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 시인의 시로 보는 세상 풍경] (26) 제비다방과 외국인선교사묘역서 이 땅을 사랑한 사람들을 만나다
인터뷰365 홍찬선 칼럼니스트 = 모든 만남은 우연이다. 어느 날 문득 동남풍이 불어 날아간 곳에서 뜻하지 않은 사람을 만난다. 우연히 만난 사람은 새로운 인연이 되어 새로운 삶의 한 부분으로 다가온다. 그런 인연이 쌓이고 쌓여 자칫 심심해질 수 있는 인생이 보다 풍부해진다. 그런 측면에서 만남은 필연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의 자취를 찾아 제비다방에 가다
1930년대, 일제강점 암흑기의 종로1가에 제비다방이 있었다. 비운의 천재, 이상(李箱, 1910~1937)이 1933년에 개점했다가 1935년 9월에 문을 닫은 곳이다.
이상은 폐결핵을 치료하기 위해 황해도 배천온천으로 요양을 떠났다가, 그곳에서 만난 기생 금홍을 데려와 제비다방을 차렸다. 이상은 이곳에서 시 '오감도(烏瞰圖)' 등의 작품을 썼다.
이상의 벗 구본웅(具本雄, 1906~1953) 화가는 이상의 초상화('우인초상', 1935)와 금홍을 모델로 한 것으로 추정되는 '목이 긴 여인 초상'(49.5×64.7㎝)을 그렸다.
제비다방이 원래 있던 곳은 종로구 종로1가 33-1이었다. 지하철 1호선 1번 출구로 나와 광화문 쪽으로 100m쯤 가면 오른쪽에 있는 농협 자리다. 이상의 ‘제비다방’은 없어졌지만, 제비다방은 전국에 7개가 있는 것으로 조사된다. 그중에 서울 마포구 상수동 330-12에 있는 제비다방에 갔다.
지하철 6호선 상수역 3번 출구에서 남쪽(한강 쪽)으로 115m에 있다. 예상한 대로 제비다방에서 이상의 흔적을 찾기는 어려웠다. 상수동 제비다방은 음료와 맥주를 팔며 언더그라운드밴드의 공연을 하는 곳이어서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곳. 그곳에서 이상 대신 연극영화과 1학년 학생을 우연히 만났다. 젊은이들의 풋풋한 삶을 경험한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제비다방에서 이상을 찾는 건
초가집에서 스마트폰 타령하는 것이었다
90여 년의 시차(時差)와
20km 정도의 공차(空差)는
뛰어넘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그래도 모든 게 다른 건 아니었다
‘돈도 없고 좆도 없지만’이라는 현판이
이상의 자존심을 애처롭게 보여주고 있었다
N포와 부린이라는 우울 속에서도
환한 웃음으로 내일을 얘기하는
젊은이들의 풋풋한 향기도 피어났다
이상(李箱)은 제비가 되어
이상(理想)으로 날고 있었다
- 홍찬선, '제비다방에서 이상을 찾다' 전문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던 외국인들
제비다방을 나와 서쪽으로 걸었다. 합정동에 있는 외국인선교사묘원에 가기 위해서다. 지하철 2호선과 6호선 합정역 7번 출구에서 200m 정도에 있는데,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걷는 거리와 직접 걸어가는 거리가 얼추 비슷해 보였다. 9월이라 바람도 제법 선선해 걷기도 좋았다.
이곳은 조선 시대에 버들나루(양화진, 楊花津)를 지키는 양화진(楊花鎭)이 있던 곳으로, 1890년 7월14일에 외국인 선교사 묘역으로 조성됐다. 고종(高宗, 1852~1919)이 조선을 위해 일하다 서거한 외국인을 안장하기 위해 만들었다.
미국의 존 헤론 선교사가 1890년 7월 28일, 처음으로 묻힌 뒤 7개국 417명의 외국인이 영면하고 있다. 그들은 대한을 대한인보다 더 사랑해 이름을 대한식으로 짓고, 죽은 뒤에도 본국으로 돌아가는 대신 대한 땅에 묻히겠다고 했다.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해 항일의병 활동을 있는 그대로 전해주었던 영국인 어니스트 베델(배설(裵說), 1872~1909) 사장, 을사늑약의 무효를 전 세계에 알리려 고종의 특사로 활동했던 미국인 호머 헐버트(헐벗, 1863~1949) 박사, 연희전문(현 연세대)을 설립한 호러스 언더우드(원두우(元杜尤), 1859~1916) 목사, 대한제국 국가를 작곡한 독일인 프란츠 에케르트(1852~1916), 이화학당에 다니던 김점동(金點童, 박에스더, 1876~1910)을 미국 유학 보내 한국의 최초 여의사로 만들고, 한국에서 의료활동을 한 로제타 셔우드 홀(1865~1951), 한국에서 최초로 전선을 깔고 서울-인천 간 전화를 가설한 덴마크인 헨리 뮐렌스테트(미륜사(彌綸斯), 1855, 1915) 등이 대표적이다.
서울-인천 간 전화는, 명성왕후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일본인을 맨주먹으로 때려죽이고 일제의 입김을 받는 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인천 감옥에서 수감 중이던 김창수(후에 김구(金九)로 개명, 1876~1949)를 살리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올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 더 알아 갈수록 지나간 시간에 경건해진다
맨 처음에는 어니스트 베델 사장을 만났고
그 다음에는 호머 허버트 박사와 인사하고
세 번째는 로제타 홀 의사를 찾아 뵙고
네 번째는 미륜사, 헨리 뮐렌스테트를 어렵게 발견했다
대한사람보다 대한을 더 사랑했던 그분들
살아서는 대한의 독립을 위해 싸우고
죽어서는 대한 땅에 묻히기를 바랬던 그분들
그분들의 무덤 앞에 갈 때마다
나는 한없이 쪼그라들었다
조국의 완전독립을 위해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위해
너는, 무슨 일을 했느냐는 천둥으로 내리치는 질문에
소스라쳐 서둘러 되돌아 나왔다
- 홍찬선,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 전문.
외국인선교사묘원에 왔다가 그냥 돌아가기는 뭔가 아쉽다. 지하철 6호선을 타고 망원역 2번 출구로 나와 망원시장에 간다. 40년 전통을 자랑하는 망원시장에 들어가면 푸근하다. 시장 입구로 들어가 왼쪽에 있는 막걸리집으로 들어간다.
전국에서 유명한 막걸리를 골고루 맛볼 수 있어 좋다. 안주는 막걸리고 마시는 것은 파전이다. 막걸리 첫 잔을 대한 사람보다 대한을 더 사랑했던 외국인을 위해 헌주(獻酒)한다.
당신들이 목숨 바쳐 지키려고 한 대한을 세계 그 어느 곳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건배한다. 기분 좋게 얼큰해지면 망리단길을 걷는다. 망원1동주민센터를 중심으로 망원동 403-7에 길게 형성돼 있는 젊음의 거리다. 9월의 밤은 그렇게 시원하게 익어간다.
망원시장에서 막걸리를 안주 삼아 파전을 먹고
망리단길을 별과 숨바꼭질하며 걸으면
구월의 밤은 그냥 시가 되는 게 아님을 안다
말에서 말이 나와
말을 잇고 또 말이 되어
삶은 말이 되고
말이 시가 되는 밤
자리가 많지 않아
긴 줄을 서서
사랑은, 느긋하게 기다리는
인내의 미학에서 시작됨을 깨닫는다
멀리 바라봄이 안주로 익어
반쯤 먹은 달이 발갛게 물드는
구월의 밤이 문득 시로 손짓할 때까지…
- 홍찬선, '망원시장과 망리단길'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