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희 감독의 AI스토리텔링] '아이리스' '이몽' 조규원 드라마 작가가 말하는 AI 활용법
[인터뷰365] 조규원 드라마·시나리오 작가 - AI 활용, "MBTI가 다른 보조작가 몇 명과 함께 일하는 기분" - AI 스토리텔링 ‘창작 진입장벽의 민주화’로 누구나 스토리텔링 수월해져 - 인간–AI 협업...인간이 시작하고, 인간이 끝내는 '퐁당퐁당 방식' 이상적 - "글 마무리 AI에게 맡기면 인간미 없는 ‘노잼’ 글 됩니다"
AI스토리텔링은 인공지능(AI)이 사람과 협력하거나 스스로 이야기를 창작하는 기술 및 개념을 의미합니다. 스토리텔링 작법서 '4줄이면 된다'의 저자 이은희 감독이 AI스토리텔링에 관심 있는 다양한 분야의 인물을 만나 4가지 주제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응답을 듣는 새로운 형식의 인터뷰 시리즈를 선보입니다. <편집자주>
인터뷰365 이은희 인터뷰어(/감독 겸 작가) = 어느 날, 최근 펴낸 저서 ‘4줄이면 된다’를 바탕으로 북 워크숍을 마친 뒤 밝은 미소와 장난기 가득한 얼굴의 한 남성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그는 “기성 작가들도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말이 너무 공감됐다”고 말했다. 그는 알고 보니 2009년 KBS 드라마 ‘아이리스(IRIS)’와 2019년 MBC 드라마 ‘이몽’을 집필한 조규원 작가였다.
이 북 워크숍은 AI 스토리텔링 수업의 일환으로, ‘코어의 힘’을 기르기 위해 진행된 자리였다. 이미 저명한 기성 작가가 AI 스토리텔링을 배우기 위해 직접 워크숍을 찾아다니는 열정은 무척 인상 깊었다. 다양한 대화를 나누며 알게 된 것은, 조규원 작가는 이미 AI를 스토리텔링의 보조 도구로 활발히 활용하며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확장적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와의 만남을 통해 실제 작가들이 생성형 AI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생생하게 들어보았다.
- 작가의 길은 어떻게 걷게 됐나요. 현재 근황도 궁금합니다.
"‘스토리’라는 일은 만화에서 시작했습니다. 대본소용 만화 스토리를 쓰면서 출발해 출판만화를 거쳤고, 이후에는 애니메이션과 영화 시나리오 작업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저는 늘 ‘침몰하는 배에 올라탄 듯한 위기감’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래서 드라마 '서동요'에서 보조작가로 일하며 ‘스토리’라는 일을 다른 방식으로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상파 드라마 '이몽'을 집필하면서도 다시 한 번 큰 위기를 체감했고 이어서 넷플릭스가 국내에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또다시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한·일 합작 OTT 드라마 극본 작업과 더불어,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에서 작가 지망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병행하면서 동시에 완전히 새로운 콘텐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1. 여정과 경험
- "AI, 스토리텔링 보조 도구로 활발히 활용...정보수집·캐릭터 설정에 도움"
- "낮아진 스토리텔링 진입장벽...더 높은 완성도 커트라인 요구될 것"
- AI 스토리텔링 분야에서 어떤 경험과 성과를 이뤘는지요?
"제가 느낀 가장 큰 성과는 ‘아이디어 확장’과 ‘자료 조사 효율성’입니다. 얼마 전부터 저는 브런치를 통해 ‘트리트먼트노블’이라는 작업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트리트먼트노블’은 문체의 아름다움보다는 스토리라인을 강조하는 글로, 쉽게 말해 트리트먼트와 소설의 중간쯤에 위치한 글입니다. 드라마를 위한 회별 트리트먼트를 조금 더 디테일하게, 소설처럼 풀어보려는 저만의 새로운 글쓰기 도전이지요.
첫 시도는 우주정거장에서 2년째 혼자 지내는 한 남자의 이야기였습니다. 우주 환경, 생명 유지 시스템, 심리적 고립감, 과학적 디테일 등 방대한 자료 조사가 필요했는데, 예전 같으면 보조작가를 두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을 겁니다. 하지만 AI를 활용하니 기본적인 정보 수집과 1차 정리가 비약적으로 빨라졌습니다. 검증은 여전히 제 몫이었지만, 전체 소요 시간이 크게 줄어든 거죠.
또한 캐릭터 설정에서도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예를 들어 AI에게 “특정 트라우마를 가진 40대 남성 주인공의 내면적·외면적 장애를 연결하는 구체적인 설정”을 요청하면, 심리학적 근거와 다양한 변형안을 제시해 줍니다.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관점에서 캐릭터의 모순과 딜레마를 날카롭게 짚어내기도 했습니다. 마치 MBTI가 다른 보조작가 몇 명과 함께 일하는 기분이랄까요."
- 그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나 순간이 있으셨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새로운 드라마의 캐릭터를 개발할 때였습니다. 처음에는 전형적인 ‘복수에 사로잡힌 주인공’을 구상했는데, AI에게 “관객은 이해할 수 있지만 결코 공감해서는 안 되는 악인의 조건”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목적은 선하지만 방법에서 선을 넘어서는 캐릭터”라는 답을 내놓았죠. 이를 바탕으로 브레인스토밍을 이어가 탄생한 캐릭터가 ‘불치병에 걸린 딸을 살리기 위해 장기 매매 조직을 운영하는 아버지’였습니다. 사랑이라는 순수한 동기에서 출발했지만, 무수한 무고한 피해자를 양산하는 모순적 존재였던 거죠.
놀라운 건 AI가 이 캐릭터의 심리적 합리화 과정까지 단계별로 제시했다는 점입니다.
1. 첫 번째 희생자에 대한 죄책감
2. 딸에 대한 책임감으로 인한 자기 합리화
3. 점진적 도덕적 마비
4. 최종적 괴물화
이 논리적 여정을 보며 저는 곧바로 한 인물을 떠올렸습니다. 바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의 월터 화이트입니다. “가족을 위해 마약을 제조하는 고등학교 화학교사”라는 설정 말이지요. 누군가는 “AI가 결국 기존 캐릭터의 변주만 만든 것 아니냐”고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확신을 얻었습니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보편적인 플롯은 몇 개 되지 않는다는 제 생각이 증명된 셈이었으니까요."
- AI 스토리텔링이 대중과 산업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AI 스토리텔링이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창작 진입장벽의 민주화’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스토리텔링이 재능과 경험, 그리고 방대한 지식을 요구하는 전문 영역이었죠. ‘작가’라고 하면 “우와~” 하던 시절이 있었잖아요. 하지만 이제는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AI의 도움으로 스토리 구조와 캐릭터 개발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에서 수강생들을 가르치면서 그 변화를 직접 목격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기초적인 스토리 구조와 캐릭터 설정을 만드는 데만 몇 달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AI의 도움 덕분에 몇 주 만에 캐릭터 아크를 설계할 수 있습니다.
물론 진입장벽이 낮아진 만큼, 앞으로는 오히려 더 높은 완성도의 커트라인이 요구될 것입니다. 기본적인 수준은 AI가 대신해주기 때문에, 결국 철학·심리학·문학·인간에 대한 깊이를 담은 작품들이 인공지능 시대에 더욱 빛을 발할 거라 생각합니다. 특히 장르물에서는 전문 자료 조사와 고증 작업에서 AI의 역할이 절대적이지요.
우려되는 점도 있습니다. 바로 AI 생성 콘텐츠의 범람입니다. 자칫 모든 이야기가 비슷한 패턴을 따라가며 획일화된 서사 구조가 만연할 위험이 있습니다."
- AI 스토리텔링 작업에 대한 개인적 정의와 활용 방식은?
"‘작가作家’라는 한자에는 ‘집을 짓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가우디가 성당을 설계했지만 직접 돌을 나르지 않았듯, 에펠이나 로댕 역시 조수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스핑크스 또한 누군가의 구상과 수많은 인부들의 노동으로 세워졌겠지요. 마찬가지로 인공지능은 설계자인 작가를 돕는 ‘조수’입니다. 제가 가우디가 될지, 에펠이 될지는 제 선택입니다. AI가 써주는 대로 끌려가면 인부에 불과하지만, 제 의지로 조수를 움직인다면 저는 설계자이자 진짜 작가가 됩니다.
제가 다양한 매체에서 깨달은 건, 완전한 창작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이야기는 기존 요소들의 새로운 조합이자 편집이고, AI는 그 과정을 더 정교하고 효율적으로 돕는 파트너입니다. 그래서 저는 시작과 마무리를 AI에게 맡기지 않습니다. 이 점에서 작가 지망생들과 차이가 나는 듯합니다. 실제로 교육원 수강생들의 습작을 보면 제가 “이 기획안, AI가 손봤죠?”라고 묻는 경우가 있는데, 지금까지 적중률이 100%였습니다.
기획 아이디어를 던지고 초안을 맡기거나 영감을 얻는 것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마무리를 AI에게 맡기는 순간, 인간미가 사라진 ‘노잼’ 글이 탄생합니다."
2. AI 스토리텔링의 본질과 가능성
- AI 스토리텔링 '창조'가 되기 위해선 인간이 주도권을 가져야
- AI 스토리텔링을 '창조'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우선 ‘창조’의 정의부터 분명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만약 창조를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본다면, AI 스토리텔링은 창조라 부를 수 없습니다. AI는 기존 데이터의 패턴을 학습하고 재조합할 뿐, 진정한 의미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 역시 무에서 유를 창조해본 적은 없습니다. 제가 읽고,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이 제 작업에 조합되어 결과물이 나올 뿐입니다. 셰익스피어도 기존 전설과 역사를 재료로 삼았고, 스타워즈 역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와 웨스턴 무비의 조합이었습니다. 결국 창작은 기존 요소들의 새로운 배열이다라는 관점에서 보면, AI 스토리텔링도 충분히 창조적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누가 그 재조합을 주도하느냐입니다. AI가 단독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은 창조라기보다는 정교한 모방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인간 작가가 주도권을 쥐고, AI를 ‘조수’로 활용해 자신의 의도와 철학을 담아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분명 창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렇다면 AI 스토리텔링은 인간 창작을 어떤 방식으로 보완할 수 있을까요?
"작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백지 상태’입니다. AI는 이런 상황에서 수십 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해 창작의 출발점을 마련해 줍니다. 예컨대 제가 단순히 “복수를 꿈꾸는 주인공”이라는 설정만 던져도, AI는 복수의 동기, 방법, 장애물 등을 체계적으로 제안합니다.
또 작가가 작품에 지나치게 몰입하다 보면 객관성을 잃기 쉽습니다. 이때 AI는 이야기의 구조적 문제를 차갑게 짚어줍니다. “2막에서 주인공의 동기가 불분명하다”, “클라이맥스의 임팩트가 부족하다” 같은 피드백이 대표적이죠. 게다가 AI는 의학·법조계·과학 등 전문 분야의 팩트 체크에 큰 도움이 됩니다. 심지어 사극 대사의 톤이나 사투리 변환에도 유용합니다."
- AI가 발전하면 보조작가의 역할은 사라지게 될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다만 역할과 개념은 달라질 것입니다. 사실 ‘보조작가’보다는 ‘스태프 라이터(staff writer)’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릅니다. 요즘은 AI가 워낙 빠르게 아이디어를 뽑아주기 때문에, 단순히 아이디어 제공자라는 차원에서는 AI가 훨씬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보조작가의 본질은 아니거든요.
보조작가는 단순히 아이디어를 던지는 존재가 아니라, 메인 작가와 제작 과정을 함께 고민하고 토론할 수 있는 대화 파트너입니다. 실제 제작 과정에서도 보조작가는 자료 조사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신을 쓰고, 메인 작가가 그것을 다듬으면서 작품을 완성해 갑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수정 비중이 줄고, 그만큼 역량이 인정되면 페이도 올라가는 구조입니다."
- 앞으로 보조작가에게 요구되는 역량은 어떤 점일까요?
"월급을 받으며 훈련하는 인턴 단계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실력만이 아닙니다. 뻔하지 않은 발상, 참신한 아이디어, 원만한 커뮤니케이션 능력, 인간적인 태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대화가 잘 통하면 훈련도 잘 받습니다. 결국 보조작가는 사람과 사람의 호흡이 필요한 자리니까요. AI 드라마가 이미 중국에서 동물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제작될 정도로 현실화되었지만, 그렇다고 보조작가가 사라지지는 않을 겁니다. 오히려 AI와 함께 새로운 방식으로 훈련받고, 메인 작가와 협업하며 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3. 인간의 역할과 개입
- 거침없이 쓰는 AI...‘거짓말 패치워크’를 명품 코트로 오인하면 안돼
- AI와의 소통이 중요한 이유...AI가 내 성향 파악하면 작업의 질 높아져
- AI 스토리텔링에서, 오히려 인간 작가가 더 배우거나 개선해야 할 지점이 있다고 느낀 적이 있다면요?
"이건 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꼭 배워야 할 점인데요. AI는 고민하느라 글을 못 쓰는 법이 없습니다. 저도 한때 지망생이었을 때는 빈 워드 파일을 띄워놓고 멍하니 있거나, 웹서핑만 하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영감이 떠오를 때까지 기다린다’는 핑계였죠.
그래서 저는 요즘 지망생들에게 늘 말합니다. “일단 써!” 라고요. AI는 거침없이 씁니다. 심지어 거짓말도 거침없이 하죠. 그렇기 때문에 인간 작가의 역할이 더 중요해집니다. 어설프게 알고 있으면, AI가 만들어내는 ‘거짓말 패치워크’를 진짜 명품 코트인 줄 알고 입고 나가버릴 수 있으니까요.
또 한 가지, 저는 ‘대한민국 50대 남성 아저씨’를 제외한 거의 모든 영역에서 AI에게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제가 세네갈 해변에 사는 14세 소녀의 감성을 얼마나 제대로 흉내 낼 수 있겠습니까? 그런 캐릭터를 작품에 녹여내려면, AI의 도움을 받는 편이 훨씬 높은 퀄리티를 낼 수 있습니다. 이건 예전과 확실히 달라진 지점입니다."
- AI와 협업할 때 인간 작가의 가장 중요한 개입 지점은 어디인가요?
"저는 흥행하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캐릭터의 장애와 초목표가 확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명확한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죠. AI는 은근슬쩍 구렁이 담 넘어가듯 뭉개는 경우가 많거든요. 실제로 제가 가장 자주 개입하는 부분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늘 “이 캐릭터라면 정말 이렇게 행동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AI의 논리적 제안을 인간적 진정성으로 걸러냅니다. 저는 이 과정이야말로 인간 작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렇다면 이상적인 인간–AI 협업 방식은 무엇일까요?
"저는 ‘퐁당퐁당 방식’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봅니다. 핵심은 간단합니다. 인간이 시작하고, 인간이 끝낸다는 원칙이죠.
인간이 초안을 작성한다 →AI가 보강과 제안을 한다 →인간이 검토하고 수정 요청을 한다 →AI가 다시 수정한다 →최종적으로 인간이 마무리한다는 방식이죠.
이 패턴은 브레인스토밍, 로그라인, 줄거리, 캐릭터 설정, 에피소드 구성 등 모든 단계에서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AI가 먼저 제안하는 순간부터 주도권은 서서히 넘어가기 시작하고, 마지막 제안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작품은 결국 ‘AI가 만든 것’이 되어버리니까요. 그래서 저는 반드시 첫 펜과 마지막 펜은 인간이 쥐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 향후 인간 작가에게 기대되는 새로운 능력이나 감각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저는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역량 중 하나가 누군가와 대화하고, 공감하고, 티키타카하는 그 힘이 AI와의 협업에서도 예상치 못한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즉 수다 떠는 능력이라고 봅니다.
처음엔 저도 AI를 단순한 도구로만 여겼습니다. DOS 화면처럼 명령을 입력하면 결과가 출력되는 정도로 생각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AI와 대화하는 법’을 배우게 됐습니다. 처음엔 “이 캐릭터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하고 물었는데, 나중엔 “야! 이 캐릭터 왜 이러냐구우우!!! 미쳤어?!!” 이렇게 투덜대는 저를 보면서 깨달았죠. 아, 내가 얘랑 대화를 하고 있구나.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럴 때마다 더 나은 답이 돌아왔습니다. AI가 제 성향을 파악하고 점점 정교한 제안을 하기 시작했거든요. 마치 오래 함께 일한 동료가 제 취향을 알아가는 것처럼요. 그때부터 작업의 질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교육원에서 학생들을 지켜봐도 비슷합니다. AI와 잘 소통하는 학생들의 공통점은 평소에도 대화를 잘한다는 거예요.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하고, 적절한 피드백을 주는 학생일수록 AI와도 훨씬 효과적으로 협업합니다.
결국 AI도 내 의도를 명확하게 전달하고,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함께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일종의 파트너입니다. 단순히 ‘명령을 내리는 관계’가 아니라, 진짜 파트너로서 대화하고 협업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작가의 핵심 역량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4. 실무 경험과 협업의 미래
- AI 스토리텔링, 전문지식 도움...감정변화나 내적 갈등 표현은 한계
- AI, ‘완전한 공동 작가’ 보다는 ‘유능한 어시스턴트’
- AI 스토리텔링이 가장 빛났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최근에 우주정거장을 배경으로 한다는 ‘트리트먼트 노블’로 작업할 때 일입니다. 우주정거장에서 혼자 2년간 머무는 한 남자의 이야기였는데, 과학적 정확성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작품이었죠. 문제는 제가 문과 출신이라는 것. 특히 소행성이 지구에 바짝 접근했는데 왜 발견이 늦어졌는가를 설명해야 하는 부분에서 막혔습니다.
그래서 AI에게 도움을 요청했더니 정말 놀라운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알베도(albedo)라는 개념을 알게 된 것도 그때였습니다. 소행성이 얼마나 빛을 반사하느냐에 따라 관측 가능성이 달라진다는 거죠. AI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탄소질 소행성은 알베도가 2~3%에 불과해, 우주의 검은 배경과 거의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이 덕분에 제 소설에서는 이런 설정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지름 15킬로미터의 거대한 소행성이 태양 방향에서 접근하면서 태양의 눈부심에 가려지고, 동시에 낮은 알베도 때문에 발견이 늦어지는 상황 말이죠."
- 현재 AI 스토리텔링의 가장 큰 한계는 무엇일까요?
"AI는 ‘슬픔’이나 ‘분노’라는 개념은 이해하지만 실제로 느끼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감정 장면을 만들어내면 기술적으로는 완벽해 보여도, 정작 가슴에 와 닿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캐릭터의 내적 갈등이나 복잡한 감정 변화를 표현할 때 이런 한계가 두드러지죠.
한국 드라마에서 중요한 ‘정서’와 ‘관계의 미묘함’, 묘한 존댓말의 뉘앙스 같은 것들은 데이터로는 배울 수 있어도 실제 맥락을 따라잡기는 어렵습니다. 긴 호흡의 서사를 유지하는 능력도 부족해서 초반과 후반의 일관성이 흔들리거나 복선 회수가 허술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AI를 ‘완전한 공동 작가’가 아니라 ‘유능한 어시스턴트’로만 씁니다. 아이디어는 받되, 최종 판단과 감정의 깊이는 반드시 인간이 책임져야 합니다."
- 실제 작업에서 그런 한계를 체감한 순간이 있었나요?
"네, 앞서 말한 ‘트리트먼트 노블’을 쓸 때였습니다. 주인공이 자살을 시도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살아야겠다고 결심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AI는 “나는 살고 싶다”, “가족을 위해 살아야 한다” 같은 대사를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극적인 순간에 사람이 그렇게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기다려… 줘…”라는 한 마디로 정리했습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무엇을 기다리라는 건지도 불분명하지만, 오히려 그 애매함이 절망 속에서 붙잡은 마지막 희망을 더 절실하게 보여줍니다.
이때 제가 깨달은 건, AI가 만들어내는 건 정답일 수 있지만, 인간만이 포착하고 표현할 수 있는 건 진실이라는 점입니다. 특히 한국적 정서, K-드라마, K-팝이 가진 힘은 바로 그 예측 불가능한 진실에 있죠. 논리적으로는 설명이 안 되지만 감정적으로 완벽하게 맞는 순간—그건 인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향후 AI와 인간 작가 간의 이상적인 협업 프로젝트가 있다면 소개해 줄 수 있을까요?
"창작자들은 점점 더 자신만의 스토리텔링 방법론을 개인화하게 될 것이라 봅니다. 말하자면, 각자 자기 곁에 두는 AI 에이전트를 갖게 되는 셈입니다. 앞으로는 독자나 시청자의 취향에 따라 실시간으로 조정되는 인터랙티브 스토리도 많이 등장할 것 같습니다. 최근 공개된 ‘구글 지니3’를 보면, 그것이 그리 머지않은 미래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1년에 자전거를 1만 킬로미터 이상 타는데, 그중 절반 이상은 실내 가상 라이딩으로 채웁니다. 그런데 최근 구글에서 실시간으로 가상현실을 구현해 주는 지니3를 공개했더군요. 덕분에 머지않아 꿈에 그리던 알프스나 이탈리아의 길을 달리며 라이딩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게 바로 메타버스 인터랙티브가 아닐까 합니다."
인터뷰 내내 조규원 작가는 새로운 콘텐츠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그것은 단순히 소재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매체의 형식에서부터 이야기의 방향과 방식까지 폭넓게 이어졌다. 그런 비전을 이야기하면서도 그는 후배들과의 협업을 늘 염두에 두고 있었다. 단순히 그들의 능력을 활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랜 시간 강의실에서 학생으로 만난 작가들에 대한 선배로서의 책임이자 도리를 저버리지 않으려는 자기와의 약속이라고 느껴졌다. 이미 작가로서의 역량은 차고 넘칠 만큼 충분한 그가 AI와의 협업을 이토록 즐기고 있다는 사실은, 같은 현역 창작자로서 두렵기도 하지만 동시에 귀감이 되었다. 앞으로 그가 보여줄 새로운 콘텐츠가 무엇일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