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 시인의 좋은 시 365] 정호승 시인의 ‘산산조각’
시는 인간 마음속 심상(心像)에서 피어나는 혼불과도 같습니다. 깊은 사유의 내면에서 길어 올린, 짧지만 응축된 언어문학의 보석과도 같은 시의 세계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좋은 시와 함께 조용하지만 반짝이는 하루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산산조각 / 정호승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 '이 짧은 시간 동안' (창비, 2004)
정호승 시인은 1950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따뜻한 언어로 우리 곁을 지켜온 한국의 대표 서정시인입니다. 1972년 군 복무 시절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며 문단에 나선 그는, 53년 동안 일상의 작은 순간에서 사랑과 희망을 길어 올리며 수많은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져 왔습니다.
그의 시는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삶의 기도를 닮았습니다. 믿음과 휴머니즘이 어우러진 시어 속에는 아픈 마음을 다독이는 위안이 스며 있고, 소박한 일상조차 빛나는 의미로 다시 태어납니다.
시집으로는 '슬픔이 기쁨에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슬픔이 택배로 왔다', '편의점에서, 잠깐' 등이 있으며, 지금까지 시집 13권과 동시, 동화, 우화, 산문집 등 20여 권의 책을 펴냈습니다. 그의 시 가운데 90여 편은 정태춘, 이동원, 안치환, 김광석, 양희은, 유익종 등 가수들의 목소리를 통해 노래가 되었고, '이별노래', '부치지 않은 편지', '우리가 어느 별에서',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등은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편운문학상, 상화시인상, 공초문학상 등의 문학상을 받았으며 2023년 대구에 개관한 정호승문학관을 통해 그 문학적 성취를 기리고 있습니다. 지금도 전국 곳곳을 다니며 독자들을 만나 지친 마음을 보듬고 고통을 견디고 살아갈 용기를 전하는 그는, ‘치유의 시인’, ‘사랑의 시인’으로 불리며 폭 넓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