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 시인의 시로 보는 세상 풍경] (24) 묵호 논골담길서 까막바위·문어 전설 들으며 나를 돌아보다

2025-09-08     홍찬선 칼럼니스트
묵호

인터뷰365 홍찬선 칼럼니스트 = 여행은 나를 발견하는 보물찾기다. 새로운 곳에 가면 새로운 나를 본다. 자동차로 휙 지나친 곳을 진양조로 천천히 걷는다. 그때 보지 못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다른 모습으로 그 풍경 안으로 쏘옥 들어간다. 묵호항도 그렇다.

1999년 봄, 이곳에서 가까운 동해항에서 봉래호(蓬萊號)를 타고 금강산을 오갔을 때 지나갔을 텐데, 그때의 묵호항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없다. 몇 년 전 여름, 강릉에서 자동차로 7번 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갈 때 길옆 바다에 외롭게 서 있는 바위가 보였다.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아스라할 뿐이다. 이제 다시 그 바위를 보니 이름이 ‘까막바위’라고 했다.

묵호항 까막바위에서 문어의 전설을 보다

묵호

까막바위는 도째비골 앞의 해랑전망대에서 북쪽으로 50여m 떨어진 곳에 있다. 도로 옆 바다에 홀로 우뚝 서 있는 아름다운 바위섬이다. 까마귀가 이곳에 새끼를 쳤다고 해서 까막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바위가 검은색이라서 그런 이름을 얻었을 것이다. 이곳은 서울의 숭례문(崇禮門)에서 정동(正東)이라고 알려주는 표지석이 서 있다.

만나야 할 것은 
언젠가 만나게 되어 있다

마음에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게 
사람이지만

그리움을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으면
어느 날 문득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불쑥 눈앞에 나타난다

이름도 모른 채 가슴에 담았던
까막바위가 오늘 그렇게 나를 찾아왔다
그때는 보지 못했던 잘생긴 문어와 함께
세월의 벽을 넘어 기억을 되살렸다

- 홍찬선, '까막바위와 문어 동상'

묵호

까막바위 옆에 멋진 문어상(像)이 있다. 금방이라도 살아서 팔다리를 휘두를 것 같은 모습이다. 이 문어상은 조선 중엽, 이곳에 살았던 호장(戶長, 지금의 이장)이 환생한 것을 기리는 동상이란다.

당시 호장은 인품이 온화하고 덕망이 있어 마을 사람들이 따르고 존경했다. 어느 날 마을 앞바다에 배 두 척이 나타나, 배를 타고 자들이 마을을 침략했다. 호장이 용감하게 맞서 싸웠지만 중과부적(衆寡不敵)이었다. 침략자들은 약탈한 재물과 호장을 싣고 돌아가려 했다. 마을 사람들이 뒤를 쫓아 호장을 구하려 했지만 역시 패했다.

호장이 침략자들을 크게 꾸짖자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며 광풍이 불고 천둥번개가 내리쳐 호장이 탄 배가 침몰하고 모두 죽었다. 남은 배 한 척이 급히 달아나려고 하자, 커다란 문어가 나타나 그 배를 뒤집어 침략자들을 모두 죽였다.

마을 사람들은 이 문어가 호장이 환생한 것으로 여겼다. 그 일이 있은 뒤부터 마을에 평온이 찾아왔다. 지금도 착한 일을 한 사람이 이곳을 지나가면 복을 받고, 나쁜 짓을 한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고 한다.

도째비골의 얼굴바위에서 마음을 닦다

묵호등대와

까막바위에서 남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오른쪽으로 사람 얼굴을 한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도째비골의 얼굴바위다. 도째비는 도깨비의 사투리다. 도째비마을로 들어가는 비탈길의 가파른 바위에 사람 얼굴을 새긴 것이 바로 얼굴바위다.

얼굴바위의 얼굴은 이곳 마을을 지켜준 동해의 정령을 새긴 것이다. 동해 정령(精靈)은 도째비마을 사람들이 착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것에 감동 받아, 거센 폭풍과 산더미 같은 파도에서 이 마을을 지켜주었다. 마을 사람들이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을 때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보살피고, 위험한 일이 닥치기 전에 바닷물을 진동시켜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조상 대대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그 정령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바위에 인자한 얼굴을 새겼다.

올라갈 때는 보지 못했다
그저 사진 찍는 데만 마음이 쏠렸다

내려올 때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너무 가까워 제 모습이 다 보이지 않았다

뒷걸음질 치고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커다란 구멍 두 개가 사람 코라는 걸 겨우 알았다.

조금 더 뒤로 물러서자 얼굴이 다 보였다
칡넝쿨로 가려진 두 눈과 지긋이 감은 입술과 인자한 미소를 받치고 있는 턱과 오랜 세월 도째비골 사람들을 보살펴 온 주름이 통째로 다가왔다

- 홍찬선, '도째비골의 얼굴바위' 전문.

묵호항과

도째비골의 얼굴바위 위에는 묵호등대가 있다. 묵호등대는 1963년 6월8일에 건립돼 밤에 바닷길을 비춘다. 해발 67m에 있는 묵호등대는 높이가 26m다. 등대 안으로 들어가 계단을 오르면, 벽에 한국의 등대 사진이 반갑게 맞이한다. 지난해 여름, 홍도에 갔을 때 유람선을 타고 바라본 홍도등대(1931년 2월1일 최초점등)와 한 달 전에 본 울산 간절곶 등대의 아름다운 모습도 다시 보았다.

계단을 다 올라 전망대에 서면 사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쪽으로는 백두대간의 두타산과 청옥산이, 남쪽으로는 동해시가, 동쪽으로는 동해가 넓게 펼쳐진다. 동해를 가로질러 달려가면 울릉도와 독도에 이른다. 가깝게는 묵호항이 다정스럽게 다가온다. 전망대 위에는 2003년 10월에 설치한 ‘프리즘렌즈 회전식 대형등명기’가 설치돼 있다. 국내 기술로 개발된 이 불빛은 42km 떨어진 곳에서도 식별이 가능하다. 동해를 지나는 배들의 뱃길을 지켜주는 든든한 등대다.

묵호

묵호등대를 내려와 등대문화소공원을 걷는다.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의 촬영장소가 이곳이라는 표지석이 반갑게 맞이한다. '미워도 다시 한번'은 정소영 감독과 문의 신영균 등이 출연해 1968년에 개봉한 영화다. '미워도 다시 한번'은 서울과 부산 2개 도시의 개봉관에서만 60여만 명의 관객을 모을 정도로 대박을 터트렸다. 손익분기점이 서울개봉관 3만 명이던 시절에 엄청난 흥행으로 한국 영화사상 가장 중요한 작품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묵호

'미워도 다시 한번'을 떠올리며 논골담길을 바라본다. 논골담길은 논골1, 2, 3길과 등대오름길 등 4개가 있다. 이곳은 묵호항을 중심으로 어부와 그의 가족들이 많이 살던 곳이다. 산 비탈에 블록으로 벽을 올리고 그 위에 판자와 돌, 슬레이트와 양철 등으로 지붕을 올린 판잣집이 많았다.

마을 위쪽에 ‘덕장길’이 남아 있어, 산비탈에 소나무로 만든 덕장에서 오징어와 대구, 가오리 등을 말렸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2010년부터 2015년까지 ‘논돌담길 담화마을’을 조성했다. 벽화(壁畫)와 달리 담에 그린 그림이라는 담화라고 불렀다

점심 예약이 되어있는 동남회집으로 가려면 논골1길로 잡아야 한다. 논골1길로 내려가며 이곳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함께 간 일행이 등대오름길로 내려가 버스를 타야 한다고 해서 아쉬운 마음을 돌렸다. 시 한 편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논골담길 담에는
신랑 없이 살아도 장화 없인 못 산다는 글귀와
큰 보따리를 머리에 인 할머니와 오징어와 명태를 나르는 지게꾼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오순도순 나그네와 길벗이 된다는데

논돌담길 어느 곳에는
묵호의 옛 이름이 오진(烏津)이었는데
조선말 이유홍 강릉 부사가 묵호(墨湖)로 바꿔줬는데
묵호는 산과 물이 어우러진 곳에서 멋인 경치를 보며 좋은 글을 쓰는데 부족함이 없다는 뜻이라는데

논골담길의 논골은
논고랑의 준말이며 논도랑의 사투리라서
산비탈을 개간해 만든 계단식논의 논둑처럼
담과 담이 이어진 담길이 미로처럼 이어졌다는데

- 홍찬선, '묵호항 논골담길' 전문. 

논골담길의 아쉬움은 시 한 편으로 끝나지 않았을까. 문득 안상학 시인의 '오래된 엽서'가 떠오른다. 안상학(1962~) 시인은 경북 안동 출신으로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1987년 11월의 신천(新川)'이 당선돼 등단했다. 논골담길을 가지 못한 아쉬움이 그리움을 남아, 까막바위처럼 언젠가 불쑥 눈앞에 나타날 것을 생각한다.

오래된 어제 나는 섬으로 걸어들어간 적 있다.
그곳에서 나는 엽서를 썼다. 걸어 들어갈 수 없는 
그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며 뭍으로 걸어나간 우체부를 생각했다.

바다가 보이는 종려나무 그늘에 앉아
술에 취해 걸어오는 청춘의 파도를 수없이 만나고
헤어졌다, 그러나 단 한 번 헤어진 그 사람처럼 아프지 않았다.

섬 둘레로 저녁노을이 불을 놓으면
담배를 피우며 돌아오는 통통배의 만선 깃발, 문득
돌아오지 않는 그 사람이 걸어간 곳의 날씨를 걱정했다.

아주 오래된 그때 나는 섬 한바퀴 걸었다. 바다로
걸어가는 것과 같이 들어가는 것을 생각하다 잠든 아침
또 한 척의 배가 떠나는 길을 따라 그곳을 걸어 나왔다.

아주 오래된 오늘
오래된 책 속에서
그때 뭍으로 걸어갔던 그 엽서를 다시 만났다
울고 있다. 오래된 어제 그 섬에서 눈물도 함께 보냈던가.

기억 저 편 묻혀 있던 섬이 떠오른다. 아직 혼자다.
나를 불러, 혼자 있어도 외로워하지 않는 법을 가르치던 그 섬 
다시 나를 부르고 있다. 아직 어깨를 겯고 싶어하는 사랑도 함께

- 안상학, '오래된 엽서'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