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 시인의 시로 보는 세상 풍경] (23) 석촌호수서 과거와 현재를 걸으며 미래를 생각하다
인터뷰365 홍찬선 칼럼니스트 = 1시간 일찍 길을 나섰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한여름 밤의 꿈’ 공연을 보기에 앞서 석촌호수를 한 바퀴 돌아보기 위해서였다. 석촌호수는 서울과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매우 특별한 장소다. 물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올바로 보려면 열린 마음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석촌호수는 원래 한강의 본류, 송파강이었다
석촌호수는 원래 한강의 본류인 송파강의 한 부분이었다. 한강은 각 지역에 따라 다른 이름을 갖고 있었다. 석촌호수 쪽은 송파강, 압구정동 쪽은 동호(東湖), 용산 앞은 (龍湖), 마포 쪽은 서강(西江)으로 불렸다. 또 잠실은 조선시대에는 광진교 부근에 붙은 육지였다. 잠실은 지금 한강의 남쪽에 있지만, 원래는 한강의 북쪽에 있었다는 얘기다. 전설의 고향에나 나올듯한 얘기지만 사실(事實)이며 사실(史實)이다.
조선 중기에 큰비가 내려 송파강의 신천강 부근에 조그만 물길이 생겼다. 여의도의 샛강처럼 만들어진 새내는 1925년 을축대홍수 때 더욱 넓어졌다. 1970년대 초 잠실지구를 개발할 때 송파강의 본줄기를 막고, 새내를 확장해 한강의 물줄기를 바꿨다. 송파강 부근은 응봉산 앞에 있던 저자도(楮子島)의 흙과 모래를 파다 메우고 택지로 개발했다. 이때 저자도는 없어졌다. 송파강을 매립하면서 강의 일부를 남겨놓은 것이 바로 석촌호수다. 아시아선수촌아파트가 있는 곳은, 물에 뜨는 섬, 부리도(浮里島)의 부렴마을이 있었다.
혹시 이거 아시나요
석촌호수 나이가 쉰 남짓이라는 사실 말이에요
봄이면 흐드러지게 피는 벚꽃으로
여름엔 123빌딩 감싸는 구름안개로
가을엔 울긋불긋 뽐내는 단풍으로
겨울엔 가슴 먹먹하게 하는 삼전도비로
울고 웃게 만드는 석촌호수가
그렇게 젊다고요, 잘못 안 거 아닌가요
믿기 힘들지요
그런데 더 놀랄만한 일이 있어요
빌딩 숲인 잠실이 한강 북쪽에 있던 육지였다는 것이에요
헛소리 하지 말라고요
1960년대 이전에 만들어진 지도를 찾아보세요
원래 이곳은 풍납토성부터 석촌호수를 거쳐
탄천과 양재천을 만난 뒤 청담대교 아래로
흘러드는 송파강이라고 불렸지요
지금 석촌호수로(路) 상당부분이 당시 물줄기였고요
1925년에 있었던 을축대홍수 들어보셨나요
그때 지금 한강 본류가 된 새로운 물줄기, 새내가 생겼고
1970년대초 잠실지구를 개발하면서 송파강을 막고
새내를 확장해 석촌호수만 맹장처럼 남았지요
잠실야구장도 부리도(浮里島)라는 섬이었고요
눈과 귀와 가슴 활짝 열고 들어보세요
석촌호수가 전해주는 수많은 얘기가 들릴 거여요
- 홍찬선, '석촌호수' 전문.
삼전도비에서 과거의 아픔을 보다
석촌호수 걷기는 삼전도비에서 시작한다. 지하철2호선 잠실역 3번출구를 나와 성남쪽으로 직진해서 신호등 하나 건너면 오른쪽으로 보이는 비각이 바로 삼전도비다.
삼전도비는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버티던 인조가 청 태종의 요구에 따라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항복의식을 한 뒤, 청의 요구에 따라 1939년에 세운 비석이다. 높이 3.95m, 폭 1.4m의 거대한 이 비의 원래 이름은 대청황제공적비(大淸皇帝功績碑)다. 비석의 앞면 왼쪽은 몽고어, 앞면 오른쪽은 만주어, 뒷면은 한자로 되어있다.
17세기 중엽 동아시아 언어를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다. 1009자로 된 비문은 당시 도승지 겸 예문관제학이었던 백헌(白軒) 이경석(李景奭, 1595~1671)이 지었다. 아무도 ‘오랑캐를 칭송하는 글을 지을 수 없다’고 하는 상황에서 백헌은 “글을 배운 것이 한스럽다”는 말을 하며 눈물을 삼키며 썼다. 백헌은 이로 인해 나중에 송시열(宋時烈, 1607~1689)에 의해 탄핵당했다. 백헌이 송시열을 발탁했지만, 주희를 잘못 배운 사대주의에 빠진 송시열의 옹졸함을 알 수 있다.
삼전도비 옆에는 비석 받침대인 龜趺(귀부)가 하나 놓여 있다. 청이 원래 준비했던 삼전도비보다 큰 것을 요구해 작은 귀부를 쓸 수 없어 옆에 그냥 버려두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전도비는 청일전쟁(1894년)이 끝난 뒤인 1895년에 땅에 묻었는데, 조선총독부가 1917년에 다시 세웠다. 조선이 자주국방 능력이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속셈이었다.
문교부는 1956년에 다시 땅에 묻었다. 치욕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줄 수 없다는 밴댕이 속을 내보인 것이다. 하지만 홍수 때 모습이 드러났다. 역사는 감추려고 한다고 감춰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1963년에 사적(史蹟)으로 지정됐고, 원래 서호 안에 있던 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인 현재의 자리로 옮기고 비각도 함께 세웠다.
이것은 수치 덩어리라는 손가락질은 이제 멈춰야 한다
석촌호수 동호의 동북쪽 구석에 눈치보듯 엉거주춤 서 있는
삼전도비는 이제 대청황제공덕비라고 똑바로 불러야 한다
한양에서 중원 목계나루까지 이어진 한강물길의 중심,
솔밭 언덕의 삼밭나루에 불청객으로 우뚝 솟은 부끄럼덩이는
주희의 잘못된 가르침에 홀려 백성 귀한 줄 모르고
편 갈라 싸움질을 일삼은 당파들에 내리친 회초리로 삼아야 한다
그 치욕 목숨으로 씻지 못하고
그 수치 민생으로 끊지 못하고
그 부끄럼 숭명(崇明)으로 더 키우고
그 뻔뻔함 화냥년 만들어 내고
그 허위의식 천추(千秋)에 남긴 오점
철 아는 매화와 벚꽃이 흐드러질 때
이경석과 오준의 피눈물이 철철철 흐르는데
아직도 그놈 귀신에 씌운 인조 소인배들,
그날의 부끄러움을 모르는 철부지들을 뛰어넘어야 한다
- 홍찬선, '삼전도비와 대청황제공덕비' 전문.
석촌호수는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하루라도 더 오래 건강하게 살려고 동호에서 서호까지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걷고 달리는 사람들이다. 서호(西湖) 가운데 있는 인공섬, 매직아일랜드에서는 자일로드롭과 청룡열차, 바이킹과 번지드롭 등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어린이들의 기쁜 함성이 끊이지 않는다.
은근슬쩍 걷는 대열에 끼어든다. 사람과 아름다운 경치로 ‘걸멍’에 빠졌다가 정신을 차리니 동호(東湖)의 동북쪽이다. 그곳에서 멋진 흉상(胸像) 두 분을 만났다. 1997년 7월 20일, 경기도 여주 남한강에 빠진 초등학생 2명을 구하고 목숨을 잃은 권용필 의사자(義死者)와 1998년 8월4일, 양양군 오산리 일출휴게소 앞바다에 빠진 어린아이 2명을 구한 뒤 파도에 휩쓸려 목숨을 바친 최진희 의사자를 기리는 동상이다.
하나뿐인 목숨을, 나와 직접 관계없는 사람을 위해 바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석촌호수에서 건강을 다지고 즐겁게 노는 사람들이 권용필 최진희 의사자를 만나 오늘을 살며 내일을 다짐하는 좋은 화살표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 순간이 닥쳤을 때
앞뒤 재지 않고 그대로 뛰어들어
허우적거리는 어린이를 구하는 것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막아서고
내 죽음이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박을지라도
내가 아니면 안 되기에
저 차고 어두운 물속으로 기꺼이 뛰어들어
목숨까지 내주는 것이 참사랑입니다
- 홍찬선, '나를 모두 바친다는 것' 전문.
1시간이 순식간에 흘렀다. 이제 공연시간에 맞춰 롯데콘서트홀로 가야 할 시간이다.
걸음을 재촉하는 데 멋진 동상이 발길을 잡는다. 독일의 세계적 대문호 괴테(1749~1832)의 전신 동상이다. 동상 밑에 괴테 동상이 여기에 있는 이유를 설명문이 있다.
“‘롯데’라는 기업명은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인 샤롯테(Charlotte)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이 동상은 롯데와 베를린시, 독일 괴테재단이 함께 건립한 것으로 독일의 대표적 신고전주의 조각가 프리츠 샤퍼(Fritz Schaper)가 1880년에 제작한 괴테 동상을 현대적으로 재창조한 것입니다.”
가곡 '그리운 금강산'이 흐르는 ‘한여름 밤의 꿈’이 저물고 가을이 지각생처럼 천천히 오고 있었다.