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記者)에서 기사(技士)로..."지면에서 독자를 생각했듯, 지금은 승객 안전이 최우선이죠"
[신향식 365칼럼] 김민수 씨, 신문기자 은퇴 후 마을버스 기사로 '2막 인생' - 김민수 씨가 전하는 스마트폰 시대에 전하는 안전의 철학 - 화면에 눈 빼앗기는 순간 발은 허공에…아찔한 순간 많아 - “사고는 순간, 고통은 평생”…대중교통 운전하면서 배운 교훈 -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는 것, 그것이 가장 값싼 보험”
인터뷰365 신향식 칼럼니스트 = 버스 안에서 휴대전화(스마트폰)에 눈을 빼앗기는 순간, 발은 허공을 딛는다. 순간의 방심은 곧 평생의 불행이 될 수 있다.
얼마 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김민수 씨(65)가 모는 마을버스에서 한 승객이 동영상에 몰두하다 계단을 헛디뎠다.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지만, 옆 승객이 붙잡아 겨우 막을 수 있었다.
“눈은 화면에 있고, 발은 허공에 있었던 겁니다.”
김 씨는 전직 신문 편집기자이자 지금은 마을버스 기사다. 그는 이런 장면을 누구보다 자주 목격한다.
펜끝에서 핸들로 이어진 두 번째 인생
김민수 씨는 조선미디어그룹 스포츠조선과 국민일보사 스포츠투데이에서 오랫동안 편집전문기자로 일했다. 활자 하나에도 신경을 곤두세우던 그는 은퇴 후 도로에서 두 번째 인생을 시작했다.
13년째,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서 마을버스를 몰며 새벽 첫차부터 자정 막차까지 긴 하루를 이어간다. 활자를 다듬던 손길은 이제 승객들의 하루를 안전하게 실어 나르는 일로 변했다.
“신문을 편집하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면에서 독자를 생각했듯, 지금은 승객의 안전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에게 버스는 작은 신문이다. 노선은 섹션, 승객은 독자. 기사(記者)였던 그는 이제 기사(技士)다. 하지만 본질은 같다. 섬세함과 집중력으로 사람 곁에 무언가를 더하는 일.
“신문은 오탈자 하나에도 신뢰가 흔들립니다. 버스도 마찬가지예요. 급정거, 급출발은 모두 오탈자 같은 겁니다. 작은 실수가 큰 사고로 이어지거든요.”
버스 안은 ‘작은 극장’
버스 안은 날마다 작은 극장이다. 웃음과 눈물이 교차하며 희극과 다큐멘터리가 번갈아 펼쳐진다. 김 씨는 단골 승객들의 얼굴을 다 기억한다. 늘 타던 어르신이 보이지 않으면 하루 종일 마음이 무겁다.
“예전엔 독자가 내 지면을 어떻게 읽는지 몰랐습니다. 지금은 승객이 웃어주면 안심이고, 불편한 표정을 지으면 제 잘못을 돌아보게 되죠.”
스마트폰는 이제 버스 안의 가장 큰 위험 요인 중 하나다. 스마트폰과 버스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이 많다. 한 학생은 음악에 빠져 정류장을 놓치고, 직장인은 게임에 몰두하다 내릴 곳을 지나친다. 한 직장인은 동영상을 보며 계단을 내려오다 휘청거린다. 작은 화면에 몰입하는 순간, 현실의 안전은 사라진다.
“버스에서 내릴 땐 발을 먼저 확인해야 하는데, 화면을 보면서 내려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눈은 화면에 있고, 발은 현실을 놓치는 겁니다.”
눈은 화면에, 발은 현실에 두어야
버스 안의 방심은 곧장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 번의 헛디딤으로 평생을 끌고 가야 할 장애가 생길 수 있다. 이어폰에 갇혀 주위를 놓친 채 차창 옆으로 나서다, 정차한 버스에 부딪혀 크게 다칠 수도 있다.
“사고는 늘 순식간에 일어납니다. 하지만 그 뒤의 고통은 평생 갑니다.”
버스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다. 도로 위를 달리는 공동체의 한 조각이다. 그 조각이 흔들리는 순간, 한 사람의 부주의가 자신뿐 아니라 옆 승객, 가족, 이웃의 삶까지 무너뜨릴 수 있다.
작은 화면 속 세상에 빠져 현실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곧 자신과 이웃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무책임이다.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는 것, 그것이 가장 값싼 보험이다.
승객과 운전자에게 보내는 편지
김 씨는 승객들에게 “조금 늦더라도 안전이 먼저다. 자리에서 일어나실 땐 미리 벨을 눌러 주시고, 버스에 오르기 전 교통카드를 준비해 주시면 모두가 편해진다”고 당부한다.
승용차 운전자들에게는 “버스가 깜빡이를 켜면 양보해 주셔야 한다. 승용차 한 대의 몇 초보다 버스 한 대의 수십 명이 훨씬 무겁다”고 강조한다.
기자와 기사, 두 이름의 자부심
은퇴 후 요양보호사로도 일했던 그는 거동이 불편한 승객을 돕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언젠가 나도 저 자리에 앉을 거라 생각하면 더 정성껏 하게 된다”고 말했다.
“저는 기자였고, 지금은 기사입니다. 하지만 둘 다 사람 곁에서 성실히 일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습니다.”
신문으로 세상을 밝혔듯, 이제는 버스로 사람들의 하루를 밝힌다. 기자였던 자부심도, 기사인 지금의 성실함도 결국은 한 길, 성스러운 노동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