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영화감독 백학기의 시네스토리] ‘박서방’(1960)과 그 배우들...김승호·황정순·김진규·조미령·엄앵란·방수일

[내 가슴에 남아있는 한국고전영화와 그 배우들(20)] - 한국 가족 멜로 영화의 전형 ‘박서방’ -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남우주연상(김승호) 수상작

2025-09-16     백학기 칼럼니스트

[내 가슴에 남아있는 한국고전영화와 그 배우들(19)] ‘마부’(1961)와 그 배우들...김승호·황정순·신영균·조미령·엄앵란·황해 이어서

(사진

인터뷰365 백학기 칼럼니스트 = 한국 가족 멜로 영화의 전형 ‘박서방’은 1961년 제8회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에서 배우 김승호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다. ‘박서방’은 ‘마부’에 앞서 강대진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화성영화주식회사 이화룡이 제작했다는 것은 앞서 얘기한 바 있다.

‘마부’에서 큰아들 배역으로 신영균이 출연했다면, ‘박서방’에는 김진규가 출연한 것 빼고는 김승호 황정순 조미령 엄앵란 출연진이 다를 바 없다. 1960년대 초반에는 가족 멜로 영화가 주류를 이룬다.

신상옥 감독의 ‘로맨스 빠빠’(1960)에서 보험회사 사원으로 나오는 배우 김승호가 ‘박서방’극 중에서는 2남 3녀의 아버지로 나온다. 깨질 뻔한 둘째 딸의 혼사가 이루어지고, 한 가족이 합심하는 사이에 경사가 잇따르며, 어느덧 가정에 웃음꽃이 핀다는 결말의 해피엔드 내용이다.

또 이봉래 감독의 ‘삼등과장’(1961)에서 삼천리운수주식회사의 동부영업소 소장으로 나오는 아버지 역할의 김승호는 어머니(복혜숙), 부인(주증녀), 아들 영구, 딸 영희(도금봉)등 대가족을 이끌고 있는 가장이다. 이들 영화에서 보여주는 김승호는 한국적 아버지의 상징적인 역할로 관객들에게 어필됐다. 서민을 대표하는 친근하고 소탈한 아버지 역할의 상징이다.

영화 ’박서방’에서 무식하고 고집이 센 ‘박 서방’(김승호)은 연탄 아궁이를 수리하는 미장일이 직업이다. 그의 슬하에는 3남매가 있다. 박 서방은 큰딸 용순(조미령)이 건달 청년 재천(황해)과 가깝게 지내는 것이 못마땅하다. 또 항공회사에 다니는 작은딸 명순(엄앵란)이 회사 동료인 주식(방수일)과 사귀는 것도 탐탁지 않다.

다만 큰아들 용범(김진규)에게만은 아량이 넓다. 그가 좋아한다는 점례(김혜정)와의 결혼을 두 말 않고 허락한다. 큰딸 용순은 아버지의 반대가 심하자 집을 나가 재천과 따로 살림을 차린다. 그러나 어두운 그림자가 비친다. 설상가상으로, 믿었던 큰아들 용범이 결혼 후 태국의 지사로 나가겠다고 조른다. 이에 박 서방은 강하게 반대한다. 어느 날 박 서방은 회사 동료 주식의 고모에게 불려 나가는데, 고모는 두 집안의 차이가 너무 심해서 결혼은 불가하다며 박 서방을 모욕한다.

그런 수모를 겪고 집으로 돌아온 박 서방은 꼭 성공하라며 큰아들의 태국행을 허락하고 재천을 받아들인다.

1929년 경남 마산에서 출생한 배우 조미령은 어린 나이인 8세 때 ‘임자없는 자식들’이라는 연극에서 배우로서 첫 무대에 올랐다. 이어 1939년 극단 ‘청춘좌’에서 활동하면서 본격적인 배우 수업을 받았다(여성영화인사전). 영화 데뷔작은 이규환 감독의 ‘갈매기’(1948)다.

그녀의 대표작은 누가 뭐래도 이규환 감독의 ‘춘향전’(1955년)과 이병일 감독의 ‘시집가는 날’(1956년)이다. ‘춘향전’에서는 ‘성춘향’역을 맡아 그녀 자신의 특유의 고전적 매력으로 관객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이 작품은 1955년 당시 국도극장에서 개봉해 서울에서 30만 명의 관객 동원을 기록했다.

또 오영진의 희곡을 영화화한 ‘시집가는 날’에서 조미령은 맹진사댁 몸종 ‘입분’ 역을 맡아 순수한 매력을 선보였다. 이 작품은 1957년 아시아영화제 특별 희극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 두 작품으로 조미령 만의 동양적이고 고전적인 마스크와 분위기가 관객들의 인기와 큰 사랑을 받았다.

이후 안현철의 ‘양산도’(1961), 강대진의 ‘마부’(1961), 유현목의 ‘성웅 이순신’(1962), 김수용의 ‘혈맥’(1963), 신상옥의 ‘로맨스 그레이’(1963) 등 1950년대 중후반과 1960년대 후반에 걸쳐서 다수의 작품에 출연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제작자였던 남편 이철혁과 사별한 뒤에 1969년 재미교포와 재혼하면서 도미해 은막에서 떠났다.

1932년 함경남도 함주 출생인 배우 방수일은 수려한 외모를 지녔다. 본명은 김영소. 1957년 수도영화사 배우 양성소 1기 훈련생 출신. 6개월간의 수련 과정을 거쳐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1958년 배우 오디션에서 홍성기 감독의 영화에 캐스팅되어 배우로 데뷔했다. 데뷔작은 당시 KBS 라디오의 동명의 인기 드라마를 영화화한 ‘산 넘어 바다 건너’(1958)다. 데뷔 이후 ‘박서방’(1960), ‘삼등과장’(1961) 등의 현대극과 ‘원술랑’(1961), ‘이차돈’(1962) 등의 사극에서 활약했다.

이두용 감독의 ‘경찰관’ (1978)에서 돋보이는 방경장 역할 등 1970년대에서 1980년대초까지 활발하게 충무로에서 활동한 배우다. 이후 활동이 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