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하영 365칼럼] 검열 시대, 결혼식을 가장한 금지된 공연...연극 '미러'
[주하영 평론가의 짧은 단상] - 영국 극작가 샘 홀크로프트 웨스트엔드 흥행작 한국 초연
심층 문화 비평 칼럼 <앨리스 박사의 문화로 보는 세상풍경>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주하영 칼럼니스트가 또 하나의 새 칼럼 <주하영 평론가의 짧은 단상>을 선보입니다. 짧은 형식 속에 담긴 자유롭고 날카로운 문화적 통찰을 기대해 주세요. [편집자주]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연극은 본질적으로 거짓말이다. 현실을 바탕으로 하지만, 창작을 통해 허구로 만들어낸 환상을 무대에 구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극이 보여주는 환상은 우리의 현실을 뒤흔들어 전복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연극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 아니,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 현실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 그것은 고대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극작가들의 소망이자 꿈이기도 했다. 연극이라는 예술이 충분히 사람들의 마음을, 신념을 뒤흔들 수 있기에, 역사 속에서 연극은 종종 저항의 수단으로 또는 선동의 수단으로 이용되곤 했다.
영국 극작가 샘 홀크로프트(Sam Holcroft)의 2023년 초연작인 연극 '미러(A Mirror)'는 매우 흥미로운 방식으로 예술의 정치적 역할과 선동적 기능, 현실과 허구의 중첩성과 스토리텔링의 힘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예술 작품에 대한 검열이 엄격하게 이루어지는 전체주의 정권의 이름 없는 국가를 배경으로 하는 연극은, ‘결혼식’을 위해 사람들이 모일 수 있도록 공식적으로 허가를 받은 장소에서 시작한다.
실제로 ‘조엘과 레일라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하객들처럼, 식순이 적힌 종이까지 손에 들고 꽃 장식과 흰 커튼으로 꾸며진 무대 주변의 객석에 자리한 관객들은, 신랑 신부 입장뿐 아니라 들러리의 축하공연까지 진행되는 결혼식의 과정을 경험한다.
하지만 결혼식은 ‘위장’일뿐이다. 허가받지 못한 이야기를 공연하기 위한 속임수는 진짜 결혼식이 펼쳐지고 있는지를 감시하는 시선에서 자유로워졌다고 판단되는 순간, 연극이 공연되는 무대로 전환된다.
연극 '미러'는 홀크로프트가 남편과 함께 2011년 북한을 방문했던 경험과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베이루트에서 레바논과 시리아 출신의 극작가들과 함께 작업했던 경험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검열 기관에 작품을 제출해야 할 뿐 아니라 객석에 비밀경찰이 숨어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까지 염두에 둔 채 작업에 참여하는 극작가들을 보면서, 홀크로프트는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녀는 영국 관객들이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금지된 연극을 관람하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체험하도록 함으로써,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충격 속에서 관객이 스스로 많은 질문에 휩싸이기를 원했다.
따라서 연극 '미러'는 결혼식이라는 외피를 걷어내고 시작되는 공연 속에서, 연극이 연극에 대해 질문하고 논의하는 ‘메타 드라마(metadrama)’적 특징과, 극중극 안에서 유사한 현실의 소재를 각기 다르게 구현한 두 개의 짧은 연극이 관객 앞에 펼쳐지고 비교가 가능해지는, 상당히 복잡한 구조를 구축한다.
결혼식을 진행하는 무대에 배치된 의자와 테이블, 꽃장식과 커튼이 빠르게 공연을 위한 무대로 재배치되고, 예복을 벗고 다른 의상으로 갈아입은 배우들이 극중 인물로 전환되며, 장면의 시간적·공간적 배경을 담은 팻말을 들어 보이며 시작된 연극은, 때때로 경찰 호각 소리와 불안을 증폭하는 발자국 소리에 의해 중단된다.
발각될 위협을 알리는 휘파람 경고가 불시에 전해지면, 또다시 빠르게 결혼식장으로 재배치되는 무대는 하객으로 자리한 관객들에게 들러리의 축가나 국가에 대한 충성 선서를 함께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한다.
연극 '미러'는 본질적으로 그 자체가 ‘허구’이지만, 현실과 허구의 경계 속에 놓인 관객의 위치를 교묘하게 조종하는 일을 반복하며, 금지된 공연을 관극하는 불안을 관객이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극에 대한 사전 정보나 스포일러가 없을수록 예측 불가능한 반전을 즐길 수 있는 작품이지만, 작가인 홀크로프트가 겨냥하고 있는 질문들을 염두에 둔다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예측 불가능함과 반전, 외피와 내피를 겹겹이 둘러싼 복잡한 층위는 관객의 호기심과 몰입을 위한 도구일 뿐, 홀크로프트가 던지는 핵심 질문들은 연극이라는 예술의 기능과 작용, 권력이 연극을 통제하려는 이유, 그리고 관객이 연극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진정 무엇인가에 대한 사유이기 때문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녹취록을 작성하듯 희곡에 담아내는 전직 공병단 특수병 출신의 정비공 ‘아덤(Adem)’과, 문화부 고위 공무원으로 엄격한 검열을 통해 예술의 싹을 잘라내기보다는 재능을 이용해 선전을 목적으로 하는 프로파간다(propaganda) 작가로 양성하려는 ‘첼릭(Čelik)’의 대립은, 결국 연극이라는 예술이 성취할 수 있는 효과와 목적, 관객이 직면하게 되는 진실 혹은 허상과 관련이 있다.
홀크로프트는 전쟁의 폭격 속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포병 출신의 문화부 신입 직원 ‘메이(Mei)’를 통해 연극을 보고 희곡을 읽으며 성장하는 관객의 시선을 반영한다.
연극 공연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메이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고, '맥베스'의 대사를 인용하며, 켈린 전투를 소재로 아덤이 쓴 극사실주의 대본과 국가에 헌신하는 작품만 써온 극작가 ‘백스(Bax)’의 영웅주의 대본을 비교하면서 도달하게 되는 궁극의 ‘인식’은, 연극이 비출 수 있는 현실과 진실의 문제를 제기한다.
권위주의 체제가 ‘검열’을 통해 연극이라는 예술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데에는, 연극이 관객으로 하여금 무대가 다루는 적나라한 진실이 주는 불편함과 충격 너머로, 사유를 통해 ‘깨달음’에 도달하도록 만든다는 점이 이유로 작용한다.
외면하고 싶은 것들을 마주하도록 만드는 ‘거울’의 작용을 하는 연극은, 깨달은 것들을 다시 모르던 때로 되돌릴 수 없는 인간이 지닌 두뇌의 특성과 함께 현실의 ‘변화’를 위해 움직이도록, 행동하도록 만든다.
한 공간에 모인 사람들이 동시에 같은 깨달음과 감정을 느끼게 되는 신비한 일체감, 그것이 체제를 고수하려는 자들이 두려워하는 변화의 힘이자 혁명의 원동력이기에, 폭력 정권 속에서도 극작가들이 진실을 드러낼 길을 찾아 그토록 분투해 온 것이 아닐까?
영국은 군주제에서 정치적·도덕적 내용을 다루는 것을 금지하기 위해 1737년에 제정한 검열법이 1968년까지 230여 년간 지속된 역사를 갖고 있다. 모든 희곡이 공연 전 제출되고 허가를 받아야 했던 검열법의 막을 내리게 한 작품은 극작가 에드워드 본드(Edward Bond)의 '이른 아침(Early Morning)'이었다.
현실에 자리한 폭력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 오히려 ‘극단’의 상황을 선택해 관객의 정신에 ‘충격’을 줌으로써 인식을 통한 ‘혁명’에 이르고자 한 본드는, ‘무대 위에 어떤 일이 발생했는가’가 아니라, ‘발생한 일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실을 바탕으로 한 허구”를 통해 “허구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현실”이라는 혁명을 목표로 삼았던 본드는 연극이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관객이 무대를 통해 기존에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사고의 틀이 깨지는 “인식의 충격”을 체험하는 “자기 경험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연극을 통해 진정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진실일까, 신화일까, 아니면 환영일까? 우리가 원하는 것이 진실이라면, 우리는 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거짓’이자 ‘허구’인 예술을 통해 그 진실에 다가가고자 하는 것일까? 또, 연극을 통한 인식의 전환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정신의 혁명을 통한 사회 변화를 진정 일으킬 수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