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평 - 새로운 서평] 예술가의 탄생 · 우리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外

- [비평연대] 서민서··최상현·이솔림·김성신의 500자 서평

2025-10-10     김리선 기자

젊은 문화비평가와 출판전문가들의 커뮤니티인 '비평연대'에서는 숏폼콘텐츠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500자 내외의 '매우 짧은 연대 서평'의 형식을 고안했습니다. 2030세대 지식인 특유의 빛나는 감각으로 제시되는 다양한 책들을 통해 지식의 최전선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터뷰365 편집자주]

■ 예술가의 탄생(유경희 저, 아트북스, 2010)

"들려주소서, 여신이여."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뮤즈 여신에게 이야기를 해주길 청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뮤즈는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아홉 명의 여신이다. 뮤즈가 영감을 주지 않으면 예술가는 자신의 기량을 뽐낼 수 없는 거다. 이렇게 보면 제아무리 개성과 성깔과 거대한 자아를 뽐내는 예술가라고 해도, 결국 뮤즈가 보내준 영감을 받아 적는 필경사이자 신의 말을 전하는 무당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 세계에선 어떠한가. 주로 '남성/예술가-여성/뮤즈'로 이루어진 구도에서 뮤즈는 한없이 수동적으로 그려졌다. 예술가 특유의 여성 편력의 희생양, 예술가의 일생에서 스쳐 가는 수많은 애인 중 조금 독특한 한 사람에 불과했다. 정말 그럴까? 영감을 주는 주체적인 여신은 어디로 갔을까.

'예술가의 탄생'은 작품 뒤에 가려진 예술가의 삶에 주목하여, 그 안에서 영감의 원천이 된 뮤즈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어떤 사람이 변덕스럽고 위태로운 예술가의 곁을 지키며 영감을 줄 수 있을까. 뮤즈들은 때론 안정감을 주고, 때론 신선한 열정을 불어넣으며 예술성이 만개할 수 있도록 했다. 수동적인 모델이나, 조력자를 넘어서 영감을 주는 주체적인 한 사람. 사실 우리가 되고 싶은 건 독보적이고 뛰어난 예술가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영감을 받고 싶은 사람에게, 그리고 영감이 되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서민서 / 출판편집자·비평연대)

서민서

■ 아무튼, 메모(정혜윤 저, 위고, 2020)

작가가 작품을 구상할 때 적은 메모를 본 적 있다. 한 권의 책이 완성되기까지 얼기설기 적힌 메모는 누군가 살아 있음을 증언하는 일이자 내 생각의 자리를 타인이 차지하지 않도록 하는 능동적인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겪는 삶의 한계는, 모두가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보고 해석한다는 데 있다. 그럼에도 나의 관심 밖에서 떠난 이들은 지금도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 늦은 밤까지 택배를 배달하는 기사, 독립유공자 후손, 고립 청년, 쓰레기를 수거하는 미화원, 쪽방촌에 거주하는 노인의 이야기를 노력 부족 따위로 삶을 납작하게 만들 수 없음을 보여준다.

아무리 노력해도 거절당하는 자들에게 손찌검하기보다 슬픔을 덜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메모는 필수적이다. 이들의 삶을 기록한 메모는 언젠가 이야기로 펼쳐내는 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책에서 언급하듯 메모는 혼자서 사는 삶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이야기(69p)’를 전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이 책은 절판되어 서점에서 구할 수 없다. 그렇기에 나는 기록가로 살고 싶다. 비평연대를 하는 이유도 어디선가 잊혀갈 이야기를 건져 전하기 위함이다.(최상현 / 출판평론가·9N비평연대)

최상현<br>

마지막엔 누룽지나 오차즈케로(후카자와 우시오 지음, 김현숙 옮김, 공명, 2025)

소설가 후카자와 우시오의 첫 에세이는 뜻밖에도 음식 이야기다. 의외였지만 읽고 보니 그가 왜 ‘먹는 일’을 통해 삶을 돌아보려 했는지 이해가 된다. 재일한국인으로 한국과 일본 사이에 놓인 처지로 살아온 그에게 음식은 가장 일상적인 것이자 매일 넘어야 했던 경계였다.

그의 글에는 서러움과 유머가 나란히 놓인다. 김치를 먹는 한국인이라 차별받고, 김치를 잘 먹지 못한다고 한국 친척에게 눈총받았다는 고백에는 씁쓸한 웃음이 스며 있다. 그 어긋남은 집에서도 계속되었다. 우시오의 아버지는 제 발로 현해탄을 건너온 자긍심 강한 한국인이었고, 어머니는 차별과 위협 속에서 한국인임을 숨기기로 결심한 재일동포 2세였다. 그 사이에서 자란 우시오는 스시도 김치도 좋아하지 않는 아이로, 어느 쪽에도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한 채 늘 두 세계의 틈에 서 있었다.

그런 기억을 안고도 그는 음식 앞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만의 방식으로 음식을 새롭게 조합하고 두 세계의 맛을 섞으며 살아간다. 한국에서 열린 지난 북토크에서 그는 ‘신라면에 두유 넣어 먹기’, ‘김치에 크림치즈 곁들이기’ 같은 자신만의 레시피를 소개했다. 귀엽고 기발한 취향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가 오랫동안 싸워온 경계를 부드럽게 녹여내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기획되어 일본에서 먼저 출간된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이 책의 여정은 우시오의 삶을 닮았다. 스시와 김치 사이에서, 누룽지와 오차즈케 사이에서, 일본과 한반도 사이에서 그는 오늘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소화하고 있다.(이솔림/출판편집자·비평연대)

이솔림<br>

우리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로냐 폰 부름프자이벨 지음, 유영미 옮김, 지베르니, 2025)

이 책은 독일 저널리스트이자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인 로냐 폰 부름프자이벨이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2년간 통신원으로 활동하던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집필했다.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 이야말로 우리가 함께 사는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부정적인 뉴스만 소비하다 보면 우리는 잘못된 상태를 일시적이고 변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바꿀 수 없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런 상태를 바로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라고 한다.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이런 상태에 빠지고 나면 이후엔 내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실제 현실이 그렇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단순히 세상에서 무엇이 잘못되어가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정보와 새로운 데이터들만이 아니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러한 정보와 데이터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에 대해 서로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매일같이 접하는 세상의 수많은 불의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우리가 무력해지거나 통제력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세상을 다시 더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해결책들을 찾을까? 어떻게 서로를 북돋울까?…”

‘깨어있는 시민’이 되기 위해서 우리에게 어떤 질문들이 필요한지, 바로 그것을 알려주는 책이다.(김성신 출판평론가, 비평연대 가디언즈)

김성신<b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