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 시인의 시로 보는 세상 풍경] (35) 동해와 삼척에서 중학생 소년으로 되돌아가다
인터뷰365 홍찬선 칼럼니스트 = 동기동창이란 참으로 좋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동기동창은 세월이 아무리 흐른 뒤에 만나도 어제 만난 듯 반갑다. 특히 어린이 딱지를 막 떼고 소년으로 발디딤 하는 중학교 동기동창은 더욱 좋다. 졸업한 지 46년이나 지나 여기저기에 흩어져 바쁘게 사느라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1년에 한두 번 만날 때마다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한 잔 두 잔 늘어가는 빈 술병에 사연이 쌓이고, 쌓인 사연만큼 정도 깊어진다.
강원도 동해시에서 30여 년 사는 동기동창을 만나러 떠난 1박2일 여행이 그랬다. 한 벗은 일정을 함께 하기로 해서 즐거웠고, 한 벗은 사정에 아무런 예고도 없이 만남의 장소에서 불쑥 나타나 ‘서프라이즈 해피니스’를 연출했다. 추암촛대바위 옆 형제바위가 내려다보이는 ‘힐링펜션’에서 마주한 술잔이, 1주일째 떠나지 않는 감기몸살을 조금 물러나게 했다.
새벽 보슬비를 맞으며 촛대바위를 보다
가을답지 않은 비가 1박2일 동안 줄기차게 쏟아진 10월 19일 일요일 새벽에 길을 나선다. 해돋이를 볼 수는 없지만, 새벽길을 걸으며 촛대바위를 보는 맛은 다르다. 비는 약해져 보슬비로 바뀌었다. 촛대바위와 형제바위 사이로 붉게 떠오르는 환상적인 해돋이를 다음으로 미뤄야 하는 게 아쉽다. 촛대바위 가는 길가에 세워진 멋진 해돋이 사진으로 달래며 시 한 편을 읊는다.
그대는 하늘에 무엇 따지려
그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 늘
그대로 손가락 꼿꼿이 펴고
그 마음 또렷이 주장하는가
그대는 무슨 할 말 있어
그렇게 바람 한 점 없이
그대로 잠잠한 바다 몰아
그 마음 바위에 부딪치는가
그대는 사랑한다는 말
그렇게 끝내 하지 못하고
그대로 모래 벌에 진한 사연
그리 하얗게 풀어 놓는가
- 홍찬선, '추암촛대바위' 전문.
시를 나직하게 읊으며 출렁다리를 건넌다. 아침 일찍이라 사람이 없어 혼자 걷기 안성맞춤이다. 출렁다리를 지나 야외조각공원으로 간다.
정상에 단원(團圓) 김홍도(金弘道, 1745~?)가 그린 '금강사군첩(金剛四君帖)' 중 ‘능파군(凌波郡)’ 그림이 벽에 소개돼 있다. 이 그림은 단원이 1788년 정조(正祖, 1752~1800)의 어명을 받고 44세 때 그린 것이라고 한다.
전망대에 올라 촛대바위 주변의 기암괴석을 생생하게 그린 솜씨가 대가임을 느낄 수 있다. 그 옆에는 조선시대 이헌경(李獻慶, 1719~1791), 이식(李植, 1584~1647) 김득신(金得臣, 1604~1684)이 이곳에 와서 지은 한시(한글로 번역)가 있다. 한시를 읽으며 하늘을 보니 기러기 떼가 V자형 대형을 이루고 남쪽으로 날아간다. 겨울을 보내려 따뜻한 남쪽나라로 가는 중이다.
하룻 날을 다하여 능파대에 올라가니
대 위에는 푸른 이끼 곱게 깔렸네
하늘에 치솟은 바위 기둥엔
수많은 불상을 조각해 놓은 듯
갈매기 목욕하며 서로 나르고
높이 나는 매는 부를 수 없다
동쪽 바다 수평선 그 저쪽엔
복숭아 꽃피는 도원경이 있을 듯
- 이헌경, 한시 '능파대에 올라(盡日高臺上)' 한글번역 전문.
53년 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덕봉산 비경에 취하다
황태해장국으로 어젯밤 술을 달랜 뒤 덕봉산으로 향한다. 덕봉산(德峰山)은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교가리 산136의 바닷가에 있는 낮은 산이다. 옛날에는 섬이었는데, 지금은 덕산해변과 육계사주로 연결돼 있다.
육계사주는 육지로부터 돌출하면서 만들어져 섬과 연결된 사구(沙丘)다. 산 모습이 물독과 비슷해 ‘더멍산’이라 불렸는데 한자로 표기하면서 덕번산(德蕃山)이 되었다가 덕봉산으로 바뀌었단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덕산도(德山島)는 삼척부 남쪽 23리(약9㎞) 교가역(交柯驛) 동쪽 바다 위에 있다”고 기록돼 있다. 과거에 섬이었고, 덕산도라 불렸던 사실을 알 수 있다. 덕봉산이 육지와 연결된 것은 조선 후기에 인구가 늘어나면서 산을 논과 밭으로 개간했고, 빗물에 토사가 바다로 유입됐기 때문이다.
덕봉산 왼쪽으로는 마읍천이 흐르고 그 건너에 맹방해수욕장이 있고 오른쪽은 덕산해수역장이다. 덕봉산에는 군 초소가 있어 통제되다가 53년 만에 개방돼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대나무 숲이 우거진 산책로를 따라 정상으로 오르는 내륙코스(317m)와 바닷가의 기암괴석을 즐길 수 있는 해안코스(626m)가 있다. 덕봉산 입구에 근덕면(近德面) 맹방리(孟芳里) 출신의 이창식 시인(세명대 교수)의 시 '덕봉산 아리랑' 시판(詩板)이 반겨준다.
마읍천 덕봉산 태양처럼 눈부신 희망 근덕
품어보고 싶은 땅
세계의 바다를 열어
해당화 피는 그린피아의 고향이어라
인정이 끓고 끓어서 넘치도록 멋진 근덕
밝음이 솟아오르는 관덕정에 서서
발목이 시리도록 큰마음 일깨워준 터전으로 기억되리라
백두대간 힘차게 달려온 산들이
해안선과 골짜기에 마을을 만들어
이곳에 사는 착하디 착한 근덕 사람들
메나리 부르며 우주의 살대를 세우고 있노라
아름다운 축복의 땅 가꾸고 지켜
세계의 눈길을 모은 황영조의 달리는 힘처럼
서로 어깨해 주는 든든한 면민으로 살아가리라
미래의 꿈을 안고 힘차게 나아가는 근덕
맹방, 금계, 교가, 교곡, 덕산, 부남, 광태
동막, 궁촌, 매원, 초곡, 용화, 장호 사람들 마카 대단하여라
웃음으로 나락을 키우고 정성으로 자식을 키워
세계 어디든 떳떳하게 내보낸 근덕 어진 사람들
너무나 눈부신 고향의 얼굴이어라
- 이창식, '덕봉산 아리랑' 전문.
덕봉산과 관련된 설화가 있다. 양양에 삼형제산이 있었다. 비가 억수로 쏟아져 홍수가 났을 때, 삼형제산은 유람 삼아 물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다. 맏형은 삼척 교가리에서 덕봉산이 되고, 둘째는 삼척시 원덕읍의 해망산이 되었다. 막내는 울진까지 내려가 비래봉이 되었다. 산 꼭대기에는 심물(산삼물)이 담긴 쇳독이 묻혀있다. 쇳독을 보는 사람에겐 엄청난 행운이 있다는데, 아직 그 쇳독을 본 사람은 없다.
옛 기록도 있다. 조선시대 미수(眉叟) 허목(許穆, 1595~1682)이 강원도 삼척부사로 재직할 때 편찬한 '척주지(陟州誌)'에 “덕산은 해안에 있는 작은 섬이다. 여기서 화살대로 쓰이는 전죽(箭竹)이 난다. 옛날 이곳에 회선대(會仙臺, 신선들의 놀이터)가 있었는데, 날이 가물면 여기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기록돼 있다.
미수는 66세이던 1660년 삼척부사로 좌천된 뒤 '척주지'를 편찬하고, 1661년 봄 극심한 가뭄으로 흉년이 일어났을 때 사전에 곡물을 기축해 가뭄과 기근의 피해를 최소화했다. 또 해일과 재난으로 흉흉해진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문'을 작성했다. 아름다운 죽서루(竹西樓)에 올라 '죽서루기'와 '죽서루제일계정'현판을 남겼다.
'척주지'의 기록은 맹방리에 살던 홍견(洪堅)이라는 사람의 무과급제의 설화와 연결된다. 선조5년(1575년) 인근의 맹방리에 사는 홍견이 덕봉산에서 대나무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밤에 이슬을 맞으며 정상에 올랐다. 그곳에서 7일 동안 기도한 뒤 밤에 대나무 우는 소리가 나는 곳을 가보니 한 그루에 다섯 개 대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을 베어 화살을 만들어 무과에 응시해서 급제했다. 이곳 출신의 금의손 시인이 지은 '강원도 덕봉산'이 그런 사연을 잘 보여준다.
산인 듯 섬인 듯 민물 바닷물 사이에 오뚝 서서
재넘의 남애포를 님을보듯 바라보는 덕봉산
대나무 소나무 산새 물고기 생명이 숨쉬는 곳
파도치면 물꽃 피고 계절되면 산꽃 피는 덕봉산
봉우리엔 산삼샘물 쇳독과 신선이 놀던 회선대
밤이 되면 대나무가 스스로 소리내 울던 자명죽
산기슭 물가에 옹기종기 바위들 모여 있는
내고향산 강원도의
삼척 근덕 덕산리의 덕봉산
덕봉산 해명산 비래 봉죽산 삼형제 이별하고
고개너머 남애포를 님을 삼아 살아가는 덕봉산
저막한 외로운 푸른 파다의 어부를 반겨주고
마을사람 어부들은 기우제와 소원빌던 덕봉산
새들천국 고기천국 돌바위 은빛모래밭 백사장
무과급제 벼슬시킨 오줄기 대나무 화살 자명죽
신비한 덕봉산 명산 덕봉산
강원도 삼척 근덕 덕산리의 덕봉산과 남애포는
나 태어난 내 고향
- 금의손 작사작곡, 여진주 노래, '강원도 덕봉산' 전문.
해안을 따라 한 바퀴 돌며 덕산전망대와 맹방전망대에서 ‘바멍’에 빠진다. 먼 바다에서 큰 물결이 이는 듯, 바람은 그다지 세지 않은데 너울성 파도가 높다. 수억 년을 견딘 바위들이 밀려오는 파도를 온몸으로 받는다. 그때마다 파도는 비명소리를 지르며 하얗게 부서진다.
온몸이 부서지는 아픔은 고통이 아니라는 듯, 파도는 끊임없이 들이닥치고 기암괴석은 파도를 받아들여 날마다 더 예쁜 모습으로 화장을 한다. 해안코스를 다 돌고 정상에 오른다. 산책로 옆은 온통 대나무다. 옛 기록과 설화가 그냥 있는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1957년부터 2010년까지 53년 동안 덕봉산에 있었던 3개의 초소는 이제 사용되지 않는다. 분단의 아픔이 여기까지 스며있다. 덕봉산의 아름다움과 아픔이 시로 찾아왔다.
덕봉산 맹방전망대 앞 바위 사이에서
거친 바다바람을 먹으며 참선의 꽃을 피운
해국이 활짝 웃으며 전해주는 것이었다
거세게 밀려오는 파도는 온몸으로 부딪치는 것이라고
피하면 피할수록 아프고 힘껏 껴안으면 부드러워진다고
53년은 금세 지나가듯 80년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골골이 맺힌 사연을 새김질하다보면 새날이 곧 온다고
덕산전망대 비탈에 아슬아슬하게 인사하는
구절초도 고개를 끄덕이며 추임새를 넣는 것이었다
거센 파도를 온몸으로 삼킨 바위는
날마다 더 예쁜 모습으로 거듭난다고
바람과 대나무가 소곤거리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산삼물 가득한 쇳독에 이슬방울 떨어지는 소리 들릴 거라고
- 홍찬선, '덕봉산 해국이 전하는 말' 전문.
그렇게 1박2일은 꿈결처럼 후다닥 지나갔다. 단풍철 토요일, 일요일이라 고속도로가 막혀 버스가 거북이걸음을 해도, 정체되는 도로만큼 휴게소 화장실도 장사진을 이루었어도, 휴대폰을 버스에 두고 내려 밤에 그것 찾으러 평택을 다녀왔어도, 즐거운 추억은 새로운 삶의 활력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