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평 - 새로운 서평]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外
- [비평연대] 맹준혁·이수련·김미향의 500자 서평
젊은 문화비평가와 출판전문가들의 커뮤니티인 '비평연대'에서는 숏폼콘텐츠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500자 내외의 '매우 짧은 연대 서평'의 형식을 고안했습니다. 2030세대 지식인 특유의 빛나는 감각으로 제시되는 다양한 책들을 통해 지식의 최전선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터뷰365 편집자주]
■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소연 지음, 돌고래, 2023)
회사 생활을 시작하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상의든 하의든 외투든 뭐든 최소한 하나는 늘 사 왔다. 어릴 땐 꾸며야 해서 옷을 샀지만, 좀 덜 어린 지금은 소재가 좋은 옷에 계속 눈길이 간다. 같은 티셔츠여도 비싸고 소재가 다르면 이렇게 좋구나. 피부에 감기는 부드러운 촉감에 중독될수록 눈은 높아졌고, 매달 결제되는 카드 값은 늘어났다.
올해 겨울은 아직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솔직히 이 책을 읽고 문제의식이 생겨서 안 산 건 아니고, 여러모로 정신이 없어서 겨울옷을 못 봤다. 오늘 아침 숏평과 밀린 회사 업무를 위해 도서관에 가려고 후리스를 입었는데, 주머니에서 일본어로 된 영수증이 나왔다. 올해 여름 삿포로에서 결제한 영수증이었다. 문득 결제 내역을 살펴봤는데, 비행기와 숙소 값을 빼면, 일본 여행에서도 가장 많은 돈을 쓴 건 옷값이었다.
"이제 살만큼 다 사지 않았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올해까진 일단 겨울옷은 사지 않기로 했다. 올해는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 그 정도는 충분히 안 살 수 있지만, 2026년 1월 미래의 나는 옷을 안 살 수 있을까? 일단 두 달은 참아본다.(맹준혁 / 출판편집자·비평연대)
■ 크리미널 러브 (이희주, 문학동네, 2025)
이제는 밈으로 더 자주 회자되는 연극 '비평가'의 대사, “그 여자 미친 여자 아닙니다. 슬픈 여자입니다.”는 ‘미친 여자’에 대한 일종의 면죄부로 기능한다. 그 사람이 미친 건 슬퍼서이고, 이 세상이 여자를 슬프게 했기 때문이다. 즉 ‘미친 여자’라기보다 ‘미치게 된 여자’에 가깝다.
반면 '크리미널 러브' 속 인물들은 ‘미치게 된’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광기로 달려가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생명력을 얻기 위해 미친다. 미쳐야만 살아갈 수 있는 여자들의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아이돌을 좋아해 하루 종일 그들을 인터넷으로 쫓으며 온 마음을 다해 전전긍긍해본 사람이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헌신과 통제, 집착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할 때 느껴지는 그 짜릿함을. 그 감정은 곧 살아 있음의 감각이기도 하다. 그래서 광기에 추동되는 인물들은 억지스럽지 않고,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난 사람들처럼 자연스럽다.
8개의 단편을 모두 읽고 나면, 왠지 늦은 밤 친구들과 모여 날것의 수다를 나누다 잠드는 기분이 든다. 몸은 뻐근하고, 피부는 푸석하지만, 이해받았다는 안도감이 주는 편안함으로 눈을 감게 된다.(이수련 / 비평연대)
■ 마케터의 밑줄 (김상민 지음, 더퀘스트, 2024)
단순히 ‘잘 파는 법’을 다루는 마케팅 책이 아니다. 이 책의 핵심은 ‘일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에 닿아 있다. 어제의 성공 공식이 오늘은 무력해지는 시대, 저자는 수많은 실무 경험과 현장의 고민을 토대로 마케터가 결국 다루는 것은 ‘고객’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마케팅'이란 결국 인간을 다루는 일이며, 사람의 세계는 언제나 정량으로 환산되지 않는 무게를 갖는다는 사실. '브랜딩'이란 결국 한 사람의 마음을 끝까지 붙들어내는 일이라는 것. 그래서 마케팅이란 기술이 아니라 감각의 분야에 속한 일이라는 것. 브랜드가 사랑받는 이유는 결국 감정의 결이 쌓인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효율을 높이는 기술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각을 더 중요하게 다룬다. 책을 읽다 보면 마케팅은 ‘창의 노동’이며, 팬덤은 숫자가 아니라 ‘깊이에서 나온 신뢰’라는 사실이 자연스레 이해된다. 숫자나 데이터 이전에 관계와 맥락을 읽는 힘, 그리고 나의 일상을 성찰하고 다시 일로 환원시키는 태도가 진짜 경쟁력이라는 메시지는 신선하면서도 현실적이다. 특히 '장이라는 것이 성과나 직급의 상승이 아니라, ‘일과 나 사이의 간격을 좁혀가는 과정’이라는 설명이 깊게 남는다. 실패와 악플 또한 마케터에게는 직업적 내구성을 키워주는 ‘층위’다. 결국 마케터는 불확실 속에서 스스로 근거를 발굴하고 설득의 힘을 쌓아야 한다.
이처럼 저자는 화려한 브랜드의 앞면이 아니라 그 뒤에서 반복되고 허드렛일처럼 느껴지기 쉬운 수많은 디테일들이 결국 브랜드의 신뢰를 쌓는 과정임을 확인시킨다. 그 디테일은 탁월한 천재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지새운 밤과 끝없는 고민, 그리고 사용자에 대한 존중에서 태어난다.
동시에 이 책은 직업적 자존감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한 번의 실패가 커리어 전체를 규정하지 않는다는 믿음, 성찰을 근거로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 회복력, 그리고 ‘좋은 디테일이란 사랑의 형태’라는 확신이 담겨 있다. 마케터로서의 통찰뿐 아니라, 일과 삶을 오가며 스스로를 단단하게 세우고 싶은 모든 실무자에게 울림을 주는 책이다. 책장을 덮고 나면 What 이전에 Why를 생각하며 '앞으로 어떤 마음으로 일을 지속할 것인가' 스스로에게 묻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테다. (김미향 / 출판평론가·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