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근현대 격랑 딛고 ‘영원한 전설’로 우뚝 서다...천경자 화백 10주기 특별전
- 사후(死後) 10주기에 집중 조명된 천경자 특별기획전 - 독창적 화풍 이룬 인물화 풍물화 80여 점 전시 - 서울미술관 ‘내 슬픈 전설의 101페이지’....화가 천경자의 감동 아우라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전시장에 들어서자 추억과 감동이 밀려들었다. 이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은 무엇일까. 그것은 잊혀짐을 아쉬워했던 한 예술가의 체취, 화가 천경자의 아우라였다.
서울 부암동 서울미술관이 기획한 ‘내 슬픈 전설의 101페이지’.
화가 천경자(1924~2015)의 작고 10주기에 맞춘 특별전으로 2025년 9월 24일부터 2026년 1월 25일까지 열린다.
필자에게 이 전시회는 각별하게 다가왔다.
2006년 갤러리 현대에서 열린 화가 천경자의 생애 마지막 대규모 회고전 ‘내 생애 아름다운 82페이지’에 맞춰 평전 ‘채색과 풍물로 독창적 화풍 일군 천경자의 환상여행’을 펴냈고, 이를 토대로 2021년 ‘희곡으로 만나는 천경자 그 슬픈 전설의 91페이지-情과 恨의 화가 천경자’를 출간했다.
그리고 2025년 7월, 필자가 창단한 극단 생활의 제3회 작품으로 ‘슬픈 전설의 화가’(정중헌 원작, 강영걸 연출)를 대학로 공간아울에서 5일간 공연했다.
필자가 이처럼 책을 내고 연극 공연까지 한 것은 오로지 화가 천경자를 기리기 위해서였다.
조선일보 문화부에서 오랫동안 미술 기자를 했던 필자에게 화가 천경자는 근현대의 격랑 속에서도 올곧게 화가의 길을 걸어온 ‘우리 시대의 위대한 예술가’라고 평했다.
다시 강조해보면 천경자는 “인물화와 풍물화로 독창적 화풍을 이루었고, 붓 하나로 지구촌 다큐멘터리를 그려냈으며, 불타는 예술혼으로 자신을 해방 시킨 레전드 화가”였다.
추념할 공간조차 없이 잊혀지던 화가 천경자의 귀환
그러나 천경자는 위작(僞作) 여파로 고국을 떠나 2015년 미국 뉴욕에서 91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여러 사정으로 장례식도 갖지 못했고, 그를 추념할 만한 장소나 징표조차 없는 실정이다.
다행히 2024년 11월 작가의 고향인 전남 고흥에서 둘째 딸 수미타 김의 기획으로 ‘찬란한 전설 천경자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이 열렸다. ‘탱고가 흐르는 황혼’ 등 주요 작품과 귀한 자료들이 전시됐으나 지리적 여건 등으로 널리 주목받기는 어려웠다.
작가가 생전에 주옥같은 작품 93점을 기증한 서울시립미술관도 2024년 8월 천경자 탄생 100주년 기념 ‘영혼을 울리는 바람을 향하여’를 기획 전시했다. 4개의 섹션으로 구성하여 30점의 작품을 선보였으나, 기증작의 전모를 접하기에는 미흡해 아쉬움을 안겨 주었다.
서울시와 서울시립미술관은 화가 천경자 탄생 100주년의 의의에 걸맞은 최고 수준의 기획전을 열었어야 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서울미술관 설립자인 안병광 회장께서 “명성을 쌓아 올리는데 평생이 걸리지만 잊히는 것은 순간”이라고 했듯이, 마땅히 기려야 하고 대중과 만나게 해야 할 화가 천경자는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 최고 권위의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 화가 천경자와 작품을 국가 문화유산으로 기리고 세계에 알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위작 여파에 갇혀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
서울시와 서울시립미술관도 예술성과 가치로 볼 때 최고의 유산을 기증받았음에도 이를 적극 활용하고 기리는 일에는 소극적인 편이다.
국공립미술관이 미온적인데다 유족들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사립 미술관이나 화랑들도 천경자 기획전을 열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기댈 곳은 개인 소장자들인데 시장에서 가격이 오르면서 공개를 꺼릴 수밖에 없어 천경자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애호가들과 만나게 하는 기회가 언제 올지 불투명했다.
한 컬렉터의 열정으로 이뤄진 천경자의 통시적(通時的) 예술세계
이 같은 상황과 여건에서 서울미술관이 화가 천경자 작고 10주기에 맞춰 특별기획전을 열었다는 것은 한국 미술사로도 여러 의미가 있다.
서울 부암동의 대원군 별장과 연계되어 석파정 서울미술관으로 통용되는 서울미술관은 2012년 미술품 수집가 안병광 회장이 설립한 개인미술관으로, 초기에 한국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전시했으며, 개관 10주년 기념전 등 의미 있는 기획전을 열어왔다.
필자가 서울미술관과 연이 닿은 것은 2025년 7월, 필자가 대표인 극단 생활이 천경자의 추모 연극 ‘슬픈 전설의 화가’를 대학로 공간 아울 소극장에서 공연 중일 때, 서울미술관의 안진우 이사장과 학예관들이 관람하러 와서였다.
정중헌 원작, 강영걸 연출의 이 연극은 필자가 화가 천경자를 기리기 위해 쓴 희곡을 강영걸 선생이 연출한 마당극 형식이었는데, 그 무렵 천경자 특별전을 기획하고 있던 서울미술관 대표와 학예팀이 관람을 온 것이다.
그 연으로 필자는 서울미술관이 화가들의 엽서 그림과 편지 등을 소장품과 함께 전시한 기획전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에서 화가 천경자의 인물화 걸작 ‘고(孤)’를 접할 수 있었고, 화가 천경자를 기리는 일에 뜻을 같이하게 되었다.
서울미술관은 화가 천경자 특별기획전 ‘내 슬픈 전설의 101페이지’가 진행 중인 2025년 12월 6일과 7일 극단 생활의 ‘슬픈 전설의 화가’를 공연한다고 공지했다.
애호가들이 관람할 이 공연은 전시와 연극을 통해 화가 천경자의 생애와 예술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본다.
공연을 했던 7월 초순부터 전시회가 개막된 9월 하순 사이에 필자는 천경자 특별전을 총괄한 안진우 이사장과 여러 차례 SNS로 경과를 들었는데, 작품 수집과 진행 과정이 순탄치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미국과 국내에서 유족을 만났고, 소품 한 점을 출품받기 위해 제주도에 직접 가기도 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서울시립미술관이 소장한 대표작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를 비롯해 인물화와 풍물화 등 주요 작품 80여 점을 모았다.
전시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을 포함 18개의 미술관, 문학과, 화랑들, 그리고 개인 소장가들의 협찬으로 이루어졌다. 연대로는 1940년 후반부터 1990년대에 이르는 시대별 작품들을 모아 애호가들이 천경자의 작품세계를 통시적으로 볼 수 있게 했다.
작가 사후 명작들을 집대성한 또 하나의 완전체 회고전
2025년 10월 3일 서울미술관에서 안진우 이사장이 직접 해설하는 천경자 작고 10주기 특별 기획 ‘내 슬픈 전설의 101페이지’ 전시를 보기 전까지 필자는 솔직히 기획 의도나 전시 작품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화가 천경자를 둘러싼 주변 여건들이 녹록지 않은 일부 미술관과 소장자들이 여러 이유로 출품을 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화가 천경자의 작품세계 전모를 재조명하기가 어렵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조선일보 문화부 미술 기자로 화가 천경자를 인터뷰하기 위해 처음 만난 것은 1976년 서교동 자택에서였다. 그때 ‘산실의 대화’라는 기획에서 천 화가와 나눈 대화 내용이 담긴 기사는 지금도 고이 간직하고 있다.
1970년대 중반 조선일보는 초고속 컬러인쇄기를 도입하면서 컬러 기획을 여럿 했는데 그중 하나가 화가 천경자의 아프리카 기행이었다.
천 화가가 아프리카 여러 나라를 탐방하며 현지에서 작업한 스케치와 글을 실었는데, 미술 기자인 필자가 원고를 받고 인쇄해 나오기까지의 일을 담당해 화가와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천 화가는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찾아가는 미술관 인쇄물에 실린 ‘미인도’도 가짜라며 전화를 했고, 필자는 자택으로 달려가 자초지종을 들었다. 그 후 위작 사건의 진행 과정을 취재했고 결과를 지켜보았다.
‘미인도’는 국가 시스템에 의해 ‘진품’이란 최종 판단이 내려졌지만, 당시 화가에게 직접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는 육성(肉聲)을 들은 필자는 예술가를 지켜주어야 할 국가 기관이 왜 그렇게 외골수로 작가를 몰아세웠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결국 화가는 ‘미인도’ 사건으로 절필 후 미국으로 떠났고 외로운 투병 끝에 2015년 생을 마감했다.
필자는 1976년 이후 현대화랑과 신문회관 화랑 등에서 열린 천경자 작품전을 취재했는데 개인전 때마다 성황을 이뤘지만, 천경자 화업의 전모를 조명한 두 번의 기획전을 직접 관람하고 보도했으며 리뷰도 했다.
하나는 1995년 호암갤러리에서 개최된 천경자 회고전이고, 또 하는 2006년 갤러리 현대가 기획한 ‘천경자 내 생애 아름다운 82페이지’이다.
호암미술관-갤러리 현대의 맥을 이은 독립된 컬렉션
‘꿈과 정한의 세계’라는 타이틀로 열린 호암미술관 천경자 작품전은 채색화와 세계 기행 스케치화 등 천경자 작품 전반을 보여주는 대규모 회고전으로, 개막식에 작가가 참여해 성황을 이루었다.
2006년 갤러리 현대에서 열린 ‘천경자, 내 슬픈 전설의 82페이지’는 화가가 미국 뉴욕에서 투병중에 있어 참석은 못 했지만, 천경자 생전에 연 최대 규모, 최고 퀄리티의 기획전이었다.
이 전시에는 1950~60년대 미공개 작품 6점과 1970~80년대 대표적인 작품 30여 점, 화가 천경자가 평생 작업한 미공개 수채화, 펜화, 연필화 등 180점, 미완성 작품 42점으로 구성되어 천경자의 작품 전모를 볼 수 있었던 뜻깊은 전시였다. 특히 이 전시에는 천경자의 의상과 장신구, 화구 등이 함께 전시되어 화가의 체취를 느끼게 했다.
서울미술관이 개최한 천경자 작고 10주기 특별전은 호암미술관 회고전과 갤러리 현대 대규모 작품전의 맥을 잇는 천경자 재조명 기획전이자 추모전이라고 할 수 있다.
호암미술관 회고전은 화가 생전이어서 직접 참여했고, 갤러리 현대 기획전은 큰딸이 협조해 주었지만, 이번 전시는 서울미술관 독자적 기획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둘 수 있다.
무엇보다 1995년, 2006년에 비해 화가 천경자는 잊히고 있으며, 화가를 둘러싼 여러 문제 특히 유족 합의 등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천경자 작품전을 기획한다는 자체가 큰 용단이었다.
필자는 앞서 전시 현장을 보기 전까지 서울미술관 천경자 특별기획전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왜냐하면 호암미술관 회고전 이후 1998년 미국으로 떠났던 화가 천경자는 그해 11월 일시 귀국해 채색화와 드로잉 등 대표작 93점을 서울시에 기증했다.
이번에 서울시립미술관 소장품 중 화가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등이 출품되기는 했으나, 애호가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있는 ‘황금의 비’, 화가 천경자의 트레이드 마크인 뱀그림 ‘생태’ 등 화제의 작품들이 빠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온전체라고 볼 수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 필자의 좁은 소견이었다.
하지만 전시장을 둘러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호암미술관 회고전, 갤러리 현대 기획전에서 볼 수 있었던 명작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간 어떤 전시에서도 보지 못했던 작품들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 서울미술관 특별전은 호암미술관(1995)-갤러리 현대(2007)의 맥을 이은 또 하나의 독립된 컬렉션(2025)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2006년 화가 생애의 마지막 전시인 갤러리 현대의 ‘내 생애 아름다운 82페이지’ 이후 19년 만에 열린 특별기획전이란 점에서 의의가 컸다.
향후 또 어떤 전시가 기획될지 알 수 없으나 천경자 사후에 채색화 위주로 80여 점을 모은 이번 서울미술관의 대규모 특별전은 독자적 위상을 지녔다고 본다.
특히 천경자 작고 10주기에 맞춘 기념전이어서 앞으로 화가 재조명의 단초가 되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독자적 화풍을 이뤄낸 위대한 예술가’로 자리매김
필자는 서울미술관 천경자 특별전의 기획 의도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찾아냈다.
그것은 화가 천경자를 ‘위작 논란’이나 또는 ‘한(恨)의 화가’ 등 수식어를 떼어내고 ‘독자적인 화풍을 이뤄낸 위대한 예술가’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이다.
근대미술의 출범 이후 많은 화가들이 명멸했지만, 평생 붓을 놓지 않고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한 화가는 손꼽을 정도다.
일제 강점기인 1924년 전라도 남단 고흥에서 태어나 일본 유학을 했던 신여성 천경자는 광복과 6.25 전쟁, 혁명과 파란의 격랑 속에서도 꿋꿋이 그림을 그려왔고, 붓 하나로 지구촌 스케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낸 화가이다.
필자는 천경자의 삶과 예술을 극화한 연극을 공연하며 화가가 즐겨 써온 ‘슬픈 전설’이란 타이틀을 붙였다. 배우들이 대사 연습 중에 ‘전설(레전드)’이란 용어를 거북해하자 강영걸 연출은 “현대사의 풍파 속에서도 오롯이 화업에 정진해 독자적인 화풍을 이뤄냈다면 그것이 전설 아니겠느냐”고 하자 배우들도 수긍했다.
화가 천경자는 독창적인 인물화와 세계 기행으로 엮은 풍물화로 자신만의 화풍을 완성해 낸 한국의 예술가임을 이번 서울미술관 특별전이 명시화했다는 점을 필자는 가장 큰 성과로 꼽고 싶다.
화가 천경자를 둘러싼 뒷말들은 여전히 무성하다. 작품의 예술성보다는 ‘위작 논란’ ‘미인도 사건‘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서울미술관 안병광 회장은 인사말에서 “날이 서 있는 여러 주장들, 자극적인 이야기들보다 작가의 귀한 작품이 유산이 되어 존중받아야 한다”면서 ”미술애호가들에게 작품을 만나는 기회를 만들고 연결해 주는 일이 세상과 작가를 미술관의 할 일“이라고 전시 취지를 밝혔다.
천경자를 화가 천경자로 우뚝 서게 한 것, 이것이 이번 특별전의 핵심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저작권 환원한 최초의 화가에게 인색한 문화훈장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서울미술관 학예팀은 기획전의 첫 장을 ‘사회에 저작권과 작품을 환원한 최초의 작가’라는 표제를 달았다.
대표작 93점과 애용하던 화구를 서울시에 기증하고 일체의 저작권까지 사회에 환원한 화가라는 의미는 화가 천경자를 위대한 예술가로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는 여러 의미가 있을 것이다.
화가는 자신을 아프게 한 모든 일들과 당사자들을 용서하고 자신의 작품을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예술을 공공화했다. 이는 자신의 작품이 미술관 작품에 갇혀 있지 말고 끊임없이 대중과 소통되기를 바란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어떤가.
서울시립미술관에 상설관이 있기는 하지만 대중과의 소통이 원활하도록 기획되고 운영되는지는 의문이다.
특히 저작권 환원은 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작품이 널리 활용되기를 바라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필자도 책 출판과 공연 제작에서 서울시 관리의 천경자 저작권이 절차적으로, 경제적으로 큰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겪었다.
서울시에 어떤 원칙이 있는지 모르지만 화가 천경자가 기증한 귀중한 작품들과 저작권은 기증자의 뜻을 살려 보다 널리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울미술관 측은 화가 천경자를 우리 시대의 독보적 화가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1983년 화가에게 서훈된 은관문화훈장을 예술가 최고 예우인 금관문화훈장으로 추서되어야 한다고 특별전의 한 코너에 밝혀놓았다. 필자도 이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당국에서는 여러 논란을 이유로 들지만 이는 전통문화재 못지않은 현대 유산을 남긴 고인에 대한 합당한 평가나 예우가 아니라고 본다.
추억을 소환한 대표작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화가 천경자 특별전 전시 제목 ‘내 슬픈 전설의 101페이지’에서 101은 2015년 91세로 타계한 화가 천경자의 10주기를 기려 붙인 것이다.
천경자 유작에서 숫자를 붙인 작품은 1977년에 그린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로 시작된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소장한 이 작품은 여인이 머리에 뱀을 두르고, 가슴에 꽃을 그린 초상화이다. 동경 유학에서 돌아와 전남여고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던 시기의 복잡한 심경을 그린 자화상이거나, 22세 꽃다운 나이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동생 옥희의 초상화로 추정된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슬픈 전설의 49페이지’는 1976년에 완성해 그해 가을 국전에 출품된 작품이다.
1976년 10월 필자가 서교동 자택을 방문해 ‘산실의 대화’라는 인터뷰를 했을 때 화가는 울면서 그린 이 작품을 떠나보낸 심경부터 말했다.
”1년 내 꼬박 그린 대작을 국전에 내보내고 나니 막 내린 무대에서 텅 빈 객석을 내려다보는 심정이에요. 집안도 빈 것 같고 마음도 허전하고...“
아틀리에 한 벽을 차지했던 1백호((가로 162, 세로 130㎝)짜리 역작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가 집을 떠나자 ”해산한 산모처럼 공허가 물밀듯 스며온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작품은 ”새로운 세계로 비약하려는 작가의 창조의 정열이 뭉친 응어리“였기 때문이다. 제목이 주는 뉘앙스처럼 살아온 반생(49세)을 뒤돌아보는 작가 자신의 자전적인 이 작품은 킬리만자로, 바우바우(잎도 꽃도 안 피는 나무), 사자, 기린, 코끼리, 산돼지, 칠면조, 갈대, 그리고 꽃과 여인이 공존하는 ‘아프리카 인상 전체를 집어넣은’ 화폭에 응축한 새로운 구도와 색채 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그해 문학사상에 연재 주이던 자서전의 제목 역시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였다.
2006년 갤러리 현대 기획전은 ‘천경자 내 생애 아름다운 82페이지’라는 제목을 달았다.
화가 천경자는 2015년 91페이지로 생을 접었고, 그로부터 10년 후 극단 생활은 연극 '슬픈 전설의 화가'를 공연했고, 서울미술관은 ‘내 슬픈 전설의 101페이지’라는 타이틀로 특별기획전을 개최한 것이다.
슬픔을 딛고 찬란한 작품을 남긴 영원한 전설의 화가
이 전시 기획에 참여한 안병광 회장은 이번 특별전이 ”천경자 작가의 위대한 귀환이자 찬란한 전설의 시작, 1페이지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기자들에게 밝혔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화가 천경자가 애용하던 ‘슬픈 전설’을 ‘찬란한 전설’로 바꾸고 싶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다시 1페이지로 돌아가 화가 천경자의 역사를 다시 쓰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한 것이다.
필자는 이를 수용하면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슬픈 전설-찬란한 전설’을 ‘영원한 전설’로 도약시키고 싶다. 화가 천경자는 영원한 전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소신이다
이처럼 반세기 넘게 화가 천경자와 연을 이어오면서 책도 두 권이나 내고 공연도 한 ‘천경자 매니아’인 필자에게 이번 서울미술관 특별기획전이 주는 의미는 각별했다.
동선을 따라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 어두운 조명 속에서 필자가 천경자의 대표작으로 꼽는 ‘슬픈 전설의 49페이지’가 찬연히 드러났고, 그 옆쪽에는 이 작품을 그린 화가의 동영상과 함께 육성이 흘러나왔다.
그 순간, 온몸에 전류가 흐르듯 전율이 느껴졌다.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가 생전의 화가 천경자를 만난 것 같은 환각 속에서 1976년 10월 서교동 화실에서 첫 대면했을 때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를 국전에 출품하고 허탈해 하던 화가의 표정과 대화가 떠오른 것이다.
이 파노라마 같은 천경자와의 조우, 작가의 나신이 보석처럼 빛나는 아프리카 대작을 보는 것만으로도 필자는 숨이 막혔고 감동이 밀려들었다.
오묘한 색채의 인무
두 번째 방은 ‘개인전 마다 장사진...위대한 귀환’이었다.
천경자의 초기 작품들을 오랜만에 볼 수 있는 기회여서 작품 한점 한점이 소중하게 다가왔다.일본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를 나온 천경자는 국전(대한민국 미술전람회)이 지배했던 1960~70년대 화단에서 일본화라고 따돌림받았고, 이후 동양화가 구상과 추상으로 나뉘자 반구상이라고 푸대접했다.
천경자는 이에 굴하지 않고 독자적인 회화 양식으로 동양화의 한계를 뛰어넘는 독창적인 화풍을 선보였다. 석채로 쌓아 올린 오묘한 색채의 인물화와 풍물화였다.
영화배우 그레타 가르보와 마릴린 먼로의 초상
이 방에서 눈길을 끄는 작품은 작은 벽화를 연상시키는 ‘춘우’(1966)였다.
고향인 고흥 마을의 인상을 몽환적으로 표현한 풍경화이다. 3단 수직 구도로 그려졌는데 상단은 바다, 중간은 마을, 하단에는 산을 그렸다. 구도가 대담하고 다양한 소재가 함축되어 있을 뿐 아니라 생동하는 기운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천경자는 화가로서의 위상 못지않게 수필가로도 명성을 날렸으며, 동경 유학 시절부터 심취해 온 영화에도 조예가 깊어 영화제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청춘의 문’(1968)은 스웨덴 출신의 전설적인 배우 그레타 가르보를 모델로 한 작품이다. 그림 상단에 은막의 여신이라 불리던 그레타 가르보의 얼굴을 그렸고, 하단에는 장식적이고 몽환적인 문양과 트럼프 카드가 들어있어 초현실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두 번째 방에서 단연 눈에 들어오는 작품은 ‘팬지’(1973)이다.
화가 천경자의 대표작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 명품으로, 1970년대에 간행된 현대화랑의 미술전문지 ‘화랑’의 표지로 필자의 기억에 남아있다.
대중문화의 상징인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와 ‘사랑의 꽃’으로 불리는 색색의 팬지로 화면을 꽉 채운 단단한 구도의 소품(33x29㎝)으로,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수 있는 소재와 색채의 명화이다. 특히 젊은 날의 섹시 스타 마릴린 먼로의 몽환적인 표정이 일품이다.
꼿꼿하고 당당하게 멋지게 산 화가
제2장에서 접한 현대화랑 박명자 회장의 글도 반가웠다.
현대화랑 창립자인 박 회장은 2장의 타이틀인 ‘개인전마다 장사진...’의 그 전시를 연 주인공이다. 현대화랑(현 갤러리 현대)은 화가 천경자의 개인전을 1973년, 1974년 인사동 전시장에서 열어 관람객들이 장사진을 이루게 했고, 많은 화제를 만들어 냈다.
1980년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개최한 천경자 개인전은 필자가 취재했는데, 이때도 보석 같은 작품을 보러 온 관람객들로 성황을 이루었다.
그리고 네 번째로 2006년 갤러리 현대에서 ‘천경자 내 생애 아름다운 82페이지’전을 열어 ‘황금의 비’ 등 대표적인 채색화 30여 점과 함께 미공개 수채화, 펜화, 연필화 180점, 미완성 작품 42점 등으로 생애 전반을 돌아보게 한 뜻깊은 자리를 마련했다.
당시 필자는 1950년대 화가 천경자가 청춘 시절에 그린 ‘단장’, ‘목화밭에서’와 이번 특별전에 전시된 ‘모기장 안에 쫑쫑이’ 등 미공개 작품을 조선일보에 최초로 공개해 화제를 모았고 보람도 느꼈다.
화가 천경자와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로 네 번의 전시를 주최했고, 여러 사건들을 지켜본 박명자 회장은 좀처럼 나서지 않는 분인데, 이번 특별전 축사에서 “천경자 선생은 그의 작품과 삶이 일치하는 작가이며, 꿋꿋하고 당당하게, 그리고 멋지게 사신 분이라고 생각한다”고 회고했다. 애장하던 작품 한 점도 출품해 멋쟁이 화가를 추모한 두 분의 우정도 아름다웠다.
월남전(越南戰)에 종군화가로 참전해 전장을 누빈 천경자의 기록화
천경자 10주기 특별전의 특징 중 하나는 화가 천경자가 종군 화가로 월남전에 참전한 기록화와 스케치들을 처음으로 독립 코너로 설정한 것이다.
제3장 ‘포탄 속에서 피어난 꽃’.
이곳에는 채색화 몇 점과 기록화(복제화, 추후 원본이 온다고 함)가 전시되어 있지만, 천경자 연구의 귀중한 사료가 될 뿐 아니라 작품세계의 지평을 넓히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화가 천경자는 1972년 문화공보부가 파견한 베트남 종군화가단 10명(단장 이마동, 단원 박영선 김원 김기창 천경자 장두건 임직순 박주보 박광진 오승우) 중 홍일점으로 선정되어 파월 국군의 할약상을 담은 기록화를 제작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사이공에 도착해 B지구인 맹호부대에 배속된 천경자는 군복을 입고 작전 현장에 나가 스케치를 했고, 귀국 후 150호 크기의 기록화 2점을 제작했다.
“M16 소통을 든 병사들이 꽃나무 그늘에 잠복해 적의 동태를 살피는 매복 작전, 빼방쉐(진분홍빛 꽃)가 분홍 구름이 되어 퍼지듯 전차들이 붉은 연기를 뿜고 가는 모습을 주제로 한 그림이었다”고 화가는 밝혔다.
이 기록화는 일반에게 공개되었다고 하나 필자는 보지 못했다가 이번에 그 실체를 보고 감회가 깊었다. 필자도 월남전에 참전했었기 때문이다.
포화 속 전장(戰場)을 기록한 작품들은 긴장감이 넘치는 것이 일반적인데 천경자의 월남전 기록화는 서정적이다. 완전무장하고 총을 든 군인들이 매복한 주변에 빼방쉐 꽃이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장면을 담은 것이다. 전장터에서 총을 들고 매복을 하는 병사들의 모습을 꽃과 대비시킨 이 기록화는 여성 작가 특유의 감수성이 배어있어 강렬한 인상을 안겨주고 있다.
참전 용사들을 그린 스케치의 선들에서도 현장감이 묻어나고 있다.
이번 천경자 특별전의 메인은 제4장과 제5장이라고 할 수 있다.
제4장의 전시 공간에는 화가 천경자가 세계 각지를 누비며 현장에서 스케치한 그림들을 중심으로 한 풍물화를 모았다면, 제5장의 전시장에는 천경자 예술의 꽃으로 불리는 인물화를 볼 수 있다.
애호가들은 이 전시장에서 우리 곁으로 귀환한 천경자 예술의 진수를 접할 수 있고, 심금을 울리는 감동의 작품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스케치북 들고 단독으로 세계를 누빈 ‘에어포트 인생’
제4장은 세계를 누비며 자신을 해방시킨 천옥자다.
천옥자는 천경자의 본명이다. 천옥자는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에 입학하면서 경자(境子)로 이름을 바꿨다.
이 전시 공간의 해설을 맡은 필자는 ”더 넓은 세상을 비추는 화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라고 개명을 설명했다. ‘(불타는 예술혼으로) 자신을 해방시킨 여자’라는 제목도 필자가 펴낸 평전 '천경자의 환상여행'에서 따온 것이다.
‘에어포트 인생’이란 표현은 화가 천경자가 했지만 ‘붓 하나로 그려낸 지구촌 다큐멘터리’란 표제는 필자가 평전의 한 챕터에 붙인 것이다.
화가 천경자는 45세부터 70세까지 열 세번에 걸쳐 해외 스케치 기행에 나섰다. 세계 5대륙을 누빈 화가는 세계적으로 흔치 않을 것이다.
이번 천경자 특별전을 기획한 서울미술관 학예팀은 천경자가 누빈 스케치 기행 코스를 세계전도(全圖) 위에 표시해 이 공간의 중심에 게시했다.
관람객들은 이 스케치 여행 지도를 보며 화가 천경자의 여행길을 따라가 볼 수가 있고, 어떤 나라 어떤 곳에서 그린 것인지를 유추해 볼 수도 있다.
전시장 가운데 사각 테이블에 모아놓은 스케치 자료들도 천경자의 스케치 기행 이해에 도움을 주고 있다.
작품마다 뿜어 나오는 현장감과 생동하는 아우라
사면의 벽에 전시된 스케치와 풍물화들은 소품이지만 보석처럼 진귀한 가치가 있다. 무엇보다 작품마다 현장감, 현장의 아우라가 뿜어 나온다는 점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예술가다운 호기심과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에서 익힌 세밀한 관찰력과 묘사력으로 대상의 순간을 잡아낸 선들이 살아서 꿈틀대듯 힘이 있다.
천경자의 스케치 실력은 아프리카 맹수들의 특징을 단번에 잡아낼 만큼 달인(達人)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천경자의 스케치나 풍물화는 사진이나 영상과는 다른 따뜻한 손맛과 감성이 느껴진다. 또한 작품마다 이야기(스토리)가 담겨 있어 보는 이를 매료시킨다.
여기서 천경자의 풍물화에 대해 필자의 소견을 밝히고 싶다.
천경자 하면 인물화를 꼽는다. 애호가들의 관심이 인물화에 쏠려있고, 경매에서의 호가(呼價)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은 것이 사실이다.
이번 10주기 특별전에서도 핵을 이루는 천경자의 인물화는 필자 역시 그만한 가치와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4장에 선보인 스케치와 풍물화들도 그에 못지않다고 본다.
필자는 평전에서 천경자의 작품세계를 ‘채색과 풍물로 일군 독창적 화풍’이라고 특징지었다. 특히 강렬하고 입체감 넘치는 색채의 풍물화는 천경자 화풍의 또 다른 매력임을 강조했다.
1970~80년대 작품들을 보면 세계 일주 기행의 스케치들을 밑그림으로 삼아 새롭게 구도를 잡아 꽃과 나무, 새와 동물, 그리고 각지에서 만난 사람과 삶의 현장들을 강렬하고도 입체감 넘치는 색채 감각으로 담아낸 풍물화들이 주류를 이룬다.
따라서 필자는 천경자의 독창적 풍물화는 새로이 정리되어도록 연구하는, 재조명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이 전시장에 걸린 소품들 중 유난히 큰 풍물화 한 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특별전 입구에서 만난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와 비슷한 듯 다른 작품 '초원'(1978, 104x129㎝)이다.
앞의 도상과 다른 점이 많지만 앞의 그림에서는 나신의 여인이 코끼리 등에 웅크리고 앉아 있지만, 이 작품에서는 엎드려 있다.
두 작품 모두 화가가 단신으로 누빈 아프리카의 인상을 화폭에 압축시킨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재료를 ‘종이에 채색’이라고 표기했지만, 석채에 아교와 호분을 섞어 만든 안료로 끝도 없는 붓질로 쌓아 올린 그 기법과 효과는 천경자 채색 풍물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운명의 굴레를 벗어던진 당당한 여성 초상화, 빛나는 유산
제5장은 운명의 굴레를 벗어던진 당당한 여성 초상화이다. 앞서 적시했듯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 공간이다.
천경자 회화의 꽃으로 불리며 애호가들의 사랑은 물론 시장에서도 인기가 높은 인물화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천경자의 인물화는 자신의 자화상이거나 딸과 며느리를 모델로 한 작품도 있지만, 실제 인물의 초상화도 여러 점 그렸다.
그중 이번 전시에 출품된 노천명 시인을 그린 ‘노천명’과 한국을 다녀간 테레사 성녀(聖女)의 초상 ‘마더 테레사’는 필자도 처음 접하는 작품이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로 시작되는 ‘사슴’의 시인 노천명은 44세의 나이로 단명했는데, 이 작품은 1973년 문학지 표지로 그린 것이다. 표정이 소녀처럼 해맑으면서도 시인의 감성과 꼿꼿한 성품이 느껴진다.
2016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성인 품에 오른 마더 테레사 수녀는 1980년 한국을 방문했다. 당시 문화부 기자였던 필자는 ”가난을 어떻게 퇴치할 수 있느냐“고 질문했는데, 테레사 수녀는 ”가진 것을 서로 조금씩 나누면 된다“고 말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마더 테레사'는 1980년대 중반에 그린 것으로, 천경자 특유의 선묘(線描)와 색감으로 ‘빈자의 어머니’로 불린 테레사 수녀의 얼굴을 정면에서 그린 기념비적인 인물화다.
두 작품 모두에 꽃무리와 손을 그려넣었다. 꽃을 사랑한 천경자는 인물화에도 꽃을 배치해 ‘꽃과 여인의 화가’로도 불렸다. 여인의 하얀 손은 존경의 마음으로 여인을 감싸거나(노천명)
자비와 헌신의 상징(마더 테레사)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전시장에서는 ‘꽃과 여인’으로 표현된 대표적 인물화 두 점도 감상할 수 있다.
‘고(孤)’(1974)와 ‘사월’(1974)이다.
서울미술관이 소장한 ‘고’는 머리에 꽃을 얹은 여인상으로, 또렷한 눈망울과 고운 자태의 얼굴이 보는 이에게 고혹적인 느낌을 안겨준다. 이 작품은 강렬한 색채, 매끄러운 선, 구도가 꽉 짜인 장식적인 아름다움 등 천경자 인물화의 특성을 고루 갖추고 있다.
제목 ‘고’는 내면의 슬픔과 고독을 머금은 듯하면서도 여인의 고고함이 배어 나오는 고품격 여인상이다.
‘고’와 같은 크기의 ‘사월’은 꽃으로 장식된 면사포를 쓴 여인의 옆 얼굴을 그린 작품으로, 강렬한 눈매와 오똑한 코, 고혹적 입술과 긴 목선이 두드러져 보이는 시적(詩的)인 작품이다.
보랏빛 색조의 꽃무리에 호랑나비가 살짝 내려앉은 구도가 안정적이면서 환상적인 여인상이다. 금방이라도 계절의 시 한 편이 쓰여질 것 같은 싱그러운 분위기에 청춘의 심볼 같은 여인의 청순한 아름다움이 인상적이다.
이번 특별전을 기획한 서울미술관 측은 이 전시장의 타이틀을 ‘운명의 굴레를 벗어던진 당당한 여성 초상화’로 달면서 국립현대미술관 김인혜 학예실장의 글로 ‘여성 초상화’란 용어를 뒷받침했다.
“천경자는 오롯이 조선 땅에서 태어나 자신의 힘으로, 홀로 세파를 뚫고 나와 스스로 대중적 인지도를 이끌며 한 시대를 풍미한 여성 화가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에서 역사상 독보적 위치를 차지한다.”
“천경자는 과거의 관습적인 여성상을 깨고, 여성 스스로가 당당하고 온전한 사회적 위치를 획득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천경자가 그린 수많은 여성상은 ‘미인도’가 아니라 ‘여성 초상화’이다. 미인도는 대체로 남성 화가의 관점에서 곱게 단장한 일종의 ‘대상’으로서의 여성을 그린 것이고, 대부분 그 향유층도 남성이었다.”
이 글에서 김인혜 실장은 ”천경자가 그린 수많은 여성상은 ‘미인도’가 아니라 ‘여성 초상화’“라고 주장했다.
필자는 천경자의 여성 인물화를 조선시대 남성화가들이 그린 미인도의 프레임에서 해방시켜야 한다는 김인혜 실장의 주장에 동의한다. 하지만 천경자의 여성 인물화 모두를 여성 초상화라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조선시대 화가 신윤복이 그린 ‘미인도’는 조선시대 회화 중 여성을 가장 아름답게 그린 명화로 꼽힌다. 장우성의 ‘미인도’ 역시 남성 화가의 관점에서 그린 인물화이다.
위작 사건의 중심이 된 천경자의 ‘미인도’는 일종의 ‘대상’으로서의 여성을 그린 그림이 아닌데 왜 ‘미인도’라는 제목을 달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천경자의 작품집 어디에도 ‘미인도’라는 제목을 붙이지 않았는데, 화가 천경자가 내 그림이 아니라고 주장한 이 여인상은 왜 ‘미인도’일까 하는 궁금증도 지울 수 없다.
따라서 천경자의 여성 인물화에 ‘미인도’라는 제목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여성 초상화라고 하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다.
왜냐하면 초상화는 특정한 사람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말하는데 천경자의 여성 인물화 중에는 ‘노천명’이나 ‘마더 테레사’같은 특정한 인물의 초상화도 있지만, 대상이 없이 작가의 상상으로 그려진 여성 인물화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미인도’는 남성 중심, 인물화가 보편 용어
호암미술관 학예연구원이었던 최광진 씨는 1970년대 후반 이후에 등장하는 천경자의 여인상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초기의 전설적인 여배우들이나 ‘길례언니’의 아름답고 이상적인 여인들이 아니라, 그러한 달콤한 맛을 다 빼버리고 쓴맛이 풍기는 여자로 대치된다. 이전의 여인상들이 그의 현실 속에 등장하는 여인상들이었다면, 70년대 후반부터는 현실 너머의 4차원의 세계에서 온 듯한 초월적인 여인상을 그리고 있다.”
화가 천경자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도 우주의 마녀를 그리고 싶다고 했다. 달콤한 맛을 다 빼고 쓴맛이 풍기는 우주인 같은 마녀를 금속성의 색채로 그리고 싶다고 했다.
이 같은 인간의 실체가 아닌 우주 마녀를 그린 인물화까지 여성 초상화라고 하는 것은 한계가 있는 만큼 김인혜 실장이 주장한 ‘독립적인 주체로서의 여성’과 ‘여성성’은 존중하되 ‘여성 초상화’보다는 보다 보편적인 ‘인물화’라는 표현이 적절하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서울미술관 학예팀은 ”천경자 작가가 그린 여성 인물화는 단순한 초상화가 아니라, 현실적인 삶에 밀착한 생동감 넘치는 인물화“라는 정의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관람객들과 만나는 천경자의 애틋한 추모 공간
제6장 예술이 되어버린 책 전시장에는 천경자의 그림으로 장정된 80여 개의 책 표지와 원본을 전시했다.
김종규 삼성출판박물관 관장은 “1970년대 중반까지 도서 장정은 ‘출판 미술’, ‘출판 예술’이라 일컬어도 좋을 만큼 화가들의 주요 무대였다. 이 시기의 책은 단순한 지식의 매개체를 넘어‘예술이 책이 되고, 책이 곧 예술이 되었다’”고 기고에서 밝혔다.
이 공간에서는 표지화에 나타난 화가 천경자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만나 볼 수가 있다.
애호가들이라면 추모공간 ‘91페이지의 기록’과 제7장 ‘그러나 그는 좀 고약한 예술가였다’에 전시된 유명인들의 글과 작가의 생애 사진과 자료들을 살펴보면서 화가 천경자가 남겨놓은 삶의 궤적들을 짚어가며 하늘의 별이 된 천경자를 추모해도 좋을 것이다.
또한 이금희 아나운서의 목소리로 천경자의 주요 작품 설명을 들으면서 감상하면 천경자의 작품세계를 보다 친근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오디오로 작가 박경리의 ‘천경자를 노래함’과 이 미술관 설립자이자 이번 전시를 주도한 안병광 회장의 기획 의도도 들을 수 있는데 글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미술관에서 보는 연극, 극단 생활의 ‘슬픈 전설의 화가’
서울미술관은 이번 특별기획전을 계기로 이벤트도 펼친다.
11월 중순 데일리아트와 함께 펼칠 ‘길 위의 미술관’은 작가의 삶을 따라 관련 공간을 돌아보면서 작가의 체취를 느껴보는 탐방프로그램이다.
또한 금년 7월 대학로 공간아울에서 공연했던 천경자 추모 연극 ‘슬픈 전설의 화가’를 초청, 12월 6일과 7일 서울미술관 4충 메트릭스홀에서 공연을 가지는 것도 이번 전시의 또 다른 묘미가 될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천경자 작고 10주기 특별기획전 ‘내 슬픈 전설의 101페이지’는 2006년 갤러리 현대의 대규모 회고전 이후 근 20년 만에 개최된 통시적(通時的) 전시회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생전에 화가가 즐겨 사용했던 ‘슬픈 전설...’은 ‘찬란한 전설’로 승화되어 ‘영원한 전설’로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