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 시인의 시로 보는 세상 풍경] (34) 산 너머 남촌에는 눈물 쏟았던 우리의 삶이 있다

2025-10-17     홍찬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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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365 홍찬선 칼럼니스트 = 잠깐 발을 멈추고 되돌아본다. 광복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지내온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광복의 기쁨도 잠시, 6.25전쟁이 터지고 4.19와 5.16이 일어났다.

젊은이들은 서독 광부로, 간호사로 떠났고, 군인들은 월남에 가서 피를 흘렸다. 그렇게 번 돈으로 경부고속도로를 놓고 포항제철을 지어 공업화의 기반을 닦았다. 12.12와 5.18의 비극을 6.10항쟁, 민주화로 승화시키고 88서울올림픽을 멋진 동서화합의 마당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숨 가쁘게 달려온 80년이 흘렀다. 사람은 세월의 법칙에 따라 하나 둘 저 세상으로 떠난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K팝과 K뷰티 등으로 새로운 비상을 꿈꾼다.

‘연쇄활동사진악극’으로 재현된 광복 후 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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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극은 노래와 연극과 쇼가 결합된 대중연예극이다. 1930년부터 1950년대 후반까지 유행했던 장르다. 트롯과 팝송 같은 대중가요가 유행하면서 거의 사라졌다. 그 악극이 새롭게 등장했다. 2025년 10월15일,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에서였다. 장광팔(본명 장광혁, 1945~) 만담가의 ‘1인6역’을 통해서였다.

만담가 장소팔의 아들인 그는 연쇄활동사진악극 '산 너머 남촌에는'의 기획 연출 제작 주연배우 가수 사회 등을 맡았다. 장소팔(1922~2002, 본명 장세건(張世建)) 만담가는 고춘자(高春子, 1922~1994, 본명 고임득(高任得))과 함께 6.25전쟁 이후 악극단 ‘계몽반’에서 호흡을 맞춘 만담으로 이름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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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광팔 만담가는 선친이 이름을 장소팔로 바꾼 것은 “장에서 소를 팔았다”는 뜻이라며 자신의 이름 장광팔도 “광을 팔았다”는 뜻이라고 말해 관객의 웃음을 자아냈다. 오랜만에 다시 선보인 '산 너머 남촌에는'에서 장광팔 만담가는 국악인 소춘자(본명 박경원) 변사와 호흡을 맞췄다. 경기민요 이수자인 소춘자 악극배우는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눈물 나게 불렀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광복둥이로서 거쳐온 80년 풍상(風霜)을
한 편의 서사시로 읊고 
변사(辯士)로서 관객의 웃음을 자아내고
‘굳세어라 금순아’와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로 눈물을 짓게 한 것은

선친의 만담 피가 흐르는 것이었다
움직이는 것조차 어려워할 80대에
조금도 피곤한 기색도 없이, 90분 동안 
사회가로 가수로 연출가로 주연배우로 
넓고 넓은 무대를 박수와 환호로 물들인 것은

- 홍찬선, '악극의 맥을 잇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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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악극의 또 다른 주인공은 가수 박재란(朴載蘭, 1938~, 본명 이영숙(李英淑))이었다. 박재란은 스무 살 때인 1957년 KBS 4기 전속가수에 합격해 데뷔한 뒤 '럭키모닝' '산 너머 남촌에는' '코스모스 사랑' '밀짚모자 목장 아가씨' 등의 히트곡을 남겼다.

올해 미수(米壽, 88세)인 그는 빨강과 하양의 의상을 입고 '산 너머 남촌에는'과 '사랑이여'를 열창해 관객들의 박수를 받았다. 전설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산 너머 남촌에는'은 파인(巴人) 김동환(金東煥, 1901~?)이 1927년 1월 '조선문단'에 발표한 시에 작곡가 김동현이 곡을 붙인 대중가요다.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아~ 꽃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때 나는 좋대나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저 하늘 그 빛깔이 저리 고울까
아~ 금잔디 넓은 벌엔 호랑나비 떼
버들밭 실개천엔 종달새 노래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때 나는 좋대나

- 김동환, '산 너머 남촌에는'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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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란 가수에 흠뻑 빠졌던 관객은 김광석(1955~) 기타리스트의 독주 '봄날은 간다'에 숨을 죽였다. 가요 '봄날은 간다'는 6.25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1953년, 대구 유니버설레코드 사에서 발매된 백설희(白雪姬, 1927~2010)의 노래다. 백설희는 가수 전영록(全永錄, 1954)의 어머니다.

손로원이 작사한 '봄날은 간다'의 가사는 계간 '시인세계'에서 2009년에 현역시인 1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시인들이 좋아하는 대중가요 노랫말’에서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다. 노래꾼 장사익(張思翼, 1949~)이 편곡해 중년 이상 어르신들의 애간장을 끊어놓은 노래로도 유명하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본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 '봄날은 간다' 전문, 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 백설희 노래

김광석 기타리스트는 ‘신의 손’이란 별명을 얻었다. 그의 손을 빌리면 모든 노래가 다른 곡으로 거듭난다. 그는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그룹 ‘HE-5’로 활동했고 ‘들국화’의 객원멤버로 라이브 공연을 많이 했다. 2003년에는 43곡으로 구성된 창작연주음반을 발표했다.

소리는 손가락에서 마음으로 온다
을사년 한가위를 지낸 10월15일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에서
백설희와 장사익의 노래를 넘어
세월의 애끊는 흐름을 이어받으며 온다 

감동은 줄에서 울림통으로 온다
다섯 살부터 잡은 다섯 줄,
단 닷새만 학원 다니고도
다친 다섯 손가락 아픔 딛고 한
씻김으로 다가온다

오로지 기타만이 가야 할 길이었기에
오로지 다섯 줄에 인생 걸어야 했기에
칠순을 넘어서도 기타 다섯 줄에
봄날을 보내고 가을을 맞는다

- 홍찬선, '신의 손'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