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 시인의 시로 보는 세상 풍경] (25) '케데헌'의 명동과 삼일로창고극장서 인연을 걷다
인터뷰365 홍찬선 칼럼니스트 = 길을 나선다. 가을바람 기분 좋게 부는 9월의 금요일 오후, 연극 플라뇌르(Flaneur)를 보러간다. 플라뇌르는 프랑스어로 산책자라는 뜻이다. ‘산책자’는 시인 샤를 보를레르(1821~1867)가 즐겨 쓰던 말이라고 한다. 느긋하게 걷는 것은 시인에게 여러 영감(靈感)을 떠올리기에 좋은 몸 움직임에서다. 마침 극장도 명동성당에서 가까운 삼일로창고다. 명동을 산책하면서 연극 ‘플라뇌르’를 보는 것은 가을맞이에 더없는 안성맞춤이다.
나석주 의사와 이회영 선생 6형제를 만나다
지하철2호선 을지로입구역에서 하나금융그룹 명동 사옥으로 나온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 동양척식주식회사(동척, 東拓)가 있던 곳이다. 건너편 롯데호텔에 있던 조선식산은행(식은, 殖銀)과 함께 조선과 조선 백성들을 수탈하던 양대 기관이다.
나석주(羅錫疇, 1892~1926) 의사는 1926년 12월28일, 식은과 동척에 폭탄을 던진 뒤 일제 헌병 및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다 마지막 남은 한 발로 스스로 순국했다. 동척은 광복 뒤 내무부 건물로 사용되다가 1960년 4.19혁명 때 학생과 시민에게 발포 명령을 내린 곳이기도 하다. 그 뒤 외환은행 본점이었다가, IMF 외환위기 때 부실채권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은행에게 넘어갔다.
하나금융 건물 서쪽 모퉁이에 ‘나석주 의사 동상’이 서 있다. 1999년 11월17일에 건립됐는데, 명동과 을지로를 오가는 많은 사람들은 잠깐의 눈길도 주지 않는다. 명동 산책에 앞서, 외롭게 서 계시는 나석주 의사에게 먼저 인사드린다.
여기 나석주 의사의 동상이 있습니다
두 눈 부릅뜨고 두 주먹을 굳게 쥔 모습이
무슨 일이 있어도 대한독립을 이루겠다는 다짐을 보여줍니다
밥 한 끼 굶더라도 조선 동아를 꼭 사본 건
일본 놈 처단했단 너의 이름 보려 한 것이라는
아버지의 피눈물 편지를 잊지 못했습니다
식은(殖銀)과 동척(東拓)을 없애야
일제의 수탈을 없앨 수 있다는 판단 아래
혼자 두 곳에 폭탄을 던졌습니다
상해에서 만들어 압록강 건너오는 동안
습기를 먹은 폭탄은 님의 뜻을 외면했고
일제에 잡히지 않으려 깨끗하게 자결했습니다
- 홍찬선, '아! 나석주' 전문.
나석주 의사를 뵙고 명동성당 쪽으로 간다. 명동성당 앞 길에 ‘이재명 의사 의거 티’라는 표지석이 있다. 이재명(李在明, 1890~1910) 의사가 대한제국을 일제에 팔아먹은 역적 이완용(李完用, 1858~1926)을 칼로 찔러 중상을 입힌 사실을 알리는 표지석이다. 1909년 12월22일 오전 11시, 군밤 장수로 변장한 이재명 의사는 벨기에 황제의 추도식을 마치고 나오는 이완용의 배와 어깨를 칼로 찔렀다. 이 의사는 이듬해 9월30일, 의연하게 “공평치 못한 법률로 나의 생명을 빼앗지만은 국가를 위한 나의 충성된 혼과 의로운 혼백은 가히 빼앗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순국했다.
그 앞에 ‘명동문화공원’이란 이름이 붙은 조그만 공원이 있다. 공원 한쪽 벽에는 이 지역과 관련된 얘기가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다. 명동(明洞)이란 이름은 이 지역이 조선시대의 명례방(明禮坊)에서 온 말이다. 명례방에는 종현(鍾峴, 종고개) 니현(泥峴, 진고개) 동현(銅峴, 구리개) 등 여러 고개가 있었다. 종현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군대가 주둔하며 숭례문에 있던 종을 걸어두었던 데서 유래했으며, 1898년에 명동성당(당시 이름은 종현천주교성당)이 들어섰다. 진고개는 땅일 질어서, 구리개는 흙이 구릿빛이라서 붙은 이름이다.
또 조선시대 대표적 시인인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1587~1671)가 한때, 명동성당 자리에서 살았다.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오성(鰲城)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의 후손들이 살던 곳이기도 하다.
YWCA를 돌아 은행연합회로 가면 오른쪽에 우당(友堂) 이회영(李會榮, 1867~1932) 선생의 흉상(胸像)과 함께 6형제 집터가 있었다고 알려주는 표지석이 있다. 만석(萬石)에 이르는 재산을 모두 처분해 6형제가 함께 만주로 망명,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해 항일독립투쟁에 나선 한국의 대표적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분들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 Oblige)는 ‘고귀한 신분에 상응해 따르는 도덕적 의무’를 가리킨다.
은성주점 터에서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을 읊다
명동성당 뾰족탑에 저녁노을이 발갛게 걸렸다. 아름다운 그 모습에 끌려 발걸음을 옮긴다. 계단을 오르다 오른쪽에 예쁜 조각이 있어 가본다. 김수환 추기경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서 2022년에 건립한 시비인데, 정호승 시인의 시 '명동성당'이 새겨져 있다. 시비에 십자가 두 개가 있는데, 큰 십자가는 세상을 구원해주는 예수의 십자가이고, 작은 십자가는 예수를 따라 살아가며 새겨야 할 우리의 십자가를 상징한단다.
명동성당을 상징한 시비의 오른쪽 큰 돌은 자모인 성교회를 뜻하고, 왼쪽 작은 돌은 김수환 추기경과 우리 자신을 가리킨다. 시비 아래쪽 검은 돌은 초창기 교회의 혼돈과 암흑기에서 순교자의 피로 세워진 교회(붉은색 돌)와 그에 양분을 얻어 성장한 교회(초록색 돌)가 사랑과 희망의 선교로 계속 이어짐을 표현한다.
바보가 성자가 되는 곳
성자가 바보가 되는 곳
돌멩이도 촛불이 되는 곳
촛불이 다시 빵이 되는 곳
홀연히 떠났다가 다시 올라올 수 있는 곳
돌아왔다가 고요히 다시 떠날 수 있는 곳
죽은 꽃의 시체가 열매 맺는 곳
죽은 꽃의 향기가 가장 멀리 향기로운 곳
서울은 휴지와 같고
시대에 이미 계절은 없어
나 죽기 전에 먼저 죽었으나
하얀 눈길을 낙타 타고 오는 사나이
명동성당이 된 그 사나이를 따라
나 살기 전에 먼저 살았으나
어머니를 잃은 어머니가 찾아 오는 곳
아버지를 잃은 아버지가 찾아와 무릎 꿇는 곳
종을 잃은 종소리가 영원히
울려 퍼지는 곳
- 정호승, '명동성당' 전문.
정호승 시인의 시를 음미하며 명동성당 안으로 들어가 본다. 마침 미사를 드리는 중이어서 잠깐 의자에 앉아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는다. 김수환 추기경과 이재명 의사와 이회영 선생과 박인환 시인의 명복을 빈다. 돌아 나와 한국 최초의 사제 순교자인 김대건(金大建, 1822~1846) 신부의 흉상(胸像)에 인사드린다.
이제 시간이 조금 남았다. 서둘러 은성주점이 있었던 곳으로 간다. 명동예술극장에서 서쪽으로 50m쯤 가다 보면 오른쪽에 ‘문화예술인이 찾았던 은성주점 터’라는 표지석이 있다. 박인환(朴寅煥, 1926~1956) 시인이 죽기 며칠 전, 이곳에서 즉석으로 시 '세월이 가면'을 지었던 곳이다. 당시 함께 있던 이진섭 작곡가가 즉석에서 곡을 붙이고, 가수 나애심이 노래를 부른 것으로 유명하다. 은성주점은 전혜린(田惠麟, 1934~1965) 씨도 죽던 날 와서 술을 마신 곳이기도 하다.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거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
- 박인환, '세월이 가면' 전문.
삼일로창고극장에서 연극 ‘플라뇌르’를 보며 가을을 즐기다
삼일로창고극장으로 간다. 명동성당에서 남산1호터널 쪽으로 오르막길을 3분쯤 가다 보면 오른쪽에 있다. 삼일로창고극장은 1975년에 ‘에저또 소극장’으로 개관한 국내 최초의 민간소극장이다.
고(故) 추송웅(秋松雄, 1945~1985) 배우가 1976년에 초연한 모노드라마 '빨간 피터의 고백'은 32일 만에 관객 1만3000여 명을 동원하는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관객 감소로 경영난을 겪다 2015년 10월 폐관됐다가, 2018년 6월에 재개관했다.
연극 ‘플라뇌르’는 조승표 극본, 김시율 연출, 김평화 민규태 주연으로 9월9일부터 9월14일까지 삼일로창고극장에서 공연한다. 극장에 들어서면 무대에 긴 의자 하나와 등산배낭이 하나 놓여 있다. 조명은 2개다. 스피커에서 작은 소리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이 많은 곳인데, 이따금 안내방송 같은 게 들린다. 공항이나 기차역 또는 버스터미널 대합실 같다.
연극이 시작된다. 악천후로 비행기가 연착돼 멈춰버린 공항에서 두 남녀가 우연히 만난다. 둘은 예전에 작가와 배우로 만난 적이 있다. 그때 배우는 삶을 포기하려고 했는데, 작가가 쓴 '통곡에 대하여'라는 책을 읽고 다시 살 힘을 얻었다고 한다.
작가는 어렸을 때 자기를 버리고 떠났던 엄마가 죽었는데, 49재를 지내지 않기 위해 뉴욕으로 떠나왔다. 이제 기자로 바뀐 작가는 더 살 의미를 찾지 못하고 생을 포기하려고 한다. 배우는 '통곡에 대하여'를 매개로 기자를 설득해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향해 문을 열고 나아가라고 한다. 삶과 죽음과 인연을 생각해보는 연극 ‘플라뇌르’였다.
산다는 건 인연이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만들어진 인연의 실타래가
죽음을 삶으로 바꿔 놓는다
너는 나에게 등대가 되고
나는 너에게 나침반이 되어
힘든 삶을 함께 이겨 나간다
산다는 건 산책이다
문을 열고 나가
바람을 쐬고 바람을 찾는다
안에만 갇혀
가위눌린 고통을 훨훨 날려버리고
새로운 꿈으로 웃음 짓는다
- 홍찬선, '산다는 건 산책이다' 전문.
명동은 영화 K팝데몬헌터스(케데헌)의 흥행 덕분으로 전 세계 사람들이 즐겨 찾는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케데헌에서 ‘사자보이스’가 공연했던 명동거리와, 케데헌의 마지막 장면이었던 남산이 연계돼 외국인 관광이 증가하고 있다. ‘플라뇌르’ 대본을 쓴 조승표 작가 등 젊은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져, 명동이 1960년대 예술의 중심이었던 위상을 다시 찾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