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 시인의 좋은 시 365] 안현미 시인의 ‘탁구’

2025-11-13     김지수 칼럼니스트

시는 인간 마음속 심상(心像)에서 피어나는 혼불과도 같습니다. 깊은 사유의 내면에서 길어 올린, 짧지만 응축된 언어문학의 보석과도 같은 시의 세계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좋은 시와 함께 조용하지만 반짝이는 하루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탁구 / 안현미

K가 돌아온 밤은 까마귀보다 검었다 우리는 그날 밤 
탁구를 치고 있었기에 그가 데리고 온 밤의 검정과 탁
구공의 하양은 꽤 근사하게 어울렸다 주고받는다 받기 
위해 준다 주기 위해 받는다 그것밖에 없다 그것밖에 없
어서 즐겁다 사랑하고 사랑받는다 사랑받기 위해 사랑

한다 사랑하기 위해 사랑받는다 헛소리 같지만 그것밖
에 없다 튀어 오르고 튕겨 나간 건 끝까지 갔다가 돌아
오지 않는 공 같은 것 아무튼 K는 돌아왔고 그가 데리
고 온 밤은 까마귀보다 검었고 헛소리 같지만 방금 막 
도착한 자정을 향해 튀어 오른 탁구공은 미래로 날아가
고 있었다 그것밖에 없어도 그러하듯이

- '미래의 하양' (걷는 사람, 2024)

안현미 시인은 1972년 강원도 태백에서 태어나 2001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통해 등단했습니다. 그는 일상의 균열과 관계의 불안, 인간 내면의 미세한 흔들림을 솔직하면서도 재치 있는 언어로 포착하며 한국 현대 시의 독특한 목소리를 구축해 왔습니다.

시집 ‘곰곰’, ‘이별의 재구성’,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 ‘깊은 일’, ‘미래의 하양’에 이르기까지 그의 시에는 웃음과 고백, 슬픔과 냉소가 교차하는 다층적 감정의 결이 살아 있습니다. 현실의 부조리를 유머로 견디고, 상처를 자기 풍자 속에 녹여내는 그의 시는 인간 존재의 연약함과 강인함을 동시에 비추는 거울처럼 읽힙니다.

그의 언어는 고통을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살아내는 힘’으로 전환시킵니다. 30년 동안 직장인으로 살아온 경험은 그의 시를 현실의 리듬에 밀착시켰으며, 퇴직 후 전업 시인으로서의 행보는 그의 세계를 한층 자유롭게 확장시켰습니다. 제28회 신동엽문학상(2010), 제22회 아름다운 작가상(2024), 제10회 부마항쟁 문학상을 받으며 그 문학적 진정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요즘 그는 시인들과 탁구를 치며 ‘미래의 하양’을 꿈꾸고 있습니다. 웃음과 고백 사이에서 인간의 진실을 탐구하는 그의 시는 오늘의 삶을 견디는 우리에게 조용하지만, 단단한 위로를 건네는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