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희 감독의 AI스토리텔링] 창작자 오기환 감독 "스토리를 지배하는 자, AI도 지배할 수 있어"
[인터뷰365] 드라마 '아이쇼핑' 연출자 겸 창작자 오기환 감독 - 매달 새로운 강의 들어...새로움에 대해 배우는 건 필수 - AI는 감정이 아니라 구조를 이해해야 다룰 수 있어 - AI에게 필요한 건 정확한 지시와 언어 구조...끊임없이 공부해야 - AI가 창작하고 인간이 받아 쓰는 시대 도래 할 것 - AI시대, 평범한 작가들도 ‘위대한 작가' 될 수 있어
AI스토리텔링은 인공지능(AI)이 사람과 협력하거나 스스로 이야기를 창작하는 기술 및 개념을 의미합니다. 스토리텔링 작법서 '4줄이면 된다'의 저자 이은희 감독이 AI스토리텔링에 관심 있는 다양한 분야의 인물을 만나 4가지 주제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응답을 듣는 새로운 형식의 인터뷰 시리즈를 선보입니다. [편집자주]
인터뷰365 이은희 인터뷰어 = 20년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학부 시절 오기환 감독의 수업을 들었다. 오래전 일이지만, 그때 교실에서 보여줬던 작가로서의 자신감과 확신, 그리고 열정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가 오랜만에 드라마로 돌아온다는 소식에 참 반가웠다. 여전히 영화의 지평을 넓히는 그를 보면 어찌보면 당연한 행보다.
오 감독은 2001년 첫 연출작 영화 ‘선물’(이정재·이영애 주연)을 시작으로 꾸준히 작품 세계를 확장해왔다. 2012년에는 중국 영화 '이별계약(分手合約)'을 연출하며 해외 시장에도 진출했다. 지난 8월에는 염정아·원진아 주연의 드라마 ‘아이쇼핑’을 연출하는 등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오 감독은 ‘스토리–흥행하는 글쓰기’(시공사), ‘드라마–공모전에 당선되는 글쓰기’(북다) 등의 작법서를 출간한 창작자이기도 하다. 그는 현재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장편 시나리오 창작 수업도 강의 중이다. AI로 글을 쓰는 수업을 하는 그의 이야기를 안 들어볼 수 없었다. 오 감독은 “AI는 아직 보조작가 수준이지만 머지않아 공동 저작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1. 여정과 경험
- “이르면 내년 AI 공동 저작 시대 개막“
- “2030년 경, AI가 알아서 창작적 결과물 양산 하는 시대 올 것“
- AI를 스토리텔링에 처음 도입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그 당시 문제 의식이나 고민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반드시 지키는 루틴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매달 한두 개의 새로운 강의를 듣는 것입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약 3년 전부터 AI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제가 하는 일이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일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AI를 작업에 활용하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마치 1980년대 초반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 시절에는 거의 모든 대학에서 영화 동아리가 생겨났고,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분위기가 퍼져 있었죠.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동아리에서 영화를 만들던 사람 중 지금도 실제로 영화를 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AI 덕분에 모두가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처럼 말하지만, 결국 이 시대에도 남는 사람은 1% 정도일 거로 생각합니다.”
- AI와 함께 작업하면서 깨달은 점은 무엇일까요?
“AI는 아이템 발굴과 스토리 구조의 초기 디벨롭 단계에서는 상당히 유용하지만, 아직 인간의 감정과 정서를 섬세하게 구현하는 완결형 작품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AI와의 작업은 ‘창작자인 나’와 ‘보조작가로서의 또 다른 나(AI)’가 협업하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AI의 성능보다 인간 창작자의 태도가 결과를 좌우한다는 점입니다. ‘객관적인 자아’를 가진 창작자는 AI를 훨씬 효과적으로 활용하지만, ‘감정적 확신’에 머무는 창작자는 원하는 결과물을 얻지 못하더군요.
결국 AI 스토리텔링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스토리를 얼마나 ‘이론적으로 이해한 인간인가’의 문제라는 점을 실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이 시점을 ‘AI가 인간을 돕는 마지막 세대’의 전환기로 보고 있습니다.”
- AI 스토리텔링 작업에 대한 개인적 정의은 무엇일까요. 또 활용 방식은 어떤가요?
“2025년 현재 AI는 보조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창작적 역량에 비해 뛰어난 모습을 찾아내기는 힘든 상황입니다. 다만 자료 조사와 참고할만한 레퍼런스를 찾는 능력은 뛰어나니 보조작가로서는 최고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2026~2030년경에는 창작 보조를 넘어 진정한 공동 저작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지난 3년간 AI에 관련된 거의 모든 세미나를 쫓아다녔습니다. 2023년에는 인간의 손가락 5개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해 6개 손가락을 가진 기형 인간들을 만들어내던 AI가 현재는 각 인물의 일관성을 제대로 맞춰서 다양한 컷들을 자연스럽게 생성해 냅니다. 그때는 그렇게 힘들었던 립싱크도 이제는 쉽게 맞춰서 다양한 언어로 표현해 줍니다. 이야기 분야도 그렇게 변할 것입니다. 2030년 경이 되면 AI가 알아서 입력자의 능력보다 뛰어난 창작적 결과물들을 양산하게 되리라는 것이 저의 예측입니다.”
- 인간 작가의 창작과 비교할 때 가장 본질적인 차이는 무엇일까요?
“본질적인 차이를 인간과 AI의 내부적인 시선에서 찾는다면 그건 무의미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AI 창작이라는 것은 결국 인간 창작과 비슷하거나 인간보다 뛰어난 창작을 목표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결국 AI 창작과 인간 창작은 같은 것입니다. AI가 인간과 비슷하거나 인간보다 뛰어난 창작을 하는 것을 목표로 구동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본질적인 차이는 전혀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는 이 점이 앞으로 인간에게 가장 위험하고 위해한 요소가 될 것입니다. AI가 인간을 대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2. AI 스토리텔링의 본질과 가능성
- 인간의 언어 숙련도 중요해져...구조적 명령 구사하는 창작자가 AI시대 이끌 것
- AI 스토리텔링을 '창조'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AI 스토리텔링은 아직 ‘창조’라 부르기 어렵습니다. 지금은 인간이 AI에게 창조의 씨앗을 던지고, 그 발아 과정을 함께 지켜보는 단계이기 때문입니다. AI가 인간의 의도와 감정을 완전히 예측해 스스로 결과물을 내놓는 수준에 도달해야 비로소 “창조자”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한계가 기술적 문제라기보다 인간이 객관적으로 AI를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AI는 이미 충분히 진화 중이며, 인간이 그 언어를 얼마나 과학적으로, 체계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가 진짜 관건입니다.
AI의 시스템적 원리를 이해하고, 객관적으로 접근하는 사람은 이미 지금도 한계 없는 결과를 얻고 있습니다. 반면 자신의 감정이나 주관만으로 명령어를 다루는 사람은 여전히 “AI는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 AI가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파급력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AI 스토리텔링이 인간 창작을 보완하기 위한 실용적 방법론을 제안한다면?
“AI가 대중과 산업에 미친 영향은 분야마다 다릅니다. 음악에서는 이미 SUNO 같은 툴을 통해 즉각적인 창작 혁신이 이루어졌고, 영상에서는 미드저니나 런웨이 등 시각 생성 툴이 새로운 미학적 패러다임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스토리텔링, 특히 드라마나 시나리오 같은 내러티브 영역은 아직 실질적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이야기는 구조와 언어의 과학이기 때문입니다. AI가 창작을 보완하는 방식은 ‘대체’가 아니라 ‘언어적 협업’입니다. AI는 감정을 해석하지 못하지만, 스토리 구조와 확률적 패턴에는 강합니다. 따라서 스토리 이론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과학적인 언어’로 명령어를 입력하는 작가일수록, AI를 통해 훨씬 정교한 서사 결과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AI 스토리텔링의 진짜 영향력은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인간의 언어 숙련도에서 비롯됩니다. 감성적 표현보다 구조적 명령을 구사하는 창작자가 새로운 시대의 주체가 될 것입니다.”
- AI 시스템적 원리를 이해하고 싶다면 뭘 알아야 할까요? ‘과학적인 언어’로 명령어를 입력하는 작가가 되어 AI로 더 좋은 결과물을 내고 싶다면요?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에게 과학은 곧 구조입니다. 구조적인 시각에서 AI에게 질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창작자가 구조를 공부해야 합니다. 나보다 더 많이 아는 애를 보조작가로 두는 것이 말이 될까요? 보통 작가들이 실제로는 구조를 잘 모르고 있어요. 지금 이름만 대면 아는 작가들이 이렇게 빠른 시간 새로운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구조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AI든 보조작가든 어떻게 활용할지가 정확히 보이는 거예요.”
- 구조를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농담처럼 이야기하지만, 작법서를 읽으며 공부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제가 쓴 책 '스토리-흥행하는 글쓰기', '드라마-공모전에 당선되는 글쓰기'도 좋고 이은희 감독의 '4줄이면 된다'도 도움이 될 거예요. 구조를 아는 사람들이 설명해 놓은 책이 있는데 안 읽을 이유도 없잖아요. 이런 책들을 보면 AI에게 뭘 물어봐야 할지 알게 돼요.
예를 들어 12부작 드라마 작업 중이라면 비슷한 장르나 지향하는 드라마의 1, 3, 6, 9, 12부의 끝 장면을 물어보세요. 왜 그렇게 끝나는지 다 이유가 있거든요. 그 이유를 알아채고 적용하는 것은 AI에게 좋은 질문을 하는 것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니 공부를 해야죠. 끊임없이.”
3. 인간의 역할과 개입
- AI 시대, 스토리텔링의 역할 분담은
- AI를 다루는 인간이 가져야 할 덕목, 감성 아닌 ‘이해력’
- 정확한 프롬프트를 통해 AI를 훈련할 때, 가장 인간적인 개입은 어떤 순간에 필요할까요?
““인간적인 생각을 가지고 AI를 이용하면 인간적인 결과물을 얻어낼 수 없다”라는 이 문장이 어쩌면 AI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아이러니라고 생각합니다. AI를 사용할 때 ‘인간적인 개입’을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AI를 사용하는 이유는 인간의 감정이나 직관이 아닌, 논리와 데이터의 정확성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작가들이 여전히 ‘인간적인 감성’을 유지하려 애쓰는데, 저는 그것이 AI 시대의 가장 큰 자기기만이라고 봅니다. AI에게 필요한 것은 감정이 아니라 정확한 지시와 체계적인 언어 구조입니다.
그래서 저는 ‘AI를 다루는 인간’이 가져야 할 덕목은 감성이 아니라 ‘이해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토리를 지배하지 못하는 자는 AI를 지배할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인간 작가는 스토리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충분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스토리라는 세계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지배하지 못하는 작가라면 스토리의 세계를 정확하고 알고 그것을 지배하고 있는 AI에게 종속될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 앞으로 AI와 인간이 공동으로 스토리를 만들 때, 어떤 역할 분담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나요? 그 관계 안에서 인간 작가에게 요구되는 역량은 무엇일까요?
““인간이 창작하고 AI가 돕는다”가 현재의 인간과 AI의 역할입니다. “AI가 창작하고 인간이 받아 쓴다” 가 미래의 AI와 인간의 역할 분담이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재능이 뛰어난 인간 작가님들은 2035년에도 자신이 알아서 자신의 스토리들을 잘 써나갈 겁니다. 재능이 있는데 뭐가 걱정일까요?
반면에 평범한 재능을 가진 작가님들은 아마 현재도 힘들게 창작을 하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곧 AI의 도움으로 위대한 작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니까요. 여러분들의 고통은 AI 기술 발전으로 곧 해결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평범한 재능을 가진 작가님들은 부디 앞으로의 가능성을 믿고 현재 지금 자신에게 부족한 스토리 이론 공부를 좀 더 정확하고 정밀하게 해나갈 것을 권유드립니다.”
- AI 시대에 ‘배운다’는 행위의 의미가 달라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뜻인가요?
“요즘은 ‘배운다’는 게 단순히 새로운 툴을 익힌다는 의미로 좁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배운다는 건 사유의 확장이지, 기능의 습득이 아닙니다.
과정을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툴에만 목매는 건 효용이 짧아요. 기술은 너무 빨리 낡습니다. 4.5가 4.1보다 얼마나 나은가, 그걸 체감한다고 해서 본질이 바뀌는 건 아닙니다. 결국 중요한 건 버전의 차이가 아니라 ‘버전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죠.
AI의 시대는 ‘가르침’의 방식도 바꿔 놓았습니다. 20세기가 ‘사유의 시대’였다면, 지금은 오히려 ‘탈(脫)사유의 시대’에 가깝습니다. 질문에 대한 반응, 즉 즉각적인 직관과 유연한 사고가 더 효과적인 세상이 된 거죠. 그래서 요즘 세대가 유리합니다. 너무 깊이 생각하기보다 빠르게 감을 잡고, 직관적으로 접근할 줄 알기 때문이에요.
반대로 자기만의 사유체계가 강한 사람은 새로운 변화에 오히려 적응하기 힘들 수 있습니다. 이 시대는 논리보다 ‘감각의 업데이트’가 빠른 사람이 이기는 시대입니다.”
- 말씀하신 대로라면, 앞으로는 작가들이 ‘이런 공부를 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시대가 올 것 같습니다. 어떻게 증명될까요?
“예전에는 공부의 결과를 ‘학위’나 ‘자격증’으로 증명하는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겁니다. 곧 매출이 증명이 되는 시대가 옵니다. AI가 발전하고, AGI(범용 인공지능)의 시대가 열리면, 이론적 공부나 자격의 의미는 사라질 거예요. 결국 ‘얼마나 팔렸는가, 얼마나 보상받았는가’가 그 사람의 역량을 증명하는 가장 직접적인 지표가 될 겁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게 현실이죠.
과거에는 ‘타인이 만들어준 학습 맵’을 잘 따라가는 사람이 우등생이었지만, 앞으로는 ‘자신만의 학습 지도를 그리는 사람’이 진짜 우등생이 됩니다. 누가 가르쳐주는 공부가 아니라, 스스로 길을 찾고, 그 길에서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 그게 새로운 시대의 작가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흥미로운 역설이 생깁니다. 우리는 모두 ‘AI가 평등하게 지식을 나눠주는 세상’을 꿈꾸지만, 정작 그 지식을 누가 더 잘 조합하고, 누구의 감정으로 다시 해석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극명히 달라집니다. 겉으로는 평등한 시대지만, 진짜 격차는 ‘사유의 밀도’와 ‘감정의 리터러시’에서 갈릴 것입니다.”
4. 실무 경험과 협업의 미래
- AI는 정보를 주지만, 인사이트는 인간의 몫
- 경험상, AI와 협업한 작업 중 감동을 받은 경험이 있다면요?
“사실, 그런 질문 자체가 AI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AI는 어디까지나 효용의 차원에서 놀라운 존재일 뿐입니다. AI는 작업 중 필터링, 구조적 결함, 보강 지점을 굉장히 정확하게 잡아냅니다. 그걸 보고 “잘했다”가 아니라, “이건 진짜 쓸만하네”라는 기술적 만족감이 들었어요. 한마디로 말하면, 인간 보조작가가 더 이상 필요 없을 정도입니다. 감동이 아니라 완성도와 속도의 측면에서 오는 만족, 그게 제가 AI에게 느끼는 ‘최고의 감정’입니다.”
- 그런데도 인간 스토리텔러의 감각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요?
“저는 ‘감각’이라는 단어보다 ‘정보’라는 단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창작 과정에서 진짜 필요한 건 인간의 감각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정보입니다.
정보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인포메이션(information)과 인사이트(insight). 인포메이션은 공유 가능한 데이터지만, 인사이트는 작가의 해석력과 경험에서 나오는 고유한 역량이죠.
AI는 인포메이션을 무한히 제공합니다. 하지만 인사이트는 인간만이 제공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AI에게 인사이트를 기대하는데, 그건 마치 보조작가에게 대신 써달라는 것과 같습니다. AI가 해줄 수 있는 건 자료를 정리하고 틀을 제시하는 일이지, 그 안에 생명과 방향을 불어넣는 건 결국 인간 작가의 몫입니다.”
- 창작자로서 ‘인사이트’를 얻는 자신만의 방식이 있다면요?
“제가 쉰다고 느낄 때가 바로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입니다. 일상과 물리적으로 분리되죠. 그때의 감각이 저에겐 가장 큰 휴식입니다. '영웅의 귀환' 구조로 보자면, ‘떠남’이 바로 그 지점이에요. 일상에서 떨어져 나올 때 비로소 내가 살던 자리를 다른 각도에서 관찰할 수 있게 되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재충전을 ‘돌아오기 위한 에너지 충전’으로 보지만, 저에게는 떠남 자체가 관찰의 훈련입니다. 익숙한 공간을 멀리서 바라보면 낯설어지고, 그 낯섦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태어나니까요. 새로움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익숙한 것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거리에서 나온다고 믿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사이트란 ‘더 많이 떠나본 사람의 시선’이라고 생각해요.”
- AI를 활용하며 요즘 고민 중인 화두는 무엇인가요?
““AI를 인간에게 종속시킬 것인가? 아니면 인간에게 AI를 종속시킬 것인가?” 저는 개인적으로 인간이 AI에게 종속되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최대한 그 시기를 늦춰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그것에 대한 준비로 현재 AI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AI를 잘 알아야 AI에게 종속될 순간을 조금이라도 미룰 수 있지 않을까요? 저의 생각은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AI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영화를 하는 선배이자 동료로서 지금의 영화인들이 가져야 할 태도와 자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점이 개인적으로 깊이 남았다.
인터뷰를 마치며 또 보자는 인사를 나누었지만, 사실 그 말 속에는 ‘다시 만나 그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오기환 감독은 지금의 영화계를 불황의 시기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완전히 새로운 세대가 열릴 ‘태동의 시기’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이 변화의 파도 속에서 휩쓸리지 않기 위해 무엇보다 열린 귀와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말은 비단 영화계뿐 아니라, AI의 등장으로 혼란을 겪고 있는 지금 모든 창작자와 모든 분야의 사람들에게 한 번쯤 되새겨야 할 메시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