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영화감독 백학기의 시네스토리] ‘마부’(1961)와 그 배우들...김승호·황정순·신영균·조미령·엄앵란·황해

[내 가슴에 남아있는 한국고전영화와 그 배우들(19)] - 韓 영화 최초의 세계 3대 영화제 본상 수상작, 강대진 감독의 ‘마부’

2025-09-09     백학기 칼럼니스트

[내 가슴에 남아있는 한국고전영화와 그 배우들(18)] ‘오발탄’(1961)과 배우 김진규·최무룡·문정숙·윤일봉·이대엽 이어서

김승호

인터뷰365 백학기 칼럼니스트 = 제11회 베를린 영화제 출품작으로 강대진 감독의 ‘마부’가 선정된 것에 대해 당시 충무로에서는 ‘오발탄’에 더 높은 점수를 줘야했다며 논란이 벌어졌다.

그해 1961년 6월 23일에서 7월 4일까지 열린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마부’는 은곰상을 받아 그 후광의 여파로 국내 관객 15만 명 동원이라는 흥행기록을 세웠다. 프랑스 누벨 바그의 거장 장뤽 고다르 감독의 ‘여자는 여자다’와 공동으로 '심사위원 특별은곰상'을 수상한 이 영화 ‘마부’는 한국 영화 사상 최초의 세계 3대 영화제 본상 수상작이 된 셈이다. 심사위원 중 미국의 감독 니콜라스 레이가 ‘마부’의 수상을 적극적으로 추천했다고 전한다.

임희재 각본, 강대진 감독의 ‘마부(馬夫)’는 벙어리인 큰딸(조미령)과 고시 공부를 하는 큰아들(신영균), 결혼으로 출세하려는 둘째 딸(엄앵란), 동네에서 말썽만 일으키는 작은 아들(황해). 이렇게 4남매를 데리고 살아가는 고달픈 인생 홀아비 ‘춘삼’ 역 김승호의, 김승호에 의한, 김승호를 위한 흑백영화다.  

‘마부’는 1960년대 초반의 서울 풍경을 리얼하게 볼 수 있다. 춘삼(김승호)은 인생살이가 고달프기 짝이 없다. 춘삼은 홀아비인 자신을 음으로 양으로 도와 주는 이웃집 식모(황정순) 덕분에 그나마 기운을 얻곤 한다.

신영균

그런데, 시집갔던 벙어리 딸이 쫓겨 오고, 작은아들은 허구한 날 말썽만 부리며 그의 속을 썩인다. 그런 세월 속에서 '고생 끝의 낙'이라고, 큰아들(신영균)이 고등고시에 합격한다. 속만 썩이던 작은아들도 마음을 잡아 새사람이 되어 간다. 큰아들은 외로운 아버지와 이웃집 식모와의 재혼을 주선한다. 마부 춘삼의 가정엔 다시 밝은 웃음꽃이 핀다.

새로운 희망에 부푼 춘삼의 가족들은 눈이 내리는 서울 한복판 중앙청 거리를 함께 걷는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명장면이다.

1928년 황해도 평산 출신인 배우 신영균은 영화 ‘과부’(1960)로 데뷔했다. 데뷔 초기에는 신일천(申一川)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신영균은 데뷔 2년 만에 ‘연산군’(1962)으로 제1회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차지하며 연기파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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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균의 히트작인 ‘빨간 마후라’(1964)를 통해 제11회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으면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배우라는 인상을 대중들에게 심어줬다. 충무로 데뷔 연도인 1960년부터 1978년 배우 은퇴하기까지 ‘과부’, ‘연산군’, ‘열녀문’, ‘갯마을’, ‘시장’, ‘빨간 마후라’, ‘미워도 다시 한번’, ‘삼일천하’ 등 대중성과 흥행성에 성공한 작품을 비롯해 총 294편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1960~70년대 영화계 최고의 스타로 군림했다.

특히 1960년대 후반 가장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정소영 감독)으로 당대 미인 배우 문희와 함께 오래오래 기억되는 배우다. 이 영화는 당시 ‘고무신 관객’으로 불리던 주부 관객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흥행을 불러일으켰으며 한국 영화사에 기록된 신파 멜로드라마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

‘마부’에서 춘삼을 연모하는 식모역의 배우 황정순은 한국 어머니의 초상이다. 스크린 속에서 항상 다정하고 따뜻한 미소와 웃음이 트레이드 마크. 영화 '그대와 나'로 데뷔(1943)한 이래 1960년 ‘박서방’에서 처음으로 어머니 역할을 맡아 한국적 어머니의 모습을 연기하며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이후 ‘김약국의 딸들’(1963), ‘장남’(1984) 등을 비롯해 은퇴할 때까지 43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영화 ‘사랑’(1957)을 통해 제1회 한국평론가협회 최우수여우상, ‘혈맥’으로 대종상·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 밖에도 보관문화훈장(1992년), 대한민국 예술원상(2004년), 여성영화인상 공로상(2007년), 대종상영화제 공로상(2013년) 등을 받았다. 지난 2007년 이 같은 영화계 공로로 신상옥, 유현목 감독에 이어 세 번째로 ‘영화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2014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9세.

155㎝의 작은 키 덕분에 ‘작은 거인’으로 불리기도 했던 배우 황해는 부인인 가수 백설희와의 사이에 가수 겸 배우 전영록, 전영진을 낳은 연기자다. 본명은 전홍구. 1949년 영화배우로 데뷔, 극작가인 동랑 유치진이 쓴 희곡이 원작인 ‘소’(소작농민 국서 역)를 비롯한 222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액션 영화에서 빛을 발하여 '한국의 제임스 캐그니'로 불리기도 했다.

엄앵란황해

특히 ‘독 짓는 늙은이’(1969)에서의 인상적인 연기와 호연으로 백상예술대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황순원의 소설 ‘독 짓는 늙은이’를 영화화한 최하원 감독의 1970년 개봉작이다. 황해가 육십 평생 장가도 못 간 채 ‘독’ 짓기에 집념한 가난한, 송영감 역을 연기했다.

한편 ‘독 짓는 늙은이’ 제작자는 이승만 정권 시절, 명동파 보스로 유명했던 이화룡이다. 해방 전 평양에는 ‘이화룡이 있다’고 할 정도로 유명한 건달 이화룡이 1960년부터 1967년까지 화성영화사를 운영했다. 그가 제작한 거물급 작품으로는 소위 1대 장희빈으로 불리는 김진규, 김지미 주연의 '장희빈'(정창화 감독, 1961년작)이다. 이와 함께 한국 고전 영화의 걸작을 논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마부’, ‘박서방’, ‘노다지’ 등을 제작했다. 이만희 감독의 데뷔작인 ‘주마등’도 이화룡의 화성영화사 작품이다.

‘마부’는 전후 이탈리안 리얼리즘 계통의 영화에서 보여주는 흐뭇한 인정 담과 더불어, 아픈 당대 사회 현실을 예리하게 직시하는 '카메라의 눈' 즉 앵글이 스며 있다. 이 같은 현실을 담은 ‘마부’는 곧 영화적 현실의 허구(虛構)를 통해 우리 사회의 주변 현실을 리얼하게 서사화함으로써 더 큰 공감력을 불러일으켰다. 한 해전인 1960년 같은 강대진 감독의 ‘박서방’에서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김승호의 ‘서민 아버지 연기’가 그 다음해인 ‘마부’로 연이어 이어진 셈이다.

‘박서방’에서 김승호가 미장이 역할로 나왔다면 ‘마부’에서는 말을 끄는 수레를 가지고 서울의 곳곳을 돌아다니는 마부 역할과 그의 여정을 통해 서민들이 살아가는 따스한 정감을 표현했다. 휴머니즘이라는 인간의 숭고한 삶의 태도와 가치를 스크린에 담아낸 탁월한 작품이라는 국내와 해외의 한결같은 평가가 이어진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