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 시인의 시로 보는 세상 풍경] (40) 둘째 딸 혼례 치르며 ‘함께 만드는 기적’을 생각하다

2025-11-17     홍찬선 칼럼니스트

인터뷰365 홍찬선 칼럼니스트 = 겨울을 앞둔 막바지 가을 날씨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랬고, 며칠 남지 않은 단풍은 마지막 아름다움을 뽐냈다. 수능이 끝난 뒤 3일인데도 바람도 불지 않고 따뜻했다. 그렇게 좋은 가을날, 둘째 딸이 좋은 인연을 만나 ‘새로운 기적’을 만들었다.

서른네 해 만에 또 찾아온 기적

신부

둘째 딸은 1992년 5월,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때 이 땅에 왔다. 새 생명이 파릇파릇 움트는 약동의 계절이었다. 아이가 우리에게 온다는 것은 ‘엄청난 기적’이다. 억겁의 인연이 쌓이고 쌓인 뒤에야 비로소 어버이와 아이로 맺어진다. 둘째가 태어났을 때, 노환에 시달리던 현비(顯妣)는 아쉬움에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내 팔자에 손자를 볼 수 있으랴~” 그때까지 손녀만 셋을 두고, 둘째가 엄마 뱃 속에 있을 때 손자일 거라고 확신한 뒤에 나온 실망이었다.

현비는 둘째 딸이 태어나고 난 뒤 40여일 지나고 돌아가셨다. 그 뒤 손자가 넷 태어났다. 손자를 보지 못한 한을, 죽음과 맞바꿨다는 얘기를 종종 하곤 했다. 그러는 가운데 세월은 물처럼 흘러 34년이나 지나갔다. 서른네 해 전에 찾아왔던 기적이 좋은 인연을 만나 새로운 기적을 만들었다. 기적을 만든 기쁨에 둘째 딸 결혼을 위한 축시를 지었다.

해와 달이 하루를 낳고
이슬에 사랑이 올올이 맺히듯

달이 해를 만나 바람이 일고
바람이 바람 되어 꿈을 이루듯

계절이 익어가는 길목에
사랑이 행복을 맞이합니다

봄과 가을이 여름과 겨울 되고
멋진 만남이 아름다운 인연 되듯

사랑이 새 생명을 피워내고
새 생명이 온누리 환히 밝히듯

서른네 해 전에 찾아온 기적이 
멋진 만남으로 새로운 기적을 만듭니다

- 홍찬선, '기적이 익어가는 계절' 전문.

기적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만드는 것

가족

둘째 딸의 결혼식을 치르면서 ‘기적은 함께하는 따뜻한 마음으로 만들어진다’는 진리를 새삼 깨달았다. 나 혼자서는 절대 이루지 못하는 게 기적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손을 잡고 힘을 모으면서 함께 만들어갈 수 있다. 여럿이서 함께 해서 기적을 만들어 차례로 만들어갈 수 있다. 혼자 할 수 없는 모내기와 벼 베기 같은 농사는 물론 관혼상제 같은 인륜지대사를, 서로 도와가면서 해낼 수 있게 된다. 따뜻한 마음이 기적을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다.

사람은 함께 사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 독불장군은 없는 것

천상천하유아독존은 
서로 나누는 사람이 있어 
따뜻한 빛을 비추는 것이었다

가슴이 울컥했다
이일 저일 모두 제쳐놓고 
기적을 축복하러 오신 분들의 환한 미소에
잠겨 있던 눈물이 샘솟듯 올라왔다

좋은 날 눈물을 보일 수 없어
밝은 웃음으로 인사했어도
가벼운 손짓으로 화답했어도

사람은 혼자가 아니라 늘 함께라서 
쌀쌀한 겨울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이었다

- 홍찬선, '따뜻한 마음' 전문.

필자는 머니투데이 편집국장과 상무를 끝으로 자유인이 되었다. 100세 시대를 맞아 시와 소설 등을 쓰는 작가로서의 제2인생을 살고자, 스스로 직장을 그만둔 자퇴(자발적 은퇴)였다. 2017년 7월1일부터 자유인이 되었으니, 어언 8년 4개월여를 ‘백수’로 지냈다.

백수로 지내면서 둘째 딸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약간은 걱정이 되었다. 하객(賀客)이 적으면 어떻게 하지? 딸과 사위와 시댁에 면목이 서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어오른 물가로 결혼비용이 적지 않고, 내집마련의 꿈을 꾸지 못해 결혼을 미루고, 결혼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는다던데…

서울시인협회

결혼식 날이 다가올수록 말하지 못할 고민이 쌓였다. 그렇다고 내색할 수도 없는 일. 그저 ‘잘 될 거야, 잘 될고 말고…’를 마음 속으로 주문처럼 외웠다. 결혼식 날, 그런 걱정은 기우(杞憂)였음을 알았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격언과 ‘하늘에서 도우니 길하고 이롭지 않은 게 없다’는 “자천우지길무불리(自天佑之吉無不利)”는 '주역(周易)'의 가르침이 참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수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지인(知人)들이 불원천리(不遠千里)하고 찾아와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었다. 그분들 덕분에 둘째 딸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결혼식을 행복하게 마칠 수 있었다. 바쁜 일정임에도 결혼식장을 찾아 축하해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그분들이 베풀어주신 고마움을 갚으며 또 다른 기적을 만드는 데 나의 손길을 더할 것임을 다짐한다.

둘째 딸이 한 가정의 장남을 만나
상서로움을 맺은 오늘은 
참으로 좋고 기쁘고 즐거운 날

딸과 사위는 
알콩달콩 함께 살 
배우자 얻어 좋고

친정과 시댁 부모는 
콩당콩당 키운 아이
멋진 어른 됨에 기쁘고

생활고에 시달리던 벗들은
살랑살랑 거나하게 
맘 잔 부딪치니 즐겁다

사람이 사랑으로 만난
오늘은 좋고 기쁘고 즐거워
멋지고 아름다운 날

- 홍찬선, '결혼'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