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어느 대가족을 통해 본 1970년대 말 마산의 시대상...연극 ‘마산시절’
- 차현석 작, 연출 ‘마산시절’...사실주의 연출기법 빛나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대학로 미미지아트센터 물빛극장에서 관람한 차현석 작, 연출의 ‘마산시절’(10월 2~12일)은 지공연협동조합(이사장 권남희)의 11번째 작품으로 그 시절 어느 때를 조명한 복고풍(레트로)의 시대극이다.
시대는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 한국 현대사의 격변기이다.
장소는 마산.
2010년 창원 진해와 통합되어 창원시의 구(區)가 되었지만, 당시 시(市)였던 마산은 민주화의 상징이었고 예향이었다.
1979년 10월에 반독재 민주화 시위인 부마(釜馬)항쟁이 일어났고, 10월에 박 대통령 시해사건, 1980년 신군부 등장과 텔레비전 컬러화가 시행되었다.
연극 ‘마산시절’은 이 같은 사회적 긴장과 시민 저항이 강했던 시기, 6남매를 둔 마산의 한 대가족의 일상과 사건을 사실극으로 보여준다.
연극이 영화나 드라마, 다큐멘터리와 다른 점은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실제처럼 연기해 현장 아우라가 생생하다는 것이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한 가정의 대청마루처럼 꾸민 무대에 교자상 세 개가 놓이고 수저와 그릇들로 밥상이 차려졌다. 대부분 장면은 먹는 시늉이지만 경찰서에 잡혀있다가 풀려난 큰아들은 닭백숙의 다리를 실제로 뜯기도 했다.
여기서 주목되는 점은 이 작품을 쓰고 연출한 차현석의 스타일이다. 그의 작품을 여럿 보아온 필자는 차현석 특유의 '메소드'라고 하고 싶다.
극작을 전공한 그는 1980년대 민주화 투쟁 시절의 상처와 갈등을 2인극으로 심도 있게 그려낸 ‘흑백다방’으로 두각을 나타낸 후 ‘칸사이 주먹’ 등 많은 작품을 쓰고 연출해왔다.
사회적 문제뿐 아니라 현대사, 시대극에도 관심이 많은 그는 실제 현장같은 무대 연출 방식이 특징이다. 등장인물도 많고 먹는 장면도 실제처럼 보여주는 연극도 여러 편 공연했다.
필자가 생활연극을 하던 시절, 차현석 작 연출의 창작극 ‘미슐랭’을 공연했는데, 안락사 문제를 다룬 무대에서 실제 음식을 먹는 장면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차현석 연출이 ‘마산시절’에서 보여준 연출방식은 사실주의 또는 자연주의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현실감을 극대화하는 데 역점을 두어 연극이지만 실제같은 느낌이 들게 하는 장면이 적지 않았다.
배우들 또한 대사뿐 아니라 행동까지 실제처럼 자연스럽게 표현해 관객들에게 실감을 안겨주었다. 특히 온 가족이 밥상에 둘러앉아 식사하는 몹신에서 사실주의 연출기법이 빛을 발했다.
10여 명의 대가족이 모여 식사하는 장면이 두 차례 나오는데, 10남매 환경에서 자란 필자는 이 장면이 특히 실감 나게 다가왔다.
차현석 연출은 복고풍을 살리기 위해 그 시절 대중가요, 텔레비전 인기 프로그램, 디스코 춤, 의상과 헤어스타일을 살려냈다. 혜은이의 ‘제3한강교’와 비지스의 ‘트레지디’ 등의 노래에 손자세대들이 코러스처럼 백 댄스를 추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필자는 이 연극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사건이나 이념을 부각 시키지 않았다는 점을 꼽고 싶다. 부마항쟁이 일어나고 대통령이 시해되고 신군부가 들어서는 격변의 시대, 작가는 한 가족을 통해 묵직한 주제를 던질 것으로 예상했으나, 연극은 그 시절로 시간을 돌려(벽시계의 바늘로 시간을 돌리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스케치하듯 한 집안의 작은 풍파와 그 저류를 그려냈다.
누가 옳고 그르고가 아니라 그 시절을 살았던 삶의 풍경들을 그려냄으로써 필자같은 시니어 세대에게 그때 그 시절 추억을 떠올리게 해준 점이 이 연극의 미덕이었다고 본다.
비판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그때 시대 변화 속에 가장을 중심으로 한 가정의 일상을 그려냈지만, 그때를 경험하고 40여 년을 더 살아온 필자 세대에게는 느끼고 동감하는 대목이 많았다. 관객들도 각자의 관점에서 느끼는 점이 달랐을 것이다.
필자는 한 번도 의자에 기대지 않고 몰입해 연극을 보았다. 젊은 관객들도 순식간에 객석이 연극 현장으로 변하는 현장 아우라를 실감하며 실제 같은 배우들의 연기에 푹 빠져 관람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사실주의 연극에서 핵심은 배우이고 그들의 캐릭터 연기이다.
이 작품에는 14명의 배우들이 출연하는데 나이와 성별을 떠나 그 시절 그 집 식구이거나 관련 인물로 캐릭터 변신을 해 실제처럼 연기를 해냈다는 점을 꼽고 싶다. 개인기도 좋았지만 14명의 앙상블이 타임머신 타고 그 시절로 돌아간 듯 진솔해 관객을 몰입시켰다.
역시 커리어가 많은 아버지 역 맹봉학, 어머니 역 전서진 배우의 연기가 차분하면서도 극에 강약을 주는 중심 역할을 했다.
말수는 적지만 묵직한 감동을 주는 부정, 6남매를 키워내며 풍파를 겪어낸 모정이 이 작품의 주제이자 메시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3남 3녀와 손자 둘, 불우한 자매 둘의 역을 맡은 배우들이 나이를 극복하고 캐릭터에 충실해 보기 좋았다.
이 대가족을 쇼 사회자처럼 끌어가는 셋째 아들 역 이장훈 배우의 넉살 연기가 돋보였다. 기타 치고 노래하며 연기도 한 그는 춤추는 두 조카(이영준 엄정인 배우)와 생동감 넘치는 장면을 만들어냈다.
콤비 연기도 빛이 났다. 큰딸 역 송경아와 권력기관에 근무해 마산 가족을 지켜온 사위 역 송경익 배우는 차분하면서도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캐릭터를 잘 보여주었다.
전화 교환원으로 군인과 연애하는 둘째 딸 역 김루시아와 고등학생이며 언니 닮아 연애하는 막내딸 역 조하연의 자매연기는 그 시대 교제 모습을 실감 나게 연기했다.
대학생으로 시위에 참여해 경찰서에 끌려간 맏아들 역 박채익의 묵직함, 그 형을 빼내려고 경찰에 항변하는 둘째 아들 최담의 열연도 그 시대 억압 분위기를 깨는 사이다 같은 청량감을 안겨 주었다.
자매의 애인인 마산남 1, 2를 맡은 김병수 배우의 능청스러운 연기, 시대의 희생자로 시대를 지켜보는 상순 역 배효미, 언니 역 염창선 배우도 극의 또 다른 한 축을 살려냈다.
역사의 어떤 격변의 시대에도 민초들은 묵묵히 그 파고를 견디며 살았다.
특정 사건의 원인을 규명하는 연극도 필요하겠지만 ‘마산시절’처럼 그 시대의 삶을 통해 그때를 추억하고 지금의 우리를 다시 생각하는 시대극이 필자에게는 정겹고 아프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