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 시인의 좋은 시 365] 곽효환 시인의 ‘먼 풍경’
시는 인간 마음속 심상(心像)에서 피어나는 혼불과도 같습니다. 깊은 사유의 내면에서 길어 올린, 짧지만 응축된 언어문학의 보석과도 같은 시의 세계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좋은 시와 함께 조용하지만 반짝이는 하루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먼 풍경 / 곽효환
수백 년을 살아온 나무는
제 몸의 가지가 어디로 뻗을지 알지 못한다
수천 년을 흐르는 강 또한
물길이 어디로 나고 어디로 흘러갈지 모른다
가지가 어디로 뻗든
물길이 어디로 나든
가지마다 초록이 오르고 꽃이 만개하고
물길 닿는 곳마다 생명이 움트는
나무와 강이 품고 빚어내는
먼 풍경이 아름다운 것이다
나도 내가 어떻게 뻗어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른다
하여 그것들이 빚어낼 훗날의 풍경 또한
서둘러 예단하지 않으련다
- '소리 없이 울다 간 사람' (문학과지성사, 2023)
곽효환 시인은 1967년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나 1996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벽화 속의 고양이 3’으로 등단했습니다. 시집으로 ‘인디오 여인’, ‘지도에 없는 집’, ‘슬픔의 뼈대’, ‘너는’, ‘소리 없이 울다 간 사람’ 등을 펴냈으며, 그의 시는 삶의 상처와 회복, 장소와 기억의 관계를 섬세하게 탐구하며 ‘북방의식’이라 불리는 독자적인 세계를 보여줍니다.
그는 ‘북방의 시인’ 또는 ‘광화문 시인’으로 불립니다. 이는 러시아, 중국, 몽골 등 북방을 30여 차례 여행하며 실향과 회복, 역사와 풍경의 정서를 시 속에 담아냈기 때문입니다. 또한 김동환, 백석, 이용악, 윤동주, 김소월, 김기림, 이찬 등 북방 시인들에 대한 연구와 글쓰기를 묵묵히 이어왔습니다. 동시에 광화문에서 보낸 시간 속에서 체감한 서울 세대의 숨결도 그의 작품 속에 잔잔히 스며 있습니다.
고대신예작가상, 애지문학상, 유심문학상, 편운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영랑시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비평가로서 ‘한국 근대 시의 북방의식’ 등 다수의 연구서를 발표했습니다. 대산문화재단 상무와 한국문학번역원 원장을 역임하며 한국문학의 해외 진출과 교류, 노벨문학상 수상 등 한국문학의 국제적 위상 제고에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현재도 시인·연구자·문화정책가로서 ‘세계문학으로서의 한국문학’을 위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