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영화감독 백학기의 시네스토리] ‘강화도령’(1963)과 배우들...신영균·최은희·김승호·한은진·신성일

[내 가슴에 남아있는 한국고전영화와 그 배우들((28)] - 철종 역 신영균, 복녀 역 최은희 연기 앙상블 호평

2025-11-11     백학기 칼럼니스트

(27)‘청춘교실’(1963)과 배우들..신성일·엄앵란·방성자·남미리 이어서

영화

인터뷰365 백학기 칼럼니스트 = 영화가 시작되면, 강화도의 한 포구. 출렁이는 강물 위 나룻배에서 더벅머리 총각 원범(신영균)이 투망질을 하고 있다. 멀리서 “도련님~”하며 한 처녀가 달려온다. 그를 짝사랑하는 복녀(최은희)다.

그런데 인생역전이 벌어진다. 어느 날 한양에서 한 고관이 찾아온다. 임금(헌종)이 승하하여 새로운 왕을 모셔야하는 과업을 이수하러 온 것이다. 바로 강화도에서 유배 살이 중인 원범이 새 왕으로 픽업된 것이다.

이로써 강화도에서 자란 시골뜨기 원범(신영균)은 하루아침에 철종으로 등극한다. 하지만 그는 엄격하기만 한 궁중 법도에 얽매인 나머지 왕의 자리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는 꿈마다 강화도 갯벌에서 뛰놀던 옛시절을 잊지 못한다.

영화 ‘강화도령’의 스토리다.

‘강화도령’은 HLKA(KBS)라디오의 인기 연속극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영화는 러닝타임이 126분으로 두 시간이 넘는 긴 장편 시대극. 실존했던 조선 후기의 임금 철종의 삶을 다룬다. 갑작스런 신분 변화로 인해 고통받는 ‘개인’으로서의 철종을 조명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영화

다시 영화로 돌아가보자. 궁중은 낯설고 냉랭하다. 제조상궁(한은진)의 가르침 아래 왕의 예법을 익히는 원범. 그러나 왕의 옷자락 속에는 자유를 잃어가는 사내의 피로와 한숨이 담긴다. 철종은 여전히 강화도 시절 함께 들을 뛰던 소녀, 복녀(최은희)를 그리워한다.

소박하고 강단 있는 복녀는 철종에게 ‘사람의 냄새’를 알려준 유일한 존재였다.

대왕대비의 뜻에 따라 철종은 정치적 혼인을 치르지만, 마음은 복녀를 향한다. 끝내 철종은 그녀를 입궐시켜 상궁의 자리를 준다. 잠시나마 둘은 다시금 웃지만, 궁중의 질서는 이들을 용납하지 않는다. 대왕대비의 명으로 복녀는 궁을 떠나야 하고, 철종은 병이 깊어진다.

철종비는 사경에 이른 철종을 위해 복녀를 다시 불러온다. 그러나 복녀는 더는 철종이 자신만을 바라보게 두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인두로 자신의 얼굴을 지진다.

“왕은 백성의 임금이지, 여인의 사내가 아닙니다.”

그녀의 결단에 철종은 흐느끼며 고개를 떨군다. 복녀는 강화도로 돌아간다.

영화

철종은 복녀를 부르짖으며 끝내 눈을 감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며칠 후, 강화도로부터 돌아온 복녀는 멀리서 장례 행렬을 지켜본다. 슬픔에 젖은 그녀는 중얼거린다.

“그 사람, 사람답게 살다 갔소.”

그녀는 철종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더는 왕으로 키우지 않겠노라 다짐한다.

“저 아이만은 초부로 키우겠소. 사람다운 사람으로.”

강화도의 순진한 청년인 철종의 신영균과 철종만 바라보는 강화도 여성 복녀의 최은희 연기 앙상블이 최고라는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신영균은 철종 역을 통해 “백성의 임금이 아닌, 한 여인을 그리워한 남자”의 내면을 묵직하게 표현하며 존재감을 드러냈고, 최은희는 복녀 역으로 절제된 감정의 미학을 펼쳤다. 한은진의 제조상궁 연기 역시 궁중 질서의 위엄과 슬픔을 함께 보여주며 극의 균형을 이루었다.

영화

‘강화도령’은 조선 후기 실존 인물 철종의 일대기를 통해 왕권과 인간성의 모순, 사랑과 권위 사이의 갈등, 왕이라는 허울 아래 눌린 인간적 고뇌를 섬세하게 묘사해낸 영화다.

‘왕으로 태어난 비극의 사내’를 통해 ‘사람다움’이라는 깊은 주제를 조용히 되묻는 영화다. 또 복녀의 결단은 영화사에서 드문 여성 주체성의 상징이자, 고전 멜로드라마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제조상궁 역의 한은진의 빛나는 연기가 돋보인다. 한은진은 맡은 배역에 최선을 다하는 연기 스타일로 다양한 영화에서 현명하고 인정 많은 할머니 역을 소화해냈다. 스물한 살이던 때인 1939년 영화 ‘무정’(박기채 감독)으로 데뷔한 이래, 연기 생활 60년 동안 영화, 연극, TV드라마 등 총 300여 작품에 출연했다. 1957년 ‘무영탑’(신상옥 감독)에서 여주인공으로 참신한 용모를 선보이기도 했는데, 젊은 날의 한은진은 전북 전주 출신의 여배우 장진영의 이미지와 오버랩되는 배우다. ‘연산군’으로 제1회 대종상 여우조연상(1961년)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