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영화감독 백학기의 시네스토리] ‘맨발의 청춘’(1964)과 배우들...신성일·엄앵란·트위스트김·이예춘
[내 가슴에 남아있는 한국고전영화와 그 배우들(29)] - 한국 청춘 영화 새 장르 개척한 김기덕 감독 - 영화 속 신성일-엄앵란 커플, 대표적인 스타 커플로
▶(28)‘강화도령’(1963)과 배우들...신영균·최은희·김승호·한은진·신성일 이어서
인터뷰365 백학기 칼럼니스트 = 1964년, 한 편의 영화가 젊은 관객들의 가슴을 울렸다. 제목은 ‘맨발의 청춘’. 밤의 거리, 싸움꾼의 삶, 그리고 사랑.
당시로선 파격적이던 이 영화는 한국 청춘 영화의 전형을 뒤집으며,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김기덕 감독의 흑백영화 ‘맨발의 청춘’은 시대의 골목에 주저앉은 청춘의 초상을 담아낸 수작이다.
사랑을 꿈꾸기엔 너무 가난하고, 정의를 말하기엔 너무 상처 입은 한 청년의 삶. 이 작품은 한국 청춘 영화의 원형이자, 전후 세대의 내면을 가장 정직하게 비춘 거울이었다. 일본 후지와라 신지의 소설 ‘진흙투성이의 순정(泥だらけの純情)’과 동명의 일본 영화를 원작으로 했다. 원래 제목은 ‘죽어도 보고 싶어’였다.
신두수(신성일)는 길거리의 삶을 사는 폭력배이다. 밀수한 시계를 운반하러 가던 어느 날 불량배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요안나(엄앵란)와 친구를 구해준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요안나와 두수는 서로를 생각하게 되고, 요안나의 학교에서 그녀를 기다리던 두수는 집으로 찾아온 요안나와 만나기 시작한다.
요안나는 대사의 딸로 부유하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고 두수는 창녀들이 사는 허름한 방에서 산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자신들이 속한 이질적인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두수는 요안나를 레슬링 경기장으로, 요안나는 두수를 오케스트라 연주장으로 데리고 간다. 두수는 요안나가 읽는 성경을 읽고, 운명교향곡을 들으며 고급 주스를 마신다. 요안나는 두수에 의해 위스키를 마셔보기도 하고, 권투잡지를 읽어보며 운동기구 아령을 들어본다.
두수가 데이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저지른 사기행각으로 두수는 약속 장소에 나가지 못한다. 요안나는 소식을 궁금해하며 대관령에서 편지를 보낸다. 두수가 출소하고 그들은 다시 만나지만 이들의 관계는 신분의 차이로 인해 장벽에 부딪히게 된다.
두수의 취직을 알선하려는 자리에서 모욕을 당한 두수는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게 되고 밀수건의 해결을 위해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가기로 한다. 요안나는 아버지가 계신 태국으로 가게 되자 두수를 찾아 가출하고 둘은 경찰과 조직의 눈을 피해 시골로 도망치게 된다. 거기서 하룻밤 동안 둘만의 행복을 맛본 그들은 동반 자살하고 만다.
다음 날 아침, 한 노인이 정사(情死)한 두 사람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한다. 엔딩씬에서 두수는 아가리(트위스트 김)가 끄는 수레에 실려 가는 시신으로 스크린에 남는다. 아가리는 두수의 맨발에 자신의 구두를 신겨준다.
‘맨발의 청춘’은 슬픈 비극적 멜로드라마다.
“눈물도 한숨도 나 혼자 씹어 삼키며/ 밤거리의/ 뒷골목을 누비고 다녀도/ 사랑만은 단 하나의 목숨을 걸었다/ 거리의 자식이라 욕하지 말라/ 그대를 태양처럼 우러러보는/ 사나이 이 가슴을 알아줄 날 있으리라”
유호 작사에 남저음 목청의 최희준이 부른 ‘맨발의 청춘’ 가사가 영화와 오버랩된다. 그들의 사랑은 짧았지만, 순수했고 뜨거웠다. 맨발로 거리를 달리던 청춘의 발걸음은 결국 멈췄지만, 그들이 남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거칠고도 생생한 영화 속 서울의 뒷골목 풍경은 전쟁 후 재건기에 내던져진 청춘의 자화상들의 공간이다. 이 작품은 "누구나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절실한 목소리를 담고 있다.
영화배우 신성일은 이 작품을 통해 단순한 미남 스타를 넘어 상처 입은 청춘의 얼굴을 구현해 한국 청춘들의 대표적인 자화상으로 자리매김했다. 신성일은 매력적인 눈빛과 절제된 제스처로 ‘상처 입은 청춘’을 무리 없이 연기했다. 그의 주먹은 세상을 향하지만, 그의 눈은 늘 사랑을 향한다. 그의 “맨발”은 자유가 아니라, 무엇도 소유하지 못한 청춘의 표상이다.
엄앵란은 ‘맨발의 청춘’에서 시대의 그늘 아래 한 인간을 사랑한 여성의 고요한 강인함을 보여준다. 이 영화로 인연을 맺은 두 배우는 이후 한국 영화사의 대표적인 스타 커플이 됐다. 흥행 면에서도 대성공을 거둔 ‘맨발의 청춘’은 청춘 멜로 장르가 한국 영화계에서 주류로 떠오르는 계기를 만들었으며 이후 수많은 청춘 영화들이 ‘맨발의 청춘’을 모델로 삼았다.
사랑조차 허락되지 않던 시대. 사랑이 전부인 시대. ‘맨발의 청춘’은 지금 보아도 전혀 낯설지 않은 청춘 영화의 클래식이다. ‘맨발의 청춘’은 그 용기가 끝내 좌절될지언정 절대 무의미하지 않음을, 여전히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김기덕 감독은 이처럼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사회적 리얼리즘이 녹아든 드라마 ‘맨발의 청춘’을 통해 ‘청춘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