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 시인의 시로 보는 세상 풍경] (41) 오늘, 우리의 시간은 거꾸로 흘렀다

2025-11-21     홍찬선 칼럼니스트
정재룡

인터뷰365 홍찬선 칼럼니스트 = 삶은 만남이다. 이미 많은 사람을 만났다며 새로운 사람 만나기를 꺼리는 사람은 삶의 많은 부분을 스스로 버리는 것이다. '오늘은 어떤 만남으로 삶이 넓어지고 깊어질까' 하는 설렘이 있어, 우리는 숱하게 밀려드는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 11월 19일 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열린 정재룡 작가의 장편소설 ‘그날, 우리의 시간은 거꾸로 흘렀다’의 북콘서트가 그랬다.

노동조합과 국가폭력에 맞선 영웅을 소개하다

정재룡

고승철 소설가가 북콘서트 토론자로 참석해달라고 부탁했을 때 처음엔 망설였다. 마이크 울렁증과 다중(多衆)공포증 때문만은 아니었다. 2016년부터 시를 짓고 2019년부터 소설을 쓰고 있지만, 아직 다른 작가의 작품에 관해 토론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냥 와서 덕담 한마디 하면 된다”는 말에 할 수 없이 승낙했다. 한국경제신문과 동아일보에서 함께 근무했던 선배 기자인데다, 오래전부터 소설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분의 정중한 권유를 더는 마다할 수 없었다.

정재룡

‘그날, 우리의 시간은 거꾸로 흘렀다’를 읽었다. 한 번 읽어서는 토론에서 무슨 얘기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 두 번 세 번 연달아 읽었다.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 우선 정재룡 작가의 에너지에 감탄했다. 정재룡(鄭在龍) 작가는 1946년 생으로 올해 팔순(八旬)이다. 게다가 소설 내용도 충격적이었다. 많은 사람이 금기시하는 노동조합과 국가기관의 ‘폭력’을 정식으로 거론하고, 개인의 기본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그런 폭력에 맞서 싸워 이긴 실제 인물(소설 속에서는 이경욱)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자칫하면 잊기 쉽고, 기억하고 있어도 애써 지우려고 하는 세태(世態)에서 정식으로 문제 제기하기 위해선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시간은 어제에서 오늘을 지나 모레로 흐르는 게 아니었다
세월은 모레와 오늘을 거처 어제로 거스르기도 하는 것이다

인생은 곡선이 아니라 곡선이듯
사람은 나이가 드는 게 아니라 먹는 것이듯 

희수(喜壽)는 시작이었고 산수(傘壽는 다리였다
간암을 이겨내는 엄청난 힘을 지닌 도깨비 방망이었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도 어쩔 수 없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동시 썼던 능력을 되살려
장편소설로 팔순잔치하며 환하게 웃는 모습에 
졌다고 되뇌며 손바닥이 아프게 박수를 보냈다

- 홍찬선, '오늘 우리의 시간은 거꾸로 흘렀다' 전문.

산수(傘壽)라고도 하는 여든 살에, 중장년 때 겪었던 사실에 기반을 두고 상상력의 나래를 펴 장편소설을 쓰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정 작가는 묵묵하게 2년 동안 그 일을 했다. 77세인 희수(喜壽)를 맞아 첫 장편연애소설 ‘오로라와 춤을’을 출간한 뒤의 일이다. 젊은이들도 하기 힘든 작업을 정열적으로 한 데는 특별한 ‘사명감’이 있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서울법대를 함께 다닌 60여년 지기(知己), 백윤수 교수는 축사에서 “정재룡 작가는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호연지기(浩然之氣)로 현실을 정직하게 보는 용기있는 시선을 보여줬다”며 “정 작가는 기획재정부 차관보를 지낸 ‘공직자 출신의 소설가’가 아니라 그냥 ‘소설가’”라고 축하했다.

정재룡

‘그날, 우리의 시간은 거꾸로 흘렀다’의 주인공 이경욱의 실제모델인 이순철(1946~)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는 “노동조합으로부터 상상할 수도 없는 모욕과 폭력을 당했는데도 경영진은 노동조합의 눈치를 보는 행태를 보고 그냥 물러설 수 없었다”며 “노조를 상대로 형사와 민사소송을 제기해 승소했지만, 여러분들은 절대 소송사건에 휘말리지 말라”고 당부했다. ‘상처뿐인 승리’를 얻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지를 ‘말 없는 말’로 전해주었다.

희수와 산수에 장편소설, 그리고 시에도 도전

장편소설 ‘그날, 우리의 시간은 거꾸로 흘렀다’는 중간에 천상병(千祥炳, 1930~1993) 시인의 시 ‘나의 가난은’을 소개한다. 노동경제학을 연구하는 김완구 박사가 중산층들이 “유현목 감독의 영화 ‘오발탄’의 표제에 실려 있는, 붉은 글씨로 ‘일자리를 찾아요’나 ‘나는 실업자예요’라고 쓴 띠를 머리에 두르고 힘없는 눈초리로 전봇대 기둥에 기대어 서 있는 젊은이들의 절망적인 감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시인이자 기인이랄 수 있는 천상병 시인의 시에 나오는 ‘가난함’에 대한 시 구절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라며 '나의 가난은'을 읊는 대목이다.

천상병 시인은 1951년 서울대 상대 경제학과에 입학한 뒤 4학년 1학기 때 중퇴했다. 1967년 ‘동백림간첩사건’이 일어났을 때 서울 상대 동창이자 술친구였던 강빈구와 연루됐다며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고 정신이상증세를 보였다.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 잔 커피와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 있는 것은
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 천상병, '나의 가난은' 전문.

소설 속에 시를 소개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자칫 소설의 흐름을 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70대 중반에 간암 진단을 받고 수술 받으러 입원했을 때 ‘설국(雪國)’, ‘데미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을 다시 읽은 정 작가는 퇴원한 뒤 3년반 동안 첫 장편소설 ‘오로라와 춤을’을 출간했다. 2년 만에 ‘그날, 우리의 시간은 거꾸로 흘렀다’를 출간한 그는 ‘앞으로 시도 쓰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였다.

정 작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문예반에서 활동했는데 어버이날을 맞아 동시 한 편을 쓴 것이 전부”라며 “지금 당장 시를 쓰겠다는 것은 욕심이겠지만, 어느 날 그분이 오셔서 시를 던져주면 시도 쓸 생각”이라고 했다. 참으로 대단한 노익장(老益壯)이다.

프레스센터에 모인 팔순 청춘들

정재룡

이날 북토크에는 쟁쟁한 분들이 100여명이 모여 ‘팔순 청춘’을 뽐냈다. 김인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 권오승 전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손학규 전 경기도 지사와 박영선 전 중소기업부 장관 등이 참석해 팔순을 맞은 정재룡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 출간을 축하했다.

손학규 전 지사는 축배제의에서 ‘잠재용출만화창’이란 건배사로 정 작가의 대성을 기원했다. ‘잠재용출만화창’은 ‘숨겨 있던 재주가 샘처럼 솟아나 뭇 꽃들처럼 흐들어지라’는 뜻이다. 잠재용출(潛在湧出)은 정재룡 작가의 이름 ‘재룡(在龍)’과 음이 같은 것을 착안해서 만든 말이다. 정 작가의 장편소설 출간을 축하하기 위해 상당히 고심했음을 보여주는 건배사였다.

이날 북토크에는 인기가요 '세노야'를 작곡한 김광희 교수도 참석했다. 김광희 작곡가는 소설 속에서 김원구 부인으로, 실명으로 나온다. '세노야'는 1970년, 김민기(1951~2024)가 1970년 가을, “기독교 방송의 ‘꿈과 음악 사이’ 프로그램에서 고은(高銀)의 시에 작곡해 달라는 의뢰가 왔다며 써보라”고 해서 작곡한 곡이라고 한다.

세노야 세노야
산과 바다에 우리가 살고
산과 바다에 우리가 가네

세노야 세노야
기쁜 일이면 저 산에 주고
슬픈 일이면 님에게 주네

세노야 세노야
기쁜 일이면 바다에 주고
슬픈 일이면 내가 받네

세노야 세노야
산과 바다에 우리가 살고
산과 바다에 우리가 가네

- 고은 시, 김광희 작곡 '세노야' 전문.

백세시대라고 한다. 50~60세에 은퇴하면 40~50년을 일정한 직업 없이 살아야 한다. 그 많은 시간을 어떻게 지낼지가 고민이다. 정재룡 작가는 소설 쓰기에서 그 길을 찾았다. 초등학교 때 잠깐 싹트려 했던 ‘문학소년’의 끼를 60년이 넘어서 활짝 피우고 있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이날 참석한 ‘팔순 청년’들에게 묵직한 권유로 다가갔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