에 대한 질투, 분노로 인해 모차르트를 파괴하는 살리에리라는 인물의 원형으로 작가인 쉐퍼가 ‘카인’을 적용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추위와

쉐퍼는 살리에리를 연민하는 듯하면서도 달콤한 디저트에 유달리 집착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여러 곳에 배치해 관객이 그를 바라보는 시선을 교묘히 조종하는데, 이는 모차르트의 앞길을 의도적으로 막으면서 친구인 척 다가서고, 명성과 지위만을 추구하는 살리에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쉐퍼는 살리에리가 “음악을 통해 영원한 절대적 미”를 추구하는 모습에서는 “순수함”이 느껴지지만, “영원한 명성”을 추구하는 모습에서는 “도저히 구제할 수 없는 불순한 무언가”를 보게 된다고 설명한다.

국내 공연의 경우, 살리에리의 달콤한 디저트를 향한 과도한 탐닉을 드러내는 장면들이 거의 삭제된 특징이 있는데, 이는 마지막 장면에서 살리에리가 자신을 “평범함의 사도”로 지칭하며, 평범한 자들의 죄를 모두 용서하겠다고 하는 것을 관객이 ‘동일시’하도록 유도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하지만, 원작은 살리에리에 대한 연민보다는 “평범함의 성인이자 수호자”라는 그의 주장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관객들이 확보할 수 있도록, 살리에리의 욕심 가득한 측면을 곳곳에 자주 등장시킨다.

연극 '아마데우스'는 초연에서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쉐퍼가 1998년 ‘최종 수정본’임을 공표할 때까지, 20년간 끝없이 수정이 계속된 작품이다.

장면마다 여러 버전을 쓰고 찢어버리기를 반복하면서 느리게 완성에 다가가는 극작 방식은, 쉐퍼가 복사본 없이 머릿속에 흐르는 선율들을 악보에 깔끔하게 담아냈던 모차르트보다는 끝없이 노력하며 고심하는 살리에리에 가까웠음을 인지하도록 만든다.

연극 '아마데우스'에 드러난 재능과 천재성, 아폴론적(Apollonian) 질서와 디오니소스적(Dionysian) 혼돈의 갈등은, “천재는 혜성처럼 행성의 궤도에 불쑥 나타나 자신의 시대를 비춘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의 전통과 혁신, 보수적 규율과 자유로운 창의성의 대립을 반영한다.

사실 연극 속 살리에리와 모차르트의 이야기는 천재성을 갖지는 못했지만 최고의 지위에 오를 수 있는 부와 명예가 허락되었던 이와, 천재성으로 인해 영원을 누리지만 기존의 질서 속에 편입되지 못한 채 가난 속에 허덕여야만 했던 이의 상반된 삶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공통점이 있다면, 두 사람 모두 완전히 모든 것을 성취하거나, 모든 것을 소유하지는 못했다는 점일 것이다. 인간에게는 늘 어떤 결핍이 자리하며, 주어진 것만큼 가질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 그리고 결핍과 능력은 인간이 결코 선택할 수 없는 영역이다. 모든 인간이 마주하게 되는 운명의 잔혹함은 바로 그 ‘선택할 수 없음’에 있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